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A “김일성 본명은 김성주, 학창시절에 두 차례 살인”…“개명 뒤 항일장군 둔갑”…김일성의 실체

CIA “김일성 본명은 김성주, 학창시절에 두 차례 살인”

미국 중앙정보국(CIA) 기밀 해제 문서에서 북한 김일성 주석의 과거 행적들이 공개됐다. 학창시절에 두 차례에 걸쳐 살인을 저지르고 리리싼의 신임을 얻어 중국 공산당원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았다.

기밀 해제된 문건 중 1949년 작성된 CIA 문서는 김일성의 정체에 의혹을 제기하며 실제로는 김성주라는 인물이라고 전제하고 있다. 문서에 따르면 김성주라는 인물은 14세에 부모를 따라 중국 만주로 이주했다. 중국 한 고등학교에 재학하던 김성주는 급우의 돈을 훔치다 발각돼 도주하던 중 해당 급우를 살해했다.

도주해 중국 내 다른 지역에 정착한 김성주는 소련으로 가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돈이 필요해지자 최씨 성을 가진 한 남성을 하얼빈에서 살해했다고 한다. 김성주는 18세에 중국 공산당의 초기 지도자인 리리싼을 만나 중국공산당 청년 조직원으로 가입했다. 그 후 리리싼의 신임을 얻어 중국 공산당원이 됐다.

CIA는 1919년에 항일운동을 펼쳤던 김일성이라는 이름의 장군이 실존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일성 장군은 어느 순간 사라졌고, 리리싼이 1931년 10월 김성주의 이름을 김일성으로 바꿨다고 설명했다. 그 후부터 김성주는 김일성이라는 이름으로 백두산 일대의 게릴라군 사령관으로 활동하게 됐다.

공산주의를 전파하며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행동을 일삼았던 김일성의 모습은 리리싼을 만족시켰다. 이에 김일성은 군 고위직으로 진급을 거듭했고 소련 연방의 스탈린도 김일성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됐다. CIA는 이 문서에서 김일성이 영특하지도 않고,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했지만 스탈린에게 높은 신임을 얻을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이후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하면서 스탈린과 김성주는 한반도의 공산화에 황금기를 맞게 됐다고 덧붙였다.

해당 문서는 1949년 9월 CIA가 작성해 같은 해 12월 비밀문서로 미 국무부와 육·해·공군에 보고됐다. 이 문서의 비밀해제가 이뤄진 시점은 2011년이다. 김일성 주석이 실제로는 김성주라는 의혹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제기돼 왔으나 CIA 문서를 통해 공식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1951년 작성된 CIA의 또 다른 ‘김일성 배경 정보’ 문서에 따르면 김일성은 1947년부터 1950년 5월까지 평양 남산동의 한 주택을 공식 거처로 삼았다. 김일성은 이곳에서 5명의 요리사를 비롯해 20명을 하인으로 뒀다.

김일성은 주로 육류를 선호했고, 생선류와 채소는 거의 먹지 않았다. 또 닭고기와 함께 요리된 개고기를 가장 좋아했으며 매일 아침과 저녁 식사로 이 메뉴를 요구했다.

1947~1950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을 한 김일성 주석의 건강 상태는 매우 좋았다. 흡연은 적당히 했고, 와인을 선호했지만 음주량은 많지 않았다. 취침은 밤 10시, 기상은 새벽 4시였다는 자세한 일상까지 기록돼 있다.

이 문서는 김일성의 취미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했다. 테니스를 열정적으로 했고 종종 승마를 즐기기도 했으며, 운동 삼아 나무를 격파하거나 사격에도 능한 인물이라고 묘사했다. 또 1년에 2~3번 정도는 평양 만경대 인근 지역 식당에서 기생들과 파티를 즐기기도 했다.

또 다른 CIA 문서는 김일성이 한국전쟁 발발 이후 가족과 정부 관계자들을 평양에서 탈출시켰고 거주지와 사무실 내의 모든 문서를 불로 태웠다고 전했다. 이어 김일성이 1951년 6월6일 신원이 알려지지 않은 북한군 장교에게 암살을 당할 뻔했다고도 했다. 공격받은 김일성은 오른쪽 폐에 부상을 입었고 평양의 중앙인민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박세원 기자 sewonpark@kmib.co.kr

CIA “김일성은 김성주… 개명 뒤 항일장군 둔갑”

북한 김일성 주석의 과거 행적이 담긴 미 중앙정보국(CIA)의 기밀해제 문서들이 최근 확인됐다고 미국의소리(VOA) 방송이 7일(현지시간) 전했다. CIA는 1949년 작성된 ‘김일성의 정체’라는 제목의 문서에서 당시 북한 지도자로 활동하는 김일성 주석이 실제로는 김성주라는 인물이라고 판단하고, 김성주가 김일성이 되기까지의 행적을 자세히 기록했다.

김성주는 14세 때 부모를 따라 중국 만주로 이주한 후 중국의 한 고등학교에 다녔고, 친구의 돈을 훔치다 발각됐다. 이 사실이 알려질 게 두려워 도주하던 중 친구를 살해했다. 18세 때 중국 공산당의 초기 지도자인 리리싼(李立三)을 만난 김성주는 중국 공산당원이 됐다. 1931년 10월 리리싼은 김성주의 이름을 김일성으로 바꿨고, 이후 김성주는 김일성이라는 이름으로 백두산 일대의 게릴라군 사령관으로 활동했다. CIA는 1919년 실제 항일운동을 펼쳤던 ‘김일성 장군’이 존재했지만, 어느 순간 사라졌고 그 자리를 김일성으로 개명한 김성주가 차지했다고 밝혔다.

김성주의 활약에 만족한 리리싼은 김성주를 고위직으로 승진시켰고, 김성주에 대한 소문은 소련의 스탈린에게 들어가게 됐다. CIA는 이 문서에서 김성주가 영특하지는 않았지만, 스탈린에게 높은 신임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이후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하면서 스탈린과 김성주는 한반도 공산화를 이루게 됐다고 덧붙였다.

VOA는 이 문서가 1949년 9월 CIA에서 작성된 것이며, 그해 12월 미 국무부와 군부에 보고됐다고 전했다. 이 문서의 기밀해제가 이뤄진 시점은 2011년이다.

또 다른 CIA 문서에는 김일성 주석이 1951년 6월 6일 신원이 알려지지 않은 북한군 장교에게 암살당할 뻔한 사실도 기록되어 있다. 당시 김일성 주석은 오른쪽 폐를 다쳤고, 평양 중앙인민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또 문서에는 ‘김 주석의 흡연량은 적당했고, 와인을 선호했지만, 음주량은 많지 않았다’, ‘취침은 오후 10시, 기상은 새벽 4시였다’ 등 세세한 개인적 일상에 대한 정보까지 담겼다. CIA는 김 주석을 테니스와 승마를 즐겼으며, 운동 삼아 나무를 격파했고 사격에도 능한 인물로 묘사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美 CIA 기밀해제 문서에 김일성 살인 일화·암살기도로 부상” VOA

김일성(김성주) 약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