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선 후 ‘내전’ 소문까지…대규모 폭동 대비 사설 대피소도 등장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워싱턴 백악관 인근의 H스트리트 앞. 대형 건물의 상점 입구와 유리창들이 두꺼운 가림막으로 가려져 있었다. 5월 흑인 조지 플로이드 씨 사망으로 촉발된 인종차별 항의 시위 이후 5개월여 만에 다시 등장한 을씨년스러운 광경이었다. 건물을 지키고 있던 경비원은 “플로이드 사망 때 붙였던 게 남아있는 게 아니라 대선을 앞두고 다시 붙인 것”이라며 “대선 후 시위가 격화될 가능성에 대한 대비”라고 설명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대선을 앞두고 긴장감이 팽팽한 시점에 폭력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에 대한 우려와 경고의 목소리가 높다”며 “승자가 명확히 가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개표가 지연될 경우 더욱 그렇다”고 전망했다.
과열된 선거 분위기 속에서 이미 크고 작은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텍사스주에서는 30일 총기로 무장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민주당 유세버스를 포위한 채 위협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텍사스주 지역방송인 KXAN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가 탄 6~7대의 차량이 고속도로 위에서 민주당 유세 버스를 에워싸고 이를 멈춰 세우려 했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원이 탑승한 차량을 고의로 밀쳐 내거나 욕설, 협박이 이어졌다. 이번 사건으로 민주당은 오스틴의 인근 도시에서 열기로 한 유세를 취소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31일 민주당 유세버스를 에워싼 자신의 지지차량 영상을 트위터에 올리고 “텍사스를 사랑한다!(I LOVE TEXAS!)”라고 적어 폭력을 두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31일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대선 투표 참여를 독려하는 시위대를 향해 경찰이 최루탄을 쏘고 여러 명을 연행하는 일이 벌어졌다. 일각에서는 당시 폭력 시위의 양상이 없었음에도 경찰이 지나치게 강경대응을 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페이스북을 비롯한 소셜미디어에는 대선 직후 소요가 확대되면서 내전이 일어날 것이라는 소문까지 급속히 돌고 있다. 채드 울프 국토안보부 장관 대행은 지난달 대선 관련 폭동 가능성에 “폭력적인 극단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공격은 전례 없이 치명적”이라며 “이들은 폭력과 죽음, 파괴를 통해 미국 내의 이데올로기 변화를 꾀하고 있다”고 분석한 보고서를 내놨다.
반면 대표적 우파 논객인 글렌 벡은 “좌파들이 대선일에 소요를 일으키기 위한 시나리오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오리건주 포틀랜드에는 무장한 우파 단체 멤버들이 선거일 당일에 우편투표 용지 수거함에 출몰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면서 극좌파 단체들도 맞대응 준비를 하고 있다. 미국 내 정치적 폭력을 연구하는 비정부기구 ‘ACLED프로젝트’는 “무장한 민병대와 다른 비정부 무장단체들이 미국 유권자의 안전에 실질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며 조지아주, 미시간주, 펜실베이니아주 등 경합주 유권자들에게 경고했다.
NBC 방송은 29일 이민세관단속국(ICE)과 세관국경보호국(CBP) 요원들이 대선 당일 워싱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소요사태에 대비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주방위군국은 대선 후 소요에 대응할 새로운 부서를 설치했다.
긴장이 높아지는 가운데 웨스트버지니아주와 콜로라도주 등지에는 대규모 폭동 사태에 대비한 사설 대피소가 등장했다. 은퇴한 공군 출신 민간인이 만든 이 대피소에 수십 명이 1000달러의 비용을 내고 사용 신청을 했다.
미국에서는 최근 총기 구매 수요가 급증하며 사재기 현상까지 벌어졌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올해 3~9월 총기 판매량은1510만 개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91% 늘어났다. 피츠버그의 총기상 운영자인 네이트 거하임(33) 씨는 “모두가 (총기를) 사들이는 ‘퍼펙트 스톰’ 같은 상황”이라며 “(대선 혼란에)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사회 불안정까지 합쳐진 결과”라고 말했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https://www.donga.com/news/Inter/article/all/20201101/103739922/1
트럼프 “대선 후 나쁜 일 벌어질 수도”…WP “폭동 가능성”
트럼프 입에서까지…혼돈의 대선
우편투표 10일 뒤 도착분도 유효
개표 늦어지며 소송 등 충돌 우려
FBI, 주요도시에 지휘 사무소 설치
벌써부터 곳곳 불안 징후
텍사스 총기 든 트럼프 지지자들
민주당 유세버스에 욕설·야유
뉴욕 한복판서 양측 집단 난투극
미국이 대선(11월 3일) 직후 극심한 혼돈에 빠져들 수 있다는 ‘불길한 시나리오’가 급기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입에서까지 나왔다. 안 그래도 미국인들 사이에선 대선 직후 승자를 알기 힘든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그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 지지층과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 지지층이 충돌하는 등 혼란이 발생할 것이란 우려가 팽배한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우려에 불을 붙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31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뉴타운 유세에서 “여러분은 11월 3일을 주시할 것”이라며 “(하지만) 펜실베이니아주가 매우 크기 때문에 (그날) 결정이 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클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기다릴 것”이라며 “우리나라에서 혼란이 벌어질 것”이라고 했다. 또 “(개표 결과가 나올 때까지) 수주간 기다려야 할 것”이라며 “그 사이 매우 나쁜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트럼프 “대선 후 나쁜 일 벌어질 수도”…WP “폭동 가능성”
트럼프 대통령은 연방 대법원이 전날 트럼프 캠프의 반대에도 펜실베이니아주가 6일까지 우편투표를 받을 수 있도록 한 데 대해 “대법원이 우리나라에 한 끔찍한 일”이라고 비난했다.
트럼프의 이날 발언은 펜실베이니아를 비롯해 일부 경합주에서 대선 후 도착하는 우편투표까지 인정하기 때문에 대선 승자 확정이 늦어질 수 있고 그 결과 혼란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올해 대선에선 3일 이전 소인만 찍혀 있으면 대선 후 도착하는 우편투표도 인정하는 주가 50개주 중 22개주에 달한다. 이 중 정치전문 리얼클리어폴리틱스가 경합주로 분류한 텍사스(4일 도착분까지 인정), 펜실베이니아(6일), 아이오와(9일), 미네소타(10일), 네바다(10일), 노스캐롤라이나(12일), 오하이오(13일) 등 7개주는 짧게는 대선 하루 뒤, 길게는 대선 10일 뒤 도착한 우편투표도 인정한다.
우편투표는 31일 오후 11시 기준 5808만 표로, 2016년 대선 때 총 투표 수의 40%에 달해 이번 대선 승패를 좌우할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게다가 이들 경합주 중 상당수는 초박빙 승부가 펼쳐지고 있다. 예컨대 오하이오주는 트럼프 대통령과 바이든의 지지율이 각각 46.2%로 동률이다. 노스캐롤라이나주는 바이든이, 아이오와주는 트럼프 대통령이 앞서고 있지만 지지율 차는 각각 2.1%포인트와 0.6%포인트에 불과하다.
대선 승패를 좌우할 핵심 경합주로 떠오른 펜실베이니아도 바이든이 차이를 벌리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지지율 격차가 4.1%포인트에 그친다. 결국 접전 상황에서 뒤늦게 도착한 우편투표로 승패가 뒤바뀔 경우 선거 불복, 소송 등이 이어지면서 혼란이 커질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우편투표는 사기”라고 주장해왔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내전 수준의 소란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개표 결과가 확실한 승자 없이 며칠씩 질질 끌며 계속될 경우 더더욱 그렇다”고 전했다. 총기 판매가 급증하고 극우파가 모이는 온라인 포럼에선 대화 중 ‘내전’에 대한 언급이 급증했다는 것이다.
이미 불안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난 30일 텍사스주의 한 고속도로에선 총기로 무장한 트럼프 지지자들이 도로를 달리던 민주당 유세 버스를 향해 욕설과 야유를 퍼붓는 사건이 벌어졌다. 25일엔 뉴욕 시내 한복판에서 트럼프 지지파가 반(反)트럼프 시위대를 습격하면서 양측이 난투극을 벌였다. 로이터통신과 입소스의 여론조사에선 트럼프 지지자의 16%, 바이든 지지자의 22%는 지지후보가 패하면 시위나 폭력도 불사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법 집행기관들은 대선 직후 폭력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 연방수사국(FBI)이 대선 이후 폭력 행위 확산에 대비하기 위한 지휘 사무소를 워싱턴DC 본부와 전국 주요 거점에 설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FBI 시애틀 지휘소 책임자인 아바스 골프레이 특수요원은 WSJ에 알카에다 등 외부 세력의 테러에 대비했던 과거와 달리 “올해는 백인 우월주의, 인종적 동기에 따른 극단주의 등 국내 테러 위협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오리건주 포틀랜드시가 폭력 사태 발생 시 통행금지령을 논의했다. 로스앤젤레스 베벌리힐스 경찰은 야간 폭력 시위에 대비해 상가에 가림막 설치를 권고했고, 시카고시는 선거 관련 폭력과 위협에 대한 대응훈련을 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
https://www.hankyung.com/international/article/2020110117561
美 대선 하루 남았는데, 우편투표 700만표 도착 안해
[트럼프 vs 바이든] 경합州 등 선거날 안오면 무효표
미국 대선을 사흘 앞둔 지난달 31일(현지 시각)까지 약 9100만명이 우편 투표 혹은 사전 현장 투표를 마쳤다고 워싱턴포스트가 이날 보도했다. 2016년 미 대선에 투표했던 1억3900만명의 65%가 넘는 기록적 투표율이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선거 당일 이전에 1억명이 투표를 마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선거일 전에 과반수 이상의 투표가 이뤄진 역사상 최초의 선거가 될 것이라고 이 신문은 전했다.
그러나 우편투표 용지 수거가 제때 이뤄지지 않아 대선 후 분쟁의 소지가 될 조짐도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날 “선거 당일 혹은 그전까지 도착한 우편 투표만 유효표로 인정하는 13개의 경합주에서 아직 (선관위에) 도착하지 않은 표가 700만표를 넘는다”고 보도했다. 이 주들에서 약 2400만명이 우편투표를 했는데, 28% 정도가 여전히 선관위로 ‘배송 중’이란 뜻이다. 이 13개 경합주에는 플로리다, 미시간, 위스콘신, 애리조나처럼 승부에 직결된 곳이 포함돼 있다. 단 몇 천 표로도 선거 결과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700만표는 큰 숫자다.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는 이 13개 주에서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보다 195만460표를 더 얻어 대통령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막판까지 우편투표 문제를 제기했다. 지난달 31일 펜실베이니아 유세에서 “(선거 결과가 나오려면) 몇 주를 기다려야 할 것”이라며 “개표가 진행되는 동안 ‘매우 나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실제 소요 사태 조짐도 있다. 지난달 30일 텍사스주의 한 고속도로에서는 총기를 소지한 트럼프 지지자들이 민주당 유세버스를 둘러싸고 욕설하며 위협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텍사스 오스틴 지역의 민주당 유세 2건이 취소됐다.
[워싱턴=김진명 특파원 geumbori@chosun.com]
https://n.news.naver.com/article/023/0003572972
미 대선 이후 대규모 폭동이 기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