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 April 2023

“재래식 동맹에서 핵·사이버 동맹으로… 제2의 한미상호방위조약” 尹 상·하원 합동연설

[전문] “재래식 동맹에서 핵·사이버 동맹으로… 제2의 한미상호방위조약” 尹 상·하원 합동연설

한미동맹은 대한민국 자유·평화·번영의 축… 미국과 ‘자유의 나침판’ 역할 할 것

윤석열 대통령, 27일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영어 연설… 기립박수 받아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오전 11시(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에 위치한 미 하원 본회의장에서 열린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영어로 연설했다. 주제는 ‘자유의 동맹, 행동하는 동맹'(Aliiance of Freedom, Alliance in Action)이다.

다음은 윤 대통령의 상·하원 합동연설 국문·영문 전문

존경하는 하원의장님, 부통령님, 상·하원 의원 여러분과 내외 귀빈 여러분, 미국시민 여러분. “자유 속에 잉태된 나라, 인간은 모두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신념에 의해 세워진 나라.” 저는 지금 자유에 대한 확신, 동맹에 대한 신뢰, 새로운 미래를 열고자 하는 결의를 갖고 미국 국민 앞에 서 있습니다.

미 의회는 234년 동안 자유와 민주주의의 상징이었습니다. 미 헌법정신을 구현하고 있는 바로 이곳에서 의원 여러분과 미국 국민 앞에 연설하게 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특히 ‘한미동맹 70주년 결의’를 채택하여 이번 저의 방문의 의미를 더욱 빛내 주신 민주당과 공화당 양당 의원 여러분께도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께서 어떤 진영에 계시든 간에, 저는 여러분이 대한민국 편에 서 계신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지난 세기 동안 미국은 자유를 위협하는 도전에 맞서 이를 수호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제국주의 세력 간의 식민지 쟁탈전이 격화되면서 인류는 두 차례의 참혹한 대전을 겪었습니다. 미국은 자유를 지키기 위한 정의로운 개입을 택했습니다. 이로 인해 미국이 치른 희생은 적지않았습니다. 맥아더 장군과 니미츠 제독이 활약한 태평양전쟁에서만 10만 명이 넘는 미국 국민이 전사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희생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전후 세계 자유무역질서를 구축한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은 세계 곳곳에서 평화와 번영을 일구었습니다. 하지만 자유시장을 허용하지 않는 공산 전체주의 세력이 참여하지 않은 자유시장의 번영이었습니다.

1950년 한반도는 자유주의와 공산 전체주의가 충돌하는 최전선이었습니다. 소련의 사주를 받은 북한의 기습침략으로 한반도와 아시아의 평화가 위기에 빠졌습니다. 한반도에서 자유민주주의가 사라질 뻔한 절체절명의 순간, 미국은 이를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한국과 미국은 용감히 싸웠고 치열한 전투가 이어졌습니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영웅들의 이야기가 탄생했습니다.

맥아더 장군은 허를 찌르는 인천상륙작전으로 불리한 전황을 일거에 뒤집었습니다. 인천상륙작전은 세계 전사에 기록할 만한 명장의 결정이었습니다. 미 해병대 1사단은 장진호 전투에서 중공군 12만 명의 인해전술을 돌파하는 기적 같은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전혀 알지 못하는 나라의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국민’을 지키기 위해 미군이 치른 희생은 매우 컸습니다. 장진호전투에서만 미군 4500명이 전사했고, 6·25전쟁에서 미군 약 3만7000명이 전사했습니다. 원주 324고지전에 참전해 오른쪽 팔과 다리를 잃은 고(故) 윌리엄 웨버 대령은 한국전 참전용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는 활동에 여생을 바쳤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웨버 대령의 손녀 데인 웨버 씨를 모셨습니다. 어디 계신지 일어나 주시겠습니까? 대한민국 국민을 대표해 깊은 감사와 무한한 경의를 표합니다.

여기 계신 의원 여러분들의 가족과 친구 중에도 한국전 참전용사 영웅들이 계실 것입니다. 한국전쟁 참전 용사로 바로 이곳 의회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하신 고(故) 존 코니어스 의원님, 고 샘 존슨 의원님, 고 하워드 코블 의원님 그리고 지금도 한미동맹의 열렬한 후원자이신 찰스 랭글 전 의원님. 대한민국은 우리와 함께 자유를 지켜낸 미국의 위대한 영웅들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오늘 이 자리를 빌려 한국전쟁 참전용사들과 자식과 남편, 그리고 형제를 태평양 너머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나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보내준 미국의 어머니들, 그리고 한국전쟁을 자랑스러운 유산으로 여기고 참전용사들을 명예롭게 예우하는 미국정부와 국민에게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3년간의 치열했던 전투가 끝나고 한미 양국은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면서 새로운 동맹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전쟁의 참혹한 상처와 폐허를 극복하고 번영하는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미국은 우리와 줄곧 함께했습니다. 올해로 70주년을 맞이한 한미동맹을 축하해야 할 이유는 너무나 많습니다. 처음부터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의 동맹은 어느 때보다 강력하며, 함께 번영해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두 나라는 그 누구보다도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한미동맹은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고 번영을 일구어온 중심축이었습니다.

현대 세계사에서 ‘도움을 받는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로 발돋움한 유일한 사례인 대한민국은 한미동맹의 성공 그 자체입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1882년 수교에서 시작된 140년의 한미 양국의 교류와 협력, 그리고 동맹의 역사를 되새겨보고자 합니다. 대한민국 헌법의 기초가 된 자유와 연대의 가치는 19세기 말 미국 선교사들의 노력에 의해 우리에게 널리 소개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 우리 국민의 독립과 건국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19세기 말 한국에 온 호러스 언더우드, 헨리 아펜젤러, 메리 스크랜튼, 로제타 홀 등 미국의 선교사들은 학교와 병원을 지었습니다. 특히 이들은 여성교육에 힘썼고, 그 결과 한국 역사상 최초로 여성들이 교육·언론·의료 등 다양한 분야의 사회활동에 진출하는 기반을 닦아주었습니다.

1960년대 초반에 박정희 대통령은 현명하게도 케네디행정부가 권고한 로스토우 교수의 경제성장 모델을 받아들여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하고 신흥산업국가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한강의 기적’으로 불릴 만큼 한국의 경제성장 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1인당 소득 67달러의 전후 최빈국이었던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습니다. 전쟁으로 잿더미가 되었던 수도 서울은 70년이 지난 지금 세계에서 가장 활기찬 디지털 국제도시가 됐습니다. 전쟁 중 피난민이 넘쳤던 부산은 환적물량 기준 세계 2위의 항만도시가 되었고, 이제 2030년 세계박람회 유치를 위해 뛰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이제 자유와 민주주의가 살아 숨쉬는 활력 넘치는 나라로 세계시민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한미 양국은 한반도를 넘어 전 세계의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힘을 모아왔습니다. 대한민국은 2차대전 후 아프간·이라크 등지에 ‘자유의 전사’를 파견하여 미국과 함께 싸웠습니다.

지난 70년간 동맹의 역사에서 한미 양국은 군사·안보협력뿐 아니라 경제협력도 지속적으로 확대해왔습니다. 초기의 일방적인 지원에서 상호 호혜적인 협력관계로 발전해온 것입니다. 2011년 미 의회의 전폭적인 지지로 통과된 한미 FTA가 가동된 이후 10년간 양국 교역액은 약 68% 증가했고, 우리 기업의 대미 투자는 3배, 미국기업의 대한국 투자는 2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배터리·반도체·자동차 등의 분야에서 미국에 진출한 글로벌 한국기업들은 미국 내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텍사스주 오스틴에 위치한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은 2020년 기준 약 1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했으며, 2024년 하반기부터 가동될 조지아주 브라이언카운티 현대차공장도 연간 30만 대의 전기차와 수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낼 것입니다. 지난해 11월 바이든 대통령께서 방문한 미시간주 베이시티 SK실트론 CSS는 한국기업이 미국회사를 인수해 성장시키는 또 다른 모범 협력 사례입니다. 이러한 호혜적 한미 경제협력이 곳곳에서 이어질 수 있도록 의원 여러분들의 각별한 관심과 지원을 부탁드립니다.

친구 여러분, 정치와 경제분야의 협력을 통해 축적된 양국의 활발한 문화 인적교류는 두 나라의 우정을 보다 두텁게 했습니다. 올해는 미주 한인 이주 120주년이기도 합니다. 하와이주 사탕수수농장의 노동자로 진출하기 시작한 한인들은 그동안 미국사회 각계에 진출해 한미 우호협력을 증진하고 동맹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바로 이 자리에 계신 영 킴 의원님, 앤디 킴 의원님, 미셸 스틸 의원님, 그리고 메릴린 스트릭랜드 의원님 같은 분들이 세대를 이어온 한미동맹의 증인들이십니다. 두 분씩 민주당·공화당 의원님이십니다.

문화 콘텐츠는 양국 국민이 국적과 언어의 차이를 넘어 더욱 깊은 이해와 우정을 쌓는 촉매제가 되고 있습니다. 한국영화 <기생충>과 <미나리>가 아카데미 수상을 하고, <탑건> <어벤져스>와 같은 수많은 할리우드 영화가 이미 오래전부터 한국에서 엄청난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저도 <탑건 매버릭>을 굉장히 좋아하고 <미션임파서블>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그리고 제 이름은 모르셨어도 BTS와 블랙핑크는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BTS가 저보다 백악관을 더 먼저 왔지만, 의회는 제가 먼저 왔네요.

이제 한미 양국의 음악 차트에서 상대방 국가의 가수 노래가 순위에 오르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습니다. 미국이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플랫폼을 만들고, 한국이 <오징어게임>과 같은 킬러 콘텐츠를 생산해 공급하는 새로운 양상의 시너지 효과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문화교류의 활성화로 양국 국민의 관계 또 더욱 가까워졌습니다. 지난해 시카고국제문제연구소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1978년 이후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또한 미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 대한 한국인의 호감도는 89%에 달했으며, 그 증가 폭은 조사 대상국 중 가장 크다고 합니다. 이제 한미 양국 청년들이 더욱 활기차게 오가며 공부하고 교육 받으며, 직장을 찾을 수 있도록 한미 정부가 함께 체계적인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하기로 하였습니다.

의원 여러분, 제 평생의 직업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 번째 직업은 대한민국 검사이고, 두 번째 직업은 사랑하는 나의 조국 대한민국의 대통령입니다. 검사 시절, 저의 롤모델은 드라마 ‘Law & Order’에 나오는 애덤 쉬프 검사의 실제 모델인 로버트 모겐소였습니다. 저는 검찰총장 재직 시 ‘미국의 영원한 검사 로버트 모겐소’라는 책을 출간해서 후배 검사들에게 나눠준 적도 있습니다.

발간사에도 모겐소의 명언인 “거악에 침묵하는 검사는 동네 소매치기도 막지 못할 것”이라는 문구를 적었습니다. 지금 우리의 민주주의는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공동체의 정치적 의사결정 시스템입니다. 이러한 의사결정은 진실과 자유로운 여론 형성에 기반해야 합니다.

세계 도처에서 허위 선동과 거짓 정보가 진실과 여론을 왜곡하여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법의 지배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자유가 공존하는 방식이며, 의회민주주의에 의해 뒷받침됩니다. 허위 선동과 거짓 정보로 대표되는 반지성주의는 민주주의를 위협할 뿐 아니라 법의 지배마저 흔들고 있습니다.

이들 전체주의 세력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부정하면서도 마치 자신들이 민주주의운동가·인권운동가인 양 정체를 숨기고 위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우리는 이런 은폐와 위장에 속아서는 안 됩니다. 피와 땀으로 지켜온 소중한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 시스템이 거짓 위장세력에 의해 무너지지 않도록 우리 모두 힘을 합쳐 용감하게 싸워야 합니다.

자유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자유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따라서 자유는 평화를 만들고 평화는 자유를 지켜줍니다. 그리고 자유와 평화는 창의와 혁신의 원천이고, 번영과 풍요를 만들어냅니다. 70여 년 전 대한민국의 자유를 위해 맺어진 한미동맹은 이제 세계와 자유의 평화를 지키는 글로벌 동맹으로 발전했습니다.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의 신장된 경제적 역량에 걸맞은 책임과 기여를 다할 것입니다.

케네디 대통령은 1961년 취임식에서 “세계시민 여러분, 우리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묻지 마십시오. 인류의 자유를 위해 우리가 힘을 모아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물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인류의 자유를 위해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와 힘을 모아 해야 할 일을 반드시 할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미국과 함께 미래로 나아갈 것입니다. 저는 지난해 취임하면서 대한민국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국민이 주인인 나라로 만들고 국제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서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존경받는 나라, 자랑스러운 조국으로 만들어 가겠다는 소명을 밝혔습니다. 대한민국은 미국과 함께 세계시민의 자유를 지키고 확장하는 ‘자유의 나침반’ 역할을 해나갈 것입니다.

한미 양국의 자유를 향한 동맹이 70년간 이어지는 동안에도 이와 정반대의 길을 고집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바로 북한입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한 대한민국과 공산 전체주의를 선택한 북한은 지금 분명히 비교되고 있습니다.

북한은 자유와 번영을 버리고 평화를 외면해왔습니다. 북한의 불법적 핵 개발과 미사일 도발은 한반도와 세계 평화에 대한 심각한 위협입니다. 북한의 무모한 행동을 확실하게 억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한미의 단합된 의지가 중요합니다. 레이건 대통령이 말한 바와 같이 “우리가 용납할 수 없는 지점이 있으며, 절대로 넘어서는 안 될 선이 있다”는 것을 북한에게 분명하게 알려줘야 합니다.

어제 열린 정상회담에서 저와 바이든 대통령은 한층 강화된 확장억제 조치에 합의했습니다. 날로 고도화되는 북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한미 공조와 더불어 한·미·일 3자 안보협력도 더욱 가속화해야 합니다. 우리 정부는 도발에는 단호히 대응하되 비핵화를 위한 대화의 문을 열어둘 것입니다.

저는 지난해 북한이 핵 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 비핵화 프로세스로 전환한다면 북한의 민생과 경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는 ‘담대한 구상’을 제안했습니다. 북한이 하루빨리 도발을 멈추고 올바른 길로 나오기를 다시 한번 촉구합니다.

한미 양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을 함께 기울여나갈 것입니다. 북한정권이 핵·미사일 개발에 몰두하는 사이 북한주민들은 최악의 경제난과 심각한 인권유린 상황에 던져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북한주민의 비참한 인권 실상을 전 세계에 알리는 동시에, 북한주민에게 자유를 전달하는 의무를 게을리해서는 안 됩니다.

지난달 대한민국 정부는 북한인권보고서를 최초로 공개발간했습니다. 보고서는 최근 5년간 북한이탈주민 508명의 증언을 바탕으로 세계인권선언과 국제인권조약 등 국제적 기준을 적용해 북한 인권유린 사례를 두루 담고 있습니다. 코로나19 방역지침을 어겼다는 이유로 무자비하게 총살 당한 사례,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를 시청하고 유포했다고 공개처형한 사례, 성경을 소지하고 종교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공개총살을 당한 사례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참혹한 일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국제사회는 이러한 북한 인권유린의 참상을 널리 알려야 합니다. 여기에 계신 의원 여러분들도 북한주민들의 열악한 인권이 개선될 수 있도록 함께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친구 여러분, 자유민주주의는 또다시 위협받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전쟁은 국제규범을 어기고 무력을 사용해 일방적으로 현상을 변경하려는 시도입니다. 대한민국은 정당한 이유 없이 감행된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력공격을 강력히 규탄합니다.

1950년 북한이 우리를 침공했을 때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은 우리를 돕기 위해 달려왔습니다. 우리는 함께 싸워 자유를 지켰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역사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경험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연대가 얼마나 중요한지 말해줍니다. 대한민국은 자유세계와 연대하여 우크라이나 국민의 자유를 수호하고 이들의 재건을 돕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펴나갈 것입니다.

의원 여러분, 이제까지 6명의 대한민국 대통령이 이 영예로운 자리에서 연설한 바 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은 1954년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가 이곳에서 연설한 지 35년 뒤인 1989년 여기 연단에 서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태평양 연안 국가들은 개방사회와 시장경제를 통해 이 지역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을 이루도록 만들었습니다. 미국에 태평양은 더욱 중요하게 될 것입니다. 한국은 이 지역의 평화와 번영에 더욱 기여하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언젠가 한국의 대통령이 다시 이 자리에서 서서 오늘 내가 한 이야기가 내일의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되고 있다고 말할 날이 올 것입니다.”

노태우 대통령의 꿈은 이미 현실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인도-태평양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세계인구의 65%, 전 세계 GDP의 62%, 전 세계 해상운송물량의 절반이 이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지난해 처음으로 포괄적 지역전략인 ‘인도-태평양전략’을 발표했습니다. 대한민국은 포용, 신뢰, 호혜의 원칙에 따라 ‘자유롭게 평화로우며 번영하는 인도-태평양지역’을 만들어나갈 것입니다.

인-태지역 내 규범 기반의 질서를 강화하기 위해 주요 파트너들과의 협력을 포괄적이고 중층적으로 확대해나갈 것입니다. 그만큼 한미동맹이 작동하는 무대 또한 확장되는 것입니다. 미국 국제개발처 USAID 지원을 받던 한국은 이제 미국과 함께 개발도상국들에게 개발 경험을 전수해 주고 있습니다. 한국은 공적개발원조 규모를 대폭 확대하고 수혜국의 수요와 특성에 맞는 맞춤형 개발협력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어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저와 바이든 대통령은 ‘미래로 전진하는 행동하는 동맹’의 비전을 담은 공동성명을 채택했습니다. 양국은 외교·안보를 넘어 인공지능·퀀텀·바이오·오픈랜 등 첨단분야 혁신을 함께 끌어나갈 것입니다. 아울러, 양국의 최첨단 반도체 협력 강화는 안정적이고 회복력 있는 공급망 구축과 경제적 불확실성 해소에 기여할 것입니다.

양국은 동맹의 성공적 협력의 역사를 새로운 신세계인 우주와 사이버 공간으로 확장시켜나가야 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두 기술강국의 협력은 커다란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존경하는 하원의장님, 부통령님, 상·하원 의원 여러분, 한미동맹은 자유·인권·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로 맺어진 가치동맹입니다. 우리의 동맹은 정의롭습니다. 우리의 동맹은 평화의 동맹입니다. 우리의 동맹은 번영의 동맹입니다. 우리의 동맹은 미래를 향해 계속 전진할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만들어나갈 세계는 미래세대들에게 무한한 기회를 안겨줄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도 새로운 여정에 함께해주시기를 당부합니다.

여러분과 미국의 앞날에 축복이, 그리고 우리의 위대한 동맹에 축복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연설문 전문 영문 버전

Address to a Joint Meeting of the U.S. Congress in Commemoration of the 70th Anniversary of the ROK-U.S. Alliance

Mr. Speaker, Madam Vice President, Honorable Members of the United States Congress, Distinguished Guests, Ladies and Gentlemen, Dear Citizens of America,

“A new nation, conceived in Liberty, and dedicated to the proposition that all men are created equal.”

I stand before that nation with the conviction of freedom, belief in the Alliance, and resolve to open a new future.

For 234 years, a Congress has been the symbol of freedom and democracy. This Chamber embodies the spirit of the Constitution. I am honored to address the Members of Congress and the people of the United States.

Thank you, both Democrats and Republicans, for passing the Resolution marking the 70th Anniversary of the Alliance. Your support has dignified my visit. I know that no matter where you sit, you stand with Korea.

Over the past century, we have faced many threats. But the U.S. has always led the world in defense of freedom.

Imperial nations fought for colonies. And humanity greatly suffered from the two World Wars. America righteously stepped in to defend freedom.

But it was not without cost.

We remember the leadership of General MacArthur and Admiral Nimitz. But more than 100,000 American men and women perished in the Pacific War.

Their sacrifice was not in vain.

U.S. leadership established the new world order based on free trade. It brought peace and prosperity throughout the world.

But prosperity was limited to free market economies where communist totalitarian nations did not participate. The world was divided into democratic and communist blocs.

In 1950, the Korean Peninsula was on the front line. The Soviet Union helped to rearm North Korea. North Korea’s surprise attack threatened the peace on the Korean Peninsula and Asia. Korea’s freedom and democracy were on the brink.

At that decisive moment, the U.S. did not look the other way. Korean and American soldiers stood shoulder to shoulder and fought bravely. Tales of our heroes were written.

General MacArthur caught the enemy off guard with the landing of Incheon and turned the tide of the war. Operation Chromite was one of the greatest decisions ever made in the history of war.

The U.S. 1st Marine Division miraculously broke through a wave of 120,000 Chinese troops at the Battle of Lake Changjin.

Sons and daughters of America sacrificed their lives to “defend a country they never knew and a people they never met.”

In the Battle of Lake Changjin alone, 4,500 American service members lost their lives. Over the course of the War, almost 37,000 U.S. soldiers fell.

The late Colonel William Weber fought in the Battle for Hill 324 in Wonju. He lost his right arm and leg. Yet, this American hero dedicated his life to honoring the noble sacrifice made by the Korean War veterans.

Today we are honored to have his granddaughter Ms. Dayne Weber with us. Ms. Weber, would you stand up please?

On behalf of the Korean people, I would like to thank you deeply. We salute his noble service and sacrifice.

(Thank you, Dayne.)

Some of the Korean War heroes are your family and friends. The late John Conyers Jr., Sam Johnson, and Howard Coble were veteran Congressmen who promoted freedom and democracy. And the former Representative Charles Rangel has been a strong supporter of the Alliance.

Korea will never forget the great American heroes who fought with us to defend freedom.

Thank you. Thank you.

I take this opportunity to pay tribute to all the Korean War veterans and their families. You did not hesitate to send your sons and daughters, husbands and wives, brothers and sisters. You answered the call to defend the freedom of a country across the Pacific.

I thank the U.S. and its people for honoring the Korean War as a proud legacy. Thank you also for treating the veterans with honor and respect.

Thank you. Thank you.

The war ended after three years of intense battle. Our two nations signed the Mutual Defense Treaty and opened a new era of the alliance. Ever since, the Korean people rose from the ruins of war to build a thriving nation. And at every step, America has stood together with Korea.

We have many reasons to celebrate our Platinum Anniversary. We had no guarantees of success when we started. But today, our Alliance is stronger than ever, more prosperous together, and more connected like no other. Indeed, it has been the linchpin safeguarding our freedom, peace and prosperity.

Once a recipient of aid, Korea is the only nation in modern history to become a donor. This itself demonstrates the success of our Alliance.

Let me talk about the history of our Alliance. The ties of our cooperation and exchange span over 140 years since the establishment of diplomatic relations in 1882.

In the late 19th century, American missionaries helped to widely introduce the values of freedom and solidarity to Korea. These values are the foundations of Korea’s Constitution. They have made a huge impact on our independence movement and the founding of Korea.

Horace Underwood, Henry Appenzeller, Mary Scranton, and Rosetta Hall are some of the missionaries to set foot in Korea at the end of the nineteenth century. They built schools and hospitals. They promoted education of women. Their efforts laid the foundations for many Korean women to advance into society as educators, journalists, and doctors.

In the early 1960s, the Kennedy administration recommended Professor Rostow’s model for economic growth. President Park Chung-hee wisely embraced the idea and pushed economic development forward. It laid the foundation for Korea to become an industrialized country.

Known as the “Miracle on the Han River,” Korea’s economic growth rate was unrivaled. Korea was one of the Least Developed Countries after the war. Its annual income was just US$67 per capita. Now its economy ranks tenth in the world.

Thank you.

Seoul was once reduced to ashes. Now it is one of the world’s most vibrant digital cities.

Busan was once flooded with war refugees. Now it is the world’s second-largest port city in terms of transshipment volume. It is also bidding to host the World Expo 2030.

Korea is winning the hearts of global citizens. It is dynamic. Freedom is thriving and democracy is robust.

Korea and the U.S. have joined forces to safeguard freedom and democracy throughout the world. Since World War II, Korea dispatched its warriors of freedom. We fought side by side with the U.S. in Afghanistan, Iraq, and others.

For over 70 years in the history of the Alliance, we worked together in military and security sectors. We also expanded our cooperation in the economic field. Our relationship has evolved from one of unilateral assistance to a partnership that is mutually beneficial.

The KORUS FTA was approved with the full support of the U.S. Congress in 2011. Since then, our bilateral trade has increased by 68%. Korean companies’ investment in America has tripled. U.S. companies’ investment in Korea has nearly doubled.

Korean companies are contributing to vitalize the U.S. economy. They are producing EV batteries, semiconductors, cars, and other products here in America. And more importantly, they are creating decent, well-paying jobs.

Take Austin, Texas. Samsung’s semiconductor plant has created nearly 10,000 jobs as of 2020.

Take Bryan County, Georgia. Hyundai’s EV and battery plant is expected to be operational by late 2024. It will produce 300,000 electric vehicles every year. It will employ thousands of Americans.

And take Bay City, Michigan. It is home to SK Siltron CSS, where President Biden visited. It is an example of Korean and American companies merging to achieve even greater growth.

I hope to see more economic cooperation in other parts of America. In this regard, I count on your keen interest and support.

My friends, years of active cultural and people-to-people exchanges have deepened our friendship. This year also marks the 120th anniversary of Korean immigration to the U.S.

Early Korean immigrants arrived as workers on sugar cane plantations in Hawaii. Since then, Korean Americans have made their way into many parts of the American society. They have played an important role fostering closer friendship and writing the history of our Alliance.

Representatives Young Kim, Andy Kim, Michelle Steel, and Marilyn Strickland are here with us. They are a testament to the Alliance spanning generations.

That’s two for each party. It’s a relief that you are evenly placed across the aisle.

Even more, culture is helping to further deepen our understanding and friendship. Nationality and language differences are no longer barriers.

Korean movies “Parasite” and “Minari” have won Oscars. Hollywood films “Top Gun” and “the Avengers” are loved by Koreans. I also love “Top Gun: Maverick” and also “Mission Impossible”

And even if you didn’t know my name, you may know BTS and BLACKPINK. BTS beat me to the White House. But I beat them to Capitol Hill. Korean and American singers reaching high places in each other’s music charts is no longer a surprise.

The U.S. created global platforms like Netflix. Korea has produced popular series such as “Squid Game.” We are creating a new pattern of synergy.

These cultural exchanges have brought our peoples closer. According to Chicago Council on Global Affairs, Americans’ positive views of Korea reached the highest level since 1978. And according to a Pew survey last year, Koreans’ positive views of the U.S. reached 89%. It marks the largest increase among all the countries surveyed.

Korea and the U.S. agreed to set up an assistance program for our students. It will help them to study and find jobs actively in each other’s country.

Honorable Members of Congress,

I have had two careers in my life. My first job was as a public prosecutor. My second job is serving as the President of my beloved country.

As prosecutor, my role model was the late Robert Morgenthau. He was the real-life character of District Attorney Adam Schiff in “Law & Order.” When I was the Prosecutor General, I printed a book titled “Robert Morgenthau: America’s Eternal Attorney.” I shared it with my junior prosecutors.

In the preface, I included the phrase: an attorney who is silent in the face of great evil will not even stop pickpockets in the neighborhood.

Today, our democracy is at risk.

Democracy is a community’s political decision-making system to protect freedom and human rights. Such decision-making must be based on truths and freely formed public opinion.

But today in many parts of the world, false propaganda and disinformation are distorting the truth and public opinion. They are threatening democracy.

The rule of law allows the freedoms of everyone to coexist. It is upheld by parliamentary democracy.

False propaganda and disinformation corrupt intellectualism. They threaten democracy and the rule of law.

Such totalitarian forces may conceal and disguise themselves as defenders of democracy or human rights. But in reality, they deny freedom and democracy.

We must not be fooled by such deception and disguises.

We have for so long protected democracy and the rule of law with our blood and sweat. We must work together and fight the forces of falsehood and deception that seek to destroy democracy and the rule of law.

Those who cherish freedom also respect the freedom of others. Thus, freedom brings peace. Peace, in turn, safeguards freedom. Freedom and peace are sources of creativity and innovation. They bring prosperity and abundance.

Our Alliance was forged 70 years ago to defend Korea’s freedom. The Alliance has now become a global alliance that safeguards freedom and peace around the world. Korea will fulfill its responsibilities. It will play its part that matches its economic capacity.

In his 1961 Inauguration Address, President John F. Kennedy said, “My fellow citizens of the world: ask not what America will do for you, but what together we can do for the freedom of man.” Korea will stand in solidarity with the international community. We will do what we can for the freedom of humanity.

Korea, with the U.S., will march toward the future.

As I took office last year, I pledged to rebuild Korea: a nation belonging to the people rooted in freedom, democracy, and market economy; a nation that the people can be truly proud of, as it fulfills its role as a responsible member of the international community.

Together with the U.S., Korea will play the role as a “compass for freedom.” It will safeguard and broaden the freedom of citizens of the world.

But even as we walked in unison for freedom for 70 years, there is one regime determined to pursue a wrong path. That is North Korea.

The difference is stark between Seoul that chose freedom and democracy and Pyongyang that chose dictatorship and communism. North Korea has abandoned freedom and prosperity and dismissed peace.

North Korea’s nuclear program and missile provocations pose a serious threat to the peace on the Korean Peninsula and beyond.

To deter its reckless behavior, the alliance must stand united with determination. As President Reagan once said: “There is a price we will not pay. There is a point beyond which they must not advance.” We must make his words clear to North Korea.

Yesterday, President Biden and I agreed to strengthen the U.S. extended deterrence. Along with close Korea-U.S. coordination, we need to speed up Korea-U.S.-Japan trilateral security cooperation to counter increasing North Korean nuclear threats.

My government will respond firmly to provocations. But at the same time, we will keep the door open for dialogue on North Korea’s denuclearization.

Last year, I proposed the “Audacious Initiative.” It will significantly improve North Korea’s economy and livelihood. All Pyongyang has to do is to stop its nuclear program and begin a substantive denuclearization process.

I once again urge North Korea to cease its provocations and take the right path. Korea, with the U.S., will continue to work for North Korea’s denuclearization.

Thank you, thank you, thank you.

North Korea’s obsession with nuclear weapons and missiles is throwing its population into a severe economic crisis and human rights abuses.

We must raise global awareness of the dire human rights situation in North Korea. We must not shy away from our duty to promote freedom for North Koreans.

Last month, my government published a report on North Korean human rights. We released it to the public for the first time.

The report documents a wide range of abuses in North Korea. It is based on the testimonies of 508 North Korean defectors collected over the past five years. It records many cases of serious violations of international norms such as the 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 and other human rights agreements.

Unspeakable and horrendous incidents took place: men and women being shot and killed for violating COVID-19 prevention measures; some being publicly executed for watching and sharing South Korean shows; and people being shot in public for possessing the Bible and having faith.

We need to raise awareness. We must inform the world of the gravity of North Korea’s human rights violations. I ask for your help in improving North Korea’s grim conditions.

My friends, freedom and democracy are once again under threat. The war against Ukraine is a violation of international law. It is an attempt to unilaterally change the status quo with force. Korea strongly condemns the unprovoked armed attack against Ukraine.

When North Korea invaded us in 1950, democracies came running to help us. We fought together and kept our freedom. The rest is history.

Korea’s experience shows us just how important it is for democracies to uphold solidarity. Korea will stand in solidarity with the free world. We will actively work to safeguard the freedom of the people of Ukraine and support their efforts in reconstruction.

Honorable Members of Congress,

So far six Korean Presidents spoke at this important Chamber. The first Korean President, Dr. Rhee Syngman, delivered his speech in 1954. After 35 years in 1989, President Roh Tae-woo standing at this podium said the following:

“The nations of the Pacific have made open society and market economy, the engines that drive the fastest growing region in the world. The Pacific will become even more important to the U.S., and Korea will begin to contribute more to the prosperity and peace of the region… I look forward to the day when some future Korean Presidents may be invited to address this distinguished assembly and describe the vision I spoke of today as an achievement fulfilled, not as tomorrow’s hope.”

President Roh’s vision has become a reality.

Thank you, thank you.

We are currently living in the Indo-Pacific era. This region is home to 65% of the global population, and 62% of the world GDP. It accounts for a half of global maritime transportation.

Last year, Korea announced its first comprehensive Indo-Pacific Strategy. Korea is committed to fostering a “free, peaceful, and prosperous Indo-Pacific” based on inclusiveness, trust, and reciprocity.

We will strengthen the rules-based order in the Indo-Pacific. We will take a comprehensive and multi-layered approach in expanding cooperation with key partners.

This also means that the stage for the Alliance is expanding.

Korea used to receive assistance from USAID. It is now sharing its experience with developing countries in partnership with the U.S. Korea has greatly increased its ODA budget. It is providing tailored programs in tune with the needs of its partners.

Yesterday, President Biden and I adopted a joint statement. It presents a vision of the “Alliance in Action towards the Future.”

Together, our two countries will broaden our Alliance.

Together, we will lead in innovation beyond security and foreign policy. We will work closely on artificial intelligence, quantum technology, bioscience, and Open RAN.

Our partnership in the cutting-edge semiconductor industry will contribute to establishing stable and resilient supply chains. It will also address economic uncertainties.

Together, we will open another new successful chapter. We will explore new frontiers in outer space and cyberspace.

Korea and the U.S. are the world’s top technological powers leading innovation and creativity. Together, we will create a great synergy.

Mr. Speaker, Madam Vice President, and Honorable Members of Congress,

Our Alliance is an alliance of universal values. Freedom, human rights, and democracy are the very foundations of our bonds.

Our Alliance is for justice. Our Alliance is for peace. Our Alliance is for prosperity.

Together, our Alliance will continue to move towards the future.

We will build the world of tomorrow that opens endless opportunities for our future generations.

I look forward to everyone being on board for our new journey together.

God bless you, God bless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nd may God bless our great alliance.

“尹대통령은 위대한 친구, 함께 더 강해”… 美의원 58명, 일제히 환영메시지

尹연설, 도중에 58차례 박수, 23차례 기립박수로 14분 길어져

매카시 “또 다른 70년간 아시아에 평화와 번영, 자유 전할 것”

매코널 “민주주의·시장경제·군사동맹 ‘공동의 약속’ 재확인”

메넨데즈·리쉬 등 상원 외교위 “尹방문 계기로 동맹 더 발전”

‘코리아스터디그룹’·’코리아코커스’ 등 지한파도 일제히 환영

인태소위원장 ‘한국계’ 영김·미셸 스틸 “함께하면 더욱 강해“

“文 대북전단금지법, 北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은 위헌”…”대북전단, 北인권 공론화”…대법은 “北 주민에 실상 알리는 역할” 인정

法 “대북전단, 北인권 공론화”…통일부, 해석지침 바꾸나

대법원 “대북전단 北 실상 알리는 긍정 측면”

“살포행위 그 자체로 국민 위해 가하지 않아”

전단금지法 사실상 무력화…통일부 “法 존중“

통일부가 대북전단을 살포한 단체의 법인 허가를 취소한 조치가 적법하다고 인정한 판결이 부당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통일부의 지침에 변화가 있을지 주목된다.

29일 외교안보 당국에 따르면 대법원은 자유북한운동연합이 통일부 장관을 상대로 낸 비영리법인 설립허가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사건의 발단은 2020년 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탈북민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그해 4~6월 접경지역에서 북한 지도부를 비판하는 전단을 살포했고, 당시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등을 거론하며 반발했다. 이후 통일부는 해당 단체에 법인 허가 취소를 통보했고, 이 사건을 계기로 더불어민주당은 이른바 ‘대북전단금지법’이라 불리는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했다. 특히 김여정은 대북전단으로 반발했을 당시 ‘법이라도 만들어서 막으라’는 취지로 위협했는데, 문재인 정부가 “법 제정을 준비 중”이라는 입장을 밝힌 탓에 ‘김여정 하명법’이라고도 불린다.

앞서 1·2심은 법인 설립 허가를 취소한 통일부의 처분이 부당하다는 박 대표 측의 주장에 대해 ‘공익을 해하는 행위를 한 때’에 해당한다며 원고 패소로 판결했지만, 대법원 재판부는 자유북한운동연합의 행위(대북전단 살포)가 일방적으로 공익을 해하는 행위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판단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전단 살포 행위는 정보 접근에 제약받는 북한 주민에게 북한 정권의 실상을 알리고자 하는 정치·사회적 활동의 일환”이라며 “북한의 인권 문제에 관한 국내외의 관심을 환기하는 등 나름의 역할을 수행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특히 자유북한운동연합의 대북전단 살포 행위가 (사건 이후 제정된) 대북전단금지법에도 저촉되지 않는다는 판단까지 내놨다. 본법에 따라 형사 처벌이 이뤄지는 전단 살포 행위는 ‘국민의 생명·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심각한 위험을 발생시키는 경우’인데, 북측으로의 단순한 전단 살포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체 측 법률대리인 이헌 변호사는 “문재인 정부의 맹목적·굴종적 대북정책에 대한 국내 및 국제사회의 비판적 시각을 적극 반영한 결과”라며 “김여정 하명에 따른 처분이 헌법상 표현의 자유 등에 위배되는 위헌적 처분이라는 취지”라고 환영했다. 이어 “통일부는 판결 취지에 따라 법인설립 허가 취소 처분을 직권 취소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따라 통일부의 대북전단금지법 해석지침 수정까지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현행법상 대북 확성기 및 시각매개물 게시를 금지한 지역은 ‘군사분계선 일대’지만, 전단 살포 행위를 금지한 구역에 대해서는 문재인 정부 시절 통일부가 ‘군사분계선 이남’으로 다소 넓게 명시한 해석지침을 세웠기 때문이다.

인권대사를 지낸 제성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통일부가 할 일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대북전단금지법 해석지침을 고치는 것”이라고 했다. 올해 1월 한국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과 미국 북한인권위원회(HRNK), 영국 징검다리, 캐나다 한보이스 등 인권단체 9곳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해석지침 수정을 요구하는 서한을 발송하기도 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정부는 대법원 판단을 존중한다”며 “향후 조치에 필요한 관련 내용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북전단금지법 해석지침’과 관련해선 “이 또한 정부는 대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입장에 따라 관련 사항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대법 “대북 전단 살포 단체, 文 정부 설립 취소는 부당”

문재인 정부가 대북 전단을 살포했다는 이유로 탈북민 단체의 법인 설립 허가를 취소한 조치는 부당하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27일 자유북한운동연합(대표 박상학)이 통일부 장관을 상대로 낸 ‘비영리법인 설립 허가 취소’ 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자유북한운동연합은 문재인 정부 시기인 2020년 4~6월 세 차례에 걸쳐 인천 강화군과 경기 김포시‧파주시 등에서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내용의 대북 전단 50만장을 북한 방향 상공으로 살포했다. 당시 법률에 따르면 범죄가 되지 않는 행위였다.

“文 대북전단금지법, 北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은 위헌”… 한변, 토론회 개최

“한반도, 반인권적인 법 2개에 의해 심각한 위기”

태영호 “北인권 다루는 행사 많아져야 국민들이 돌아볼 것”

제성호 “대북전단금지법은 위헌이자 불필요한 과잉입법”

이상용 “북한주민들에게 최대한 많은 정보 제공해야“

文 정권이 막은 대북 전단, 대법은 “北 주민에 실상 알리는 역할” 인정

대법원이 대북 전단을 살포했다는 이유로 문재인 정부가 탈북민 단체의 설립 허가를 취소한 것은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허가 취소가 정당했다는 하급심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대법원은 “대북 전단 살포는 북한 주민에게 북한 정권의 실상을 알리는 등 북 인권 문제에 대한 국내외 관심을 환기시키는 공적 역할을 수행하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형식상으론 허가 취소에 대한 판단이지만 문재인 정권이 강행한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대북전단금지법은 ‘김여정 하명법’이다. 자유북한운동연합은 2020년 4~6월 대북전단 50만장을 살포했다. 당시엔 범죄가 되지 않는 행위였다. 하지만 북한 김여정이 그해 6월 “저지시킬 법이라도 만들라”고 하자 문재인 정부는 4시간 만에 ‘법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이후 43일 만에 자유북한운동연합 설립 허가를 취소하고, 그해 말 민주당은 대북전단금지법을 강행 처리했다. 국내는 물론 미국·영국·유엔까지 비판과 우려를 쏟아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내세운 유일한 근거가 ‘접경지 주민 안전’이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전단 살포가 국민 생명에 심각한 위험을 발생시킨 사실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대북전단금지법은 이처럼 법을 만든 배경 자체가 비상식적이고 내용도 위헌적이다. 북한 주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헌법상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점에서 위헌 소지가 크다. 그런데도 헌법재판소는 북한 인권단체들이 이 법안에 대해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을 2년 넘게 뭉개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이미 헌재에 이 법이 위헌이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냈다. 헌재는 신속하게 위헌 여부를 심사해야 한다.

김정은 폭압 체제에서 신음하는 북한 주민을 고립과 단절로 내모는 대북전단금지법은 폐지돼야 한다. 탈북민 단체들도 앞으로는 시위를 하듯 공개적으로 대북전단을 살포하는 관행을 바꿔야 한다. 그럴 필요도 이유도 없다. 북한 주민에게 진실을 알린다는 순수한 뜻이 의심받아선 안 된다.

WCC(세계교회협의회)의 정체…WCC는 왜 우리에게 맞지 않는가: 그 기원과 신학

WCC는 왜 우리에게 맞지 않는가: 그 기원과 신학

1. WCC의 기원

개신교 선교 역사는 그리 오래지 않다. 로마가톨릭이 예수회 중심으로 16세기부터 오지를 공략한 것에 비하면 3세기 정도 격차가 벌어지다, 19세기에 본격화되었다. 1986년 국내에 큰 반향을 일으킨 로버트 드니로 주연의 영화 <미션>도, 2016년 개봉한 영화 <사일런스(엔도 슈카쿠 원작)>도, 다 가톨릭 예수회의 선교를 다룬 영화다.

개신교 선교가 늦은 이유는 가톨릭이 일찍부터 스페인과 포르투갈 정부의 막대한 재정 지원과 교황의 후원으로 선교 사업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에 반해, 바로 그 시기 개신교에서는 루터와 칼빈의 내부 투쟁으로 정신이 없었고 선교를 자극할 만한 중심 기관도 부재했으며, 제후들도 선교에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재세례파 등 극단적인 종말론 공동체들만이 외곽으로 동선을 그려나갔다.

개신교 선교의 가시적인 성공은 윌리엄 캐리(William Carey)부터로 보는 것이 선교신학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 시기가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이다. 그로부터 100년 뒤, 이를 기념하기 위한 100주년 선교 대회가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서 기획되었다. 1,200명 정도가 모이면서 이 기획이 흥행에 성공한다. 1910년의 일이다.

많은 사람이 WCC의 기원을 ‘1948년 암스테르담에서 결성된 기독교 연합 운동 단체’로 알고 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WCC의 기원은 이 시기부터 살피는 것이 타당하다. 왜냐하면 이 100주년 선교 대회를 기획한 존 모트(John R. Mott, 1865-1955)가 WCC에 개신교를 합류시키는 산파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WCC란 어떤 교단이나 단체가 아니라 일종의 포럼(Forum)임을 의미한다. 이러한 포럼을 의미상 ‘교회(체)’로 규정하는 것이 선교신학의 중요한 특질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선교 대회의 성격이 실질적으로 무엇인지 유념할 필요가 있다.

관광을 겸해 단기 선교나 순회 부흥회들을 다녀오는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지만, 선교 현장은 생존과 선교의 투쟁 현장이다. 생존과도 싸우고 선교와도 싸운다는 뜻이 아니라, 생존이 선교와 싸운다는 뜻이다. 그래서 자원이 소중하다.

안방에서 편히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은 신앙 교리가 말초 신경처럼 발달해 있지만, 선교 현장에서는 헐거워진다. 왜? 자원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안방에서 하던 대로 무슨 파냐 무슨 파냐 따지다간, 고립되기 십상이다.

선교사들의 이러한 현장 투쟁을 영웅열전 감상하듯 하지만, 그들의 가족, 특히 배우자들이 겪어야 하는 고난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이다. 윌리엄 캐리 역시 아들을 잃었고, 배우자는 정신병에 걸리는 극한을 겪었다.

이 같은 극한 현장 속에서의 연대 의식을 실제 활동으로 끌고 나온 것이 바로 존 모트였고, 그 첫 번째 결실이 1910년 에딘버러에서의 컨퍼런스였던 것이다. 그가 WCC의 형성 단계까지 이를 끌고 나갔다.

2. WCC의 형성

에딘버러에서 흥행에 성공한 10년 뒤 람베스에서 한 번 더 모이고, 여기서 세 덩어리의 굵직한 대회로 파생된다. 선교 분과의 ‘국제선교회(1921년)’, 생활과 비지니스 분과의 ‘스톡홀름(1925년)’, 신앙이나 직제를 주로 다룬 ‘로잔(1927년)’…, 이렇게 3개 덩어리로 나뉠 수 있었던 람베스 회의는 ‘성공회’ 주도 모임이었다. 개신교는 1910년이 처음이지만, 이는 186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모여 온 10년례 회의와 교차한다.

이것이 무르익어, 당초 1910년 에딘버러 컨퍼런스를 주도했던 존 모트가 창설한 IMC(International Missional Council)에서는 ‘반(反)인종차별주의’, ‘반(反)세속주의’ 등 보다 거시적인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전방위 선교 그룹의 참여를 자극했다. 그러다 1938년 탐바람(Tarmbaram)에서는 ‘비기독교 세계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메시지’라는 구호로 전환함으로써 장차 일어날 혼성 WCC를 점점 구체화해 갔다.

여기서 ‘비기독교 세계’라는 표제가 언급되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16세기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선교가 식민지 및 교역 정책과 혼재한 것처럼, 20세기 선교 현장 역시 여러 복잡 미묘한 ‘선교와 비선교’, ‘기독교와 비기독교’뿐 아니라 ‘기독교와 기독교’의 혼재를 벗어날 수 없었다. WCC의 구상은 자기 정체성에 갇히는 소극적 선교에서 벗어난 적극적 선교의 한 양상이었던 것이다.

존 모트의 IMC는 결국 1948년 WCC로 합류하기에 이르는데, 이러한 통합이 촉진되기까지는 보다 구체적이고도 결정적 요인 2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1939년에서 1945년까지 약 6년에 걸친 제2차 세계대전이었고, 둘째는 존 모트가 1946년에 노벨상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1948년 암스테르담에서 ‘에큐메니칼’이라는 이름으로 참여한 종파는 성공회, 개신교, 동방정교회, 오리엔트정교회, 아시리아 동방교회이다. 많은 사람이(특히 우리나라) 로마가톨릭을 이 협의체의 설립자인 줄 알지만, 로마가톨릭은 회원 종파가 아니다. 그들은 회원이 될 수 없다. 교의적으로 가톨릭은 이미 단일한 ‘보편교회’이기 때문이다.

바티칸 공의회 후 얼마나 유연해졌는지 모르지만, 가톨릭의 진정한 신학에 따르면 가톨릭은 다른 교회를 교회로 여기지 않는다. 즉 개신교를 포함한 각 종파들만 가톨릭을 여러 교회 중 하나로서 참여시킨다고 여긴다. (※1948년, 세계 44개국 147교파 대표= 351명이 참여했다.)

3. WCC의 발전

WCC의 초기의 주된 테제는 다음과 같다.

1) “성경이 말하는 대로 예수를 하나님이며 구주로 믿고 홀로 한분이신 성부, 성자, 성령께… 공동의 사명을 완수하려는 교회의 친교단체다”

2) 신앙고백 정신과 에큐메니칼 정신 간 올바른 관계

3) 교회의 일치

4) 상호 이해와 관용

5) 그리스도는 몸 된 교회의 머리/ 하나

6) 인간의 무질서 타파와 하나님의 섭리 인식

7) 하나님의 경륜 안에 있는 보편적 교회

8) 교회와 (국제)사회의 무질서 회복

이러던 것이 조금씩 톤이 달라진다.

-2차 1954년 에반스톤(미국)에서는

“하나님 나라는 종말론적이며, 종말론적 승리를 희망하는 원동력은 바로 사회참여이다(이른바, 몰트만의 희망의 신학)”라고 하던 것이,

-3차 1961년 뉴델리에서는

“‘하나님의 선교’를 강조하면서 여타 사회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대처를 요하되, 해결방안은 교회의 일치와 인류의 일치”라며 ‘일치’가 강화되더니,

-4차 1968년 웁살라에서는

‘인간화’, ‘새 인간성’, ‘해방’과 같은 이념 코드 지향을 외치다가, 1971년 구티에레즈의 명실상부 ‘해방신학’이 탄생하기에 이른다. 해방신학에서의 구원은 사회구원을 의미한다. 이것이 1973년 방콕에서 명문화되면서 교리적 차이를 불문하고 (명목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모든 교회 수용한다고 했지만) 사실상 모든 교회 수용의 길로 들어섰다.

-이러다가 우리나라도 화끈한 주역으로 참여한 것이 바로 제7차 회의에서다. 바로 현경(유니온 신학교 교수)의 저 유명한 초혼제(招魂祭, 귀신 부르는 제사)가 그것이다. 그 한 대목을 소개한다.

“우리의 믿음의 조상들인 아브라함과 사라에 의하여 착취를 당하였고 버림을 받은 이집트의 흑인 여성 하갈의 영혼이여!

예수 탄생 시 헤롯왕의 군인들에 의하여 살해된 남자 아기들의 영혼이여!

잔 다르크와 중세 시기 동안 마녀심판으로 화형에 처해진 많은 다른 여성들의 영혼이여!

십자군 전쟁 때 죽은 모든 사람들의 영혼이여!

식민주의 시대와 기독교 이방선교 시기 동안에 대량 살상된 토착민들의 영혼들이여!

홀로코스트 동안 가스실에서 죽임을 당한 유대인들의 영혼들이여!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원폭으로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영혼들이여!

광주와 천안문 광장과 리투아니아에서 탱크에 깔려 죽은 사람들의 영혼들이여!

매일같이 죽임을 당하는 아마존 우림의 영혼들이여!

인간의 물질과 금전에 대한 탐욕으로 강간을 당하고 고문을 당하여 착취를 당하는 땅과 공기와 물의 영혼들이여!

피비린내 나는 걸프전에서 지금 죽어가고 있는 흙과 공기와 물의 영혼들이여!

십자가에서 고문을 당하셨고 죽임을 당하신 우리의 맏형 해방자 예수님의 영혼이여!”

4. WCC 신학

WCC의 핵심 의제와 신학은 에큐메니즘(통합)이다. 그러나 WCC 에큐메니즘은 ‘World Council of Church’라는 자기 이름에 걸맞지 않게 교회적이지도 성서적이지도 않다.

이를테면, 에베소서 1장은 성서의 대표적인 에큐메니즘을 표지한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εἰς οἰκονομίαν τοῦ πληρώματος τῶν καιρῶν, ἀνακεφαλαιώσασθαι τὰ πάντα ἐν τῷ Χριστῷ…

ㅡ했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나케팔라이오사스타이(ἀνακεφαλαιώσασθαι), 곧 ‘머리’ 됨이다. 이를 유의해 다시 옮겨보면,

“카이로스(때)의 가득참의 통일(합) 속으로…

천지에 있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그리스도 안으로…”

ㅡ라는 문장이다.

에큐메니즘이라는 말은 바로 이 문장에서 통일로 번역된 어휘군 오이쿠메네(οἰκουμένη)에서 온 말이다. ‘집(οἰκοϛ)’ 또는 ‘거주하다(οἰκέω)’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창세기 1장 1절의 베레쉬트(태초에)란 말도 ‘집’에서 유래한 것임을 감안할 때, 천지창조의 시작과 끝이 그리스도로 완결된다는 의미인 셈이다.

결론적으로 저 에베소서 문장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모든 게 복속되고, 그러면 드디어 ‘οἰκονομίαν(통합/에큐메니즘)’이 된다는 문장이다.

이 통합/에큐메니즘 원리를 고(高) 기독론(high Christology)이라 분류하는 것이다. 그래서 몸(σώμα, 소마)이 중요한데, 저 통합체는 그리스도의 몸 곧 교회를 말하는 까닭이다. 우리가 짓밟기도 하고 침뱉기도 하는, 그 교회.

여기까지가 성서 에큐메니즘이다.

그러면 WCC에 참여하는 개신교에게 물어 보시기 바란다. 당신들의 머리가 누구냐고. 그러면 그리스도라 답할 것이다.

그 다음은 WCC 참여 승려께 물어 보시기 바란다. 당신들의 머리는 누구냐고. “…”

이러한 불일치 때문에, 친(親) WCC 신학자는 그에 합당한 신학을 다시금 조제해내는 것이기도 하다. ‘예수’ 또는 ‘머리(ἀνακεφαλαιώσασθαι)’만 빼면, 완벽한 통합이 된다.

여기에 단골로 등장하는 주제가 ‘성령론’이다. 심지어는 기독론이 성령론으로 대체되었다는 황당한 발제를 WCC 펀드로 공부하신 분들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정리하면 머리를 누구로 한 에큐메니즘이냐가 중요한데, 성서는 (그리스도를 빠트린) 자연보호/환경보호 에큐메니즘이나 용공 에큐메니즘을 지지하지 않는다. 참고로 이와 같은 기독론은 에베소서뿐 아니라, 요한복음, 골로새서, 빌립보서, 로마서에도 모두 장착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 같은 기독론은 초대교회 설립자들의 창작인가, 헬라의 문학·철학인가? 그런 것이 아니다. 이는 원천적으로 구약성서 신학에 기반한다.

이를테면 이런 대목.

“야웨께서 내 주에게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여기서 ‘너’는 누구인가.

이것이 고 기독론(high Christology), 즉 성서 에큐메니즘의 진수이다.

우리 주변의 많은 기독교인이 이러한 전체적인 흐름보다 WCC라는 이름 자체에만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실정인데, 우선 상기한 그들의 신학을 유의하고, 아울러 그들의 신학의 추이를 파악하면 다음 네 그룹이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1) E. P. 샌더스 및 새 관점 파가 주창하는 언약적 신율주의(Covenantal Nomism)

2) 고토신학 및 세대주의 (예슈아/ 나자렌 포함)

3) 친 WCC 선교신학

4) 민중신학

이 신학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기독교 정체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신약으로 구약을 말하는 데 우선하는 게 아니라, 구약으로 신약을 말하려는 경향성을 갖는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E. P. 샌더스와 그 추종자들은 구약과 신약의 차이가 거의 없는 것처럼 착시를 일으킨다.

이를테면 고토신학은 제3성전(또는 예슈아)이라는 용어를 선호함으로 그리스도의 소마(σώμα)를 약화시킨다(교회를 과정체로 전락시키는 것).

이를테면 여타 친 WCC 선교신학은 예수보다 하나님(엘로힘)이라는 신명을 더 선호하는 특징을 보이는데, 앞서 언급한 대로 기독론보다는 환경보호와 접목된 성령론을 더 선호하는 까닭이다. 왜냐하면 기독론(예수)를 들고 나가면 통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이를테면 민중신학(자)은 구약학을 선호한다. 구약학을 선호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구약학을 선호하면서 신약성서를 제2성서(2차 문헌/2류 문헌)라 부르는 것이 성서 에큐메니즘에 반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든 신학·신앙 노선들은 진화론, 사회주의, 친동성애 이상 가는 해악인데, 그 핵심이 ‘기독론(특히 고기독론 high Christology)’을 해체하는 지점에서 서로 만난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해체시키는 중이라는 사실을 잘 모르는 것도 공통점이다. 왜냐하면 자신들은 “예수, 예수”, “주여, 주여” 하는 열심이 있으니까.

그래서 우리와 잘 맞지 않는다.

WCC(세계교회협의회)의 정체

세계 교회 협의회에서 맨 처음에 에큐메니칼 운동을 시작할 때는 기독교 안에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심을 따라 교파를 초월하고 교회들이 연합하여 교회의 일치를 이룬다는 정신으로 시작하였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숨겨져 있던 베일이 하나씩 벗겨졌다. 일차적으로는 기독교 교파간의 담을 헐어버리고 교회들이 연합하였지만 그 다음 단계에서는 종교간의 담을 헐고 서로 대화를 하고 있다. 세계 교회 협의회는 기독교 통합 운동을 넘어서서 제 종교 단일화 운동(Inter-Faith Movement)의 방향으로 분명하게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면에서 세계 교회 협의회는 로마 카톨릭과 뜻을 같이하고 있으며 종교 통합 운동을 양면에서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교회연합운동과 종교 통일 운동의 영향으로 인하여 기독교 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유일성이 희석되면서 바른 교리와 진리를 가르치는 일이 급속히 약화되고 있다.

성경은 성도들이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한다”(엡4:3)고 가르친다. 그러나 성령의 하나됨은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구속을 참으로 믿고 깨달은 성도들 사이에만 가능하다. 만일 믿는 성도가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한다면 이는 마치 빛과 어두움이 함께 공존하려는 것과 같다. 따라서 성경은 성전과 우상이 함께 할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고후6:14-16).

하지만 지금 세계 교회 협의회는 믿지 아니하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세우신 교회와 사탄의 우상을 일치시키면서 하나(One Unity)가 되자고 주장한다. WCC가 시작된 이후 일어난 다음의 사실들을 보면 세계 교회 협의회가 주도하고 있는 기독교 통합운동은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의 진리를 훼파하는 인본주의 연합운동이며 하나님께 엄중한 심판을 받을 무서운 운동이다. 현재 WCC가 역사 속에서 등장하고 많은 교회들과 목회자들이 이러한 기독교 통합 운동을 용인하는 것을 보면 지금 이 상황이 사도 바울이 경고한 종말의 배도의 시대임을 알 수 있다.

제1차 WCC총회: 1948년 암스텔담 (Amsterdam, Netherlands)

WCC가 그들의 강령에서 언급하였듯이 그들의 목표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겠끔 한 믿음과 한 성찬으로 교제하는 통일된 교회”를 만드는 것이다. 세계 교회 협의회는 세계적으로 통일된 교회를 건설할 목표로 1948년 네델란드 암스텔담에서 44개국, 147개 교회의 대표자들 351명이 모이면서 창설되어 제1차 총회를 개최하였다. 제 1 차 총회에서는 ‘인간의 무질서와 하나님의 계획(Man’s Disorder and God’s Design)’이라는 주제로 진행되어 제 2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을 앓고 있는 무질서한 인간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추구하면서 ‘국제난민국제기구’를 발족하였다.

제2차 WCC총회: 1954년 미국 일리노이주 에반스톤 (Evanston, IL, USA)

제 2차 총회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 세상의 희망(Christ the Hope of the World)’이란 주제로 열렸으며 161개 교단이 가입하였고 해당 교파와 교단에서 502명이 참석하였다. 이 총회에서는 “세상의 모든 악을 퇴치시키기 위한 사회주의 건설이 WCC의 지상목표”라고 신앙을 고백함으로써 스탈린의 평화 공존 결의안을 지지하였고, 대한민국은 이때 가입 신청을 냈다. 따라서 한국 교회의 보수와 진보가 갈라지기 시작한 분기점이 되었다. 이때 기장, 기감, 예장(통합)은 KNCC(National Council of Church in Korea)의 이름으로 WCC에 가입하였다.

제3차 WCC총회: 1961년 뉴델리 (New Delhi, India)

제3차 총회에서 매우 위험스러운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제3차 총회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Jesus Christ – the Light of the World)”이라고 하여 그리스도가 주제의 중심이었는데 루터란 신학자 죠셉 시틀러(Joseph Sittler)가 총회에서 연설한 이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WCC의 신앙에 그릇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시틀러의 주장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구속의 교리는 우주의 교리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구속뿐만 아니라 온 우주 만물의 구속도 동반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우주 자체가 하나님의 활동무대이고 우주와 모든 자연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상호 보살피는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이때 나온 것이 “우주적 그리스도(Cosmic Christ)”란 개념이다. 그 개념에 의하면 “우주적 그리스도”는 다른 모든 종교에서도 보편적으로 감지될 수 있는 창조의 중보자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자유를 추구할 때 그리스도는 그들의 이데올로기에 관계 없이 그들에게 임하신다는 것이다(David Wells). 그러므로 “우주적 그리스도(Cosmic Christ)”는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에도 임재하시는데, 다만 그들이 잘못 알고 힌두교에서는 그리스도 대신에 크리슈나(Krishna)를 구세주로 믿으며, 불교에서는 부처(Buddha), 모슬렘에서는 마디(Imam Mahdi)를 구주로 믿는 것이다.

또한 카톨릭 신학자 칼 라너(Karl Rahner)는 이 “우주적 그리스도(Cosmic Christ)” 개념으로 불교 신자, 힌두교 신자, 모슬렘 신자 모두가 “익명의 크리스챤(anonymous Christian)”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로서 타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기독교인이 되는 일이 없이도 상호간의 일치와 연합을 시도하는 거짓된 신학이 태동하고 말았다.

제 3차 총회에서부터 WCC는 “다른 종교 안에도 그리스도가 관념적으로 내재되어 있다”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리스도를 통한 화해는 모든 창조물과 전 인류를 포용한다(The reconciliation wrought through Christ embraces all creation and the whole of mankind)”(Yri, Quest, p.169)라는 WWC의 “Witness Section”의 수록된 내용이 이 무서운 사실을 증거하고 있다. WCC가 다른 종교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여 그들을 구원하는데 힘쓰고 있지 않고 장차 지옥에 빠질 다른 종교인들을 그대로 방치하면서 복음의 변질을 초래하는 그릇된 연합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60년대 초 칼 라너로부터 시작된 카톨릭의 타 종교에 대한 비 성경적인 신학과 사상은 계속 유지되고 발전하다가 드디어 지난 2005년 11월 교황 베네딕트 16세가 “불신자도 역시 구원 받는다”는 그릇된 가르침을 바티칸 뉴스로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이로서 WCC의 종교 통합운동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되었다.

“NONBELIEVERS TOO CAN BE SAVED, SAYS POPE” (VATICAN CITY, NOV. 30, 2005, Zenit.org – Whoever seeks peace and the good of the community with a pure conscience, and keeps alive the desire for the transcendent, will be saved even if he lacks biblical faith, says Benedict XVI ) (누구든지 순전한 양심으로 공동체의 평화와 선을 추구하며, 초월적인 것을 위하여 그 소원을 활기있게 유지하면, 성경적 신앙이 부족하더라도 구원받을 것이다 – 교황 베네딕트 16세 발언)

WCC는 종교통합을 위해서 만인구원설을 주장하였고 로마 카톨릭 역시 WCC와 보조를 맞추기 위해 만인구원설에 힘을 실어주었다. 이 두 조직은 같은 뜻을 가지고 협력관계를 유지하며 서로 가까이 하고 있다.

제4차 WCC총회: 1968년 스웨덴 읍살라 (Uppsala, Sweden)

WCC는 1968년 제4차 총회에서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하노라(Behold, I make all things new)”는 주제로 모였다. 모임의 목적은 “세상의 모든 종교의 어두움 속에서 주무시는 그리스도를 깨우기 위하여(to awaken Christ who sleeps in the night of all religions of the world)”라고 발표하였다(Spence). WCC는 제 4차 총회에서 “현존하는 다른 믿음의 사람들과의 대화프로그램(Program of Dialogue with People of other Living Faiths)”을 개설하기로 결정하였다. 타 종교들과의 대화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1970년부터는 “크리스챤(Christian)”이란 용어를 “신자(believer)”라는 말로 바꾸기로 하였고,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동료 신자들(fellow believers)” 이라고 부르기로 하였다. 이러한 용어 변화는 WCC가 다른 종교를 향하여 “우리 모두가 함께 같은 하나님을 섬긴다”라는 그릇된 사상이 유입되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1971년부터 모든 종교를 포용하는 “현존하는 (다른) 신앙과 이념을 가진 사람들과의 대화(DFI: Dialogue with People of Living Faiths and Ideologies)”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가동하였고, 1973년 방콕에서 모인 여러 종교간의 대화의 장에서는 세계불교협회 회장이 중심인물이 되었다.

제5차 WCC총회: 1975 나이로비 (Nairobi, Kenya)

1971년부터 시작한 타종교와의 대화프로그램인 DFI의 열매가 1975년 제5차 총회에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WCC 총회에 이슬람교, 로마 카톨릭, 불교, 힌두교, 유대교, 무신론자 등 각종 이방종교의 대표자들이 대거 참석하여 대성황을 이루었다.

제6차 WCC총회: 1983 뱅쿠버 (Vancouver, Canada)

제6차 WCC 총회에서는 개회식 때 카나다 원주민(Red Indian: 북아메리카 인디언)의 종교행사도 곁들였다. WCC는 인디언의 종교를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그들의 우상인 토템기둥(totem pole)을 총회장소에 세웠고(JS Malan), 개회식 때 그들의 종교주문을 암송하며 북과 노래와 춤에 맞추어 그들의 정결의식도 행하게 하였다. 그리고 WCC 총회역사상 최초로 무신론자(theological atheist)를 초청하여 총회에서 멧세지를 전하게 하였다.

WCC의 “종교간 대화프로그램(Interfaith Dialogue Program)의 의장인 뮬더(Dirk Mulder)는 카나다 원주민에 관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저들이 복음화 되지 않았다고 해서 영원히 버림받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기자는 “그렇다면 불교신자나 힌두교 신자들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어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인가요?”라고 물었을 때 뮬더는 “그럼은요, 그렇구 말구요! (Sure, sure!)”라고 확신하였다. 이에 WCC 지도자들 역시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는 사실을 믿는다고 선언하였다.

제7차 WCC총회: 1991 캔버라 (Canberra, Australia)

호주 캔버라에서 모인 제7차 WCC총회는 그 주제가 “오소서, 성령이여! 모든 창조를 새롭게 하소서!(Come, Holy Spirit – Renew the whole creation)”였는데 이방 종교를 본격적으로 포용하고 연대하는 모습을 드러냈다. 4,000여명의 참가자 가운데에는 점술가, 심령술사, 마술사, 무당 등의 세계 15개 종교 대표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개회식에서는 호주 원주민의 전통종교의식을 진행되었다. 호주 원주민 마법사들(Witchdoctors)이 젖은 고무나무 잎새를 태우면서 짙은 검은 연기를 하늘로 올리고 참가자들은 조상들의 영들로부터 축복받기 위하여 그 연기 사이로 걸으라고 요청받기도 했다(JS Malan).

이때 한국의 여성 신학자 정현경 교수(teaches at Union Theological Seminary in New York)는 주제 강연에서 흰 치마 저고리를 입고 창호지에 쓴 초혼문을 가지고 나와서 낭독하며 죽은 영혼들을 불러내고 “오소서, 우리들의 신앙의 조상 아브라함과 사라에 의하여 이용당하고 버림받은 이집트 여인 하갈의 영이여. . . 다윗 왕에 의하여 죽임을 당한 우리야의 영이여 오소서 . . . . 나치에 죽음 당한 영이여, 2차 대전 중 창녀로 끌려간 한국 여인의 영이여, 십자가의 고통으로 죽은 우리의 형제 예수의 영이여 오소서 . . .” 라고 읽은 다음 그 종이를 불에 태워 공중에 날렸다.

제8차 WCC총회: 1998 하라레 (Harare, Zimbabwe)

짐바브웨 하라레에서 열린 제8차 WCC총회는 그 주제가 “하나님을 바라라. – 소망 가운데 기뻐하라(Turn to God – Rejoice in Hope)”이었다. 이 총회의 특징은 WCC 가 창설 된지 반세기가 지난 후에 아프리카와 결속을 다짐하는 것이었다. 특히 이 총회에서는 처음부터 WCC와 함께 하던 동방 정교회의 여러 질문에 대해 구체적으로 응답하고 포용할 수 있도록 특별 담당부서(Special Commission)를 창설하였다. 이는 WCC의 회원 교회의 지경이 크게 넓혀진 것을 의미한다.

제 8차 WCC 총회에 참석한 한국의 정현경 교수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요한복음 14:6의 내용으로 “그리스도가 천국에 이르는 유일한 길인가 라는 질문을 하고 대답하기를 “예수님이 실수한 것입니다(Jesus was mistaken)”라고 말하였다(Ralph G. Colas). 이것 하나만 보더라도 오늘날 WCC의 종교간의 연합운동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제 9차 WCC총회: 2006 포르토 알레그레(Porto Alegre, Brazil)

제 9차 WCC 총회의 주제는 “당신의 은혜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이었고, WCC 역사상 가장 많은 기관과 단체들이 모인 총회였다. 전 세계적으로 4천의 단체와 348개의 회원 교파가 참여하였다. 제 9차 총회에서는 “하나의 교회로 부르심”에 동의하고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통합된 세계 교회 및 세례와 기도를 강조하였다. 특히 WCC의 모든 결정은 다수에 의하기로 결정하고 이 결정에 따라 WCC의 회원 자격이 대폭 수정되었다. 특히30세 이하의 젊은 층들을 대거 영입하기로 하였다.

제10차 WCC총회: 2013년 부산(Busan, South Korea)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세계교회협의회(WCC: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의노선은 상대주의, 혼합주의, 그리고 인본주의에 기초한 통합운동(Ecumenical Movement)임이 분명하다. 이는 교회가 하나님의 절대적 진리인 성경을 부인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 묻은 십자가를 집어 던지는 배교 그 자체이다. 우리 WCC를 통하여 일어나고 있는 이 엄청난 사실을 모든 교회들과 하나님의 자녀들이 깨닫기를 바란다.

http://www.christiantoday.us/19968

불법체류자 41만 4000명… 역대 최고…불법 체류자 파고드는 마약…외국인 마약 사범 3배 급증

불법체류자 41만 4000명… 역대 최고

지난달 국내 불법체류자가 41만 4000명으로 나타나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19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의 2023년 3월 통계 월보에 따르면, 3월 말 기준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 총 233만 5596명 가운데 41만 4045명이 불법체류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 동월(39만 2247명) 대비 2만 1798명이 늘어났다.

불법체류자는 작년 9월 말 40만 2755명으로 처음 40만 명을 돌파했다가 같은 해 11월 말에는 41만 2659명으로 최고치에 이르렀다. 이후 소폭 감소한 뒤 전월 9015명이 증가해 다시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달 말 기준 새로 발생한 불법체류자의 입국 시 비자는 외국인 고용 허가제에 따른 비전문취업(E-9) 비자 소지자가 2909명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어학연수(D-4) 비자 소지자 858명, 난민 신청 및 체불임금 중재, 산재 보상 등의 사유로 임시 체류 자격으로 받은 G-1 비자 833명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고용허가제에 따른 체류 외국인이 40만 명, 유학 및 어학연수 체류 외국인이 20만 명인 점을 고려하면 외국인 유학생의 불법 체류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말 현재 국내 체류 외국인은 코로나19 사태로 급감했던 작년 3월 말 196만 6276명에 비해 18.8%가 증가했다. 국내 체류 외국인은 2013년 158만 명에서 2019년 252명으로 최고치에 이르렀다가, 2021년 코로나19 사태로 196만 명으로 급감했고 지난해 말 225만 명으로 다시 증가했다. [복음기도신문]

http://gnpnews.org/archives/137418

외국인 5명 중 1명 불법체류자…’역대 최대’

불법 체류자 파고드는 마약…외국인 마약 사범 3배 급증

지난해 강원도에서도 마약을 밀반입하던 불법 체류자들이 붙잡히는 등, 외국인 근로자를 상대로 한 마약 유통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경찰에 붙잡힌 외국인 마약사범도 5년 사이 3배 가까이 늘어 지난해 1700여 명에 달합니다.

http://news.tvchosun.com/site/data/html_dir/2023/04/25/2023042590199.html

아이 쓰는 화장품 통에 ‘마약’…태국인 총책 도심 추격전…태국인만 67명 잡혔다…점점 늘어나는 외국인 마약 범죄

수단에 이어 브루키나파소…아프리카에 피의 내전 확산

수단서 1600여 명 배 타고 사우디로 ‘탈출’… “누적 2000명 넘어’

군벌 간 무력 충돌로 내전이 격화한 수단에서 배를 타고 탈출한 1600명이 26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에 도착했다.

사우디 외교부는 이날 성명을 내고 민간인 1687명을 태우고 홍해 항구 도시 포트 수단에서 출발한 대피 선박이 제다 항에 도착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대피는 사우디 선박을 통해 이뤄졌으며, 아시아·중동·유럽·북미 지역 50개국 외국인이 탑승했다고 외교부는 설명했다. 대피 인원 중 사우디인은 13명이다.

외교부는 지금까지 수단에서 대피해 사우디로 온 민간인과 외교 인력이 2148명이라고 집계했다.

파이살 빈 파르한 사우디 외교장관은 “우리는 수단에 있는 형제들이 안전하게 빠져나오도록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외국인들이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도록 지원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날 한국 교민 28명도 군용기 편으로 수단을 떠나 제다를 거쳐 귀국했다.

AFP 통신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외무부도 이날 오전 자국민 560명이 사우디로 대피했다고 밝혔다. 인도네시아는 추가로 300여 명의 대피 작전을 진행 중이다.

수단에서는 2019년 쿠데타로 오마르 알-바시르를 축출한 압델 파타 부르한 장군의 정부군과 모하메드 함단 다갈로 사령관의 신속지원군(RSF)이 지난 15일부터 교전하고 있다.

유엔은 전날까지 459명이 숨지고 4072명이 다친 것으로 집계했다. [연합뉴스]

http://gnpnews.org/archives/137389

이번엔 서아프리카…부르키나파소 유혈사태, 150명 이상 피살

서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에서 정부군의 소행으로 의심되는 공격으로 민간인 최소 150명이 숨졌다고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가 25일(현지시간) 밝혔다.

OHCHR에 따르면 지난 20일 부르키나파소 북부 야텡가 지역 카르마 마을에 제복을 입은 무장 병력이 들이닥쳐 무차별 사격을 가했다.

라비나 샴다사니 OHCHR 대변인은 이들이 현지 자경단(VDP)과 함께 온 보안군 병력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용 정보를 보면 적어도 150명의 민간인이 사망하고 다수가 다쳤을 수 있다”고 했다. 현지 검찰은 24일 사망자가 60명이라는 중간 조사 결과를 내놨다.

http://gnpnews.org/archives/137363

북, 사형 광범위… 여성수감자에 성폭력도 빈번

북, 사형 광범위… 여성수감자에 성폭력도 빈번

1. 시민 정치적 권리

자의적 생명박탈… 사형, 공개처형

북한에서는 공권력에 의한 자의적 생명박탈이 존재한다. 국경지역에서 사법절차를 거치지 않고 생명을 박탈하는 즉결처형 사례가 지속적으로 수집되고 있다. 구금시설에서 수형자가 도주하다가 붙잡혀 공개처형되거나 피구금자가 구금시설에서 출산한 아기를 기관원이 살해한 사례도 있었다. 일부 구금시설에서는 비밀처형이 실시되고 있다.

또한, 북한에서는 사형이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다. 북한은 형법 개정을 통해 사형을 부과할 수 있는 범죄의 수를 늘려왔으며, 최근에는 비상방역법, 마약범죄방지법 등의 특별법을 제정해 방역조치 위반행위 등에도 사형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실제로 살인과 같은 강력범죄 뿐만 아니라 마약거래, 한국영상물 시청·유포, 종교·미신행위 등 자유권규약상 사형이 부과될 수 없는 행위에 대해서도 사형이 집행됐으며, 18세 미만 아동과 임신부에게도 사형이 집행됐다.

북한에서는 신문과정에서 고문 및 비인도적인 처우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자백을 강요받은 경우가 다수였고, 자백을 받아내기 위한 조사방식의 하나로 구타 등 고문이 가해졌다. 한편, 구금시설에서 구타행위를 금지하거나 신문과정에서 인권 침해 여부를 조사하는 경우도 있었다는 증언이 수집됐으나 구타 행위는 크게 줄지 않았다.

또한 북한에서 공개처형을 목격했다는 증언은 2020년까지 매년 수집됐다. 이는 처형을 당하는 사람과 이를 목격하는 사람 모두에게 비인도적인 처우라고 할 수 있다. 대체로 공개처형은 운동장과 같은 많은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는 장소에서 총살의 방식으로 실시됐고, 여기에 학교, 기업소, 인민반 등을 통해 아동을 포함한 주민들이 집단 동원됐다.

게다가 실험대상자의 동의 없이 실시된 북한당국에 의한 생체실험에 대한 증언들도 수집됐다.

지나친 노동부과

북한에서는 형 집행시설인 교화소나 노동단련대에서 수감자에게 부과되는 노동이 지나치게 과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감자가 아프더라도 계획량에는 변화가 없으며 할당량을 완수하지 못했을 때는 폭행이나 처벌이 있거나 면회를 제한하고 면식을 먹지 못하게 한다.

대기실, 여행자·비법월경자 집결소 등 임시수용시설에서도 강제노동에 수시로 동원된다. 특히 강제송환되어 거주지 이송과정 중 비법월경자 집결소에서의 노동력 동원은 상시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휴일없이 기상 시간부터 해가 질 때까지 노동해야 했다는 진술이 많았다.

또, 일반주민들도 인민반·직장·학교 등 사회조직을 통해 지역의 건설현장이나 농촌 동원 등에 강제적으로 동원되고 있다. ‘여맹돌 격대’, ‘대학생 돌격대’, ‘가족돌격대’ 등으로 불리우며 각종 건설현장 등에 동원되고 있는데, 이는 ‘시민으로서 통상적인 의무를 구성하는 작업’을 넘어서는 것으로 보인다.

체포, 구금 빈번… 여성 구금자 성폭력 빈번

북한에서는 자의적·불법적 체포·구금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정치적 의견표명, 종교행위 등 자유권규약에서 보장하는 권리를 정당하게 행사한 행위에 대해서 체포·구금하거나 영장을 제시하지 않는 등 북한 형사소송법상의 절차를 위반하여 체포·구금하고 있다.

체포 당시 체포 이유와 피의 사실을 통고받지 못했으며, 구속된 후에 구속 사유와 장소를 가족에게 통보해주지 않았다. 또한 구속된 상태에서 수사를 받는 경우가 다수였고, 법정 최대 구금 기간을 초과하여 구금된 사례도 있었다. 또한, 종교행위, 체제비판, 인신매매 등의 다양한 사유로 북한 당국에 의해 체포된 후 행방을 알 수 없는 경우인 강제실종 사례들도 지속적으로 수집되고 있다.

북한 내 형 집행시설의 구금환경은 매우 열악한 것으로 보인다. 구금공간은 대체로 매우 비좁으며 한 공간에 수용되는 인원이 비교적 적은 곳이라 해도 대부분 유엔 최저 기준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불이나 장판이 충분히 제공되지 않기도 하다. 제공되는 식사의 양과 질도 낮은 편으로 외부에서 들여오는 면식 없이는 건강을 유지하기 힘들며, 영양부족으로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물과 세면용품도 부족해 구금기간 중 제대로 씻지 못하여 빈대, 머릿니 등 해충도 있었으며 청결상태가 좋지 않아 시설 내 악취가 심했다는 진술도 많았다.

또한 수감 중 환자가 발생하더라도 적극적인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특히 피구금자에 대 한 가혹행위가 문제가 되는데, 수용실 안에서 고정자세를 취해야 하고 움직일 수 없었다는 것이 공통된 진술이었다. 수감자가 자백을 하지 않거나, 대답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고문과 같은 굴욕적이고 잔혹한 대우를 받는다.

면회와 서신은 제한되며 미결수와 기결수, 미성년자와 성년의 분리수용도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여성 피구금자의 경우, 소지품 검사를 위해 나체검사가 시행되고 있으며, 여성의 질 내부까지 직접 확인하는 체강검사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나체·체강검사 시 위생적이지 않은 환경에서 여러 명을 동시에 실시하며, 남성 계호원이 자궁검사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성폭력도 빈번하며, 강제낙태나 임산부에 대한 구류구속 금지와 형벌집행 정지 등이 지켜지지 않았다.

여행증

북한에서는 원칙적으로 여행증 없이는 자신의 거주지가 아닌 시·도 지역으로 이동할 수 없으며, 여행증을 발급받는데 걸리는 기간이 길고 절차도 복잡하다. 이로 인해 발급기간을 단축하고자 뇌물을 주고 여행증을 발급받거나 여행증 없이 이동을 시도하고 있다.

북한주민은 여행지에 도착한 이후에도 그곳에 숙박하려면 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승인받지 않은 숙박자는 숙박검열의 단속 대상이 되는데, 단속될 경우 뇌물을 주고 처벌을 무마하는 경우가 많았다. 북한주민은 거주지를 이전하고자 할 때에도 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북한에서는 정치적 사유·남한정보 접촉·마약 밀매 등을 이유로 강제이주 조치도 시행되고 있다. 강제이주는 현재 거주지의 이용허가를 취소·박탈하고, 강제이주 지역에 주거를 새롭게 배정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가족 전체가 함께 이주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북한주민은 출국의 자유도 제한받는다. 여권과 같은 출입국증명서 발급을 엄격하게 제한하면서 이를 소지하지 않고 국경을 이동한 경우에는 국경비법출입죄를 적용해 처벌하고 있다. 강제송환된 경우 처벌결과는 다양하게 나타났는데, 중국 체류기간이 매우 짧아 뇌물을 제공하거나 처벌 없이 풀려난 경우도 있었지만, 중국 체류기간이 긴 경우에는 노동교화형까지 선고받은 경우도 있었다.

공정한 재판 없어

북한에서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 행정기관도 징역형의 성격을 갖는 노동교양처벌을 부과할 수 있으며, 반국가·반민족 범죄행위를 한 경우에는 법원에 의한 재판 없이 정치범수용소에 수용될 수 있다.

북한에서는 법원의 독립성도 인정되지 않고 있다. ‘모든 국가기관은 조선노동당의 영도 밑에 활동이 진행된다’는 북한 사회주의헌법에 따라 사법부는 실질적으로 조선노동당의 통제를 받고 있다.

또한, 북한에서는 공개재판 제도가 주민교양을 위한 선전도구로 이용되고 있다. 특별히 본보기를 위해서 수백 명 앞에서 현지공개재판이 실시된 경우도 있었다. 피의자를 대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서 자신의 범죄를 인정하도록 강요하는 공개폭로모임 등이 행해지고 있다는 증언들도 있었다.

변호권, 진술거부권, 상소권 등 피고인의 권리도 충분히 보장되고 있지 않았다. 특히, 변호인이 선임되더라도 변호인접견권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거나, 변호인이 재판에서 피고인을 범죄자 취급하고 재판에서 아무런 변론을 하지 않는 등 실질적인 변호를 하지 않았다는 증언이 다수 수집되었다.

감시 통제

북한 주민들은 어려서부터 당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사회조직에 소속되어 광범위한 감시와 통제를 받는다. 거주지 단위의 인민반 제도는 주민을 감시하는 가장 하부조직이며, 인민 반장을 비롯하여 당국의 지시를 받은 통보원, 정보원들이 주민들의 생활과 사상동향, 외부 방문자 감시 등을 수행하는데, 탈북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나 그의 가족들은 더욱 엄격한 감시대상이 된다.

주민들은 학교, 직장, 군대, 인민반, 여맹을 비롯하여 해외에 거주하는 노동자나 유학생까지도 소속된 조직에서 주 1회 생활총화에 참여해야 하는데 각자의 업무와 공사생활을 반성하고 상호 비판하며 불참 시 비판의 대상이 된다.

외부정보 접촉, 밀수품·전자제품 단속 등을 위해 가택수색도 시행되고 있다. 또한 청년들을 대상으로 불순녹 화물이 있는지 여부를 단속하기 위해 길거리나 대학 등에서 수시로 휴대전화 검열을 하며, 주민들의 통화를 감청하는 경우도 있다.

북한은 사회주의헌법에서 ‘김일성-김정일주의를 유일한 지도적 지침으로 삼는다’고 규정하고 있어 김일성-김정일주의가 지도사 상임을 밝히고 있다. 사상교육은 유년기부터 음악, 미술, 체육활동의 형태로 시작되어 소학교부터 전 교과과정에서 이루어지며 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군대, 직장 등 조직생활을 통해 학습회, 강연회의 형식으로 계속되고 인민반을 통해 일상생활에서도 지속된다.

각급 기관·기업소·학교 등에는 김일성·김정일 혁명사 상연구실이, 각 시·도에는 혁명사적관과 김일성·김정일 동상이 설치되어 있어 수령에 대한 충성심을 보일 것을 강요받는다. 모든 가정에는 김일성·김정일의 초상화가 걸려있어야 하고, 주민들은 겉옷에 이들의 초상휘장을 부착하고 다녀야 한다.

종교의 자유는 명문상 규정으로만 존재할 뿐 실제로는 보장되지 않는다. 북한 당국의 지속적인 종교탄압 정책으로 북한주민 대부분이 종교를 접해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학교나 조직생활에서 반종교 교육을 실시하고 성경 소지나 선교 활동을 이유로 공개처형하거나 정치범수용소로 보냈다는 증언들도 수집되고 있다.

미신행위도 비사회주의적 행위로 규정하고 단속·처벌하고 있다. 예전에는 미신행위로 형사처벌을 받는 경우가 거의 없었지만, 2018년 이후에는 단속과 처벌이 강화되면서 노동교화형을 받거나 처형되는 경우도 있었다.

북한 주민들은 당국의 감시나 검열에 의해 자유로운 의견표명을 제한받고 있다. 당국의 지시에 따라 언론·출판 내용이 정해지고 있으며, 반동적인 사상과 문화, 생활풍조를 퍼트릴 수 있는 출판물은 회수한다고 법에 규정되어 있다.

특히 최고지도자나 북한 정치체제에 대해 비난하는 ‘말반 동’을 이유로 체포되어 행방불명되거나 정치범수용소에 수용되는 등 구체적인 처벌을 받는 것을 목격했거나 전해 들었다는 사례가 수집되고 있다.

외부정보 차단

또한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북한 주민들이 외부정보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많아지면서 당국의 감시와 통제도 더욱 강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외부정보는 주로 유학생, 해외노동자, 장사꾼 등을 통해 북한으로 유입되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데, 많은 주민들이 외부정보를 접촉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북한은 109연합지휘부라는 특별 전담조직을 구성하여 가택수색, 길거리 불시검문 등으로 주민 들의 외부정보 접촉을 단속하고 있으며, 2017년 이후 한국 드라마, 영화 등이 널리 유포되면서 외부정보 접촉 및 유포뿐만 아니라, 외부정보로부터 영향 받을 수 있는 옷차림, 생활방식 등까지 단속대상을 확대하고 있다. 예전에는 외부정보로 단속될 경우, 비교적 적은 금액의 뇌물을 주고 무마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점점 필요한 뇌물의 액수가 늘어났다. 최근에는 공개비판을 받거나 노동 교화형 등 처벌받은 사례도 다수 수집되고 있다.

특히 북한은 2020년에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하여 외부정보 접촉·보관·유포에 대해 노동교화형 10년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한국 드라마, 영화, 음악을 접촉·보관·유포한 경우에는 더욱 강하게 처벌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제 동원

북한 주민들은 학생, 노동자, 농민, 군인, 주부 등 신분과 관계없이 관제집회나 군중행사에 1년에 수차례 강제 동원되고 있으며, 당국의 행사 외에는 집회의 자유를 향유하지 못하고 있다. 주민들은 김일성 사망일, 북한정권수립일, 노동당 창건일 등 당국의 행사와 각종 궐기대회에 집단적으로 동원되고 있으며, 동원에 불참하면 당에 대한 충성심에 문제가 있다고 보아 비판받기 때문에 대부분 불참하는 경우가 없다고 한다.

학생들은 집단체조에 동원되는데 늦은 시간까지 오랜시간 동안 연습에 참여해야 하며, 불참 시 비용을 납부해야 한다.

또한 북한주민들에게는 조직생활이 강제되고 있는데, 소학교 2학년부터 소년단을 시작으로 청년동맹, 직맹, 여맹 등 당국이 허용하는 조직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며 남성은 60세, 여성은 55세까지 지속된다고 한다. 조직의 가입과 해제의 과정은 자동으로 이루어지며, 개인의사에 따른 탈퇴는 불가능하다.

선거는 의무… 반대투표는 불가

북한 주민이 선거로 선출할 수 있는 대표는 최고인민회의와 도·시·군 인민회의 대의원이다. 선거는 불참할 수 없으며, 실제 주민들은 선거에 불참하거나 반대투표 할 경우 처벌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또 선거를 주민의 권리가 아닌 의무로 인식하고 있었다.

투표용지에 아무런 표식 없이 그대로 투표함에 넣어 찬성투표 한다는 것이 일관된 진술이었으며, 반대투표 방법을 모르거나 반대투표한 경우를 들어본 경우도 없다는 진술이 대부분이었다.

성분으로 분류

북한은 ‘성분’ 또는 ‘토대’를 기준으로 모든 주민들을 분류하는데, 이는 주민들의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는 기준이 되고 있으며 대학진학, 노동당 입당, 직업선택 등 주민의 권리를 결정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평양시와 지방, 도시와 농촌 등 거주지가 성분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보이며, 평양시 안에서도 중심구역과 주변구역으로 구분하여 거주지에 따른 차별이 존재한다. 대학입학에서도 성분이 중요하며 직장배치, 이직, 직종변경, 승진에도 성분에 따른 차별이 있으며, 뇌물, 인맥 등을 통해 이직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북한이탈주민 가족을 비롯하여 국군포로·이산가족·재일교포 귀국자·중국 연고자 등이 받는 차별은 더욱 큰 것으로 파악됐다. <계속>

http://gnpnews.org/archives/135708

북한 정치범 수용소… 공개처형, 비밀처형 계속

북한 정치범 수용소… 공개처형, 비밀처형 계속

4. 특별사안

수용소 운영

북한에서 중대한 정치적 잘못을 저지른 사람 중 처형되지 않는 경우 정치범을 수용하는 곳을 북한 주민들은 ‘관리소’라고 부른다. 정치범수용소는 총 11곳이며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는 시설은 5곳으로 파악됐다.

북한 정치범수용소는 일반 주민들의 접근이 어려운 깊은 산악지역에 있어 수용민의 도주가 쉽지 않았다. 수용소에 수용된 후 사면되지 않은 사람은 ‘이주민’이라고 하고, 사면된 이주민은 ‘해제민’으로 구분된다. 해제민은 수용소 밖으로 외출이 가능하고 공민증이 발급되는 등 일반주민과 같은 생활이 가능하지만, 공민증의 주소지에 ‘관리소’라는 명칭이 기재되는 등 일반주민과 구분되고 있다.

정치범수용소의 구역은 완전통제구역과 혁명화구역으로 나뉜다. 완전통제구역은 이주민이 거주하는 구역으로 수용소 내에서도 기관원 이외는 접근이 불가능한 곳이다. 혁명화구역은 수용소 내에 존재하는 혁명화 처벌 이행장소로 혁명적 의식을 고취하는 징벌이 이뤄지며 처벌 기간은 1~3년까지다. 처벌 결정은 국가보위성에서 한다.

현재 운영되는 것으로 보이는 정치범수용소는 평안남도 개천시 14호, 18호 함경북도 화성군 16호, 청진시 25호, 함경남도 요덕군 15호 등이다. 이들 수용소 중 14, 15, 16, 18호는 마을 형태의 교화소다. 마을 형태의 교화소에서는 가족을 동반 수용하는 곳으로 거주지, 농장이나 공장 등 일터, 병원과 학교, 노동교양대 등 일반민 거주 지역에서 설치된 시설이 있었다. 교화소 형태의 수용소는 25호로 수용소 안에 숙소와 작업장 등이 설치되어 있으며 수감자 관리를 교화소와 유사하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수용소의 규모

정치범수용소는 일반 주민의 접근이 어려운 산악지역에 위치한다. 수용소 규모는 여러 개의 ‘리’나 ‘노동자구’를 합친 크기다. 21호 수용소는 수용소 마을 구역에서 작업장인 광산구까지 걸어서 2시간 이상 걸리며, 함경북도 길주군, 양강도 운흥군, 함경남도 허천군 등 3개 군을 경계로 하는 매우 넓은 지역으로 노동자구 1개보다 더 큰 크기였다. 수용소 입구부터 기관원 사택이 있는 곳까지 7개의 초소가 있었고 도보로 이동은 불가능한 거리였다.

수용사유

정치범수용소에 수용된 경우는 ‘정치범’ 당사자와 그 가족이다. ‘정치범’으로 수용되는 이유는 성분 문제, 말반동 등 김일성, 김정일 권위 훼손과 관련된 문제, 간첩행위, 종교활동, 북한 내 권력다툼이나 기관원의 횡령 등 비위와 관련된 문제, 가족이 탈북하여 한국에 거주하거나 본인의 한국행 시도, 인신매매나 한국거주자 통화 등 한국 관련 문제 등이었다.

정치범수용소 수용 사례로는 일제시기 자산계급이었거나, 전쟁 시기 국군을 조력했거나, 유일사상체계에 대한 중앙방송의 보도가 시끄럽다며 스피커를 뜯거나, 3대 세습을 비판하며 지도자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거나, 술자리에서 김일성 정권에 대해 비난하거나, 초상화 관리를 제대로 못하거나 낙서한 경우, 북송된 제일교포의 가족이 북한 체제에 대한 비판적인 발언을 하는 경우였다. 중국을 오가며 장사를 하다가 중국전화기를 사용하고 한국 사람과 거래를 하는 경우에도 간첩행위로 수용된 사례도 있었다. 북한 내에서 종교 활동을 하면서 이웃에게 기독교 선교활동을 하거나 성경책을 가지고 있을 경우 수용된 사례도 있었다.

90년대 후반 이후 북한의 경제난 등으로 탈북하는 주민들이 증가하면서 한국행을 시도하다가 북한에서 체포되어 수용되거나, 탈북해 한국에 거주하는 가족으로부터 경제적 도움을 받은 것이 한국행 시도로 처리되어 수용되는 사례도 있었다. 북한의 정치 상황 때문에 토대와 출신성분이 수용 사유가 된 정치범의 수용절차는 법적 절차를 지키지 않고 수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반역행위로 수용된 사람은 화물차에 살림도구를 대강 싣고, 어린 자녀도 함께 데려 갔다는 진술도 있었다.

수용자 처우

정치범수용소 내 수용자 처우를 알 수 있는 내부 생활에 대한 진술은 일부 수용소에서만 수집되었는데, 수용 시설, 사면 여부 등에 따라 처우가 다른 것으로 파악됐다.

처형과 강제노동

정치범수용소 내에서 공개처형이나 비밀처형이 이뤄지고 있었는데 대부분의 처형자들은 수용소를 탈출하다가 체포된 경우다. 수용소 내에서 이주민 남녀가 금지된 자유연애를 한 경우 총살되었다는 진술이 있었다. 수용소 내 비공개 처형에 대한 내용은 추측하는 진술만 있었는데 인적이 드문 곳에서 저녁시간대에 총성이 울리면 수용민들은 처형이 있었던 것으로 여겼으며 시신은 수용소 내의 골짜기 등에 처리한다는 진술이 있었다.

수용소의 주민인 이주민과 해제민은 광산에 배치되어 강도 높은 노동을 해야 했는데 폐쇄된 수용소의 대부분은 광산지역으로 이주민은 대개 광산에 배치되었다고 했다. 이주민과 해제민의 90% 이상이 중학교 졸업 후 탄광에 배치되었는데 갱 안에서 굴파는 일을 하는 ‘굴진공’은 이주민이 맡았고, 발파를 하거나 갱이 아닌 지상 업무는 해제민이 되어야 가능했다는 진술이 있었다. 탄광은 3교대로 운영되었고, 갱 안에 들어간 노동자는 10시간 가까이 나올 수 없었다.

주거 및 생활환경

이주민의 거주 주택은 나무로 틀을 짜고 그 위에 흙을 덧발라 만든 집으로 비만 오면 무너지는 경우가 많았다. 21호의 이주민 거주 주택은 땅을 어느 정도 판 상태에서 나무와 짚, 흙 등을 이용하여 만든 움막집의 형태였으며 출입구가 좁아 허리를 많이 숙인 상태로 드나들어야 했다.

일부 수용소에서는 가족의 동거가 가능하더라도 서로 만나지 못하도록 일하는 시간을 달리한다는 진술과 남녀가 교제를 하거나 결혼을 하는 것은 금지되어 모범수에 대한 포상의 형태인 ‘표창결혼’만 가능하다는 진술이 있었다. 하지만 수용소 내에서 결혼도 가능했는데 이주민은 이주민과 해제민은 해제민과 결혼을 해야 한다. 이주민과 해제민이 결혼하면 결혼등록은 가능하지만, 이주민과 결혼한 해제민은 다시 이주민으로 된다.

2000년대 초 15호의 혁명화구역에서 수용자는 일 년에 한두 번 물엿, 매 끼니마다 콩기름, 명절에는 돼지고기와 계란을 약간 지급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영양실조로 인한 사망자가 1년에 6~7명 정도 발생했으며, 병원에는 환자에게 식사로 쌀, 강냉이밥, 콩기름을 넣은 나물절임, 시래깃국을 제공하였다는 진술이 있었다.

보건의료와 교육

대부분의 수용소에는 병원이 설치되어 있는데, 병원에서는 이주민과 기관원에 대한 진료에서 차별이 있었으며, 기관원과 그 가족이 주로 이용하고 있었다. 의약품은 매달 한 번씩 공급되었는데, 공급되는 약 중에는 유엔에서 지원한 약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약은 항상 부족한 상황이어서 소독약을 10% 소금물을 만들어서 사용하였고, 완전통제구역 내에서 만들어 가져오는 링거(포도당, 증류수)는 부작용이 많았다고 한다.

마을 형태 수용소 내부에는 대부분 학교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일부 수용소에서는 이주민의 자녀와 기관원의 자녀가 다니는 학교가 달랐으며, 교육내용도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기관원 자녀와 해제민 자녀는 같은 학교를 다닐 수 있었지만, 사회적 차별 때문에 기관원의 자녀와 같은 학교를 다니지 않으려 했다는 진술이 있었다. 이주민과 달리 해제민은 실력에 따라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가능했으며, 수용소는 시군단위와 동급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시군단위 일반지역에 배당되는 대학추천인원과 동일한 인원을 할당받는다는 진술도 있었다.

국군포로·납북자·이산가족

북한은 사회주의헌법 제65조에서 누구나 다 같은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주민을 3대 계층으로 나누고 있다. 특히 국군포로나 이산가족과 같은 소위 남한 출신은 본인은 물론 가족까지 복잡한 계층에 해당되며, 일상생활에서 차별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군포로

북한에서 국군포로로 거주하고 있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국군포로가 주로 거주하는 것으로 파악된 지역은 함경남·북도, 양강도, 황해남도 등이었는데, 주로 산간과 농촌의 탄광·광산과 협동농장이 많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국군포로들은 탄광이나 광산과 같은 곳에 배치되는데 일이 힘들다고 알려져 주민들이 배치받는 것을 기피하는 직장이었으며, ‘굴진공’이나 ‘채탄공’처럼 막장 안으로 들어가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다수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국군포로와 그 가족들은 상급학교 진학, 직장 배치, 승진, 입당, 군입대 등 모든 면에서 차별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군포로의 자녀는 직장배치에서도 차별이 있었는데, 아버지의 직업을 대물림받는 경우가 많아 탄광이나 농장에서 일해야 한다.

납북자

납북자는 북한에 의해 강제로 납북되어 북한에 억류 또는 거주하게 된 사람으로 대략 1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전쟁당시 인민군 부대의 보충인력의 의용군으로 참여했던 경우 남한출신, 차별의 대상, 한국 전쟁 참여 경험 등의 공통점 때문에 국군포로와의 구별이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전후납북자는 공중 납치된 민간 항공기에 탑승했던 승객, 휴가 중이던 청소년과 시민, 군인, 해안경비대원, 해외에서 납치된 국민 등이 있으나, 대다수는 동해안 및 서해안에서 어업활동을 하다가 나포된 어업종사자들이었다.

이산가족

‘남북 이산가족’이란 이산의 사유와 경위를 불문하고, 현재 군사분계선 이남지역과 군사분계선 이북지역으로 흩어져 있는 8촌 이내의 친척, 인척 및 배우자 또는 배우자였던 자를 말한다.

월남자 가족

인민군으로 전쟁에 참여하였던 월남자의 가족은 입당은 가능하였지만, ‘당일꾼’, ‘법일꾼(안전원, 보위원)’등이 될 수 없었다는 진술이 있었다. 군제대 후 입당을 한 상태에서 보위원이 되기 위해 ‘보위대학’ 입학 추천을 받을 예정이었으나, 인민군으로 참전한 큰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은 이유가 해명되지 않아 추천이 무산되었다고 한다. 일반 주민으로 전쟁 시 월남한 사람의 가족은 입당이나 당일꾼, 법일꾼으로 일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월북자와 그 가족

월북자와 가족도 특정 대학 입학, ‘당일꾼’, 군관련 직장에서 근무 등이 어려웠던 것으로 파악되었으며, 월북자는 한국에서 거주하다가 한국 전쟁 중 북한으로 들어간 경우, 해방 전 중국에서 북한에 간 사람으로 한국에 가족이나 친인척이 있는 경우, 한국전쟁 이후 자진하여 월북한 경우이다. 부모님이 한국전쟁 당시 월북하였다는 이유로 자녀가 김일성종합대학 추천을 받고 시험을 치러 합격하였지만 입학이 거부되었다는 사례가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월북한 사람과 그 가족들이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통해 한국의 가족을 만난 사례가 있었는데, 월북자가 한국의 형제를 상봉한 경우와 월북자의 자녀가 한국의 친척을 만난 경우였다. 그런데 한국 가족 상봉으로 전에는 없었던 감시와 차별이 있어 남쪽의 친척을 원망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버지가 월북한 이후 소식을 모르던 한국의 고모를 상봉행사를 통해 만나고 난 뒤, 군부대 전기발전소에서 해임되었다는 진술과 시어머니가 상봉행사를 통해 한국의 가족을 만나고 난 뒤, 자녀들까지 거주지 보위부에서 지속적으로 감시하였다는 진술이 있었다. <끝> [복음기도신문]

http://gnpnews.org/archives/137025

보스턴, 대규모 사탄콘서트 개최, 매진

[ 보스턴, 대규모 사탄콘서트 개최, 매진 ]

Satanic Temple :
17개 나라에 지부가 세워져 있고
동성애 및 LGBTQ를 적극 지지하며
Satan Club이라는 에프터 스쿨 프로그램을 만들고
낙태 합법을 위해 각 주와 미 연방에 로비하고 있습니다.

미국교사전국노조, occult연합회, magician연합회 등
사탄숭배자들과 함께 동성애와 낙태 등의 로비를 합니다.

미국의 2004년 동성결혼 헌법 재개정 실패 이후
교사노조와 사탄 숭배자들이 함께
친동성애적인 교과서 수정 작업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한국도 차별금지법을 반드시 막아야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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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스턴, 사탄콘 ] 4월 28일~30일
보스턴의 사탄사원에서 10주년 기념으로
역사상 가장 최대의 사탄축제를 개최합니다.

사탄사원은 홈페이지를 통해 “보스턴 시내에서 마녀들의 밤을 주제로 한 사탄콘이 열릴것”이라며 참석자들은 사탄과 관련된 강의와 엔터테이먼트 등 다양한 행사를 즐길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세워진 이 나라를 사탄교도들이 기도한 그대로 문화나 낙태, 동성애등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무너뜨려 왔습니다.

최근에는 학교에서 기독교 방과후 프로그램 ‘굿뉴스클럽’에 대항해 ‘사탄클럽’이라는 방과후 프로그램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과학적 합리주의 세계관을 주입하여 기독교 세계관을 무너뜨리는 목적으로 하여 우리의 다음세대들이 바른 기독교 세계관을 가지지 못하도록 여러 방면으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미국땅이 하나님 말씀으로 회복되어 어두움의 세력이 무너져 사탄교도들의 활동이 무산되어지고, 오직 주님의 영으로 미국땅이 회복되어 거룩한 나라로 끝까지 주님께서 이 땅을 사용하시도록 함께 한 영으로 기도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관련 내용과 기도요청 글을 퍼왔습니다)

中외교부장, 尹대통령 대만발언 언급 후 “불장난하면 스스로 타 죽어”…한·중간 거친 공방 “말참견 하지마” vs “외교적 결례“

中외교부장, 尹대통령 대만발언 언급 후 “불장난하면 스스로 타 죽어”

친강 중국 외교부장이 무력에 의한 대만해협 현상변경에 반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최근 발언을 소개하며 “대만 문제에서 불장난을 하면 반드시 스스로 불에 타 죽는다[玩火者,必自焚]”고 경고했다. 이러한 거친 표현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1·2022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과 통화에서 미국을 겨냥해 썼던 것이다. 중국이 대만 등 자국의 민감한 문제에서 미국과 보조를 맞추는 한국에 강한 불만을 드러내며 압박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친강은 21일 한 포럼의 연설에서 최근 ‘무력이나 협박으로 대만 해협 현상을 일방적으로 바꾸려 시도한다’ 등의 언급을 접했다면서 “이런 발언은 최소한의 국제 상식과 역사 정의에도 위배되며, 그 논리는 황당하고 결과는 위험할 것”이라고 했다. 직접적으로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윤 대통령을 겨냥해 비판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친강은 이어 “(대만 관련해서) 우리는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며 “대만 문제에서 불장난을 하는 자는 반드시 스스로 불에 타 죽을 것”이라고 했다. 이날 친강의 발언은 지난 2021년 11월 시진핑이 바이든과의 첫 정상회담에서 했던 말과 일치하다. 당시 시진핑은 “미국 일각에서 대만으로 중국을 제압하려 하기 때문에 긴장이 고조되는 것”이라며 “이런 추세는 매우 위험하고, 불장난을 하다 타 죽을 것”이라고 했다. 시진핑은 지난해 7월 낸시 펠로시 당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을 앞두고 바이든과 통화했을 때도 “불장난”이란 표현을 썼다.

중국은 지난 20일 왕원빈 외교부 대변인 브리핑에서는 윤 대통령의 발언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타인의 말참견[置喙]을 불허[不容]한다”고 비판했다. 해외 정상의 발언에 대해 외교적으로 결례가 되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왕원빈은 또 “북한과 한국은 모두 유엔에 가입한 주권 국가로, 한반도 문제와 대만 문제는 성격과 경위가 완전히 달라 서로 비교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라고 했다. 중국이 대만을 자국 영토의 일부로 보는 입장을 강조하며 한국 헌법과 남북 관계의 특수성을 부정한 것으로 풀이될 수 있는 발언이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중국의 국격을 의심케 하는 심각한 외교적 결례”라며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 대사를 초치해 항의했다.

윤 대통령이 방미를 앞둔 상황에서 중국이 미국·일본과 대만 문제에서 보조를 맞추는 한국에 대해 불만을 표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외교 소식통은 “우리 외교부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여전히 존중한다고 밝혔는데도 중국은 지나치게 반응하고 있다”면서 “미국과 협력을 강화하는 한국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고 있는 것”고 했다.

중국은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국이 미국의 대중 압박에 적극 동참하게 될 가능성 또한 우려하고 있다. 특히 미중 경쟁의 핵심 분야인 반도체에서 한국이 대중 디커플링에 동참할지 여부를 주시할 전망이다.윤 대통령의 최근 대만 관련 발언이 ‘대만해협 평화 안정’ 요구에서 더 나아가 중국의 무력 통일 시도를 명확히 반대하는 메시지로 바뀌었다는 분석도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9일 게재된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대만 해협 긴장 상황에 대해 “이런 긴장은 무력으로 현상을 바꾸려는 시도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며 “우리는 국제사회와 함께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결연히 반대한다”고 했다.

베이징=이벌찬 특파원 bee@chosun.com

尹 대만문제 언급에 한·중간 거친 공방 “말참견 하지마” vs “외교적 결례“

19일 윤석열 대통령이 대만 문제에서 현상태(status quo)의 힘에 의한 변경을 반대한단 입장이 로이터통신에 보도된 것을 두고 한국과 중국 사이에 외교적 공방이 일어났다.

먼저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0일 정례 브리핑에서 “세계에는 오직 하나의 중국만 있으며, 대만은 중국 영토의 불가분의 일부”라며 “대만 문제는 순전히 중국의 내정이며, 중국의 핵심 이익 중에서도 핵심”이라 주장했다.

그는 특히 “대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중국인 자신의 일”이라면서 “타인의 말참견을 허용하지 않는다”라고까지 했다.

‘말참견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표현은 지난 2월 중국 외교부 마오닝 대변인이 사용했던 ‘부용치훼(不容置喙)’와 동일한 말이다. 당시 박진 외교부 장관이 CNN과의 인터뷰에서 대만 해협에서 충돌이 빚어지더라도 한반도 안정을 유지해야 한다라고 언급하자 이에 대한 반박으로 나온 사자성어였다.

‘부용치훼’는 청(淸)대 작가 포송령의 작품에 등장하는 표현으로, 상대방의 간섭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말로 풀이되고 있다.

중국 정부가 타국 정상에게 이 표현을 사용한 것은 무척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온다.

이에 한국 외교부는 “입에 담을 수 없는 발언”이라 반발하며 “중국의 국격을 의심케 하는 심각한 외교적 결례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라 비판했다.

통상 한중관계를 고려해 강경한 의미의 단어를 잘 사용하지 않는 한국 정부가 예외적인 태도를 보여줬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장호진 외교부 1차관은 이날 저녁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를 초치해 강력히 항의했다.

장 차관은 싱 대사에게 왕 대변인의 발언이 외교적 결례라 지적했으며, 한중관계 발전에 이번 사건이 지장이 되지 않도록 중국 측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외교가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일국의 외교부 대변인이 상대국 정상에게 거친 언사를 사용한 것은 외교적으로 용납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상호존중과 호혜를 늘 강조해왔던 중국의 기본 원칙에도 어긋난다는 점 때문에 강력하게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윤 대통령이 대만 문제를 남북한 문제와 동급으로 빗댄 것에 대해서도 반발했다.

윤 대통령은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대만 문제는 북한 문제처럼 중국과 대만 둘만의 문제가 아닌 국제적 문제”라고 했었다.

왕 대변인은 이에 대해 “북한과 한국은 모두 유엔에 가입한 주권 국가로, 한반도 문제와 대만 문제는 성질과 경위가 완전히 달라 서로 비교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라면서 “한국 측이 중한 수교 공동성명의 정신을 제대로 준수하고 ‘하나의 중국’ 원칙을 엄수하며 대만 문제를 신중하게 처리하길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사실상 남북한을 아예 다른 별개의 나라로 간주하고 있는데, 윤 대통령이 인터뷰에서 자신들이 보기에 엄연히 다른 문제를 동일하게 본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하나의 중국’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한국 측의 입장은 지난 19일 한국 외교부 당국자의 설명에서 드러난다. 당시 이 당국자는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은 우리는 물론 지역·글로벌 평화·번영에 중요한 만큼 이러한 맥락에서 언급한 것”이라면서 “정부는 하나의 중국 존중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라고 밝혔었다.

다시 말해 북핵 문제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닌 전 세계의 문제가 됐듯이 양안 문제도 자칫 세계 대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중국과 대만만의 문제가 아니란 인식을 드러낸 것일 뿐이라는 게 한국 정부의 입장이다.

박준규 기자 pjk7000@pennmike.com

출처 : 펜앤드마이크(http://www.pennmike.com)

http://www.pennmike.com/news/articleView.html?idxno=62815

中 친강 외교부장, “대만문제 불장난하면 타죽어” 尹 발언 겨냥, 극언

집단 환각파티 남성 60명, 모두 에이즈 감염자…이들 직업보니

집단 환각파티 남성 60명, 모두 에이즈 감염자…이들 직업보니

집단 환각 파티를 벌인 남성 60명이 경찰에 검거될 당시 모두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에 감염된 상태였다는 보도가 나왔다.

20일 KNN에 따르면 경찰에 붙잡힌 마약사범 60명은 호텔이나 클럽에서 집단으로 필로폰을 투약했다. 경찰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필로폰을 특정 장소에 놔두면 이후 찾아가는 이른바 ‘던지기’ 수법을 이용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KNN은 부산경찰청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이들은 모두 남성이며, 에이즈 감염자였다”면서 “국내에서 사용되지 않는 외국 전용 앱을 통해 만남을 가져 검거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전했다.

마약 사범 중에는 코레일 직원과 사회복무요원, 학원 강사 등이 포함됐다고 한다. 필로폰 제조 기술자 A씨(30대)도 있었다. A씨는 2021년부터 지난해 5월까지 모텔 등지에서 감기약 성분을 이용해 필로폰을 만들어 유통시킨 인물로 알려졌다.

집단 환각파티 남성 60명 검거… 모두 에이즈 감염자

코레일 직원, 학원강사, 사회복무요원 등 검거

환각파티 60명 검거, 모두 에이즈 감염

마약, 불법촬영, 성매매로 얼룩진 한국의 클럽문화 – BBC News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