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리, 박해 속 이슬람에서 기독교로 개종자 크게 증가…무슬림권 박해 가운데 성장하는 기독교

알제리, 박해 속 이슬람에서 기독교로 개종자 크게 증가

알제리의 기독교인들이 당국에 의해 투옥되거나 추방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데도, 기독교로 개종하는 수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고 영국 크리스천투데이가 최근 전했다.

이슬람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알제리 여성 앤지 사드(Angie Saad·33)는 “알제리 기독교인이 늘면서 교회도 늘어났다. 이들 중 일부 교회는 알제리 주소로 교회 면허를 취득했으며, 다른 일부는 박해를 우려해 신고하지 않았다”며 “알제리 기독교인들은 많은 압박과 위협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믿음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헌신하는데, 많은 개종자들이 이러한 핍박을 경험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앤지는 “알제리에서는 다른 이슬람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이슬람교가 사회 생활의 모든 측면을 지배하고 있다”며 “이곳 무슬림들이 자신과 같지 않은 알제리인, 즉 자신이 믿는 것을 믿지 않고 다른 의식을 행하는 기독교인들을 만나는 것은 매우 두려운 일”이라고 전했다.

앤지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알제리 기독교인들은 이슬람을 떠나 그리스도를 믿는 쪽을 택한 이들이며, 필연적인 결과로 다른 이들과 예배하거나 신앙을 나눌 수 있는 자유와 관련된 어떤 권리도 누리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토요일마다 한 가족이 교회에서 만날 때 행복을 느낀다. 이슬람 국가에서 일요일은 일하는 날이기 때문에 알제리 교회 성도들은 토요일에 만난다. 알제리 당국이 교회 건물을 직접 짓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교회가 집에서 만난다.

앤지는 “그들은 박해와 억압에 직면해 있다. 단순히 유럽이나 미국의 종교자유위원회가 발표한 국제적 보고서를 인용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이 나라에 살고 있고, 나 자신도 이전에 박해와 억압을 경험했다.”고 전했다.

알제리, 2019년부터 교회 반대 운동 전개해 와

알제리 당국은 2019년부터 면허 부족을 핑계로 50개 교회를 폐쇄하는 등 교회 반대 운동을 치열히 전개해 왔다. 당시 알제리 내무장관은 “우리가 폐쇄한 교회는 ‘마굿간과 닭 창고’였고, 이들에게 들어오는 돈은 출처를 알 수 없는 의심쩍인 것이며, 이들의 사업도 의심스럽다”고 말한 바 있다.

알제리에서 개종죄는 법에 따라 수감되어 처벌받을 수 있는 범죄로 간주된다. 무슬림이 기독교로 개종할 수 있고 당국은 그를 처벌하지 않겠지만, 그가 다른 이슬람교인의 신앙을 훼손하려 했다는 것이 입증되면 그에 따른 조치를 받게 된다.

최근 3명의 기독교인이 신성모독죄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 가운데 하미드 수다드(43)는 이슬람 예언자인 무함마드를 희화화하고 이를 공유한 혐의로 지난 1월 21일 징역 5년과 벌금 약 540만 파운드(약 84억 7000만 원)를 선고받았다.

알제리는 2021년 오픈도어 선교회가 발표하는 기독교 박해국가 순위 24위를 기록했다.

크리스천 퍼스펙티브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시 4:7~8)

알제리에서는 기독교로 개종을 하면 무슬림들에게 납치를 당하거나 살해를 당하는 일이 잦다. (관련기사) 더구나 지난해 말, ‘종교의 자유’에 관한 새 헌법 조항을 통과시키면서 예배의 자유가 위축됐다. 이전 조항은 “양심의 자유와 의견의 자유는 침해할 수 없다. 예배의 자유는 법에 따라 보장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반면에 새 조항은 예배의 자유를 “율법에 따라 행사될 경우에는 보장되어야 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또 “국가는 정치적 또는 이념적 영향으로부터 예배당 장소를 반드시 보호한다”는 조건을 명시했다. 즉, 이 조항은 종교를 선택할 ‘양심의 자유’를 제한하고, 교회와 성도들이 온라인에서 기독교에 대해 토론하거나 웹을 기반한 예배를 막을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관련기사)

박해받는 알제리 교회를 위해서 함께 기도하자. 억압과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되고, 교회 안에 서로 사랑함이 더욱 끈끈해져 이 땅에서 천국을 누리는 교회가 될 것을 기대한다. 또한 무슬림들의 테러와 당국의 박해 속에서 이들을 지켜주시고 믿음의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도록 응원하며 하나님께 간구하자. <UTT(Understanding The Times)제공> [복음기도신문]

http://gnpnews.org/archives/84177

“가난과 선교… 정복할 수 없는 중동의 그리스도인”

선교사의 영원한 모델인 예수 그리스도는 ‘가난’을 어떻게 다루셨을까? 선교전문지 한국선교KMQ 2021년 여름호는 ‘선교와 가난’을 기획특집의 주제로 복음을 위해 가난을 선택한 사람들, 가난과 복음, 빈민 선교 등을 소개했다.

100% 하나님이셨고 100% 사람이셨던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셨지만, 가난한 자들과 함께 하시며 그들을 구원하셨다. 예수님은 은혜의 해를 선포하시고 친히 생명을 내어주셨다. 그 이후 그리스도의 제자 가운데 예수님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가난하게 된 이들이 지난 2000년 동안 세계 곳곳에서 등장했다. 최초의 수도원을 세웠던 알렉산드리아의 안토니우스(AD 251~356)나 거지 순례단을 만든 아시시의 프란치스코(1181~1226) 등이 대표적인 거룩한 가난뱅이 사역자들이다.

정마태 선교사(인터서브)는 ‘정복할 수 없는 백성’이라는 제목으로 중동정교회와 파키스탄 성도들이 어떻게 가난한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섬겼는지 소개했다. 중동 정교회 성도들과 지도자들은 중동의 사회적, 경제적, 신학적, 정치적 대소동과 도전 가운데 지역교회와 수도원을 중심으로 가난한 이들을 섬겼다고 말했다. 이들은 가난한 자의 존재 신학이자 가난한 이를 섬기는 실천 신학으로 ‘가난 신학’을 발전시켰다.

서머나교회의 감독으로 순교한 폴리갑(69~155)은 생전에 스스로 모든 불의, 탐욕, 돈, 사람을 삼가고, 다른 이들에게 돈을 사랑치 말라고 말했다. 최초로 수도원을 세운 이집트 지도자인 성 안토니(251~356)는 “이 세상 소유물의 본질을 미워하고, 그 모든 것을 마음으로 버리고 마음의 손을 하늘에 계시는 모든 것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 뻗쳐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콘스탄티노플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해 병원을 지은 요한 크리소스톰(349~407)은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통해 가난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긍정적으로 보며 ‘부자와 가난한 자’를 이렇게 정의했다. “많은 것을 소유한 자가 부자가 아니요, 많은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이가 부자이다. 아무것도 갖지 않은 이가 가난한 자가 아니요, 많은 것을 요구하는 이가 가난한 자다. 우리는 가난과 부의 차이를 반드시 분별해야 한다.”

그러나 무함마드가 632년 죽은 후, 2대 칼리프 우마르 때 ‘우마르 협정’을 통해 ‘딤미 제도’가 등장한 이후, 비무슬림인 그리스도인에 대한 학대가 시작됐다. 보호된 백성들(Dhimmi Protected people)이라는 의미의 ‘딤미’는 무슬림의 보호를 받으며 보호세인 ‘저지야 인두세’를 납부해야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차별과 억압 제도는 서구에서 12세기, 동양에서 13세기까지 존속되다가 서구 열강이 무슬림 나라들을 식민지로 삼은 이후 사라졌다. 특히 1856년 오토만 제국이 유럽에서 멸망하면서 ‘딤미’ 제도는 법적으로 무효화됐다. 그러나 근본주의 무슬림, 즉 이집트의 무슬림 형제단,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IS), 파키스탄의 급진적 탈레반 등에서 다시 ‘딤미’ 제도를 부활시켜, 오늘날 무슬림 국가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천시당하는 경향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파키스탄 그리스도인들은 현재 ‘딤미’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평범한 그리스도인들이나 무슬림들은 현실적으로 ‘딤미’와 같은 신분으로 살아가면서도 ‘딤미’라는 단어조차 모르고 있다.

오늘날 파키스탄의 그리스도인들은 1873년 6월 힌두 카스트 제도의 불가촉천민인 쭈흐라(Chuhra) 출신의 ‘디뜨’라는 사람에게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가 펀자브 지역에서 처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이후 그 지역사람들의 집단 개종이 일어났다. 그 이후 이들 쭈흐라 그리스도인들은 무슬림들로부터 천한 종족으로 여겨졌다. 또한 파키스탄 사회에서 ‘딤미’ 영향이 사회 전반에 깊이 깔려 있어 그리스도인들을 무시하고 심한 차별대우를 하고 있다.

2014년 라호르 소재 포먼 기독대학교 일부 졸업생들이 리서치한 결과에 따르면 라호르 내 그리스도인들의 71%가 더러운 노동일을 하거나 청소부로 살아가고 있다. 실제로 라호르 근교 꺼쑤르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은 현대판 이집트 종살이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벽돌 굽는 일과 벽돌을 실어 나르는 일을 하는데, 벽돌 공장 주인은 무슬림들이다. 이들의 노임은 매우 적고, 자자손손 무슬림 주인에게 빚지고 살고 있어 가난이 다음세대에 대물림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들은 1400년간 무슬림들과 함께 살아오고 있으며, 핍박 가운데 믿음을 배반하지 않으며 당당하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처럼 중동권 교회 초기 기독교의 성자들과 지도자들은 자발적으로 가난한 자들이 되었지만, 오늘 파키스탄 교회 성도들의 현실은 강요된 가난한 자의 삶이다.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 자체가 강요된 가난의 삶을 살게 되는 원인이다.

하지만 정마태 선교사는 “자발적으로 기꺼이 가난하게 된 자들의 가난 신학과 삶을 통해, 또 파키스탄에서 강요된 가난한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의 삶을 통해서 많은 교훈을 배웠다.”고 말했다.

기도 | 가난한 승리자들, 역사적 증인들이 진정한 승리자가 될 수 있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세계 교회 공동체를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가 얼마나 가난한 자인지를 깨닫게 하시고 교회 공동체 안에, 특히 중동의 무슬림 공동체 안에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치는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하소서. [복음기도신문]

http://gnpnews.org/archives/842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