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共 보도지침 뺨치는 與 언론 악법案
성동규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전두환 군사정권의 제5공화국 시기에 이른바 ‘보도지침’이라고 부르던 시스템이 있었다. 문화공보부에서 거의 매일 정권안보를 위해 각 언론사에 은밀하게 보도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작성해서 내려보냈다. 어떤 기사를 어떤 내용으로 어느 지면과 어느 위치에 몇 단 크기로 게재하고, 제목은 어떤 표현을 써야 하는지를 명시했으며, 사진 사용의 유무까지도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TV 뉴스의 경우 길이와 순서까지도 사전에 심의를 받도록 했다. 언론 자유가 가장 심각하게 유린된 암흑기였다.
이 상황을 오롯이 경험한 수많은 전현직 기자 가운데 한 사람인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3일 “악의적 보도와 가짜뉴스는 사회 혼란과 불신을 확산시키는 반사회적 범죄”라고 규정하면서 “언론개혁을 차질 없이 이행할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의 표현 자체는 현재의 언론 보도 상황을 우려한 집권 여당 대표의 상식적인 언급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론개혁’이라는 명분 뒤에 숨겨진 현 정부에 대한 비판적 보도를 탄압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현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언론개혁의 하나로 가짜뉴스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당시 국무총리이던 이 대표는 범정부 차원에서 가짜뉴스를 근절하겠다고 수차례 공언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이 자신의 지지자들이 댓글 조작이나 문자 폭탄을 날린 행위에 대해 “경쟁을 더 흥미롭게 만들어 주는 양념”이라고 한 과거 발언이 지금까지도 유효하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언론개혁이라는 수사(修辭)는 철저히 정권 유지를 위한 정치행위이며 내로남불의 또 다른 형태이기에 이미 정당성을 상실했다.
설령 언론개혁의 순수성을 인정한다 해도, 가짜 뉴스 등으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할 경우 손해액의 3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과 언론사의 정정 보도 때 최초 보도와 같은 시간·분량·크기로 보도하도록 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처리하려는 여당의 시도는, 언론 자유를 철저히 봉쇄했던 5공 시절의 보도지침을 능가하는 악법 중의 악법이 될 것이다. 특히, 언론사가 악의적 오보를 할 경우 적용하겠다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위축시키고 언론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가 남발될 여지가 많아 궁극적으로 언론의 자유에 재갈을 물릴 수단으로 악용되기 쉽다. 그래서 이 제도를 도입한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언론 자유 침해를 이유로 매우 신중하게 접근한다.
이미 언론 보도로 인한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는 제도나 법률이 다양하게 있다. 대표적인 구제 장치 중 하나인 ‘언론중재위원회’는 지구상 우리나라에서만 운영되고 있으며, 형법과 민법상으로도 피해에 따른 구제를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또 다른 법적 장치를 만든다면 이중규제가 되는 위헌적 요소가 명백하다. 무엇보다도 정보와 뉴스의 범람 속에 개인의 확증편향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이러한 처벌과 규제 일변도의 정책은 객관성을 상실한 채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사법적 판단을 하게 돼, 궁극에는 언론 자유를 무너뜨리는 기제로 작용할 수밖에 없어 국민만 피해 보게 된다. 언론개혁 이슈의 경우 신중하고도 다각적인 접근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는 지혜가 필요한 이유다.
野 “가짜뉴스는 민주당이 생산…언론에 재갈 물리려는 것”
국민의힘은 4일 더불어민주당이 언론개혁 입법의 사유로 내건 ‘가짜뉴스 규제’를 “언론 길들이기”라고 지적했다.
김예령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민주당이 말하는 개혁은 검찰개혁 때도 그랬듯 마음에 들지 않는 집단의 손발을 자르고, 입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것”이라며 “무엇을, 누구를 위한 언론개혁인가”라고 반문했다.
김 대변인은 “검찰이 자신의 계좌를 사찰했다는 허위사실을 떠들고 다닌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대북 원전 문건이 박근혜 정부부터 검토한 내부 자료라며 전 정권을 탓하다가 산자부가 아니라고 하자 ‘추론이었다’고 말을 바꾼 윤준병 의원 등 가짜뉴스를 애초에 생산해 낸 사람들은 바로 여권 인사들이었다”고 강조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비대위 회의 후 기자들을 만나 “여당이 의석수가 많다고 생각하니까 편의적으로 모든 것을 다 법으로 만들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훗날 쓸데없는 얘기를 안 들으려면 그런 시도 자체를 안 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힌편 국민의당 권은희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부동산과 조국 전 장관 관련 보도에 대한 여권의 비판을 지적하며 “민주당은 언론이 국민의 우려와 의구심에 귀 기울여 제기한 문제를 가짜뉴스로 물타기해 왔다. 이낙연 대표의 언론개혁 의도는 언론에 재갈 물리기라는 의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비판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5502805&code=61111511&sid1=op
이젠 언론에 재갈 물리려는 與, 反헌법 폭거 단념하라
‘입법 독재’ 비판을 자초해온 여당(與黨)이 이젠 언론에도 재갈을 물리려고 한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3일 당 최고위원 회의에서 “민주당 미디어 언론 상생 태스크포스(TF)가 마련한 언론 개혁 법안을 차질 없이 처리해 달라”고 주문했다. 언론이 가짜 뉴스 등으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할 경우 손해액의 3배까지 징벌적 배상을 하게 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정정보도는 최초 보도와 같은 분량·크기·시간으로 하도록 강제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 등을 2월 임시국회에서 강행 처리한다는 예고다.
물론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악의적 보도와 가짜 뉴스’는 사라져야 하고, 해당 언론사가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 현행 법들도 그러도록 명문화하고 있다. 그런데 민주당이 위헌적(違憲的)일 뿐만 아니라 비현실적이기도 한 배상·처벌의 대폭 강화·확대 입법을 추진하는 것은 언론을 겁박해 권력 입맛에 맞지 않는 보도는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하려는 저의로 볼 수밖에 없다. 언론사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부과에 대해,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수석전문위원도 검토 보고서에서 ‘민법상 손해배상, 형법상 형사처벌 제도와 중첩돼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한 이유다. 소관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조차 정정보도 분량·크기 등 개정안 규정을 두고, 지난해 11월 국회에서 “언론사에 과도한 부담이 될 것”이라며 반대했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심지어 정정보도를 무조건 신문 1면 또는 방송 첫 시작 시점에 하도록 하는, 언론 편집권을 유린하는 황당한 입법안까지 발의했다.
민주당은 국회 174석 보유를 전체주의 독재의 수단으로 삼아선 안 된다.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기둥인 언론 자유마저 파괴하는 반(反)헌법 폭거를 단념하고, 이성(理性)을 찾아야 한다. 문재인 정권이야말로 가짜 뉴스 진원(震源)인 일이 다반사라는 사실부터 제대로 깨달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