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문화주의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팀 디에프(Tim Dieppe) 영국 크리스찬 컨선 공공정책팀장
○ ‘다문화주의’란 무엇인가?
우리는 용어의 의미를 정확히 정의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다문화주의’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가?
‘다문화’와 ‘다문화주의’라는 단어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존재한다.
‘다문화적인’ (multicultural)이라는 형용사를 ‘다문화주의’라는 이데올로기 용어로 바꾸는 것은 ‘이즘'(~ism)이라는 접미어가 붙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공산주의, 자본주의, 세속주의, 인종차별주의, 성차별주의 (sexism), 민족주의, 마르크스주의, 국가주의 (statism), 페미니즘, 보수주의, 자유주의, 다윈주의, 운명론주의(fatalism), 세계교회주의 (ecumenism), 채식주의의 용어를 생각해보자. 이들은 모두 ‘다문화주의’와 마찬가지로 이데올로기, 즉 이념이다. ‘다문화주의자’ (multiculturalist)는 다문화주의의 이데올로기를 옹호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다문화주의의 이데올로기는 모든 문화가 동등하다는 생각에 기반을 두고 있다.
어느 문화도 다른 문화보다 우월하지 않다는 의미이다.
모든 문화는 공평한 존경을 받을 자격이 있으며 국가가 후원하는 정책으로서 여러 문화권의 사람들이 공유된 가치나 관습없이 서로 조화롭게 살기를 기대하는 정책을 말한다.
다문화주의자들은 모든 문화가 평등하다고 믿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다른 문화권에서 온 사람들이 특정 가치, 윤리, 관습 또는 관행을 요구받는 것은 부도덕하거나 심지어 인종차별적이라고 믿는다. 그 대신 그들은 우리가 그들이 자신의 관습에 따라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그들이 얼마나 이질적이거나 심지어 사회에 상충되는 행동을 하더라도 모든 것들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국 크리스챤 컨선(Christian Concern) 공공정책팀장팀 디에프(Tim Dieppe)는 「문화적 상대주의」를 비판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인류에게 주어진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도덕적 가치>에 대한 근거를 제시한다. 다문화주의는 도덕적으로 문화의 내부적 질서를 개혁하려는 시도 혹은 선교활동에 정면으로 반대한다. 결국 문화적 상대주의, 즉 다문화주의는 반기독교적이다.”
○ 다문화주의의 정치적 실패
다문화주의의 의미는 정치인들이 최근 어떻게 이 용어를 사용했는지를 확인해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다문화주의의 정치적 실패를 공개적으로 인정한 최초의 주요 국가 지도자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였다. 2010년 10월 주요 국가의 상황’이라는 연설에서 그녀는 다음과 같은 말했다.
“물론 ‘다문화 개념을 채택하고 더불어 행복하게 살자’고 말하는 사회적 외침은 서로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줄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 개념은 실패했습니다. 그것도 완전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1]
메르켈은 기립 박수를 받았고 언론에서는 말하기 어려운 진실에 용기 있게 발언한 것에 대해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다른 지도자들이 그녀의 뒤를 따르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영국의 총리 데이비드 캐머론은 2011년 2월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가 다문화주의의 교리 아래, 우리는 우리들의 주류문화를 제외하고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을 보장하기 위해 다른 문화를 장려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소속되고 싶다고 느끼는 사회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데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심지어 이러한 분리된 공동체가 우리의 가치에 반하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을 용인 했습니다. 그래서 영국인들이 인종차별과 같은 불쾌한 견해를 가지고 있을 때 가차 없이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그러나 똑같이 용납할 수 없는 견해나 관행이 영국인이 아닌 사람으로부터 들어왔을 때, 우리는 너무 조심하기만 했고 솔직히 두려워서 그들에게 맞서게 될까봐 전전긍긍했습니다.
일부 어린 소녀들이 괴롭힘을 당하고 때로는 해외로 강제로 데려가 원하지 않는 사람과 혼인 당하는 강제 결혼의 공포에 맞서지 못했던 것이 대표적입니다.
진실을 외면해버린 ‘관용’이라는 단어는 특별한 조치가 필요할 수 있다는 주장을 반복할 때만 사용될 뿐이었습니다.” [2]
그로부터 며칠 후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다문화주의를 ‘실패’했다고 규정하며 “진실은 우리의 모든 민주주의 국가에서 새로운 「도착자」들의 정체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으며, 그들을 받는 국가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충분히 우려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3]
이처럼 유력 정치인들이 다민족성 (multi-ethnicity) 자체를 비판하지는 않았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은 다른 문화, 관습, 가치를 환영하고 그들 모두를 동등하게 대하자는 아이디어로서 다문화주의의 이데올로기를 이해했다. 그러나 다문화주의 이데올로기가 응집력 있는 정체성을 가지지 못한 채 사회를 파편화시켰을 뿐임을 이제 거론하기 시작한 것이다.
문화란 무엇인가?
한 걸음 물러서서 문화가 무엇인지 살펴보자. 인류학자들은 문화를 사회적 집단이 기능하고 영속할 수 있는 공동의 가치관과 행동 규칙’으로 정의한다.[4]
이것은 문화라는 단어의 정의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만, 문화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이해는 보다. 넓고 심화된 정의에 기반해야 한다.
첫째, 인간은 피할 수 없이 종교적이다 (로마서 1장 25절: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우리 모두는 우리의 가치와 자존감을 지키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행동의 가치와 규범도 당연히 종교적인 속성을 갖는다. 문화의 가치와 규범의 근원적 존재양태는 사실상 ‘문화라는 이름의 신’이다.
이로 인해 문화는 문화 자신에게 종교적인 권위를 부여한다.
따라서 모든 문화권은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종교적인 속성을 배제하고서는 성립되지 않는다. 이슬람 문화는 이슬람 종교의 문화적 표현이다.
인본주의 문화는 또 다른 종교적 세계관인 인본주의의 문화적 표현이다. 모든 문화는 반드시 그 사회의 종교적 특성을 그 종교와 함께 공유한다.
따라서 헨리 반틸은 문화를 “외부화”라는 표현으로 느슨하게 정의하기도 했다. [5]
둘째, 문화는 가치와 행동 규범 이상을 의미한다. 문화는 각종 예술, 건물, 인프라, 문학, 의류, 식품, 기술, 산업 및 기타 많은 분야를 아우른다.
기독교의 관점에서 볼 때 문화는 인간이 창조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신학적으로 창세기 1장 28절 말씀은 종종 ‘문화적 명령’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인류는 “지구를 채우고 정복하라”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았다. 이것은 창조 이후 인간들이 문화를 만들어낸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면서 하나님께 찬양을 올리는 사회 질서나 문화를 창조하도록 인간에게 위임하셨다.
문화를 정의하는 가장 짧은 문장은 “우리가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6]
문화 만들기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모든 형태의 작업이 문화 형성에 이바지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는데, 문화와 관련된 모든 행동들은 피할 수 없이 종교적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하든지 어떤 형태로든 우상숭배를 하든지를 막론하고 한 사회는 종교적 성취와 신의 인도를 추구하는 신성한 ‘대용품’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 중립 문화? 그런 것 없음!
문화에 대한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이해의 바탕에는 중립적인 문화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모든 문화권은 대체할 수 있는 중립적 가치보다 자기들의 것이 더 우월하다는 대체 불가능한 개성 (내지는 자존감)을 갖는다.
그러나 다문화주의자들은 그렇지 않다. 다문화주의가 우수한 형태의 사회를 만든다고 믿기 때문에 문화의 차이라는 개념을 인정하지 않는다. 어떤 문화도 종교적이든 내용으로는 완전히 중립적일 수는 없는데도 말이다.
모든 문화권은 훼손되어서는 안 되는 궁극적이고 핵심적인 미덕을 가지고 있다. 영국 사회의 대표적인 미덕은 ‘관용’ (tolerance)이다.
관용이라는 미덕이 사회 유지에 도움이 된다고 확신하고 있다. ‘관용’의 원래 의미는 우리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행태를 받아들이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다른 이들의 행태를 비판하지 않는 것으로 탈바꿈되었기 때문에 혼란이 일어나게 되었다.
관용이란 모든 것을 허락해주자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새로운 차원의 정의가 실제로 의미하는 것은 사회의 지배적인 미덕, 즉 ‘관용’을 비판하는 사람은 편협한 사람으로 간주되므로 관용이라는 기본적인 약속에 대해 사실상 배신자로 취급받게 된다는 것이다.
즉 이런 사회는 ‘관용’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불관용’으로 간주되는 행동에 대해 절대 ‘관용’을 베풀지 않는다!
현재 허용되고 있는 성윤리, 즉 동성애에 대해 비판이라도 한마디 하려하면 이 나라 영국에서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법원의 조치가 시작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7]
결국 다문화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문화권은 불관용하는 행태를 일삼는다고 낙인찍히고 말 것이다.
이처럼 문화는 본질적으로 편협성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부도덕한 일부 행동을 ‘예단’ (pre-judge) 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화 자체의 종교적 속성은 종교적 다원주의, 또는 국가가 지원하는 다신론 등 다문화주의의 또 다른 형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다문화주의자는 사회가 선호하는 종교나 세계관이 특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다문화주의가 선호하는 세계관 자체가 본질적으로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종교가 다르면 그것이 드러내는 세계관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서로 다른 가치와 윤리가 충돌을 피할 길이 없어진다.
도덕적 합의 또는 종교적 이해의 기반이 없는 사회는 서로 다른 가치를 따르는 완전히 구분된 하위문화 덩어리들로 인해 붕괴되거나 파편화되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이 현상은 이미 영국 사회 (영토)가 종교 등 특정 집단, 특히 이슬람이 지배하는 영토와 아닌 영토들로 갈가리 찢기고 있는 현상으로 확인되는데, 엘함 마네아 교수는 현재의 상황을 ‘다수의 단일 문화주의’라는 한마디 표현으로 정리했다. [8]
문화적 상대주의
다문화주의의 핵심 사상은 모든 문화가 동등하고 합당하다고 보는 데서 시작된다.
이것은 사람들의 행동이 이질적인 문화적 기준에 상반되느냐가 아니라 자신의 문화에 따라 판단되어야한다고 믿는 “문화적 상대주의”로 곧장 연결된다.
그리스도인의 관점에서 우리는 모든 문화가 동등하다는 주장을 인정할 수 없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독교 문화는 인간의 성(性)이나 다른 우상을 미화하는 문화보다 분명히 월등하다.
굳이 이러한 점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모든 문화가 평등하다고 말하는 것은 평등을 조롱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모든 문화는 다른 문화와 충돌할 수 있는 특정 가치와 윤리적 규범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각 문화들이 모두 평등하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대한민국 국가인권위원회가 정의한 문화상대주의
언론의 자유를 소중히 여기는 문화는 그렇지 않은 문화와 평등한가?
여성의 권리를 소중히 여기는 문화는 그렇지 않은 문화와 동일한가?
난교와 동성애를 조장하는 문화는 그렇지 않은 문화와 동등한가?
노예제도, 인종차별, 일부다처제, 여성할례 등은 어떤가?
이 모든 것은 문화적 관행이며, 분명히 밝히지만 결코 동등하지 않다.
다른 말로 이것은 모든 문화를 판단할 수 있는 절대적인 도덕성의 근원이 존재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즉 현대 사회가 거부하려는 진리, 바로 그것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절대적인 도덕적 근원의 존재는 문화적 상대주의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문화적 상대주의 추종자는 이러한 문화 간의 충돌마저도 상대적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공공연한 비밀인 현대판 노예제도관행을 비판하거나 반대하지 않으려할 것이다.
이것은 도덕적으로 설득력이 빈약하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성경에서 드러난 도덕적 율법의 신성한 기원을 받아들이고 이에 따라 다양한 문화적 관행을 비판할 합법적이고 절대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우리에게는 세상 문화를 비판하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율법과 도덕적 질서를 선포할 도덕적 의무가 주어졌다.
이것은 아모스 1장에 드러난 바와 같이 예언자들이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주변 국가들에게도 이미 행했던 일이다.
윌리엄 캐리는 인도의 사티 (Sati)의 문화 안에 뿌리를 내린 종교적 관습에 대해 담대하게 비판하고 반대운동을 펼쳤는데, 이 운동은 남편의 장례식에서 미망인을 불태우는 관습에 관한 것이었다.
그의 반대 운동은 이 관행을 끝내 금지하는 조치를 이끌어냈다.[9]
그러나 문화적 상대주의 추종자는 이런 일을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문화적 상대주의는 ‘혁명가의 딜레마’라는 표현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10]
문화적 상대주의가 실제라면 사람의 행동은 그들이 나고 자란 문화 환경에 따라 평가될 수 있다. 그렇다면 해당 문화의 관행을 바꾸려는 것은 가장 큰 범죄가 되어버리고 만다.
문화적 변화는 다문화주의자에 의해 부도덕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화 상대주의자는 간디, 마틴 루터 킹 주니어, 윌리엄 윌버포스, 윌리엄 캐리 등 많은 사람들을 향해 비난의 화살을 쏘아야 한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절대적인 도덕의 근원을 받아들인다면 그들의 행동은 도덕적인 것으로 얼마든지 인정받을 수 있게 된다.
○ 다문화주의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다문화주의는 근본적으로 기독교에 반대하는 이데올로기이다. 그것은 절대적인 도덕의 근원을 받아들일 수 없으며, 따라서 창조주 하나님의 실재를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한다.
다문화주의는 선교 활동을 제한하고 도덕적으로 문화를 부도덕하게 만들기 위한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이는 명백한 불의를 만들고 다른 문화에서 온 사람들에게 낮은 도덕적 기준에 머물게 한다는 점에서 사회에 해악을 끼친다.
주류 문화를 내세우는 순간 인종 차별이라는 공격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모두를 위한 하나의 법’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을 훼손시킨다.
국가가 후원하는 다문화주의는 종교적 다원주의 또는 다신교를 지지하는 국가 등의 형태로 귀결된다.
결국 다문화주의로 시작된 법적 제도적 조치들은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고 끝내 국가사회 자체가 붕괴하거나 심각한 분열로 이어지게 만들 것이다.
다문화주의에 맞서 기독교인들은 이제 저항해야 한다.
실제로 영국에서 기독교에 대한 국민들의 충성이 약화된 결과 이러한 일이 발생한 것 또한 사실이다.
바울이 쓴 것처럼 우리의 임무는 “하나님의 지식에 반하는 논쟁과 모든 허세를 철거하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10장 5절). 다문화주의는 기독교에 반대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에 맞서 싸워야 한다. 이 논문은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다문화주의에 맞서 싸우기 위한 논점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우리는 바울과 마찬가지로 모든 문화권 (사도행전 17장)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라는 부름을 받았다.
이것은 문화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 대해 책임을 지시는 절대적이며 도덕적인 율법의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선포를 의미한다.
사람들에게 다문화주의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절대적이고 의로우신 도덕적 기준에 따라 현대 문화를 객관적으로 개선하도록 촉구하기 위해 우리의 핵심 도구인 진리를 선포하는데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1]https://www.theguardian.com/world/2010/oct/17/angela-merkel-germany-multiculturalism-failures
Angela Merkel declares death of German multiculturalism
German chancellor’s remarks, which claimed multiculturalism had ‘failed utterly’, interpreted as a shift rightwards from her previous views
[2]https://www.newstatesman.com/blogs/the-staggers/2011/02/terrorism-islam-ideology
Full transcript | David Cameron | Speech on radicalisation and Islamic extremism | Munich | 5 February 2011
From the Downing Street website:Today, I want to focus my remarks on terrorism.But first, let me address one point.Some have suggested that by holding a Strategic Defence and Security Review, Britain is somehow retreating from an activist role in the world.This is the complete reversal of the truth….
[3]https://www.reuters.com/article/us-france-sarkozy-multiculturalism-idUSTRE71A4UP20110211
Sarkozy joins allies burying multiculturalism
French President Nicolas Sarkozy has declared multiculturalism a failure, echoing British Prime Minister David Cameron and German Chancellor Angela Merkel and confusing some French who say it was never tried here anyway.
[4]Zee, 샤리아선택? 다문화주의, 이슬람 근본주의 및 샤리아 협의회 (헤이그, 네덜란드 국제 출판, 2016), 5.
[5]반 틸, 문화의 캘빈 개념 (그랜드 래피즈, 미시간: 베이커 출판 그룹, 2001), 200.
[6]앤디 크라우치, 문화 만들기: 우리의 창조적인 부름을 회복하자 (인터바시티 프레스, 2013), 23.
[7]예를 들어 성경의 성적 윤리를 지원하기 위해 자신의 대학 과정안에서 싸워나간 펠릭스 응골레의 경우, 또는 아이들이 어머니와 아버지와 함께할 때 가장 잘 자라다는 믿음을 표현했다는 이유로 치안/고용재판소로부터 기독교 신념의 검열을 받는 재판에 회부된 리처드 페이지의 경우.
[8]마네아, 여성 및 샤리아 법: 영국의 법적 다원주의의 영향 (런던: I.B. 타우리스, 2016), 171.
[9]http://www.christiantoday.co.in/article/wiliam.carey.played.significant.role. . in.abolishing.sati.system/4906.htm
[10] 모어랜드, 킹덤 트라이앵글 (그랜드래피즈, 미시간: 존더반, 2007), 101.
[출처]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의 문제점은 무엇인가?|작성자 GMW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