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총리 “안익태 애국가, 친일 확인되면 변경 고민”…테러당한 애국가…정부가 대한민국 부정하나

 

 

정총리 “안익태 애국가, 친일 확인되면 변경 고민”

정세균 국무총리는 14일 대정부질문에서 최근 ‘친일 논란’이 다시 점화된 안익태 선생이 작곡한 애국가에 대해 “(친일 논란 등이 확인되면) 그런 (변경) 문제도 고민을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 총리는 이날 더불어민주당 이해식 의원의 관련 질의에 이같이 답하고 “하지만 국민들과 충분히 소통하고 의논하고 절차가 선행돼야 한다”고 했다. 정 총리는 안익태 선생의 친일 전력이 확정되면 애국가 변경을 해야 한다는 이 의원 주장에 대해 “그런 주장도 일리가 있다” “검토해보겠다”고도 했다.

정 총리는 ‘애국가는 법률상 국가(國歌)냐’는 이 의원 질문에 “법률상으론 규정돼 있지 않은데, 독립국으로 되기 전부터 애국가라고 하는 이름으로 불려졌다”며 “곡조도 옛날 애국가는 달랐다”고 했다. 이어 “(현행 애국가는) 법률적인 뒷받침은 없지만 실질적으로는 국가로 인정을 받고 있다고 본다”고 했다.

이 의원이 ‘하지만 그 장구한 세월 동안 애국가가 법률상 국가 아닌 채 남은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묻자 정 총리는 “세계 많은 나라들이 법률적인 규정을 통해서 국가를 정하는 경우도 있고 애국가처럼 법률적으로 특별히 규정 안 하고 국가로 부르는 나라도 많은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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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익태의 애국가, 불가리아 민요 표절? 전문가들 “사실 확인 없는 일방적 주장”

김원웅 광복회장은 17일 안익태(1906~1965) 선생의 애국가를 “불가리아 민요 표절”이라고 주장했지만, 전문가들은 사실 확인 없는 일방적 주장이라고 했다. 안 선생은 애국가 작곡 이전에 유럽 땅을 밟아보지 않았고 다른 경로로 불가리아 민요를 접했을 가능성도 희박하기 때문이다.

안 선생은 미국 유학 시절인 1935년 애국가를 작곡했다. 1930년 미국으로 건너간 안 선생은 필라델피아 템플대학에 다니며 샌프란시스코의 한인교회에서 첼로를 연주했다. 당시 한인들이 스코틀랜드 가곡 ‘올드 랭 사인’의 곡조를 애국가로 부르는 모습을 보고 애국가를 만들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20년 넘게 안 선생의 생애를 추적·연구해온 허영한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에 따르면, 안 선생이 애국가 이전에 불가리아 민요를 접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당시 헝가리·루마니아·불가리아 민요를 수집·연구한 이로는 헝가리 출신 작곡가 벨러 버르토크가 유명한데, 그가 미국으로 건너간 시기는 2차 세계대전 이후로 알려져 있다. 김연갑 국가상징연구회 애국가분과위원장은 “안 선생 작곡 애국가는 1940년 9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주최한 중국 충칭의 광복군 성립식에서 부른 노래”라며 “1945년 11월 임정이 중국에서 출간한 ‘김구 제(題) 한국 애국가'(등록문화재 576호), 1946년 4월 북한 평남인민위원회가 낸 ‘애국가’에도 안익태의 애국가 악보가 실렸다”고 말했다.

김 회장이 백선엽 장군의 공적을 폄훼한 것도 사실 왜곡이라고 전사가들은 본다. 김 회장은 “6·25 전쟁이 난 다음 날 백 장군이 안 나타나 1사단 장교·군인들이 도피했다”고 했지만, 백 장군은 당시 고급 간부 훈련을 받고 있었다. 전쟁 발발 직후 사단 사령부에 도착했지만 이미 담당 지역이던 개성은 함락 상태였던 것으로 군은 기록하고 있다.

다부동 전투 당시 미군이 주로 북한군을 상대했고 백 장군의 공적이 미화됐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군 관계자는 “당시 미군이 다부동 전투를 지원한 건 맞지만 백 장군이 없는 공적을 지어낸 게 아니다”라며 “공적이 별로 없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8/18/2020081800187.html

 

 

테러당한 애국가

[논객칼럼= 권오용]

애국가를 소리 높여 부르고 싶을 때가 있었다. 런던에서 열렸던 2012년 올림픽, 펜싱에서 한국과 중국의 결승전이 있었다. 목이 터져라 응원을 했다. 이미 3위가 확정된 미국, 우리가 이기면 2위가 되는 중국. G2라는 두 나라 국기를 좌우에 거느리고 태극기가 게양되고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순간을 기다렸다. 목청껏 애국가를 불러보고 싶었다. 누가 시킨 일인가? 아니다. 돈이 나오나? 아니다. 그냥 우리의 노래였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이기지 못해 바라던 순간은 오지 못했다. 그래도 애국가는 누구도 범접해서는 안 되는 내 마음속의 성가(聖歌)였다.

학교 다니던 때에는 국기 하강식이 있었다. 모두가 가던 길을 멈추고 가슴에 손을 얹어 경건한 마음으로 태극기를 바라보며 애국가를 들었다. 영화관에서도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모두가 기립해 애국가를 들었다. 잠시나마 나라를 사랑하고 공동체에 대한 헌신을 다짐하는 순간이었다. 평소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지금 되돌아봐도 소중한 순간이었다.

임시정부 요인들 환국비행기 속에서도…..

우리가 애국가를 되찾은 것은 일제가 패망하면서 부터였다. 1945년 임시정부 요인들의 환국 비행기 속에서도 애국가가 합창으로 울려 퍼졌다. 누군가가 조선 해안이 보인다고 소리치자 애국가가 흘러 나왔고 흐느낌으로 끝내 마치지 못했다(장준하. 돌배게). 애국가를 되찾은 것은 나라를 되찾은 것이었다.

광주민주항쟁에서도 시민들은 태극기를 펼쳐들고 애국가를 불렀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민주주의는 애국가를 가슴에 품고 쟁취한 것이기도 했다.

그 애국가가 부정당했다. 민족 반역자의 노래가 되고 외국 민요의 표절곡이 됐다. 백주에 테러를 당한 셈이 됐다. 그것도 광복절 기념식에서 모두가 한마음으로 제창했던 국가를 향해 돌팔매를 던졌다. 광복회 김원웅 회장이 그랬다. 그는 기념사에서 민족 반역자가 작곡한 노래를 국가로 정한 나라는 전 세계에서 우리뿐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틀 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애국가의 일부 곡조가 불가리아 민요를 그대로 베꼈다고 주장했다. 역사의 고비마다 가슴을 벅차게 했던 애국가가 무색하게 됐다. 따라 부른 우리는 민족 반역을 다짐하며 남의 나라 노래를 소리 높여 부른 셈이 됐다. 애국가와 함께 한 내 삶이 송두리째 뿌리가 뽑힌 느낌이었다.

“친일의 애국가” 이라면 3.1 독립선언문은?

광복절에서의 애국가 버리기는 다음 3.1절 기념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애국가를 작곡한 이가 친일파였으니 버려야 한다면, 3.1독립 운동 선언문은 어찌할 것인가?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과..”로 시작되는 독립선언서는 내 젊은 날의 아이콘이었다. 그 때 󰡔학원󰡕이라는 잡지가 있었다. 연재소설 속의 주인공이 여학생들 앞에서 장기자랑을 하는데 이 독립선언서를 통째로 외우는 장면이 있었다. 정말 멋있어 보였다. 나도 통째로 외웠다. 마라톤 풀코스 레이스 중에 죽음의 계곡이라는 30km 정도를 지날 때면, 정말 힘들 때면 독립선언서를 읊었다. 그러면 기운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았다. 그렇게 힘을 내어 풀코스를 완주하곤 했다.

조선독립선언서를 쓴 이가 육당 최남선이다. 춘원 이광수와 함께 변절한 지식인의 대표로 꼽히고 있다. 3.1운동 때 까지는 독립 운동가였고 독립선언서를 쓴 죄로 2년 8개월을 복역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일제 말기 그는 친일 행각을 했다. 독립선언서도 광복회장의 논리대로라면 폐기되어야 한다. 광복절에 애국가가 테러를 당했다면 3.1절에는 민족의 염원이 담긴 독립선언서가 테러를 당할 운명에 처했다.

우리가 기억하는 구한말 선각자 중에 지석영 선생이 있다. 일본에서 종두법을 배워 조선에서 호환이라 불리던 천연두를 퇴치한 분이다. 지석영 선생이 우두접종을 시작한 병원이 종두장이었다. 그런데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무당들이 종두장을 습격해 불을 질렀다. 자신들의 일자리가 위협받았기 때문이었다. 귀신으로 과학을 이기려고 했던 것이다. 지금보면 참 어리석은 일이지만 당시에는 일리가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지석영 선생도 친일파로 분류돼있다. 얼마 전 더불어민주당의 강창일 역사와 정의 특별위원장은 우리 민족은 귀신 사상이 있다며 현충원 친일파의 파묘를 주장했다. 150년전 무당이 병원을 방화한 모습은 오늘날 귀신이 나라의 정책에 등장한 데자뷔였다.

기득권 세력의 미래에 대한 테러

김원웅 광복회장이 애국가를 부정함은 해방 후, 70년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훼손하는 것이다. 독립선언문의 부정은 100년을 면면히 이어져 온 독립운동의 정신을 깎아 내리는 것이다. 150년 전 지석영을 공격한 무당이 상징하는 것은 국민을 질병과 고통 속에 몰아넣은 기득권 세력의 미래에 대한 테러였다. 달나라에 다녀오고 태양계 밖의 우주로 눈을 돌리는 첨단 과학과 문명의 시대에 어찌 귀신이 등장하는가?

역사를 돌아봄은 역사를 잊지 말자는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달 20일자 기사를 통해 “남을 향한 비판을 이어가던 사람들이 자신들을 향한 비판은 수용하지 않으려 한다.”고 한국 정부의 권위주의적 행태를 비판했다. 지금 이 순간의 행적도 돌아보면 역사의 한 부분이다. 기득권에 재단된 역사가 무한한 가능성의 미래를 가로 막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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