Category: 칼럼

바르게 자라는 어린이

바르게 자라는 어린이

꾸지람속에 자란아이 비난하는 것 배우고

미움받으며 자란아이 미움 배우며 자라고

매 맞으며 자란아이 폭력휘 드르는 사람되고

놀림당하며 자란아이 수줍음 타게 되며

사랑 받으며 자란아이 사랑할줄 아는 사람된다

용서받은 경험있는 아이 남을 용서할줄알게 되고

관용속에 자란아이 참을성 있는 사람된다

칭찬 받으며 자란아이 감사할줄 알게 되고

격려 받으며 자란아이 자신감 갖고 살게되며

공정한 대접 받으며 자란아이 올바름을 배우게되며

기도로 자란아이 희망을 꿈꾸게 된다

어린이가 불순종이 아닌 바른 순종을 배우고

어린이가 탐욕이 아닌 배려와 나눔을 배우고

어린이가 불평이 아닌 감사와 격려를 배우고

어리이가 가정 이웃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미래에 소망이 넘치는 대한민국 되기를 기도합니다.

대한민국은 지금 단순한 정권이양이 아닌 체제전쟁중입니다.

대한민국은 지금 단순한 정권이양이 아닌 체제전쟁중입니다.

지금 새로 당선된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가 아닌 용산으로 이전하겠다고 하자 현 대통령과 정권이 이상한 핑계를 대며 이에 불복하며 협조하지 않고 있습니다.

문 대통령은 취임하며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5년은 정말 대한민국이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체제로의 전환을 시도한 시간이었습니다.

그것은 ‘자유 민주주의’에서 ‘자유’를 삭제하고

‘인민 인주주의’ 혹은 ‘사회주의’로의 체제전환이었습니다.

초기에 헌법을 고치지는 못했지만 헌법에서 ‘자유’를 삭제하려고 시도했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2년여간 방역을 핑계로

실제로 ‘자유’를 말살하는 체제전환을 시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체재전복의 배후에는 북한과 중국의 직간접적인 지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정치, 사회, 경제, 언론, 교육,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자유를 삭제하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그들의 온갖 수단방법에도 불구하고

겨우 다시 ‘자유’를 존중하는 정권 교체가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온갖 불법을 저지르며 국민의 자유를 말살하던 자들은

끝까지 자신들의 권력을 악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온갖 거짓 감언이설로 국민을 속이며

국론을 분열시키는 일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시간은 단순한 정권이야기가 아니라,

불법으로 체재전쟁을 시도하던 자들과의 체제전쟁입니다.

그리고 이미 ‘자유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경제’는

가장 중요한 고지를 점령하였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체재를 전복당한 영역에서 되찾고

회복을 이루기 위한 긴 싸움의 시작인 것입니다.

이 싸움은 단순히 대통령 당선인과 차기 정권 사람들의 몫이 아니라

‘자유’를 소중히 여기는 국민의 싸움입니다.

국민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온갖 ‘방종과 내로남불의 불법’을 걷어내고

참된 ‘자유’의 가치를 회복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제 ‘대선’은 끝났지만 ‘자유’ 회복을 위한

본격적인 체제전쟁이 시작된 것입니다.

지금부터 ‘자유 대한민국’ 국민이 함께

빼앗긴 ‘자유 대한민국’ 수복을 위한 싸움에서 반드시 승리합시다.

그냥 백신 계속 맞으라구요? 누굴 위해서요?

그냥 백신 계속 맞으라구요? 누굴 위해서요?

백신 접종이 3차 까지 이어지면서 배긴 부작용과 심지어 사망까지 더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확지자의 30% 이상이 3차 접종까지 완료한 사람으로 효과에 의문이 커지고 있습니다.

또한 백신으로는 감염 자체를 막아주는 글로블린A 항체는 생기지 않는 것이 의학적으로 밝혀졌습니다.

심지어 백신이 중증화율을 현저히 낮춘다는 결과에 대해 방역 당국이 증거를 제시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위드 코로나로 전환하다고 하면서 계속 백신은 맞아야 한다는 어불성설의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백신이며 무엇을 위한 백신 패스입니까?

당신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계속 목숨을 걸고라도 백신을 맞으시겠습니까?

지금도 무조건 백신은 계속 맞아야 한다고 하면 그 부작용에 의한 사망은 살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미국, 백신 맞은 모든 사람 혈전 위험 경고…”혈전으로 죽을 뻔…채용시 접종증명서 요구 못하게 해달라”…백신패스는 살인패스

“코로나19 회복자, 백신 접종자보다 더 강력한 항체 형성…접종자가 비접종자보다 감염위험 높다”

“정부, 백신 부작용 규명해야…원론적인 답변”…백신 강제 접종 밀어붙이며 백신 부작용과 사망 인과성 계속 부인하는 방역 독재 정부

“미접종자 전파 위험이 높다는 증거 있냐”…’백신패스 폐지’ 소송…”기본권 침해”…사법부도 골머리 앓는 정부의 ‘방역패스’ 고집

질병관리청, “코로나는 감기” 결국 인정…그러나 국민에 대한 자유의 제한과 감시 통제 멈추지 않으려는 정부

말만 공정이 아닌 진정한 공정이 회복되는 대한민국을 꿈꾸며

이번 베이징 올림픽의 페러디 명칭은 ‘눈 뜨고 코 베이징’이다.

그야말로 중국에 금메달 몰아주기 위해 ‘편파판정’의 끝판왕이다.

이 모습을 보며 대한민국의 지난 5년간 ‘내로남불’이 오버랩 된다.

그들은 말로는 언제나 공정이라지만 언제나 ‘내로남불’ 이었다.

해외 거대 언론에서도 ‘내로남불’을 영어로 표기해 소개할 정도이다.

우리는 이제 분명히 그 실체에 대해 깨달아야 한다.

중국과 중국몽을 꿈꾸는 자들의 ‘전체주의’를 향하는 자들의 실체를…

이 정부는 지난 5년간 ‘차별금지법’에 그토록 목을 매달았다.

순진한 국민은 ‘차별금지’는 다연하다며 그들의 미혹에 마음을 빼앗겼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 국민도 그들이 말하는 ‘차별금지’의 속내를 알아야 한다.

그것은 ‘그들’만 빼고 나머지는 다 ‘차별’하겠다는 ‘전체주의’ 야망이다.

자신들의 ‘불의’에 대해 침구하게 만드는 ‘입닥쳐법’을 만들려는 것이다.

이번 올림픽에 특히 2030 세대의 불만이 폭발하고 있다.

단순한 반중 정서를 넘어 ‘내로남불’ 불공정에 대한 폭발이다.

이제 대한민국에서 ‘내로남불’ ‘전체주의’를 꿈꾸는 자들의 세상을 끝내야 한다.

그들의 ‘김정은 바라기’, ‘중국몽’은 ‘전체주의’ 독재를 닮고 싶은 야망인 것이다.

이제는 다시 대한민국의 ‘결과의 평등’이 아닌 ‘기회의 평등’을 회복할 시간이다.

‘결과의 평등’을 추구하는 사회는 ‘전체주의’ 사회요, 결국 다같이 공멸이다.

이제 어떤 특정 지도자가 아닌 국민이 깨어 일어나 대한민국 회복하여야 한다.

젊은 세대가 그토록 민감하고 바라는 진정한 ‘공정’을 되찾아야 한다.

때문에 이제 자신들만의 ‘내로남불’ 추구하는 자는 설 자리가 없는 대한민국 되어야 한다.

방역 정책을 해제하며 일상으로 돌아가는 나라들과 대한민국의 가장 큰 차이는

북유럽의 덴마크를 비롯한 여러 나라들이 오미크론에 의한 감염자 폭증에도

대부분의 방역 통제를 해제하고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대한민국은 여전히 백신패스로 국민 갈등을 조장하고

강제로 백신을 맞히려 안달이지만 심지어 사망에 이르는 부작용은 외면하고

방역을 구실로 한 국민을 향한 감시와 통제를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가는 나라들과

감시와 통제를 확대하려는 대한민국에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요?

단지 지도자와 그 정권을 구성하는 사람들에 차이에 의한 것일까요?

한 나라의 지도자와 구성원들도 결국은 국민의 토양과 선택에 의한 열매입니다.

방역 정책을 해제하며 일상으로 돌아가는 나라의 국민들은

자유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정말 불가피한 불가항력의 상황이 아니라면

자유를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국가들의 국민들이

비정상적으로 감시 통제하려는 것에 저항하며 요구한 결과인 것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어떻습니까?

지금 모든 언론과 수단 방법을 동원하여 공포를 조장하고

국민들이 서로 감시하며 백신패스 등으로 서로 갈등하게 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도 누구보다 자유를 소중히 여기고 불의에 저항하는 국민들입니다.

자유를 말살하는 공산주의와 독재에 일어나 싸워 자유를 찾은 국민들입니다.

하지만 지금 역설적으로 소위 독재에 맞서 싸웠다는 민주화 세력이

가장 강력한 독재를 획책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지난 2년간 교회와 성도는 차별적으로 예배의 자유마저 유린당했습니다.

진정으로 온전한 믿음과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소중한 교회와 성도는

이제 더 이상 교회를 감염의 온상인 것처럼 매도하고

예배의 자유를 훼손하는 것에 대해 깨어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보다 코로나 상황 자체가 심각한 유럽의 국가들이 정상으로 돌아간다면

우리도 얼마든지 가능한 것입니다.

하지만 감시와 통제의 맛을 본 권력이

국민의 적극적 요구와 저항 없이 다시 자유로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이제는 백신과 백신패스가 정말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것인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속히 우리를 일상으로 돌아가게 하려는 의도가 아닌 것이라고 여겨진다면 자유 민주주의 주권 국민 스스로 다시 정상적인 일상으로 회복하기 위해 일어날 때입니다.

🚨🚨북유럽도 ‘위드코로나’…노르웨이·덴마크, 핀란드, 방역규제 해제…이스라엘, 방역패스 제도 폐지

🚨🚨캐나다 트럭커, 대규모 백신의무화 반대 시위 “전국에서 오타와로 집결, 시위규모 10만 육박”…시위대 피해 도망간 트뤼도 “정치 생명 끝난듯”

🚨🚨덴마크, 코로나19 모든 제한조치 “해제”… 유럽 각국도 중단·완화 중…“상황 호전 중, 백신·마스크 의무화 끝내야 한다”

✔코로나 2년 당신의 자유는 안녕하십니까?

새해에는

새해에는

대한민국 모든 혼돈의 어둠이 걷히고

악을 선이라하고 선을 악이라 하는 미혹이 사라지고

거짓과 불의를 일삼으며 진리를 왜곡하는 입이 닫히고

온갖 내로남불 비리들이 다 밝혀지고 그들이 심판을 받고

방역이라는 구실로 국민과 교회를 통제하던 자들이 무너지고

교회마다 예배가 회복되고 성도의 심령에 성령의 불이 임하고

북한과 중국을 추종하며 대한민국의 안보를 무너뜨린

이 나라의 매국노들과 역적들이 힘을 잃고

다시 대한민국에도 죽음이 아닌 생명의 기운이 피어나고

북한의 자유와 복음통일을 향한 문이 열리는

회복과 축복의 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마오를 “계몽군주”라 숭배했던.. 홍위병들이 부른 파멸…문 정권, 끝내 모택동식 인민민주 독재로

 

 

마오를 “계몽군주”라 숭배했던.. 홍위병들이 부른 파멸

2020년 바로 오늘날도 전체주의 폭압정권의 세습전제군주를 “계몽군주”라 칭송하는 시대착오적 ‘지식분자’가 남아 있다. 20세기 인류는 스탈린, 히틀러, 마오쩌둥, 김일성, 폴 포트 등의 전체주의 정권을 경험했다. 이들 전체주의 정권은 공통적으로 인권유린, 인격숭배, 사상통제, 언론검열, 국가 테러리즘의 양상을 보였다. 이에 덧붙여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는 2차 대전 직후 “전체주의의 기원”을 밝히면서 스탈린과 히틀러의 생명은 바로 열광적인 군중(masses)의 지지라고 분석했다.

전체주의 정권의 궤변론자들

마오쩌둥의 전체주의 역시 열광적인 군중의 지지 위에서 실현됐다. 문혁 초기 중앙문혁소조의 왕리(王力, 1921-1996), 관펑(關鋒, 1919-2005), 치번위(戚本禹, 1931-2016) 등 3대 필간자(筆杆子, 붓대, 문인)라 불리던 극좌의 ‘지식분자’들은 마오쩌둥이 인민을 계몽하고 영도하는 “불세출의 영묘한 수령”이라 칭송했다. 권력의 정당성을 고작 한 개인의 “영웅적인” 카리스마에서 찾는 허술한 논변이다.

정상적인 문명사회에서 그런 몰상식한 궤변을 설파하는 ‘지식분자’는 사회적 매장을 면할 수 없을 테지만, 1960년대 중국에선 그 허술한 논변이 마술적인 집단최면의 효과를 발휘했다. 마오를 절대의 “계몽군주”로 숭배하는 군중의 광열은 인류 보편의 가치를 파괴하고 가족윤리를 해체하는 파멸적 결과를 초래했다. 자신의 모친을 반혁명분자로 고발해 총살시킨 한 홍위병의 참회가 당시의 상황을 웅변한다.

마오쩌둥의 뜻을 받드는 홍위병들

1966년 8월 18일 쑹빈빈은 톈안먼 성루에서 최고영도자 마오쩌둥의 왼쪽 위팔에 홍위병 수장을 달아주는 영광을 누렸다. 당시 만 17세의 쑹빈빈은 베이징 사범대학 부속 여중 홍위병 조직의 부주석이었다. 쑹빈빈은 중국 인민해방군의 장군 출신으로 1980-90년대 8대 원로 중 한 명으로 꼽혔던 쑹런치웅(宋任窮, 1909-2005)의 딸이었다. 쏭빈빈이 전국 홍위병의 대표가 되어 “백만 군중” 앞에서 마오쩌둥에 홍위병의 수장을 달 수 있었던 데는 중국공산당 내부의 “꽌시(關係)”가 작용했다.

바로 다음 날 (1966. 8.19.) 베이징의 ‘인민일보’는 제1면에 홍위병의 수장을 단 마오쩌둥의 사진과 함께 톈안먼 광장의 백만군중 집회를 대서특필했다. 전국에 우후죽순으로 막 생겨나던 홍위병 조직의 성원들은 직접 홍위병 수장을 하고 있는 마오쩌둥의 사진을 보는 순간 감동의 도가니에 빨려들었다. 최고영도자 마오주석이 직접 어린 홍위병들을 향해 바로 그들이 혁명의 주체임을 확인시켜줬기 문이었다.

  1. 8월 21일 자 ‘인민일보’에는 그날 성루에 올라 마오쩌둥의 팔에 수장을 달아 준 쑹빈빈의 칼럼 “내가 마오주석께 수장을 달아드렸다”가 게재됐는데, 본명 대신 쑹야오우(宋要武)란 새 이름을 걸고 있었다. 지난 회 언급했듯 바로 그날 마오쩌둥은 쑹빈빈에게 이름을 묻고는 “야오우마(要武嘛, 무가 필요하지)”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쑹빈빈이 마오의 뜻을 받아 쑹야오우로 개명했다는 사실은 전국의 홍위병의 심장에 다시금 불을 지르는 계기였다.

어머니를 “반혁명분자”로 고발해 죽게한 홍위병

당시 안후이성 구전(固鎭)현에서 소학교를 막 졸업한 12세의 한 소년은 “쑹야오우”의 혁명정신에 큰 자극을 받았다. 소년은 즉시 본명을 버리고 장홍빙(張紅兵)으로 개명했다. 붉은 병정이 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로부터 3년 6개월 후, 1970년 2월 13일 밤, 16세의 홍위병 장홍빙은 모친 팡중모(方忠謀, 1926-1970)를 ‘반혁명죄’로 고발했다. 곧바로 무장한 군인들이 몰려와 모친을 트럭에 짐짝처럼 싣고 가버렸다. 이후 장홍빙은 군중의 틈에 섞여 인민법정의 재판관이 모친의 판결이 선독(宣讀)되는 순간을 목격했다. “사형에 처한다! 즉각 집행!” 두 달이 채 못돼 모친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향년 44세.

소년의 모친 팡중머우는 1949년 해방 이전 간호병으로 인민해방군에 참가했다. 기초 보건지식만 갖고 의료현장에 투입됐던 이른바 “맨발의 의사(赤脚醫生)”였다. 1965년엔 구전현 병원의 문진(問津)부 부주임을 역임했는데, 문혁이 시작되자 곧 남편이 주자파로 몰려 비투(批鬪)당하면서 온 집안은 고난의 급물살에 휩싸였다. 1968년 5월부터 시작된 청리계급대오(淸理階級隊伍, 1968-1969) 운동은 흔히 “3천 만을 타격하고 최소 50만에서 최대 150만을 학살했다”는 최악의 전체주의적 테러였다. 그 시기 팡중머우는 “특무(特務, 특수간첩)”혐의의 지주분자로 몰려 구금 상태에서 날마다 문초당해야만 했다. 1950년대 초 그녀의 부친이 지주계급으로 분류돼 숙청됐다는 이유였다.

1970년 2월 13일, 장홍빙은 모친의 낡은 수첩에 적힌 “고귀한 자가 가장 우둔하고, 비천한 자가 가장 총명하다”는 어귀를 발견했다. 이 문구는 그 당시 마오쩌둥이 직접 인용해서 널리 회자됐었는데, 장홍빙은 모친에게 소리쳤다. “팡중머우! 우리의 위대한 영도자 마오 주석을 폄하하려는 건가?” 격분한 모친은 류샤오치는 무죄라 주장하며 격렬하게 마오쩌둥의 인격숭배를 비판했다. 남편과 아들이 반혁명행위라며 무섭게 질책하자 그녀는 마오쩌둥의 초상화까지 들고 와선 불태워버렸다.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후, 그녀는 난생처음 담배를 물고 뻑뻑 피웠다고 한다. 장홍빙의 부친은 신고를 한다며 뛰쳐나갔다. 혹시나 부친이 마음이 약해져서 신고하지 못할까 우려했던 장홍빙은 그날 밤 직접 모친의 반역행위를 고발했다. 먼 세월이 지나서야 변호사가 된 장홍빙은 문혁 당시 혁명의 광열에 휩싸여 스스로 씻지 못할 중죄(重罪)를 저질렀음을 깨닫고 통곡했다.

당시 장홍빙의 양친 모두 반동분자의 혐의를 쓰고 수난을 겪고 있었음에 주목해야 한다. 문혁이 고조되면서 지주나 부농 집안 출신의 홍위병들은 더더욱 과격한 투쟁의 양상을 보였다. 성분(成分)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그들은 더 극단적 행동을 취해야만 했다. 당시 상황에서 친모를 반혁명분자로 고발하는 행위는 혁명성을 표출하는 극단의 조치였다. 출신 성분을 만회하려는 한 소년의 처절한 처세술이었다.

홍위병 집단의 내분에 관해선 앞으로 차차 상술하기로 하고, 일단 문혁 시대 중국에서 널리 유행했던 혁명가곡의 가사를 되짚어보자.

하늘땅이 크다 해도

당(黨)의 은혜처럼 크지 못하지

양친부모가 가깝다 해도

마오주석처럼 가까울 순 없지!

마오쩌둥 사상은 혁명의 보배

누구든 그를 반대하면 우리들의 적!

마오쩌둥은 “대원수 스탈린”을 이어서 지상에서 공산주의를 실현하는 전 인류의 절대 “계몽군주”가 되길 염원했지만, 인격숭배와 테러정치를 일상화한 그의 통치는 반(反)계몽의 극치였다. 하물며 전체주의 세습전제정의 잔악무도한 폭군임에랴.

https://www.chosun.com/culture-life/2020/10/03/7IHEAW7JYBFAHFW77BRJ24MH2I/

 

 

문 정권, 끝내 모택동식 인민민주 독재로

 

‘대깨문’서 ‘대깨조’로, 내로남불 문 홍위병 늘어

 

문정권의 약탈적 진영정치를 통한 전리품 획득에 위정자의 탈을 쓴 악령들의 희색이 만연하다. 그리고 이들의 자화자찬과 터무니없는 ‘내로남불’ 선전선동으로 대한민국 국민들은 매일 정신없는 불안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여론수렴이나 공론화과정도 없다. 정책입안에 따른 검증시뮬레이션 작업도 없다. 거수기형태로 법제화되어 실행되는 독재자의 아마추어리즘은 1958년 중공의 마오쩌둥이 실시했던 대약진운동 당시 유명했던 ‘제사해’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최고영도자가 중공인민들의 환경개선과 곡물생산을 위해 4가지 해악원인 모기, 파리, 쥐, 참새 등을 박멸하라는 한마디에, 10억 인구가 일제히 나섰다.

그러나 인사고과에 목말라하는 공산당원들로 인해 쉽게 눈에 보이는, 그들의 업적을 쌓을 수 있는 죄 없는 참새가 주요 타깃이 되어버렸다.

끝없이 이어지는 소달구지에 실린 참새더미의 처참한 퍼래이드들이 일일전과로 언론에 대서특필되었다. 1958년 한해에만 참새 2억1천만마리가 도살당했다.

재미난 사실은 넘쳐나는 10억 중공인력을 십분 활용해서 참새들이 전기줄이나, 둥지에서 쉬지 못하게 흔들어, 이들이 탈진해서 저절로 공중에서 떨어지도록 만들라는 소위 ‘탈진사냥’ 수법이 하명되었다는 점이다.

당시 도구나 약품이 변변치 못한 상황에서, 사람이 벌레인지, 벌레가 사람인지 구분도 안되는 척박한 중공의 환경에 달련된 인민들은 정말 놀랍게도 참새들을 시도 때도 없이 괴롭혀 탈진시켰다.

더욱신기한 것은 이런 중공 인민만이 할 수 있는 반이성적, 야만적 행위들이 실질적으로 이들이 참새들을 잡는데 일정 부분 효과를 냈다는 점이다.

그러나 1959년 먹이사슬이 깨진 중공의 대지는 메뚜기 떼의 습격으로 황폐화되었다. 설상가상으로 가뭄까지 덧붙여져, 학계 추산 3천만명에서 5천만명의 인민아사자들을 남겼다.

이런 상황에서 독재자의 넘쳐나는 또 다른 인민사랑은 대약진운동 7년 후 영국을 따라잡고, 15년 후에는 미국을 따라잡을 수 있으니까, 인민들이 거주하는 생활의 터전이 곧 신천지가 될 것으로 가정하고, 인민들의 거주이전을 금지시켰다는데서 정점을 이룬다.

오랜 중국역사 속에서 황허지역이 가뭄이나 천연재해로 흉년이 들면, 그 곳 인민들은 대륙의 하단부에 있는 양자강유역으로 이주해서, 그곳에서 생명을 부지하고 살수가 있었다. 그 반대의 상황에서도 양자강에서 황허로 이주해 인민의 생명을 부지할 수 있었다.

마오쩌둥의 인민사랑으로 만들어진 거주이전 금지법은 흉년이 든 지역인민들을 그 자리에 앉아서 굶어죽게 만들었다.

죽은 자의 인육을 먹거나 돌아가면서 상대의 자식들을 잡아먹는 처참한 광경은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는 참혹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당시 3천만의 남북한 인구를 넘어서는 친애하는 중공인민들을 굶겨 죽인 후, 위대한 아마추어독재자는 옆집 친구인 소련의 또 다른 아마추어영도자 후르시초프에게 부탁해서, 연해주에 있는 참새 2십만마리를 중공으로 수입했다. 그리고 ‘제사해’운동 규정에서 참새를 바퀴벌레로 슬그머니 바꿨다.

자신의 인민을 3천만에서 5천만을 아사시킨 후에 위대하신 아마추어영도자는 미안하다거나, 개선하겠다는 성찰의 메시지는커녕, 이쯤 했으면 됐다는 의미로 ‘완러’ 한마디 외쳤다.

왜냐하면 위대하신 아마추어영도자께서는 절대로 과오를 범하지 않는 신적인 존재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아마추어리즘과 내로남불의 형상은 현재의 문정권과 ‘대깨문’들의 언행에서 차고 넘친다. “우리 ‘인이’ 하고 싶은 대로 뭐든지 해도 된다”는 대깨문의 선전, 선동은 중공의 홍위병과 너무나도 닮았다.

 

현재 대깨문과 대깨조 (조국수호연대)를 포함해서 문재인대통령의 콘크리트지지층은 30% 정도 나오는 것 같다.

양식과 상식이 파괴되고, 사회적 정의와 공정이 자신들의 선호에 따라 달라지는 인지부조화의 세상에서 대깨문과 대깨조의 ‘완장 질’은 이제 날이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다.

현재 중국의 또 다른 아마추어 지도자인 시진핑은 그다지 문재인대통령을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런데도 문재인대통령의 ‘스토킹’에 가까운 ‘종시진핑’과 ‘종중’태도는 날로 더해가고 있다.

별로 예쁘지 않다는 데도 한번만 안아달라고 달려드는 인구 5천만, 세계 12번째 경제대국인 한국을, 다시말해 굴러들어오는 호박을, 중국이 마다할 이유는 전혀 없다.

그래서 그런지 2백만이 넘는 상당수의 한국거주 조선족들이 대깨문에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중국내부에서도 한국에 대한 물밑공작이 외교안보, 사회문화 차원에서 놀랄 만큼 심각하다.

따라서 중국이 문정권을 대미 최종병기로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문 정권의 국내통치과정과 그 목적적 결과 또한 마오쩌둥의 행적을 그대로 답사하고 있다. 참으로 대한민국의 앞날이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 검찰 및 행정관료들은 영혼이 없는 조직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 또 대한민국 헌정질서를 지켜내야 한다.

그리고 국회의원들은 지역구민들의 이해만 대변하는 존재가 아니라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과 동일하게,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최우선으로 지켜내는 대변인이 먼저 되어야 한다.

따라서 대통령이 대한민국 헌정질서를 유린하고, 국민들을 파탄의 구덩이로 몰아넣을 가능성이 확실할 경우에는 목숨을 걸고 이를 저지해야 한다. 이는 너무도 당연한 국민적 책임이다.

이들이 갖는 주권적 의무를 간절하게 믿고 싶다.

jayooilbo@jayoo.co.kr

http://www.jayoo.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293

 

21세기 대한민국에 주는 프랑스혁명의 교훈…대한민국에 시민은 없는가!

 

 

21세기 대한민국에 주는 프랑스혁명의 교훈

 

프랑스 혁명의 가장 큰 원인은 재정위기…통화량 급증으로 인플레이션 65%에 달해

세금인상을 위한 삼부회 소집 이후 성난 파리 군중들이 바스티유 감옥 습격

아이러니하게도 공안위원회와 혁명재판소 설치로 처형당한 80%는 제3신분

이후 공포정치 속 사유재산 몰수, 무분별한 채권 발행 등으로 실업과 기근에 시달려

개인과 기업의 자유와 창의가 존중되고, 사유재산권 보장한 영국과 대조적

1789년 7월 14일 성난 파리 군중들이 당시 군사병원과 요새로 사용되던 파리 앵발리드를 습격해 약 3만 자루의 총과 대포를 빼앗고 탄약을 구하러 당시 왕실요새 겸 감옥으로 사용되던 바스티유를 습격해 주둔군 지휘관과 파리시장을 살해하고 그 목을 창 끝에 걸고 파리를 행진했다. 이것이 유명한 프랑스대혁명의 시발이었다. 프랑스대혁명은 애초부터 의도되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 봉건질서가 지배하고 있던 프랑스와 유럽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프랑스대혁명의 가장 큰 원인은 당시 프랑스의 재정위기였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런데 당시 재정위기의 큰 원인이 프랑스가 미국의 독립전쟁(1775~83)을 지원한 것이었다고 경제사학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바로 얼마 전 북아메리카 식민지를 두고 영국과 전쟁을 벌인 결과 패하여 북아메리카 식민지를 모두 잃은 바 있었던 프랑스는 미국의 지원요청에 흔쾌히 응했는데 이로 인해 재정이 위기에 빠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혁명이 일어나기 전 1788년 왕에게 제출된 재정보고서에 의하면 지출이 6억 2900만 리브르 (당시 프랑스 통화단위), 수입이 5억 300만 리브르로 적자가 1억 2600만 리브르로 적자가 지출의 20%에 달했다. 이로 인해 국채원리금 상환액이 3억 1800만 리브르로 지출액의 51%가 원리금상환에 사용되어야 할 정도였다. 주로 대지주들이 인수했던 국채의 원리금 지급을 중지해도 해결이 안되어 1억 리브르를 은행에서 빌려서 재정지출에 사용하다 보니 통화량은 급증해 마침 1788년 흉작과 겹쳐 65%에 이르는 엄청난 인플레이션으로 서민들의 생활고는 극에 달했다.

할 수 없이 세금 인상을 위해 루이14세 이후 소집하지 않고 있던, 의회의 성격을 지녔던 삼부회, 즉 1부 성직자 2부 귀족 3부 평민으로 구성된 삼부회를 175년 만에 소집했는데 원래는 세 신분이 동수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평민대표를 두 배로 늘려 1200명 정도의 대표가 1789년 5월 베르사이유에 모였다. 흉년에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던 상황에서 세금인상을 위한 삼부회가 순탄하게 진행될 리 없었다. 마침내 3부 평민들은 따로 국민의회 설립을 선언하고 헌법제정을 위한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원만하게 진행되지 않자 성난 파리 군중들이 무기를 탈취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면서 프랑스혁명의 불길이 타올랐다. 국민의회는 봉건특권폐지와 인권선언을 채택했다. 10월 5일에는 군중들이 베르사이유로 행진해 왕과 왕비 왕족들을 체포해 파리 궁전까지 19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6시간 동안 끌고 와 가두는 광란의 행진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후 공안위원회와 혁명재판소가 설치되어 5년간의 공포정치 동안 50만 여명이 투옥되고 4만 여 명이 사형당하고 그 중 루이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넷트를 포함해 14000여 명이 그 악명 높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아이러니칼한 점은 처형된 사람의 80%가 제3신분이었다고 한다. 공포정치를 이끈 사람은 악명 높은 자코뱅당 로베스피에르였다. 1789년 혁명 발발 당시 31세였던 로베스피에르가 1794년 역시 단두대에서 사형을 당함으로써 공포정치는 막을 내렸다. 이 공포정치의 광란 속에서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리 없었다. 재정 조달을 위해 몰수한 교회재산을 담보로 ‘아시냐’라는 채권을 발행했는데 마구 발행해 가격 폭락으로 사용을 중지하는 등 엄청난 실업과 기근으로 수많은 아사자들이 속출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이 혁명의 와중에도 1792년 오스트리아 벨기에 침공 1793년 영국 네덜란드에 선전포고를 하는 등 영토확장전쟁을 이어갔다. 이 전쟁에서 영웅이 된 나폴레옹이 집권하면서 전선은 이탈리아 이집트로 확대되다 마침내 1815년 영국과의 워털루전투에서 패배해 유배를 감으로써 광란의 영토확장 전쟁을 막을 내렸다.

한편 영국은 1688년 명예혁명을 시작으로 민주화가 진행되고 있었고 개인과 기업의 경제활동의 자유와 사유재산, 특히 특허권이 보장되자 경제가 활성화되고 증기기관 직조기 등 각종 새로운 기계발명 붐이 일면서 1760년부터 산업혁명이 시작되어 비약적인 발전을 하고 있던 때였다. 이러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1815년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이겨 유럽에 새로운 질서를 몰고 오면서 영국은 1850~73년 빅토리아 대호황기를 맞으면서 세계의 공장으로 등극해 파운드화가 세계무역에서 기축통화로 사용되는 팍스브리태니카 시대를 열었다. 반면 프랑스는 한 단계 낮은 선진국의 지위에 만족해야 했다.

231년 전에 일어난 프랑스혁명이 오늘날 한국에 주는 교훈은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재정위기를 방치하면 안된다는 점이다. 가장 가깝게 2011년 유럽재정위기는 말할 것도 없지만 유럽대륙의 봉건주의 붕괴를 초래하는 등 역사적으로 큰 획을 그은 프랑스혁명도 그 발단이 재정위기였다는 점을 한국은 잊으면 안된다.

둘째는 프랑스혁명에도 불구하고 왜 프랑스가 다시 왕정복고로 돌아갔는가 하는 점이다. 이 문제에 대해 영국의 정치철학자 에드먼드 버크의 명저 『프랑스혁명의 성찰』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영국은 명예혁명으로 전통과 문명을 유지하면서 점진적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정착시킨 반면 프랑스혁명은 무지하고 오만한 폭력적 군중에 의해 전통과 문명을 파괴하였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는 당연히 폭력적 결과를 수반하게 되고 공익은 핑계가 되고 배신과 살인이 목적이 되어 약탈 복수 공포가 만족할 줄 모르고 지속되는가 하면 국정을 담당할 능력과 경륜을 갖추지 못한 무리들이 대거 국정을 담당하면서 사리사욕 채우기만 혈안이 되어 나라를 어지럽힌다는 것이다. 버크가 위 명저를 출간한 것은 혁명이 일어난 1년 후인데 정확히 그 후 일어날 공포정치를 예견하였다는 점에서 놀랍지 않을 수 없다. 그 결과는 일부만 자유를 누리게 되고 대부분 억압적이고 굴욕적인 예속을 겪게 되어 반혁명이 초래된다는 것이다. 당연히 이런 정치체제하에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할 수 있는 동기가 저하되어 경제가 발전할 수 없다. 버크는 이 명저로 보수주의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오늘날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셋째는 개인과 기업의 자유와 창의가 존중되고 사유재산권이 보장되는 자유민주주의가 확립되어야 개인과 기업의 경제하고자 하는 동기가 부여되어 경제가 활성화되고 마침내 선진국이 된다는 점이다. 영국의 명예혁명은 1688년에 일어나서 1760년부터 시작된 산업혁명을 촉발해 경제가 대호황을 이루면서 팍스 브리태니카 시대를 열었지만 프랑스는 1789년 프랑스혁명 이후에도 불구하고 19세기 말까지 제정과 공화정을 반복하면서 경제발전이 뒤쳐졌다. 국민들의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사회주의사상이 확산되어 재정마저 악화되어 2011년 유럽재정위기 시에는 거의 재정위기 수준까지 가기도 했다. 한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 나아가야 할 방향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뿐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고 있다고 하겠다.

오정근 객원 칼럼니스트 (자유시장연구원장,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

출처 : 펜앤드마이크(http://www.pennmike.com)

http://www.pennmike.com/news/articleView.html?idxno=36233

 

대한민국에 시민은 없는가!

[민계식 칼럼] 미국이 한때 영국의 식민지였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로 있을 때 영국 정부의 중세(과도한 세금) 정책으로 시민들의 조세 저항 운동이 일어났다. 이때 영국 정부에서 식민지 시민들의 동요를 알아차리고 유화적으로 나왔더라면 미국은 (훨씬 후에는 몰라도) 상당 기간 더 영국의 식민지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국 정부는 중세 정책을 고집했을 뿐만 아니라 국왕 조지 3세는 영국 정부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식민지의 치안을 책임지고 있는 토머스 게이지 장군에게 시민들의 저항 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라는 밀명을 하달하였다. 게이지 장군은 식민지 지도자들이 은신해 있고 반란군의 무기가 숨겨진 곳을 공격 목표로 정하고 진격하여 1775년 4월 19일 매사추세츠주 렉싱턴과 콩고드에서 영국군과 식민지 민병대 사이에 최초의 무력 충돌이 발생하였다. 이것이 미국 독립혁명의 시작이다.

영국의 정규군은 오합지졸인 식민지 민병대의 저항쯤이야 쉽게 진압되리라 생각했으나 오히려 독립 의지가 투철한 식민지 민병대가 독립전쟁의 서전을 승리로 장식하였다. 식민지 시민들의 조세 저항 운동은 독립운동으로 확대되었고 힘겨운 전쟁의 고통을 이겨낸 끝에 1776년 7월 4일 드디어 독립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미국의 독립운동은 시민 스스로의 시민운동이었다. 시민운동은 독립을 쟁취한 원동력이었고 오늘날의 미국을 이룬 밑바탕이 되었다.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은 “자유, 평등, 박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치며 구(舊) 제도의 모순을 타파하고자 일어난 전형적인 시민운동이며 시민혁명이었다. 혁명을 통해 전제적인 절대 왕정을 타도하고 봉건적 정치 형태를 자유와 평등이 확립된 시민계급의 정치 형태로 전환시켰으며 자유로운 근대 자본주의로의 발전을 가능하게 하였다.

2016년 스위스 정부는 매달 19세 이상 성인에게 2,500프랑(약 300만 원), 18세 이하에게는 625프랑(약 75만 원)씩 지급하는 기본소득안을 국민투표에 부쳤으나 스위스 국민은 압도적인 반대(77%)로 부결시켰다. 노조단체까지 반대하였다. 반대 이유는 간단하고 분명하다. “땀 흘리지 않으면 스위스의 미래가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스위스 시민들의 모습이다.

홍콩은 아편전쟁 이후 약 100년 동안 영국령으로 있으면서 스스로를 중국인도, 영국인도 아닌 홍콩인으로 규정하는 민족주의적 사상이 확산되어 왔다. 홍콩은 1997년 7월 1일 일국이체제(一國二體制)의 협정을 맺으면서 중국에 반환되어 중국령 특별행정구가 되었으나 자치권과 자유에 대한 중국 정부의 침해가 심해지자 ‘우산 혁명’ 등 시민들의 저항 운동이 일어났다.

특히 최근의 ‘범죄자 인도 협정’ 문제에 대해서는 740만 인구 중 200만이 넘는 시민이 거리로 뛰쳐나와 중국 정부에 격렬히 저항하였으며, 이 저항은 독립운동으로 발전하고 있다. 홍콩의 지역주의 흐름이 계속 확대되어 대만의 민족주의 수준에 도달하고, 나아가 더욱 강력한 독립운동의 밑거름이 될지는 장차 두고 볼 일이지만 이것이 홍콩 시민들의 모습이다.

지난 3년 반 동안 문재인 정권이 한 일을 한번 돌이켜보면 정치 보복, 소득 주도 성장과 탈원전 정책 등에 따른 국가 경제 파탄, 민노총 행패,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내로남불(위선), 국민 편가르기(패거리 정치), 김정은 대변인 노릇, 비핵화 쇼, 수백조 원 규모의 뇌물형 세금 선심, 세금 퍼붓기 노인 알바 양산과 30~40대 일자리 격감, 국가부채 폭증, 각종 공공 기금 고갈, 공공 개혁 역주행, 희대의 파렴치 인물들의 법무장관 기용, 번번이 되풀이 되는 엉터리 불법 인사, 탄핵감인 선거 공작, 선거 공작 수사 검사들에 대한 인사 학살, 자기편 패거리의 비리 옹호, 대한민국의 정치 지형을 한껏 왜곡한 선거법 강제 변경, 왕따 외교, 전통 우방들과의 선린 궤도 이탈, 굴욕적인 대중 속국 정책, 코로나 사태 초기의 방역 실패와 정치적 악용, 부정 선거, 집값 폭등, 세금폭탄 등 하나같이 악몽 일색이다.

도대체 문 정권이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한 일이 한 가지라도 있는가! “이게 나라냐!”는 개탄이 절로 나온다. 이런 정권을 지지하면 나라가 어떤 꼴이 될는 지는 불문가지다.

대한민국에는 시민이 없는가!

출처 : 금융소비자뉴스(http://www.newsfc.co.kr)

https://www.newsfc.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758

 

당직사병 울분 “법무장관이 이러면 세상에 누가 감옥 가겠나”…“우리가 분노 안 하면 그들이 우릴 개돼지로 볼 것”

 

당직사병 울분 “법무장관이 이러면 세상에 누가 감옥 가겠나”

 

공익제보 예비역 병장 “입대 7개월 된 일병이…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라”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서모(27)씨의 휴가 미(未)복귀를 공익 제보한 당직사병 현모(27)씨는 “상식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현씨는 추 장관 아들의 부대로 돌아오지 않았던 2017년 6월 25일 카투사 부대의 당직사병이었다. 그는 “법무장관이 그러면 세상에 감옥 갈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도 했다.

 

현씨는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 동부지검에 참고인 조사를 받은 이후 공익제보 과정에서 “서씨에게 복귀하라고 통화한 당직사병(자신)이 뻔히 눈뜨고 있는데 지라시니 뭐니 해서 나서게 됐다”고 했다. 추 장관 아들의 휴가연장에는 하등 문제가 없다는 정부여당 측의 주장에 대해서는 “상식(常識)이 있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실에 따르면 2017년 6월 25일 당시 당직 사병인 현씨는 “당직을 서고 있는 와중에 오후 9시쯤 점호 과정에서 서 일병의 선임 조○○ 병장에게서 결원 사실을 보고받았다”며 “출타 일지 복귀 서명란도 비어있어 비상연락망을 통해 서 일병 휴대전화로 연락해 복귀를 지시했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그는 당시 추 장관 아들과 통화한 상황도 생생히 기억했다. 그는 “미복귀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밤 9시쯤 서 일병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어디냐고 물었더니 ‘집이다’라고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지금 당장 택시라도 타고 부대(경기 의정부)로 오라고 지시했고, ‘알았다’길래 밤 10시까지는 오겠구나 싶었다”고 했다.

 

그러나 부대에 찾아온 것은 추 장관 아들이 아닌 상급 부대의 대위였다고 한다. 현씨는 “대위가 ‘네가 서 일병에게 전화한 당직병이냐. 휴가는 내가 처리했으니 보고에는 미복귀가 아닌 휴가자로 올리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가 지역대에 보고하지 않았는데, 지역대 장교가 먼저 찾아와서 서씨를 휴가자로 정정하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면서 “저는 처음에 대위가 미복귀자를 적발해서 징계를 목적으로 찾아온 줄 알았습니다. 그게 상식이니까요”라고 했다.

 

또 “당시 군 생활한지 7개월 된 서 일병이 얼굴도 이름도 처음 들어본 대위에게 전화 걸어가지고 ‘나 미복귀인데 휴가 연장해달라’는 건 상식이 있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국방부는 지난 11일 “절차상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판단한다”면서 서씨에게 유리한 규정 해석을 내놨다. 이 직후 국방부 민원실에는 “나도 전화 한 통으로 휴가 연장할 수 있느냐”는 장병들의 문의가 빗발친 것으로 알려졌다. 카투사를 전역한 이후 현재 대학원에 재학하는 현씨는 이 같은 국방부의 아전인수식 해석이 비상식적이라고 꼬집은 것이다.

 

현씨는 아들의 황제휴가 의혹에 대해서 “소명을 다했다”는 추 장관의 태도를 비판했다. 그는 “추 장관이 ‘(청탁)안 했다’고 한 뒤 소명을 다했다고 한다”며 “’N번방’으로 잡혀있는 사람도 나 안 했다고 주장하면 무죄줄거냐. 법무부 장관이 ‘해명 다 됐다’고 할 거면 이 세상에 재판 받아서 감옥 갈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다.

 

추 장관 아들의 특혜 휴가 의혹을 입증할 군(軍) 기록들이 잇따라 증발하는 상황에서 예비역 카투사들의 “청탁이 있었다”는 실명(實名) 증언은 이어지고 있다. 당직사병인 현씨 뿐만 아니라 부대에서 인사 업무를 담당하던 지원장교도 “(추 장관)보좌관에게서 전화를 직접 받았다”고 증언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서씨가 카투사에 복무했을 당시 주한 미8군 한국군지원단장이었던 이철원 예비역 대령도 지난 11일 “추 장관 아들을 용산에 배치해달라는 청탁 전화가 있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또 서씨를 평창동계올림픽 통역병으로 선발하라는 전방위적인 청탁이 실제로 이뤄졌다고도 했다. 입장문을 내게 된 배경에 대해서는 “예비역 카투사의 양심선언을 보면서 당시 최종 지휘관으로서 마음이 불편했지만, 현역인 부하들에게 불이익이 생길까 봐 (그간) 지켜만 보고 있었다”면서도 ” 이 시간에도 많은 군 간부들은 저보다 더 강직하고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부대를 지휘하고 있다”고 했다.

 

이 같은 카투사 예비역들의 공익제보에 대해서 서씨 측은 소송으로 대응하고 있다. 서씨 측 변호인당은 당직사병 현씨의 폭로에 대해서 ” 떠도는 근거 없는 이야기를 마치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처럼 만들어 옮기는 ‘n차 정보원’의 전형적인 예”이라면서 “악의적 허위 사실 유포가 계속될 경우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했다. 또 이 대령에 대해서는 앞서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실제 고발하기도 했다. 국민의힘은 이에 대해 “이제 대한민국은 ‘제발 상식적으로 생각해달라’는 예비역 병장의 목소리를 협박성 고소로 틀어막는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가 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형원 기자 won@chosun.com]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3&aid=0003561338

 

 

“우리가 분노 안 하면 그들이 우릴 개돼지로 볼 것”

 

문 정권 탄생의 동력은 분노의 정치학이었다

“왜 분노하지 않냐”며 국민 저항을 촉구했다

이제 그들이 똑같이 되돌려 받을 때가 됐다

 

박정훈 논설실장

 

문재인 정권이 이룩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는 한 번도 경험 못 한 ‘뉴 노멀’을 확립했다. 법 위에 ‘진영’이 군림한다는 것이다. 내 사람, 우리 편이란 이유로 반칙을 감싸고 범죄를 덮어주는 일이 다반사가 됐다. 정권 보위의 충견(忠犬) 역할을 한 법무 장관의 경우, 아들 탈영을 둘러싼 구체적 증언이 쏟아졌는데도 검찰이 9개월째 뭉개고 있다. 울산 선거 개입 사건의 핵심인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과 국정상황실장 등은 변변한 조사조차 받지 않은 채 기소에서 제외됐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팔아 이익을 챙겼다는 시민 단체 출신 여당 의원 사건은 수사가 진행 중인지조차 감감무소식이다.

 

불법을 수사할 검찰·경찰은 미적대며 뭉개고, 설사 기소돼 법정에 가더라도 재판부가 희한한 논리로 살려준다. 여당 소속 경기 지사가 명백한 허위 사실을 유포했는데도 대법원은 “(거짓말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다”는 듣도 보도 못한 법리를 끌어다 면죄부를 주었다. 정권의 지지 세력인 전교조가 노동조합법 조항을 정면으로 어겼는데도 법원은 영문도 모를 이유를 대며 합법 판정을 내려주었다. 온갖 무리수를 써가며 강행한 문 정권의 사법부 장악 공작이 톡톡히 효과를 거두고 있다. ‘유전무죄(有錢無罪)’가 아니라 ‘친문 무죄’가 뉴 노멀인 세상이 됐다.

 

이제 우리는 이 정권의 위선적 본질을 확실히 알고 있다. 통합을 말하더니 온갖 곳에서 내 편, 네 편 가르고, 자기편 챙기는 데는 선수인 정권이었다. 불통과 독선, 힘으로 밀어붙이는 국정 독주는 군사독재에 뒤지지 않았다. 민주화 세력의 후예라면서 민주주의를 흔들고, 탈권위를 내세우면서 누구보다 권위주의적이었다. 검찰을 길들이고 법원을 장악하고, 청와대 경호처란 이름이 어울릴 공수처를 만들어 삼권분립의 헌법 원칙을 무력화했다.

 

약자 편이라더니 약자 못살게 하는 정책을 밀어붙인 것도 이 정권이다. 저소득층 일자리를 빼앗고, 가난한 사람을 더 가난하게 했으며, 집 없는 청년·서민을 영원한 무주택자로 전락시켰다. “모두가 용이 될 필요는 없다”며 온 국민을 ‘가붕개(가재·붕어·개구리)’의 가두리 양식장에 가둬 놓았다. 그렇게 서민의 성공 사다리를 걷어차더니 자기들은 반칙과 편법을 서슴지 않으며 온갖 특혜를 누리고 있었다.

 

그들이 이렇게까지 안면 몰수 전횡할 수 있는 것은 믿는 곳이 있기 때문이다. 문 정권은 3년 내내 적폐 몰이의 광풍을 일으키며 국가 권력을 구석구석까지 진영화했다. 청와대를 정점으로 정부·여당과 관변 매체, 어용 지식인과 친문 홍위병들로 구성된 ‘좌파 카르텔’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그들만의 카르텔이 여론을 주무르며 거짓까지 사실로 둔갑시키고 있다. 좌파 지식인들이 억지 논리를 만들고 친정부 매체들은 추종 보도한다. ‘대깨문’들은 댓글과 검색 순위를 조작하고, 일부 여론조사 회사가 ‘가공된 여론’을 공급하며 거짓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우민화(愚民化) 시스템을 조직화한 것이다.

 

국민 속이는 진실 조작의 카르텔은 좌파 통치의 기반이 되고 있다. 문 정권이 마음 놓고 국정 폭주로 치닫는 것도 여론을 조작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도 ’40% 지지율’은 굳건하게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고용 참사가 빚어져도, 부동산 대란이 벌어져도, 심지어 조국 스캔들이 터져도 40% 선은 깨지지 않았다. 그토록 국정을 망치고도 ’20년 집권’ 운운하는 여권의 자신감은 여기에 근거한다. 자기편 40%만 우군으로 삼으면 얼마든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코 그들 뜻대로만 되진 않는다. 임계점에 달한 국민의 분노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법무 장관 아들의 탈영 사실을 꿋꿋이 증언하고 있는 당시 당직 사병은 “추 장관의 거짓말이 내 입을 열게 만들었다”고 했다. 권력 실세의 반칙과 특혜를 목격한 국민들은 ‘엄마가 추미애가 아니라서 미안해’라며 분노를 폭발시키고 있다. 조국 사태에 이어 또다시 상처 입은 청년들은 ‘이게 공정한 나라냐’며 울분을 터트리고 있다. 어떤 50대는 추 장관에게 찍힌 한동훈을 서울동부지검장에 임명해 아들 탈영 사건을 수사시키라는 청와대 청원에 난생처음으로 동의 버튼을 눌렀다고 한다. 이게 밑바닥 민심일 것이다.

 

문 정권을 탄생시킨 동력은 분노의 정치 공학이었다. 야당 시절 그들은 국민을 향해 ‘왜 분노하지 않는가’라며 권력에 저항할 것을 촉구했다. 방관하지 말고 거리에 나서 짱돌을 던지든지 투표장에 가라고 했다. 이제 문 정권이 국민의 분노를 되돌려 받을 때가 됐다. “카투사는 편한 군대” “식당서 김치찌개 빨리 달라는 게 청탁이냐” 운운하며 국민을 바보로 만드는 오만한 정권에게 쓴맛을 보도록 해야 한다. 인터넷 기사에 어떤 시민이 ‘분노하라’는 댓글을 올렸다. “우리가 침묵하면 그들은 우리를 개돼지 취급할 것”이라며.

 

[박정훈 논설실장 jh-park@chosun.com]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23&aid=0003561034

중국발 코로나인가, 교회발 코로나인가?

1. 정부와 여당이 서방 국가들과 달리 ‘중국발 코로나’란 표현을 쓰지 않는 것을 보면 코로나를 생산, 유통시킨 중국에는 관대하면서 국민들에게 화를 내는 것을 보면 중국의 피해자인 우리 국민에게 가혹하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2. (2020.8.17.) 중앙방역대책본부는 5월 이태원 게이 클럽발 이후로 국내 집단감염에서 변종 GH형 바이러스가 주로 나타난다고 밝혔다. 미국 연구진들은 GH형 전파 속도가 초기 그룹보다 최고 6배 빠르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은 적이 있다. https://bit.ly/2PYe4ub

현재 교회를 비롯한 집단 감염 코로나 바이러스가 이태원 게이 클럽발 코로나 라는 겁니다. 그때 정부가 전국의 동성애자들 조사를 철저히 하지 않고 오히려 은폐시켰기에 전국에서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고 사랑제일교회 감염자들도 이태원 게이 클럽 코로나와 같은 것이라면 당시 정부가 제대로 방역조치를 하지 않은 것으로 인한 피해를 보게 된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게이 클럽발 코로나의 교회 공격인 셈이 되겠네요.

3. 사랑제일교회 일부 교인의 코로나 검사 결과가 보건소와 병원의 결과가 달라서 정부에 대한 불신을 주장하는데 진실성 평가를 해 볼 수 있는 게 확진자 중 무증상자 비율입니다. 해외는 무증상자 비율이 40%~75%에 달합니다. https://bit.ly/2Q0MtZw  그런데 한국은 6월에 확진자 중 약 30%가 무증상이라고 발표했습니다. https://bit.ly/31YaxSh  무증상자 비율이 국내 평균보다 높다면 가짜 양성 판정이 있었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겠죠.

4. 반면에, 한국의 낮은 무증상 감염율이 한국의 방역당국이 외국에 비해 감염자를 덜 발견해 내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제일교회라는 모집단의 무증상 감염자 비율이 국내 평균보다 더 높다면 보건당국의 게으름을 보여주는 증거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한국의 검사비율이 세계 하위권입니다. 8월 16일 기준으로 세계 87위인데, 검사 비율이 3%입니다. 중복검사가 반영된 것이라면 실제론 더 적죠. 아이슬란드는 148%입니다. 국민을 두 번째 검사 하고 있는 중이죠. 미국은 검사율이 인구대비 21%입니다. https://bit.ly/3g9LT69  검사가 많으면 그만큼 더 많은 감염자를 찾아내기에, 무증상 감염자 비율이 더 높은 것이라 유추할 수 있습니다.

5. 트럼프가 8월 6일자 기사에서 한국의 코로나 통계에 왜 의문을 제기했는지 이해가 되시죠? https://bit.ly/3h3TKDS  정부가 의도적으로 검사율을 낮추어 확진자 발견을 줄여 온 것이라면 무증상 감염자는 매우 많이 돌아다니고 있는 위험 상태라 보아야 하는 거죠1만5천명 확진자 중에서 무증상이 5천명으로 1/3이라고 하는데, 만일 실제 무증상자 비율이 60%라면 실제 감염자 총수는 2만2천 명이고, 7천명의 발견되지 않은 무증상 감염자가 돌아다니며 바이러스를 뿌리고 다녀서 대폭발을 앞두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거죠.

6. 7월부터 유럽에서 휴가철을 맞아 2차 유행이 진행되었고 일본도 한달 사이에 1만7천명의 감염자가 나왔습니다. 캠핑장에서 마스크 안쓰면 감염율이 미국이 44%, 한국은 50%였습니다. 유럽에서는 여름 휴가가 2차 팬데믹의 원인이었는데 청와대는 김경수 재판일을 임시공휴일로 만들어서 3일 연휴를 만들었고 부산 해수욕장에만 86만명이 피서를 갔습니다. https://bit.ly/322yuYG  재판은 연기 됐지만, 코로나 방역에는 심각한 구멍을 만들었죠.  전국적으로 휴가를 떠난 사람들이 수백만 명이 될 수도 있고 마스크를 안쓰는 지낸 휴가지에서 수많은 감염자가 발생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휴가와 외식을 권장한 정부가 2차 팬데믹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죠. 정부가 자화자찬하자 대규모 감염이 발생했죠.

7. 한국도 휴가철을 앞두고 2차 유행을 준비해야 한다는 논의가 지속되었는데 정작 정부는 의료 준비를 안하고 있죠. 인구 0.2%가 확진되면 중환자실만 1775개가 부족해서 민간병원과 협력이 절실한 데 정부는 의사들과 싸우느라 정신이 없죠. https://bit.ly/34f9TCy  간호사들도 정부에 2차 유행 대비하여 요구하였지만 정부는 동문서답만 한다고 답답해 하는 상황입니다. https://bit.ly/3g0Aw0l 이런 상태에서 대통령과 장관이 무척 걱정하는 듯 발언하니 진정성이 인정이 안되는 거죠.

8. 대구경북 신천지 집단 감염으로 기타 지역이 바짝 긴장하므로 확산을 늦추는 요인이 되었듯이, 사랑제일교회로서는 고통스럽겠지만 국민들에게 경각심을 다시 죄는 요인이 되어 보건에 도움이 되겠죠. 그러나 휴가지 감염으로 인한 확산은 예방하지 못하겠죠. 광화문은 비가 중간에 내렸고 참석자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사랑제일교회도 확진자는 집회에 가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에 마스크 안쓰고 지낸 휴가지보다 더 위험할까 싶군요. 정부는 휴가를 다녀온 국민들 검사를 독려해야 하는 겁니다.

9. 고양시 한 교회는 감염경로가 홍천 캠핑장 감염자로부터 감염됐을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그럼에도 언론과 정치인들은 ‘교회발 코로나’로 규정하고 대응합니다. 홍천 캠핑장 발 코로나의 피해자인데 https://bit.ly/2CDsUU4 홍천 캠핑장도 중국발 코로나의 피해자죠

(2020.3) 미국처럼 청와대와 국회가 중국에 손해배상 청구할 수 있는 법률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https://bit.ly/2WLmzxr 검사비용, 영업손실, 정신적 손해배상등을 놓고 국민끼리 싸우지 말게 하고, 정부와 국회와 법원은 중국에 배상을 받아내는 자주정신을 보였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