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럴거면 차라리 고향가시라..스키장·관광지 “빈방 없어요”
수도권·강원 일대 스키장 10곳 숙박시설 90% 이상 예약 마쳐
귀성포기하고 방역협조한 시민들 허탈감 “또 확산땐 분노할 것”
[아시아경제 정동훈 기자, 이정윤 기자]설 연휴 코로나19로 거주지나 고향 대신 레저나 여행을 떠나는 이들로 관광지는 북적일 것으로 보인다.
10일 아시아경제가 수도권과 강원도 일대 스키장 10곳에 문의한 결과, 7곳에서 설 연휴 기간(11~13일) 숙박시설(스키장 내 호텔·콘도 등) 예약은 90%이상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호텔과 콘도 등 비교적 고가인 숙박시설이 대부분이지만 수도권 인근 인기 스키장 등에선 온라인과 전화 예약을 개시한 지난달 이미 대부분 객실이 예약됐다. 숙박시설인 스키장 리조트는 방역당국의 지침에 따라 전체 객실 중 3분의2 규모만 운영해야 하지만 ‘완판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전날 오후 여러 곳에 상담을 시도했지만 통화자체가 어려웠다. 일부 리조트는 전화상담 대기인원만 57명이었다. 상담를 위해 수십분을 기다려야했다. 일부 객실만 예약이 가능했다. 400여개가 넘는 객실을 보유한 A스키장 리조트는 33평형 객실 하나만 예약이 가능했다.
관광명소를 찾는 이들도 많다. 예상 관광객은 강원도 30만명, 제주도 14만명에 이른다. 제주도는 입도 전 검체검사 거부 등으로 방역에 피해를 주는 관광객에 대해서는 구상권 청구 등 강력 대응할 방침까지 세웠다.
귀성을 포기하면서까지 코로나19 확산에 협조하려는 이들은 허탈감을 토로한다. 여론조사 전문회사 한국갤럽은 지난 2~4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에게 ‘이번 설에 1박 이상 고향 방문이나 여행 계획이 있나’라는 질문에 ‘고향 방문만’ 계획 중인 사람이 12%, ‘여행만’ 계획 중인 사람은 1%에 그쳤다고 밝힌 바 있다. 86%는 ‘1박 이상 집을 떠날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직장인 신혜인(31)씨는 “코로나19 때문에 조카를 보러 가고 싶은 마음마저 접고 고향에 가지 않기로 했다”며 “아직 인내해야할 시점에 관광지에 사람이 몰려 또다시 집단감염이 발생한다면 분노할 것 같다”고 말했다.
불특정 다수가 동시간대 다중이용시설에 밀집할 경우 감염확률이 높아지고 감염원을 파악하기도 힘들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고향 대신 관광지에 가게 되면 호텔, 식당 등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시설에 사람들이 불가피하게 모이고 접촉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다”며 “반면 고향집을 방문하거나 부모님댁을 찾는 것은 접촉 인원이 더 적다. 차라리 부모님을 뵈러가는 것이 안전하다”고 말했다.
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
이정윤 기자 leejuyoo@asiae.co.kr
“손주 얼굴 까먹겠다”는 시어머니…”누가 대신 신고해 달라”는 며느리
정부가 설 연휴 ‘5인 이상 모임 금지’를 유지하면서 자식들의 고민이 깊어진다. 일각에선 이번 설에 고향을 방문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며 반기지만 “지난해 추석 때도 방문하지 않아 망설여진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걱정은 되지만, 자식 입장에선 눈치…”문자로 신고하면 익명 보장”
경기도 성남에 거주하는 윤모씨(34)는 지난주 시어머니로부터 “이러다 손주 얼굴 까먹겠다”는 전화를 받고 설날 계획을 변경했다. 윤씨는 “원래 아이들과 집에서 보낼 생각이었으나 내심 고향을 방문했으면 하는 것 같아 기차표를 끊었다”고 말했다.
외며느리인 탓에 차례상과 식사준비를 하는 게 만만치 않지만 며느리 된 입장에서 먼저 가지 않겠다고 말하는 게 어렵다는 것이다.
서울 도봉구에 살고 있는 정모씨(38)도 이번 설에 고향에 내려갈 예정이다. 시댁 큰며느리로부터 다들 모인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정씨는 “남편이 삼형제라 다 모이면 10명은 될 텐데 집에서 모이니 어떻게 할 방법도 없다”며 “우리끼리 조심하면 되지 않냐는 눈치다”라고 했다.
고향집에 내려가는 대신 ‘혼자 여행’을 계획한 직장인도 있다. 서울 관악구에서 자취를 하고 있는 장모씨(31)는 지난달 강릉의 한 호텔을 예약했다. 장씨는 “별다른 계획이 없다고 하면 부모님이 내려오라고 할 것 같아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며 “혼자 호텔에서 시간을 보내며 쉴 예정”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선 설 연휴 기간 고향집 방문 여부를 두고 걱정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정부 방침에 따르면 직계 가족이라도 등록 거주지가 다를 경우 5인 이상은 모일 수 없다. 이를 어길 시엔 1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신고 절차를 묻는 글도 있다. 동탄의 한 맘카페에는 “112 문자로 신고를 하면 익명이 보장된다”며 “지인에게 주소를 알려주고 대신 신고를 하는 방법도 있다”는 구체적인 방법이 공유됐다.
과태료 올렸으면…전문가들 “가족끼리 털어놓고 이야기해야”
취준생들도 내심 ‘5인이상 집합금지’ 조치가 반가운 눈치다. 서울 강서구에 사는 취준생 박모씨(26)는 지난 추석에 이어 이번 설에도 고향에 내려가지 않을 예정이다.
박씨는 “안 그래도 취업이 어려워 친척들 얼굴을 보기가 부끄러운데, 이참에 잘됐다고 생각한다”며 “이번 설 연휴 동안 그동안 부족했던 과목 공부들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설날 방역대책이 더 엄격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도 나온다. 윤씨는 “시댁이 시골이다보니 수도권에 비해 코로나19 사태의 심각성을 잘 모르시는 것 같다”며 “그렇다보니 당연히 와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신다”고 말했다. 장씨도 “추석 연휴 지역 간 이동을 제한하거나 과태료 수준을 올릴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럴 때일수록 세대 간 대화가 적극적으로 이뤄져야한다고 조언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아랫사람 입장에선 아무래도 먼저 말하기 어려울 수 있다”면서도 “가족간 논의와 조정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전례 없는 특수한 상황이고 국가 정책 차원에서 5인 이상 집합 금지를 시행하고 있는 만큼 잘 말씀드리면 어른들도 충분히 이해할 것”이라며 “가족 간 서로의 상황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지현 기자 flow@mt.co.kr
북적이는 가족모임 단속 대상..사는 곳 다르면 4인까지
이번 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정부의 ‘5인 이상 모임 금지’ 조치로 여러모로 다른 모습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가족, 친지가 모여 북적이는 모습을 볼 수 없다. 대가족이 함께 외식하거나, 관광지 등에서 휴일을 즐기는 것도 여의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모든 가정을 감시할 수 없지만, 적발되면 과태료 10만원이 부과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지방자치단체 별로 구상권도 청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