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한미훈련 연기를”… “국정원, 김여정 하명기관 전락”…한·미 연합훈련, 타협할 수 없는 동맹의 근간

박지원 “한미훈련 연기를”… 野 “국정원, 김여정 하명기관 전락”

朴, 김여정 ‘중단 압박’ 이틀만에 언급

野 “발언 철회하고 국민에 사과해야”

이낙연 “여러 상황 감안” 연기론 가세

박지원 국가정보원장(가운데)이 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본관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전체회의 시작 전 관련 자료들을 살펴보고 있다. 이날 박 원장은 한미 연합훈련 연기 필요성을 주장했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3일 이달 둘째 주로 예정된 한미 연합훈련을 연기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1일 ‘한미 연합훈련을 하면 남북 관계 개선도 없다’며 훈련 중단을 압박한 지 이틀 만이다. 김여정 담화 이후 통일부와 여권 일각에서 훈련 연기론을 제기한 데 이어 정보기관 수장까지 이례적으로 직접 이런 입장을 밝히자 야당은 “국정원이 사실상 김여정의 하명기관으로 전락했다”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박 원장은 이날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한미 훈련의 중요성을 이해하지만 대화 모멘텀을 이어가고 북한 비핵화의 큰 그림을 위해서는 훈련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고 정보위 여당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전했다. 한 정보위 소속 의원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박 원장이 유연한 대응으로 훈련 연기를 직접 언급했다”며 “훈련을 연기하지 않으면 북한이 새로운 도발을 할 수 있다는 얘기도 했다”고 말했다.

여권 대선 주자인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도 확산되고 있고 남북 간 통신 연락선 재개도 합의됐기 때문에 여러 가지를 감안해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길 바란다”며 훈련 연기론에 가세했다.

국회 정보위 야당 간사인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은 “대북 공작과 대한민국 안보를 책임지는 국정원이 사실상 김여정의 하명기관으로 전락했다”며 “한미 훈련에 대해 국정원이 입장을 밝힌 것에 대해 철회하고 국민에게 사과해줄 것을 공식 요청한다”고 했다.

국방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도 성명에서 “적 수장의 여동생(김여정)이 하지 말라고 해서 예정된 훈련을 실시하지 않는 건 적에 대한 항복 선언”이라며 “훈련을 예정대로 실시하라”고 요구했다.

박지원 “北, 한미훈련땐 새로운 도발”… 野 “北이 상왕이라도 되나”

국정원장 ‘한미훈련 연기론’ 파장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압박한 지 이틀 만에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3일 국회 정보위원회 출석을 자청해 이례적으로 한미 훈련 연기를 주장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여권의 유력 대선 주자인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까지 이날 훈련 연기론을 들고나왔다. 김여정이 훈련 중단을 남북관계 개선의 조건으로 내걸자 남북대화 재개가 급한 여권이 훈련 연기 불가피론에 본격적으로 불을 지피기 시작한 것.

이에 야당이 “김여정이 국군통수권자냐”며 “국정원장을 경질해야 한다”고 반발하는 등 훈련 시행 여부를 둘러싼 ‘김여정 하명’ 논란이 남남 갈등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 박지원 “훈련하면 북한 도발”

이날 비공개로 진행된 정보위 직후 브리핑에서 복수의 정보위 참석자들은 박 원장이 김여정 담화에 대해 “북한이 근본 문제로 규정한 한미 연합훈련을 한미가 중단할 경우 북한이 남북관계에서 상응 조치를 할 의향을 드러낸 것”이라며 훈련 연기론을 밝혔다고 전했다.

박 원장이 “훈련을 하면 북한이 새로운 도발을 할 것”이라고 얘기한 것도 논란이 커지고 있다. 정보수장이 북한에 도발 명분을 줬다는 것. 한 정보위 위원은 “박 원장의 발언에 의도가 있다고 본다”며 “마치 ‘훈련을 하면 큰일 난다’는 식으로 들렸다. (도발을) 부추기는 얘기를 전하기 꺼려진다”고 했다. 박 원장은 대북 제재 완화론도 꺼냈다고 한다. 정보위 여당 간사인 김병기 민주당 의원은 “미국이 대북 제재를 조정 또는 유예해서 북한의 의구심과 불신을 해소해줘야 대화로 유인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박 원장은 남북 통신선 복원은 “김정은 위원장이 요청한 것”이라고 했다. 반면 통일부는 입장문에서 “어느 일방이 먼저 요청한 게 아니라 양측이 서로 충분히 협의하고 합의한 결과”라며 박 원장의 발언을 부인해 엇박자를 드러냈다.

박 원장이 연기론을 밝히자 야당 의원들이 “김여정의 요구에 국정원의 입장을 밝히는 게 바람직하지 않아 공개되지 않는 걸 요청했지만 박 원장은 수용하지 않았다”고 정보위 야당 간사인 하태경 의원이 전했다. 하 의원은 “박 원장이 전날(2일)에라도 정보위 전체회의를 긴급히 열자고 요구했다. 김여정의 요청에 국정원이 즉각 입장을 밝혀야 할 정도로 박 원장은 국정원의 위상을 창피할 정도로 추락시켰다”며 “이미 통일부가 (훈련 연기를) 얘기했는데 국정원장이 이인영 통일부 장관과 북한 비위 맞추기 경쟁을 하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김병기 의원은 “국정원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 박 원장의 입장을 밝힌 것”이라며 수위 조절에 나섰다.

○ 야당 “김여정이 국군통수권자냐”

통일부, 박 원장에 이어 민주당 유력 대선 주자인 이낙연 전 대표까지 훈련 연기론을 띄우자 야당은 강하게 반발했다.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북한이 상왕이라도 되는 양 김여정 하명에 따라 한미 연합훈련을 연기하거나 위축시킨다면 권력 유지를 위해 국익을 팔아먹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했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지난달 30일 서욱 국방부 장관과의 통화에서 예정대로 훈련이 진행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군 당국은 일단 축소된 규모의 연합훈련을 준비하고 있다. 원인철 합동참모본부 의장 주관으로 합참과 한미연합사령부는 이날 연합훈련의 세부계획 등을 토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폴 러캐머라 한미연합사령관이 화상으로 회의에 참석했다. 정부 소식통은 “이미 축소된 규모보다 규모를 더 줄이는 방안을 미국과 논의할 수 있지만 훈련을 중시하는 미국이 연기를 받아들일지는 의문”이라고 전했다.

예비역 군인 모임 재향군인회는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김여정은 국군통수권자가 아니다”라며 “협박에 휘둘리지 말고 훈련을 예정대로 실시하라”고 촉구했다.

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국정원장의 한·미 훈련 유연 대응 공개주문 부적절하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3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한·미 훈련의 중요성을 이해하지만, 대화 모멘텀을 이어가고 북한 비핵화의 큰 그림을 위해선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지난 1일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압박한 데 대해 훈련 연기론에 힘을 실은 것으로 해석된다. 그는 또 남북 통신연락선의 복원에 대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요청한 것”이라고 밝혔고, 북한이 북·미 회담의 전제조건으로 광물 수출과 정제유 및 생필품 수입 허용을 요구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정보기관인 국정원이 구체적 정책에 관해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히는 건 적절하지 않다. 한·미 연합훈련은 대북 영향뿐 아니라 미국과의 관계나 한·미동맹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정부가 결정할 사안이다. 정보기관 수장이 치고 나오듯 불쑥 입장을 표명하는 건 온당치 않다. 특히 이 문제는 여당 내에서도 국가 주권과 관련된 만큼 예정대로 훈련을 진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등 논란이 뜨거운 사안이다.

이번 정보위는 전날 국정원의 요청에 따라 최대한 이른 시간에 열린 것으로 전해진다. 하태경 야당 정보위 간사는 “주요 메시지가 한·미 훈련에 관한 국정원 입장을 밝히는 것이었다”며 “국정원이 김여정의 하명 기관으로 전락했다”고 비난했다.

2000년 첫 남북 정상회담 당시 실무를 총괄했던 박 원장이 남북관계 개선에 기여하겠다는 소신을 가진 것은 이해한다. 임명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관계를 움직여 나갈 소명”을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보기관이 정부 정책이나 정치 사안에 공공연히 개입하는 것은 금기사항이다. 국정원이 특정 방향에 경도될 경우 정보가 왜곡될 우려도 있다. 박 원장 발언 직후 통일부는 남북 통신선 복원이 어느 일방의 요청에 의한 것은 아니라고 부인했다. 외교부도 관련 품목의 제재 완화를 한·미 간에 논의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정부 부처가 올바른 의사결정을 하도록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본연의 업무에 충실해야 한다. 외교·안보 부서와 엇박자를 내는 모습은 국민을 불안케 한다. 자중할 필요가 있다.

http://m.kmib.co.kr/view.asp?arcid=0924203695

한·미 연합훈련, 타협할 수 없는 동맹의 근간

오는 8월 16일부터 실시될 것으로 알려진 한·미 연합 훈련을 둘러싼 소모적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지난 2018년부터 남·북·미 간 정상회담과 화해 분위기 속에 야외 실기동도 없이 한·미 연합 훈련을 축소하거나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실시해왔다. 축소된 훈련조차도 실시 여부를 놓고 이처럼 북한 눈치를 본다는 것은 한·미 동맹 균열을 초래하는 일이다.

지난 7월 27일 정전협정 기념일에 남북 통신선이 전면 복원되면서 예정됐던 연합 군사훈련 실시가 갑자기 불투명해지고 있다. 급기야 국정원이 3일 예정에도 없던 국회 정보위 보고를 통해 지난 1일 북한이 연합 훈련 중단을 요구한 것과 관련해 ‘북한 비핵화를 위해 유연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더 나아가 국정원은 한·미가 연합 훈련을 중단하면 ‘북한이 남북관계에 상응 조치를 할 의향이 있다’고까지 했다. 한·미 훈련으로 한반도에 불필요한 군사적 긴장이 조성돼선 안 된다. 하지만 국정원이 밝힌 ‘북한 비핵화’와 ‘상응 조치’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국가 안위와 직결된 훈련까지 중단해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번 훈련을 둘러싸고 청와대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내부, 통일부와 국방부, 국정원까지 그야말로 제각각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민 안위와 직결된 국가안보 사안에 대해 한목소리를 내도 시원찮을 판에 국민은 누굴 믿어야할지 불안하다. 한·미 군사 훈련은 동맹을 지탱하고 유지하는 근간이다. 북한 눈치를 보거나 대화·협상의 카드로 활용한다면 한·미 동맹이 굳건히 유지될 수 있겠는가.

한·미 간 신뢰가 굳건해야 남북, 북·미 관계도 진전시킬 수 있다. 걸핏하면 핵무기를 과시하는 북한이 훈련 중단을 요구할 때마다 들어주면 이런 신뢰를 쌓기 어렵다. 훈련을 중단하더라도 미국과 충분한 협의로 양해를 얻어야 할 것이다. 북한도 핵무기가 주민의 굶주림을 해결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하루빨리 깨닫고, 연례적인 방어 훈련에 대해 괜히 생트집을 잡지 말고 비핵화를 위한 대화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