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의 공영 라디오 방송국(National Public Radio)이 임신 11주차에 낙태 수술을 받는 임산부의 음성을 방송하자 이를 들은 일반 미국인들은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이에 대해 CBN 뉴스에 실린 타라 샌더 리 박사(샬럿 로지에 연구소의 생명과학 이사)의 기고문을 번역, 소개한다. <편집자>
라디오를 통해 미국 전역으로 가정용 진공청소기의 10~20배 흡입력을 지닌 전기 진공 흡입기가 작동하는 소리가 전해졌다. 몇 분 뒤, “못할 거 같아요.”라고 외치는 여성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가 엄마의 자궁에서 분리되었다. 간호사는 아기가 자궁에서 사라지자 “해냈어요!”라고 외친다.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국(NPR)은 단 한 번도 무고한 태아를 죽이는 –이러한 사악한 성격의- 행동에 대해 중단하거나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또한 공영 라디오 방송국은 임신 11주차의 아기의 상태를 “과학적으로 바라보지” 않으며, 낙태 후유증과 일반적인 합병증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공영 라디오 방송국과 낙태 찬성론자들이 그러한 극악무도한 행위를 정당화하는 한 가지 방법은 자신과 대중에게 태아가 실제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시키는 것이다. 이는 과학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무지를 주장하며 태아가 단순히 “조직 덩어리”이거나 공영 라디오 방송국이 말하는 것처럼 “임신 조직”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 과학은 진실을 무시하기에는 너무나 발전했다.
오늘날 현대 과학은 그 어느 때보다 여성의 몸 안에서 성장하는 태아가 인간임을 보여준다. 1970년대 초음파상의 흐릿한 흑백 점이 선명하고 뚜렷한 3D 및 4D 이미지로 대체되어 임신의 모든 단계에서 태아의 발달을 놀랍도록 자세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이러한 발전으로 인해 거의 매일 우리는 최첨단 의료가 인명 구조 수술 기술을 활용하여 자궁 내에서 태어나지 않은 아기를 치료하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이때 태아는 어머니와 다른 별개의 환자로 취급된다.
의학 전문지인 메드페이지투데이(MedPage Today)는 최근 익명의 소아과 의사가 쓴 기사를 게재했다. 그는 “태아의 인간성에 대한 비대립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 “… 태아를 보살핌이 필요한 존엄성을 가진 대상으로 대할 때 아기가 모태에 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의 위치가 우리의 가치를 결정하는가? 태아에 대한 정교한 치료는 자궁 내 위치가 인간으로서의 우리의 가치를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지 오웰이 말한 사회에서처럼, 낙태 클리닉이 고출력 흡인기를 사용하여 태아의 고동치는 심장을 고의로 멈추는 비인간적인 행동이 과학적인 사실을 왜곡하고 무시하며 정당화된다. 낙태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태아는 더 이상 엄마와 분리된 “아기”가 아니다. 이들의 뻔뻔스러운 생명 경시는 역겹기까지 하다.
이제 과학적으로 밝혀진 태아의 인간성에 관한 사실을 검토할 때이다.
공영 라디오 방송국이 낙태 생방송 중 ‘임신 조직’이라고 표현한 것은 사실 11주 된 아기로 손가락과 발가락, 눈꺼풀과 코가 완전히 형성되어 있고, 손가락을 빨 때 오른손이나 왼손 중 선호하는 손을 선택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한 때이다. 11주차의 아기는 이미 해부학적으로 4,000개의 구별된 신체 부위를 갖추거나 혹은 성인 신체 부분의 90%를 갖추었다.
낙태 수술을 불과 몇 초 앞둔 11주가 된 아기는 살아 있었고 활동적이었다. 사실, 과학자들은 11주가 된 태아도 뇌 활동을 하고 한 번에 13분 이상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낙태되기 전 아기는 심장이 뛰었다. 11주가 되면 태아의 심장은 분당 168회의 심장 박동수로 리드미컬하게 뛰고 이미 900만 번 이상 뛰었을 것이라고 과학은 말한다. 낙태 시술자가 태아의 생명을 끊지 않았다면 이 심장은 태어나기 전에 4,500만 번 더 뛰었고 성인이 되어서도 30억 번 이상 더 뛰었을 수 있으며 평생 동안 지속적으로 인체 전체에 혈액을 공급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과학은 말한다.
다시 한번, 공영 라디오 방송국과 주류 언론은 과학이 모든 태아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밝히는 것과 우리가 본능적으로 사실이라고 알고 있는 것을 부인하고 모호하게 만든다.
크리스천 퍼스펙티브
태아는 임신조직이 아니다. 시편 기자는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시 139:13)라고 고백하고 있다. 하나님은 태아가 자궁에서 수정될 때부터 그를 지으시고 그를 향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 로 대 웨이드 판결이 취소되면서 낙태합법에 제동이 걸린 미국에 생명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깨닫게 하셔서 낙태를 범하는 죄에서 돌이킬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부안에서만 허락하신 성을 왜곡시키고 타락시킨 죄에서 돌이켜 회개할 수 있도록 기도하자. 또한 영혼들에게 큰 영향력을 끼치는 미국의 공영 방송이 낙태를 부추기는 죄를 회개하고, 영혼들을 올바로 섬기는 매체로 회복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자.
평생아카데미(대표 백금산 목사) 2022년 2학기 온라인 강좌 ‘현대 문화와 성혁명’ 세 번째 강의가 공개됐다.
현대 문화와 성혁명의 사상적 배경 세 번째 강좌로, 백금산 목사가 ‘마르크스와 정치적-경제적 인간’을 주제로 강의했다. 백금산 목사는 칼 트루먼의 <신좌파의 성혁명과 성정치화>, 이를 요약한 <이상한 신세계>에서 풀이한 마르크스에 대해 정리했다.
백금산 목사는 “마르크스는 다윈·니체·프로이트와 더불어 20세기 사상을 만든 원조로 불리는데, 모두 전투적 무신론자로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과 목적에 따라 인간의 보편적 본성을 갖도록 만드셨음을 철저히 거부한다”며 “우리가 사는 시대를 잘 이해하는 일이 복잡해 보이지만, 이 네 사람의 사상만 잘 이해해도 어느 정도 충분하다”고 취지를 밝혔다.
백 목사는 “칼 트루먼은 성혁명의 사상적 배경을 크게 세 가지로 본다. 1단계는 ‘자아의 심리화’로, 앞에서 살폈던 데카르트부터 루소 등 낭만주의자들이 시작한 것”이라며 “니체와 다윈, 오늘 살펴볼 마르크스 등은 이 ‘자아의 심리화’를 강화시킨 사상가들이다. 이들은 인간 본성의 고정불변성을 부정하고, 사회적·환경적 요건에 의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주장했다”고 운을 뗐다.
이후 그는 마르크스의 사상이 인간의 본성에 대한 차원을 넘어 현대 사회와 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광범위한 관점에서 분석했다. 이를 위해 먼저 그의 삶과 주요 저서를 훑었다.
백금산 목사에 따르면 독일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난 칼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 1818-1883)의 아버지는 유태인으로서 오랜 기간 랍비 집안이었지만 직업을 갖기 위해 개신교인으로 개종한 인물이었다. 그는 17세에 아버지를 따라 변호사가 되기 위해 본 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적응하지 못하자 그의 아버지는 다윈이 그랬듯 헤겔과 슐라이어마허가 가르쳤던 베를린 대학교로 전학을 보내 법학을 공부시킨다.
마르크스는 종교에 비판적인 ‘헤겔 좌파’로 활동하다 23세 때 예나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는다. 당시 프로이센이 헤겔 좌파를 경계해 교수가 되지 못하자 라인 신문에 투고하다 편집장이 되고, 사회 문제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그러나 정부 탄압으로 신문사가 폐간당하자 4세 연상의 귀족 집안 딸 예니와 7년여 연애를 끝내고 25세에 결혼 후 파리로 망명을 떠난다.
대도시 파리에서 그는 사회주의·공산주의 사상에 눈을 뜬다. 이와 함께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보게 된다. 여기서 공산주의자 마르크스가 탄생한다. 26세 때 <헤겔 법철학 비판 서문>, <유태인 문제에 대하여>, <경제 철학 수고> 등을 통해 헤겔 좌파 대신 공산주의를 설파한다. 사회주의자 엥겔스를 만나 의기투합하고 평생 동지가 된다. 방적공장 사장 아들 엥겔스는 그때부터 평생 마르크스의 생활비를 책임지게 된다.
혁명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는 파리에서도 추방당해 1845년 2월 벨기에 브뤼셀로 거처를 옮겨 연구를 이어간다. 엥겔스와 함께 <독일 이데올로기>에 이어 30세가 되던 1848년, 역사적인 <공산당 선언>을 공동 집필한다. 25-30세 사이 공산주의 혁명가로서 기본적 사상이 모두 정립된 것이다.
브뤼셀에서도 추방당한 혁명가는 독일 남서부를 전전하다 파리를 오간다. 그러는 사이 프랑스와 프로이센의 혁명은 모두 실패하고, 1849년 8월 영국 런던으로 또 다시 망명해 34년을 무국적자로 남는다. 가난한 망명자로서 그는 런던 박물관 열람실에서 많은 자료들을 검토하며 대표작인 3권 2,800여 쪽에 이르는 <자본론> 집필에 남은 생애를 바친다.
백금산 목사는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사상을 현실에서 실현하기 위해, 레닌이 1917년 러시아에서 혁명을 일으킨 것이다. 러시아는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이 됐고, 70여 년 만인 1991년 멸망했다”며 “마르크스의 영향력이란, 그의 사후 100년 동안 전 세계의 절반이 그의 사상을 실험하는 국가가 됐다는 데서 알 수 있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마르크스는 거의 신성시됐지만, 이들과 대결했던 자유주의 국가에서는 거의 악마의 화신이었다”고 말했다.
백 목사는 “마르크스는 책을 쓰기 전에 다른 사람들의 책을 읽고 요약했다. 이 요약 노트만 32권 분량에 달하고, 해설도 들어가 있어 어마어마한 전집 분량이 나온다. 문제는 마르크스의 저작이 이렇듯 너무 많고, 철학부터 경제학과 사회학 등 다양한 학문에 걸쳐 있어 한 사람이 공부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라며 “그러나 그만큼 많은 연구가 이뤄졌기에, 그의 사상이 복잡하지만 어느 정도 요점 파악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마르크스의 사상은 3가지 원천과 3가지 요소가 있다. 이런 마르크스의 사상을 정리한 사람이 바로 레닌으로, 공산주의를 ‘마르크스-레닌주의’라 부르기도 한다. 마르크스의 전문가이자 계승자 레닌은 ‘마르크스주의의 세 원천과 세 구성 요소’라는 글에서 마르크스주의의 기본 학설에 대해 “독일 철학과 영국 정치경제학, 그리고 프랑스 사회주의를 계승했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3가지 원천인 것.
이와 함께 3가지 요소는 독일 헤겔 철학과 영국 정치경제학, 프랑스 사회주의를 각각 비판하면서 자기만의 철학과 경제학, 사회주의 사상을 형성한 것이다. 그의 사상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자본주의는 반드시 멸망하고 사회주의·공산주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라고 한다. 이런 생각을 가지는 것이 역사 철학이고, 그래서 그는 기본적으로 혁명가였던 것이다.
백금산 목사는 “자본주의 사회를 무너뜨리고 공산주의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한평생 불태웠던 사람이 마르크스였다. 이런 생각을 갖게 된 배경이 바로 유물론”이라며 “마르크스의 유물론을 ‘변증법적 유물론’이라 하고, 이를 역사에 적용한 것을 ‘역사적 유물론’이라고 한다. 다른 말로는 유물론적 역사관, 유물사관”이라고 소개했다.
백 목사는 “변증법적 유물론이란, 자연이든 사회든 인간의 생각이든 고정불변한 건 없다는 것이다. 항상 변화하고 운동한다는 사상이 바로 변증법인데, 마르크스는 여기에 유물론을 가미했다”며 “헤겔의 변증법이 우주 정신으로 자기를 전개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관념적이었다면, 마르크스는 역사 발전의 원동력을 ‘물질의 생산력’으로 봤다”고 했다.
경제 문제가 사회 변화의 핵심이자 토대라는 것. 그는 “쉬운 말로, 먹고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법과 정치, 종교와 철학 등 나머지 모두는 이 먹고 사는 경제 문제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다는 것”이라며 “이 경제 문제는 생산력, 그리고 이것이 발전되면 생산 수단을 가진 사람과 가지지 못한 사람으로 나눠진다는 생산 관계 등 두 가지로 구분된다”고 밝혔다.
마르스크에 의하면 모든 것들이 경제의 영향을 받아 움직인다. 그러므로 역사 전체를 원시 공산주의에서 고대 노예제, 중세 봉건주의, 그가 살았던 자본주의, 그리고 다가올 공산주의 사회 등 5단계로 구분했다.
‘인간론’도 마르크스 사상에서 중요하다. 그는 “마르크스에게 인간은 노동하는 존재였다. 사회에서 생산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본주의에서는 노동이 소외되는 것이 문제라고 주장했다”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을 해서 만든 상품들을 자본가가 모두 가져가는 ‘노동 생산물로부터의 소외’, 노동자는 고용됐기에 억지로 노동한다는 ‘노동 생산 과정으로부터의 소외’, 이 모든 것들로 인해 일어나는 ‘인간 본질로부터의 소외’ 등이 마르크스 인간론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마르크스는 노동의 소외가 생기는 이유를 사유재산과 분업 때문으로 봤다. 이에 자본주의 멸망 후 들어설 공산주의 사회는 생산 수단을 국유화해 분업을 없애고, 생산물은 사유화 대신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또 마르크스 경제 이론의 핵심은 노동가치설과 잉여가치설, 착취설 등 3가지이다. 모든 생산물의 가치가 자본력과 기술혁신, 시장의 수요와 공급 등이 아닌 오직 노동으로 발생한다는 것이 노동가치설이고, 노동으로 만든 가치를 자본가가 모두 빼앗아간다는 것이 잉여가치설과 착취설이다.
백 목사는 “노동자들만이 만들 수 있는 가치와 이윤 창출을 대부분 자본가들이 빼앗아 부자가 되고, 그 돈을 재투자해 더 부자가 되면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생겨난다고 마르크스는 생각했다”며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가난해지기 때문에 결국 혁명을 일으키고 자본주의는 망하게 된다는 것이 그의 이론”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잘 분석하고 비판했지만, 이후 도래할 공산주의 사회에 대해선 거의 말하지 않았다”며 “마르크스의 사회 이론은 두 가지다. 한 마디로 공산주의는 지상낙원이고, 혁명의 주체는 프롤레타리아, 노동자들이다. 혁명의 방법은 폭력으로 국가 정권을 탈취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백 목사는 “공산주의자들의 강령 선언은 프롤레타리아들이 주체가 되어 모든 사회질서를 폭력적으로 전복해서 전 세계를 공산주의 사회로 만드는 것”이라며 “그것이 나중에 레닌과 마오쩌둥, 김일성이 한 일이었다. 이는 한두 나라만 해서는 아무 의미가 없고, 전 세계를 공산화시켜야 한다. 그래서 <공산당 선언>의 마지막 문장이 ‘만국의 프롤레타리아들이여, 단결하라!’인 것”이라고 했다.
백금산 목사는 “마르크스의 복잡한 사상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노동자 계급이 단결해서 자본주의 계급을 타파하고 정권을 쟁취해 자본주의 사회를 반드시 무너뜨려, 이 세상을 공산주의 사회로 만드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생산수단의 사유화를 폐지시키고 생산수단의 국유화를 통해 착취 없는 노동을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실현하면 지상낙원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상상했다”고 정리했다.
백 목사는 “공산주의는 기독교와 참 비슷한 부분이 많다. 일종의 유사 정치 종교여서, 기독교적 요소를 상당히 많이 갖고 있다”며 “기독교의 핵심이 무엇인가? 이 세상 나라는 망하고 하나님 나라가 반드시 온다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망하고 공산주의가 반드시 온다는 공산주의와 외형이 비슷하다. 그러므로 공산주의 운동은 지상 천국을 만들려는 가짜 하나님 나라 운동이다. 그런 의미에서 반기독교·반그리스도·적그리스도적”이라고 진단했다.
또 “칼 트루먼은 두 권의 책에서 마르크스를 이해하려면 반드시 헤겔부터 시작해야 하고, 마르크스가 변증법적 사상으로 인간의 고정불변한 본성이 없고 종교를 심각하게 비판했다는 두 가지 점을 강조했다”며 “칼 트루먼은 인간 본성이 고정불변하지 않다는 주장의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고자 했고, 저는 그뿐 아니라 20세기를 송두리째 바꿔놓은 인물이기에 더 넓게 훑어본 것”이라고 덧붙였다.
백금산 목사는 현대 문화와 성혁명의 배경을 탐구하는 차원에서 지난 두 차례 ‘데카르트와 루소, 계몽주의와 낭만주의: 이성적-감정적 인간’, ‘다윈과 진화적-생물학적 인간’ 등을 주제로 강의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