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사람들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안 봤습니다.”
지난 5일 정의용 외교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정 후보자가 언급한 ‘이 사람들’은 지난 2019년 정부가 흉악범이라는 이유로 북송한 탈북 어부들이었다. 당시 유엔조차 우려를 표했지만, 정 후보자 생각은 달랐다. “그 사람들은 헌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을 갖추지 못했다. 일반 탈북민들하고는 다르다”는 그의 발언에서는 소신마저 느껴졌다.
하지만 이는 탈북민 중 누구는 헌법으로 보호하고 누구는 추방할지 정부가 결정하겠다는 위험한 말처럼 들린 게 사실이다. 야당 의원들이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헌법 3조를 들어 북한 주민 역시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반박한 이유다.
그러자 정 후보자는 “입국 전 중대한 비정치적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는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난민법, “공공 안전을 해칠 우려가 있을 때는 강제퇴거시킬 수 있다”는 출입국관리법을 참조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두 법의 대상은 한국민이 아닌 ‘외국인’이다. 탈북민을 외국인으로 전제했을 때나 적용할 수 있는 법률이라는 뜻이다.
정 후보자가 북송한 어부들이 살인이라는 ‘비정치적 범죄’를 저질렀다는 점을 강조하려다 “태영호 의원은 정치적 범죄자”라고 말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북한과 중국 당국은 탈북민을 기본적으로 범죄자로 취급하는 만큼 정부의 어부 북송 조치를 향후 강제 북송의 근거로 악용할 수 있다는 우려를 반박하면서 나온 발언이었다.
정 후보자는 판례도 수차례 언급했다. “개별법률 적용에 있어 북한을 외국에 준하는 지역, 북한 주민을 외국인에 준하는 지위에 있는 자로 규정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에 따른 것”이라면서다.
하지만 이는 ‘박지원 대북 송금 사건’ 판결로, 북한은 헌법상 외국이 아니기 때문에 북한에 돈을 보낸 데 외환관리법 위반을 적용해선 안 된다는 피고인의 주장을 배척하기 위해 법원이 내린 해석이었다. 초점은 북한이 외국은 아니지만 외국에 준하기 때문에 대북 송금을 외환관리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이지, 이미 북한 당국의 영향력 범위 내에서 벗어난 탈북민의 지위를 판단하는 기준에 대한 게 아니었다.
.심지어 정 후보자는 조태용 국민의힘 의원이 구체적으로 문제삼기 전까지는 어떤 사건에 대한 판결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저도 조 의원님 설명을 듣고 이게 어떤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라는 것인지 알았다”고 말했다.
전체적인 맥락을 무시한 채 일부만 떼어 유리한 쪽으로 해석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특히 해당 판결도 “북한 지역은 당연히 대한민국의 영토”라는 전제부터 한 뒤 특수한 분단 상황을 언급했다.
정 후보자의 주장과는 반대로 북한 주민을 한국 국민으로 봐야 한다는 더 최근의 판례도 있다. 일제 강점기 때 북한 지역에서 강제 노역에 동원됐다 끝내 남한으로 돌아오지 못한 A씨의 유족이 제기한 위로금 지급 소송에서 대법원은 2011년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강제동원 피해조사위원회가 “A씨의 피해 사실은 인정되나, 북한에 호적을 두고 있어 대한민국 국적을 갖고 있지 않다”며 한국 국적자에게만 주게 돼 있는 위로금 지급을 거부했는데, 법원이 뒤집었다. 대법원은 “북한 주민 역시 일반적으로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판시했고, 원심도 “설사 A씨가 북한법의 규정에 따라 북한국적을 취득했다고 해도 북한 역시 대한민국의 영토에 속하는 한반도의 일부라 대한민국의 주권이 미칠 뿐”이라며 A씨를 대한민국 국적자로 봤다.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지낸 조태용 의원은 7일 논평에서 “탈북민은 대한민국 국민이므로 선별해서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 없는데도 정 후보자는 헌법을 어기는 잘못된 주장을 계속하며 판결 내용도 모르는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내놨다”며 “헌법과 인도주의 원칙이라는 근본적 문제들에 대한 후보자의 몰이해를 그대로 보여줬다”고 비판했다.
법리 논쟁을 떠나 가장 걱정되는 것은 청문회 과정에서 드러난 탈북민에 대한 정 후보자의 인식이다. 탈북민 출신 지성호 국민의힘 의원이 계속 따져묻자 정 후보자는 “의원님 감정을 이해는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아무나 받는 나라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 의원은 헌법상 재판받을 권리 등을 들어 문제를 제기했는데, 정 후보자는 마치 개인적 이유로 인한 감정적 접근처럼 치부한 셈이다.
이달 말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유엔 인권위원회에서는 예년처럼 북한 인권 문제가 주요하게 논의될 전망이다. 통상 외교장관이 참석해온 회의다. 정 후보자가 장관으로서 꼭 직접 참석해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올바른 문제 제기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 모든 걱정이 오해와 기우에 불과했음을 보여주길 바란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그런 탈북민은 우리 국민 아니다”라는 외교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앞둔 정의용, 탈세 의혹부터 탈북자 북송 혐의도
태영호 “정의용, 탈북민 북송사건 중심…장관 자격 철저 검증”
“文정부, 김정은 눈치 보며 탈북민 2명 생명 포기”
“인권 저버린 비인도적 인사…청문회서 검증할 것”
지난 2019년 탈북선원 북송사건의 중심에 정의용 외교부 장관 후보자가 있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4일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태 의원은 “외교부를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11월 탈북선원 북송사건은 외교부 장관 후보자인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이 주도해 결정된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태 의원은 오는 5일 외교부 장관 인사청문회를 앞둔 정 후보자에게 ‘고문방지협약 제3조에 비춰 지난 2019년 11월 7일 송환된 탈북 선원 2명이 북한에서 고문, 자의적 처형 등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 우리 정부는 어떠한 조치를 취했느냐’고 질문, 관련 자료를 요구했다.
이에 정 후보자는 “고문방지협약의 취지 및 관련 규정 내용도 고려했으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적으로 감안한 불가피한 조치였다”며 “북송된 선원 2명은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흉악범이며, 이들의 귀순 의사에도 진정성이 없다고 판단한 바, 국가안보실 주도 하에 매뉴얼에 따라 처리된 것으로 기억한다”고 답했다.
태 의원은 “국가안보실 매뉴얼에 따르면 귀순 의사가 확인되는 경우 대공 용의점만 없으면 귀순을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당시 탈북선원들은 분명하게 귀순 의사를 밝혔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정부는 국민안전을 위해 그들이 흉악범이라는 명분으로 북송시켰다. 이는 북한의 일방적인 주장이었고 설사 그들이 흉악범이었을지라도, 그들의 변호 조력권을 보장한 상태에서 면밀한 조사가 이뤄지고 재판을 통해 죄를 밝혀야 했다”고 주장했다.
또 “조사를 통해 그들이 흉악범이라고 밝혀진다 해도 그들을 북송할 어떤 법적 근거는 없다”고 덧붙였다.
태 의원은 “오히려 그들의 북송은 헌법, 실정법, 국제법에 어긋나는 결정이었다”면서 “그들이 북송되면 어떻게 될 것이라는 것을 누구나 예측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는 ‘정부가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야 한다’는 헌법 3조와 10조 위반이고 ‘정부가 북한이탈주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북한이탈주민 보호 및 정착 지원에 관한 법률’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비록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라도 위험에 처하거나 고문을 당할 우려가 있는 국가로는 추방하거나 송환하거나 넘겨줘서는 안 된다’고 명시된 국제법상 ‘고문방지협약’의 명백한 위반이 되는 결정이었다고 태 의원은 역설했다.
태 의원은 “결국 정부가 남북관계를 고려해 김정은의 눈치를 보며 우리 국민인 탈북민 2명의 생명과 안전을 포기한 것”이라며 “그 중심에는 정의용 후보자가 있었다”고 거듭 질타했다.
그러면서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포기하고 가장 숭고한 인권의 가치마저 저버린 비인도적인 인사가 과연 대한민국의 외교부 장관으로서 자격이 있는지, 국민을 보호하고 국익에 기여할 수 있는지, 이번 청문회에서 명백히 검증하려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