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September 12, 2020

당직사병 울분 “법무장관이 이러면 세상에 누가 감옥 가겠나”…“우리가 분노 안 하면 그들이 우릴 개돼지로 볼 것”

 

당직사병 울분 “법무장관이 이러면 세상에 누가 감옥 가겠나”

 

공익제보 예비역 병장 “입대 7개월 된 일병이…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라”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서모(27)씨의 휴가 미(未)복귀를 공익 제보한 당직사병 현모(27)씨는 “상식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현씨는 추 장관 아들의 부대로 돌아오지 않았던 2017년 6월 25일 카투사 부대의 당직사병이었다. 그는 “법무장관이 그러면 세상에 감옥 갈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도 했다.

 

현씨는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 동부지검에 참고인 조사를 받은 이후 공익제보 과정에서 “서씨에게 복귀하라고 통화한 당직사병(자신)이 뻔히 눈뜨고 있는데 지라시니 뭐니 해서 나서게 됐다”고 했다. 추 장관 아들의 휴가연장에는 하등 문제가 없다는 정부여당 측의 주장에 대해서는 “상식(常識)이 있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실에 따르면 2017년 6월 25일 당시 당직 사병인 현씨는 “당직을 서고 있는 와중에 오후 9시쯤 점호 과정에서 서 일병의 선임 조○○ 병장에게서 결원 사실을 보고받았다”며 “출타 일지 복귀 서명란도 비어있어 비상연락망을 통해 서 일병 휴대전화로 연락해 복귀를 지시했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그는 당시 추 장관 아들과 통화한 상황도 생생히 기억했다. 그는 “미복귀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밤 9시쯤 서 일병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어디냐고 물었더니 ‘집이다’라고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지금 당장 택시라도 타고 부대(경기 의정부)로 오라고 지시했고, ‘알았다’길래 밤 10시까지는 오겠구나 싶었다”고 했다.

 

그러나 부대에 찾아온 것은 추 장관 아들이 아닌 상급 부대의 대위였다고 한다. 현씨는 “대위가 ‘네가 서 일병에게 전화한 당직병이냐. 휴가는 내가 처리했으니 보고에는 미복귀가 아닌 휴가자로 올리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가 지역대에 보고하지 않았는데, 지역대 장교가 먼저 찾아와서 서씨를 휴가자로 정정하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면서 “저는 처음에 대위가 미복귀자를 적발해서 징계를 목적으로 찾아온 줄 알았습니다. 그게 상식이니까요”라고 했다.

 

또 “당시 군 생활한지 7개월 된 서 일병이 얼굴도 이름도 처음 들어본 대위에게 전화 걸어가지고 ‘나 미복귀인데 휴가 연장해달라’는 건 상식이 있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국방부는 지난 11일 “절차상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판단한다”면서 서씨에게 유리한 규정 해석을 내놨다. 이 직후 국방부 민원실에는 “나도 전화 한 통으로 휴가 연장할 수 있느냐”는 장병들의 문의가 빗발친 것으로 알려졌다. 카투사를 전역한 이후 현재 대학원에 재학하는 현씨는 이 같은 국방부의 아전인수식 해석이 비상식적이라고 꼬집은 것이다.

 

현씨는 아들의 황제휴가 의혹에 대해서 “소명을 다했다”는 추 장관의 태도를 비판했다. 그는 “추 장관이 ‘(청탁)안 했다’고 한 뒤 소명을 다했다고 한다”며 “’N번방’으로 잡혀있는 사람도 나 안 했다고 주장하면 무죄줄거냐. 법무부 장관이 ‘해명 다 됐다’고 할 거면 이 세상에 재판 받아서 감옥 갈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다.

 

추 장관 아들의 특혜 휴가 의혹을 입증할 군(軍) 기록들이 잇따라 증발하는 상황에서 예비역 카투사들의 “청탁이 있었다”는 실명(實名) 증언은 이어지고 있다. 당직사병인 현씨 뿐만 아니라 부대에서 인사 업무를 담당하던 지원장교도 “(추 장관)보좌관에게서 전화를 직접 받았다”고 증언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서씨가 카투사에 복무했을 당시 주한 미8군 한국군지원단장이었던 이철원 예비역 대령도 지난 11일 “추 장관 아들을 용산에 배치해달라는 청탁 전화가 있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또 서씨를 평창동계올림픽 통역병으로 선발하라는 전방위적인 청탁이 실제로 이뤄졌다고도 했다. 입장문을 내게 된 배경에 대해서는 “예비역 카투사의 양심선언을 보면서 당시 최종 지휘관으로서 마음이 불편했지만, 현역인 부하들에게 불이익이 생길까 봐 (그간) 지켜만 보고 있었다”면서도 ” 이 시간에도 많은 군 간부들은 저보다 더 강직하고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부대를 지휘하고 있다”고 했다.

 

이 같은 카투사 예비역들의 공익제보에 대해서 서씨 측은 소송으로 대응하고 있다. 서씨 측 변호인당은 당직사병 현씨의 폭로에 대해서 ” 떠도는 근거 없는 이야기를 마치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처럼 만들어 옮기는 ‘n차 정보원’의 전형적인 예”이라면서 “악의적 허위 사실 유포가 계속될 경우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했다. 또 이 대령에 대해서는 앞서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실제 고발하기도 했다. 국민의힘은 이에 대해 “이제 대한민국은 ‘제발 상식적으로 생각해달라’는 예비역 병장의 목소리를 협박성 고소로 틀어막는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가 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형원 기자 won@chosun.com]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3&aid=0003561338

 

 

“우리가 분노 안 하면 그들이 우릴 개돼지로 볼 것”

 

문 정권 탄생의 동력은 분노의 정치학이었다

“왜 분노하지 않냐”며 국민 저항을 촉구했다

이제 그들이 똑같이 되돌려 받을 때가 됐다

 

박정훈 논설실장

 

문재인 정권이 이룩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는 한 번도 경험 못 한 ‘뉴 노멀’을 확립했다. 법 위에 ‘진영’이 군림한다는 것이다. 내 사람, 우리 편이란 이유로 반칙을 감싸고 범죄를 덮어주는 일이 다반사가 됐다. 정권 보위의 충견(忠犬) 역할을 한 법무 장관의 경우, 아들 탈영을 둘러싼 구체적 증언이 쏟아졌는데도 검찰이 9개월째 뭉개고 있다. 울산 선거 개입 사건의 핵심인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과 국정상황실장 등은 변변한 조사조차 받지 않은 채 기소에서 제외됐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팔아 이익을 챙겼다는 시민 단체 출신 여당 의원 사건은 수사가 진행 중인지조차 감감무소식이다.

 

불법을 수사할 검찰·경찰은 미적대며 뭉개고, 설사 기소돼 법정에 가더라도 재판부가 희한한 논리로 살려준다. 여당 소속 경기 지사가 명백한 허위 사실을 유포했는데도 대법원은 “(거짓말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다”는 듣도 보도 못한 법리를 끌어다 면죄부를 주었다. 정권의 지지 세력인 전교조가 노동조합법 조항을 정면으로 어겼는데도 법원은 영문도 모를 이유를 대며 합법 판정을 내려주었다. 온갖 무리수를 써가며 강행한 문 정권의 사법부 장악 공작이 톡톡히 효과를 거두고 있다. ‘유전무죄(有錢無罪)’가 아니라 ‘친문 무죄’가 뉴 노멀인 세상이 됐다.

 

이제 우리는 이 정권의 위선적 본질을 확실히 알고 있다. 통합을 말하더니 온갖 곳에서 내 편, 네 편 가르고, 자기편 챙기는 데는 선수인 정권이었다. 불통과 독선, 힘으로 밀어붙이는 국정 독주는 군사독재에 뒤지지 않았다. 민주화 세력의 후예라면서 민주주의를 흔들고, 탈권위를 내세우면서 누구보다 권위주의적이었다. 검찰을 길들이고 법원을 장악하고, 청와대 경호처란 이름이 어울릴 공수처를 만들어 삼권분립의 헌법 원칙을 무력화했다.

 

약자 편이라더니 약자 못살게 하는 정책을 밀어붙인 것도 이 정권이다. 저소득층 일자리를 빼앗고, 가난한 사람을 더 가난하게 했으며, 집 없는 청년·서민을 영원한 무주택자로 전락시켰다. “모두가 용이 될 필요는 없다”며 온 국민을 ‘가붕개(가재·붕어·개구리)’의 가두리 양식장에 가둬 놓았다. 그렇게 서민의 성공 사다리를 걷어차더니 자기들은 반칙과 편법을 서슴지 않으며 온갖 특혜를 누리고 있었다.

 

그들이 이렇게까지 안면 몰수 전횡할 수 있는 것은 믿는 곳이 있기 때문이다. 문 정권은 3년 내내 적폐 몰이의 광풍을 일으키며 국가 권력을 구석구석까지 진영화했다. 청와대를 정점으로 정부·여당과 관변 매체, 어용 지식인과 친문 홍위병들로 구성된 ‘좌파 카르텔’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그들만의 카르텔이 여론을 주무르며 거짓까지 사실로 둔갑시키고 있다. 좌파 지식인들이 억지 논리를 만들고 친정부 매체들은 추종 보도한다. ‘대깨문’들은 댓글과 검색 순위를 조작하고, 일부 여론조사 회사가 ‘가공된 여론’을 공급하며 거짓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우민화(愚民化) 시스템을 조직화한 것이다.

 

국민 속이는 진실 조작의 카르텔은 좌파 통치의 기반이 되고 있다. 문 정권이 마음 놓고 국정 폭주로 치닫는 것도 여론을 조작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도 ’40% 지지율’은 굳건하게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고용 참사가 빚어져도, 부동산 대란이 벌어져도, 심지어 조국 스캔들이 터져도 40% 선은 깨지지 않았다. 그토록 국정을 망치고도 ’20년 집권’ 운운하는 여권의 자신감은 여기에 근거한다. 자기편 40%만 우군으로 삼으면 얼마든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코 그들 뜻대로만 되진 않는다. 임계점에 달한 국민의 분노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법무 장관 아들의 탈영 사실을 꿋꿋이 증언하고 있는 당시 당직 사병은 “추 장관의 거짓말이 내 입을 열게 만들었다”고 했다. 권력 실세의 반칙과 특혜를 목격한 국민들은 ‘엄마가 추미애가 아니라서 미안해’라며 분노를 폭발시키고 있다. 조국 사태에 이어 또다시 상처 입은 청년들은 ‘이게 공정한 나라냐’며 울분을 터트리고 있다. 어떤 50대는 추 장관에게 찍힌 한동훈을 서울동부지검장에 임명해 아들 탈영 사건을 수사시키라는 청와대 청원에 난생처음으로 동의 버튼을 눌렀다고 한다. 이게 밑바닥 민심일 것이다.

 

문 정권을 탄생시킨 동력은 분노의 정치 공학이었다. 야당 시절 그들은 국민을 향해 ‘왜 분노하지 않는가’라며 권력에 저항할 것을 촉구했다. 방관하지 말고 거리에 나서 짱돌을 던지든지 투표장에 가라고 했다. 이제 문 정권이 국민의 분노를 되돌려 받을 때가 됐다. “카투사는 편한 군대” “식당서 김치찌개 빨리 달라는 게 청탁이냐” 운운하며 국민을 바보로 만드는 오만한 정권에게 쓴맛을 보도록 해야 한다. 인터넷 기사에 어떤 시민이 ‘분노하라’는 댓글을 올렸다. “우리가 침묵하면 그들은 우리를 개돼지 취급할 것”이라며.

 

[박정훈 논설실장 jh-park@chosun.com]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23&aid=0003561034

사과하면 안 되는 나라…민주화 부르짖던 운동권의 민주주의 파괴하는 파시즘

사과하면 안 되는 나라

 

영원한 것은 없다고, 전세계적으로도 강력한 유튜브 컨텐츠였던 K-먹방이 이른바 뒷광고 논란으로 기세가 꺾였다. 먹방 크리에이터들이 업체로부터 광고료와 음식을 제공받았음에도 마치 본인들이 ‘먹고싶어서’ 구매해 먹방을 하는것처럼 거짓말을 쳤다는 것이다. 시청자들은 ‘광고 안 보려고 유튜브 프리미엄까지 구매했는데 알고보니 15분짜리 광고를 보고 있었다!’ 라며 분노했고, 구독자수 100만 명을 훌쩍 넘겼던 대형 유튜버들이 은퇴를 하거나 부랴부랴 해당 영상들에 유료광고 표시와 사과문을 올리고 자숙중이다. 한 달에만 수천에서 많게는 수억 원대로 추정되는 먹방 유튜버들의 수입이 불로소득이라는 생각도 시청자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을 것이다.

그런 와중 이른바 ‘떡상’ 중인 먹방 유튜버가 있었으니, ‘푸메’다. 그녀 역시 뒤늦게 광고 영상들에 유료광고 표시를 하긴 했으나 그 외의 별다른 조치 없이 먹방계 뒷광고 폭풍속에서도 꿋꿋이 새 먹방 영상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처음에는 “이런 강철 멘탈(뻔뻔함)이라면 먹방할게 아니라 정치를 해야 한다.”, “혹시 어디 납치 당해서 영상을 업로드 중이신 건 아니죠?” 등의 비꼬는 댓글 위주였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대응방식을 응원하는 반응이 더 많아졌다. 이 유튜버는 알지 않았을까. 대한민국에서 ‘사과’는 ‘대중으로부터의 손가락질을 받아야 하는 사람’ 으로의 전락을 용인한다는 것이며, 해명은 또다른 해명거리를 불러온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는 이 메커니즘을 정치로부터 학습했다.

추미애 법무부장관의 아들의 ‘권력에 의한 군 휴가 미복귀 논란’ 이 거세다. 여러 단독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는 와중 11일자 오늘은 추 장관 아들의 용산 배치 청탁 의혹까지도 보도 됐다. 그녀의 아들이 카츄사에 지원했던 2016년에서 2018년 사이면 추 장관이 한창 ‘박근혜 대통령이 미용에 2,000억 원을 썼다’ 등 (물론 가짜뉴스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각종 추문들을 살포하고 다니며 국가권력의 사적 남용에 맹렬히 맞서겠다고 촛불혁명인지 뭔지 하고다닐 때라 더 기가 차다.

더 경악스러운 것은 더불어민주당 인사들의 반응이다. 우상호 민주당 전 원내대표는 ‘카츄사 자체가 편한 군대’ 라며 마치 군대 미복귀가 카츄사 세계에서는 별일 아니라는 식의 궤변을 했다. 같은당 소속 김남국 의원은 ‘국민의힘(구 미래통합당)에 미필자가 많아 군 내부사정을 몰라 추 장관 아들 특혜 의혹을 제기한다.’ 고 했다가 망신을 당했다. (군 미필자는 민주당 34명, 국민의힘 12명이다.) 김종민 의원 역시 “추미애 장관 관련 모든 의혹 거의 가짜뉴스” 라고 엄호에 들어가며 야당과 언론에 공익제보한 국민을 가짜뉴스 유포자로 낙인찍었다. (민주당은 평소 내부고발자에 포상금을 올려주는 등 장려하여 기관을 들쑤시는 것이 전공인 당이다.)

문제는 도덕적 타락에 길들여지고 있는 국민이다. 우리는 조국 사태를 겪었음에도 법꾸라지이자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인 그와 그의 가족이 모든 의혹과 비위를 방어해내는 것을 지켜보며 우리 사회의 상식 파괴를 용인해버렸다. 이제 조국 전 장관은 다시 대선후보로까지 거론된다. 어떠한 사죄도 뉘우침도 없다. 그저 ‘사법개혁을 방해하는 이명박근혜 세력의 음모다!’ 로 일관이다.

이번 ‘추미애 아들 비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180석을 갖고 있는 집권여당 당대표 출신의 법무부 장관 추미애는 이 모든 의혹을 “소설 쓰고 있다” 며 깔아뭉개고 버틸 것이다. 공직자의 낯두꺼움에 길들여진 우리는 ‘아, 저래도 되는건가보다.’ 다시 한 번 우리의 상식의 높이를 후퇴시킬 것이다. 매일같이 각종 방송과 뉴스에 얼굴을 들이밀며 우스갯소리로 가족보다 얼굴을 자주 보게되는 정치인들이 “대한민국은 사과하면 끝나는 나라” 라고 몸소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세태는 비단 정치의 영역 뿐 아니라 우리의 삶을 무섭게 파고들며 국민성으로 만들어버리고 있다.

여명 객원 칼럼니스트 (서울시의원)

출처 : 펜앤드마이크(http://www.pennmike.com)

http://www.pennmike.com/news/articleView.html?idxno=35719

 

민주화 부르짖던 운동권, 민주주의 잡는 사냥꾼으로…

 

국민들 촛불 든 이유, 지난 정부 잘못 바로잡으려

‘두려움’과 ‘분노’만으로 민주주의 지켜낼 수 없어

이성의 눈 뜨고 권력 독단과 전횡 똑똑히 살펴야

국민 각자 작지만 자기 몫의 소리 내야 하는 이유

민주주의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나라 안팎에서 많은 학자들이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있다고 진단한다. 최근 책 한 권을 주목하여 읽으며, 큰 충격과 도전을 받았다. 미국의 정치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우리나라 이야기 같아서였다.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 스티븐 레비츠키(Steven Levitsky)와 대니얼 지블랏(Daniel Ziblatt). 전통을 자랑하는 민주주의조차 쉽게 무너질 수 있음을 깨달은 그들은 뉴욕 타임스에 민주주의의 위기를 경고하는 칼럼을 꾸준히 썼다.

그들의 글은 100만 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하며 큰 주목을 받았고, 마침내 출판사의 요청을 받아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How Democracies Die)>로 거듭났다.

‘오늘날 민주주의는 위험에 처했는가?’라는 물음에서 시작하는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저자들은 세계 여러 나라의 경우를 비교한 끝에 민주주의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과정을 거쳐 무너졌음을 발견하고, 몇 가지 신호를 패턴화한다.

독재자가 될 가능성이 다분한 극단주의 포퓰리스트들이 어떤 조건에서 선출되는지, 선출된 독재자들이 어떻게 합법적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지 세계 여러 나라의 사례를 통해 생생하게 보여준다.

국민에게 ‘진정한 민주주의 건설’을 약속했던 베네수엘라의 차베스(Hugo Rafael Chavez Frias)는 대통령에 오르자 무서운 독재자로 변했고, 결국 나라를 망쳤다. “페루를 더 나은 나라로 만들겠다”고 대통령 취임사에서 다짐했던 후지모리(Alberto Kenya Fujimori)도 의회를 해산하고 헌법을 파괴했다.

러시아의 푸틴(Vladimir Putin)도 똑같은 독재자의 전철을 밟고 있다. 민주주의가 그렇게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잠재적 독재자가 권력을 잡으면 위험에 취약하다. 합법적으로 전복되는 민주주의의 붕괴다.

책은 <이솝우화>를 소개한다. 말과 사슴이 싸움을 벌였다. 말은 사냥꾼을 찾아가 사슴에게 복수하도록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사냥꾼은 한 가지 조건을 내세웠다. “사슴을 쫓을 수 있도록 등 위에 안장을 얹고, 고삐로 너를 조종할 수 있도록 입에 마구를 채워야 해.” 말은 기꺼이 동의했다.

드디어 사냥꾼이 사슴을 물리치자 말이 말했다. “이제 그만 내려와요. 입과 등에 채운 것도 풀어주세요.” 사냥꾼이 고개를 저으며 소리쳤다. “이제 막 마구를 채웠잖아. 난 지금 이대로가 좋아.”

말과 사냥꾼의 우화는 오늘날 민주주의가 처한 실상을 대변한다. 정치인은 사냥꾼처럼 자기에게 권력을 몰아주면 좋은 세상을 만들어주겠다고 떠벌린다. 하지만 권력을 잡으면 생각이 달라진다. 권력의 속성이 그런 모양이다.

두 저자는 자신들이 파악한 패턴 속에서 후보를 가려내는 역할을 내던진 정당, 경쟁자를 적으로 간주하는 정치인, 언론을 공격하는 선출된 지도자 등 민주주의 붕괴 조짐을 알리는 명백한 신호들을 찾아냈다.

결과적으로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은 헌법 같은 제도가 아니라 ‘상호인정/존중(mutual tolerance)’과 ‘권력의 절제(forbearance)’와 같은 규범이라고 이야기하면서, 규범들이 무너질 때 민주주의도 함께 허물어진다는 깨달음을 전한다.

우리가 놓치는 민주주의의 위기 신호는 무엇인가. 저자들은 독재자를 감별하는 4개의 리트머스 시험지를 제시한다. 민주주의 규범을 거부하고, 경쟁자의 존재를 부인하고, 폭력을 용인하며, 언론의 자유를 비롯해 반대자의 기본권을 억압하는지를 유심히 살피라는 것이다. 이 중 하나만 양성 반응을 보이더라도 독재의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들은 최근 민주주의의 붕괴는 군사 쿠데타 같은 비합법적인 방식이 아닌 투표로 선출된 권력에 의해 무너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사실 다수결로 뽑는 민주주의는 선동과 포퓰리즘에 매우 취약하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항상 옳다는 환상을 버려야 할듯 싶다. 하지만 다수결 없는 민주주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민주주의의 출발점은 모든 국민이 주권자라는 ‘국민 주권’이지만,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가 하나의 의사로 통일되어 나타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다수의 의사를 대체적 국민의 의사로 보아야 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다수결은 중요하다. 대표자를 뽑는 것도 다수결이고 선출된 대표자들, 특히 국회의원들이 위원회나 국회의 이름으로 의사결정을 할 때도 다수결이 적용된다.

‘다수결’이란 양날의 칼과 같아 민주주의를 지키면서 파괴할 수도 있다. 그러면 다수의 결정은 항상 옳은가. 인류 역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말해준다.

소수당의 목소리를 일방적으로 무시하는 다수당은 오만·독선·독재에 쉽게 빠질 수 있다. 다수결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는 역사적 경험 때문에, 현대 민주국가들에서는 다수의 독재, 다수의 횡포를 막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다수결’이란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 방식이지만, 이를 자칫 잘못 사용하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통로가 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수결을 존중하되, 항상 소수자 보호를 고려해야 하며, 의회 다수당의 주도적인 역할은 인정하되 소수당의 목소리가 일방적으로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건강한 민주주의’란, 민주적 다수란 주권자인 국민을 대신하기 위한 것이며, 51%의 다수가 49%의 소수 위에 군림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마치 일시적인 정치적 승리를 영원한 것으로 착각하고 적과 동지라는 진영 논리에 빠져 소수를 동반자가 아닌 궤멸하여야 할 악으로 규정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무너지게 한다.

책에서 언급하는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힘은 헌법 같은 ‘제도’뿐 아니라 ‘상호인정/존중’과 ‘권력의 절제’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형식적 법치주의만으로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킬 수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다수의 힘에 취해 불합리한 일이라도 합리적인 것으로 둔갑시킬 수 있다는 착각이 나라를 부패하게 하고 망친다. 이런 식의 오만과 독선은 모두를 불행하게 하며, 결국은 다수 자체가 내부적으로 붕괴하게 한다.

‘극단주의 포퓰리스트는 어떻게 권력을 잡는가’ 부분에서 정당의 약화와 정치인의 타락을 다루고 있다. 갈수록 심화하는 경제 격차와 빈곤으로 분노하는 시민들이 희생양을 찾을 때를 틈타,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선동하고 반민주적인 말과 행동을 일삼는 포퓰리스트들은 늘 있었다고 적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를 대입해보면 희생양은 누군지 자연스럽게 답이 나온다.

‘민주주의는 영원하다’고 장담할 사람이 있겠는가. 벼랑 끝에 선 민주주의. 남의 나라만의 위기가 아니다. 문 대통령은 ‘국민 통합’, ‘겸손한 권력’으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 수 있도록 ‘소통하겠다’고 권력을 요청했다.

하지만 권좌에 오르더니 스스로 공약을 헌신짝처럼 내던졌다. ‘촛불’을 자신이 가진 전가의 보도(傳家寶刀)로 삼아, 반대파는 ‘적폐’라는 이름으로 치고 국민을 나누고 삼권분립의 보루를 허물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과연 건강한가. 저자가 제시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를 사용할 경우, 문재인 정부는 4곳 모두 양성반응을 나타낼 가능성이 농후하다. ‘서로 적대하는 정당, 양극화된 정치, 무너지는 규범’ 등. 민주 규범뿐 아니라 정의, 공정, 양심 등의 도덕규범까지 무너뜨렸다.

게임의 룰(rule)인 선거 제도를 멋대로 고치더니, 헌법까지 자기 입맛대로 바꾸겠다고 떠든다. 상대방의 존재는 애초 안중에도 없다.

기득권 진보는 아직도 운동권인가. 1980년대 운동권처럼 바리게이트를 무너뜨리고 적으로 공격하고 짓밟는 일이 허다하다. 자신들의 폭력과 불법은 묵인하고 상대의 위법엔 몽둥이를 휘두른다. 국기기관을 장악하고 경쟁자와 반대자를 처벌한다.

곰을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난 격이다. 촛불로 전 정권을 내쫓더니, ‘코로나’와 ‘재난지원금’으로 국민의 등에 안장을 얹고 고삐를 채우기 시작했다. 그들은 국가 위기를 즐긴다고 책은 기술하고 있다. 신국가주의의 출현이다.

민주화를 부르짖던 운동권이 민주주의를 잡는 사냥꾼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 많은 국민이 뜨거운 마음으로 촛불을 들었던 이유는 단지 지난 정부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동기가 선하다고 결과가 꼭 아름다운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이제야 비로소 깨닫지만 나라를 반듯이 세우려면 뜨거운 가슴만으로는 부족했다. ‘두려움’과 ‘분노’만으로 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없다.

민주주의의 위기와 정치 실종의 지금이야말로 이 책 읽기를 권하고 싶다. 지금은 차가운 이성을 소환해야 할 시점이다. ‘소통 부재’와 ‘오만한 권력’이라는 현 정권과 전 정권의 행보는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이성의 눈을 뜨고 권력의 독단과 전횡을 똑똑히 살펴야 한다. 갈가리 찢긴 사회, 누군가 경종을 울려야 한다. 자유민주주의가 무너질 때, 권력의 독단과 전횡을 막으려면 국민 각자가 작지만 자기 몫의 소리를 내야 하는 이유다.

이효상 원장

칼럼니스트, 근대문화진흥원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34390

 

양아치와 파시즘

80년대 초반까지 야간통행금지라는 게 있었다. 자정부터 새벽 4시까지 밖으로 나다니지 못하는 제도였는데 없어지고서야 알았다. 우리가 얼마나 답답한 생활을 했는지,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 네 시간을 빼앗기고 살았는지. 통행금지 직전인 23시 무렵에는 귀가하려는 사람들로 택시비가 따따블까지 올라갔고 대안이 숙박업소뿐인 데이트 족들은 길거리에서 실랑이를 벌였다. 심야에 아픈 사람이라도 생기면 파출소로 뛰어야했다. 경찰이 119를 불러주면 환자와 가족들은 병원을 가릴 엄두도 못 내고 그저 감사했던 시절이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어이없고 웃기는 일인가. 하루의 무려 6분의 1을 강탈당하고도 우리는 그것이 부당하다고 느낀 적이 없다. 태어났을 때부터 그랬었고 의례 그러려니 당연시하고 살았기 때문이다. 이게 자유다. 욕구를 추구하는 데 아무런 방해가 없고 다만 그 책임만 다하면 되는 것, 이제는 제약이 거의 없어 이념으로 주장해봐야 도무지 와 닿지 않는 공기 같은 것이 바로 자유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소중한 자유를 그로부터 40년 만에 위협받고 있다. 이른바 코로나 계엄이다. 코로나에 대한 경계와 방역의 중요성에는 100% 동의한다. 그러나 그 방역을 핑계 삼아 이 정권이 벌이는 짓은 ‘자의적 해석에 따른 계엄’이라는 비판을 비껴가기 어렵다.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안 가지 말입니다

이번 주는 이른바 ‘천만 시민 멈춤 주간’이다. 수도권 음식점과 제과점의 경우 밤 9시부터는 식당 안에서 음식을 먹을 수 없고 포장과 배달만 가능하다. 헬스장, 골프연습장, 당구장 등 실내체육시설은 운영 아예 중단이다. 요양시설은 면회 금지에 버스도 야간에는 적게 다닌다. 이 일주일 간 우리는 자유를 반납해야 한다. 전 세계가 겪는 고통이고 우리나라도 심각해질 수 있으니 토 달지도 따져 묻지도 않고 그저 정부 시책을 따르겠다는 국민들과 자영업자들을 보면 눈물이 난다. 왜 이렇게 우리 국민들은 착한 걸까. 다 이상하지만 대표적으로 딱 한 가지만 묻자. 수도권 음식점은 밤 9시부터는 식당 안에서 음식을 먹을 수 없다고 했다. 9시 이전에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자다가 그 시간부터 깨서 활동이라도 한다는 얘기인가. 9시 이전까지 술 마시며 침 튀겨가며 말해도 안전하고 이후부터는 불안하다는 말인가. 이유를 대라. 근거를 대라. 다른 행정명령도 다 마찬가지다. 죄다 자의적이고 즉흥적이다. 체온 체크하고 마스크 쓰고 거리 두고 실내에 앉는 것이 9시 전 음식점보다 더 위험한가. 말이 안 된다. 국민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그래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섬세함 같은 건 하나도 없다. 자유? 그럼 자유 찾다가 죽을래? 따위의 겁박만이 존재한다. 전문가들은 코로나 방역이 중요하긴 하지만 감염 병에 대한 과학적, 의학적 근거도 없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정명령이 남발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가령 실외에서까지 마스크를 착용하는 건 과도한 조치라는 설명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마스크 정책은 실내외를 막론하고 무조건 착용이다.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 보장 따위에는 관심도 없고 왠지 핑계를 만들려는 수작으로 보인다. 어지간한 강심장 아니면 이제는 동네 산책 나갈 때도 마스크 안 쓰기 어렵다. 엄청난 공세에 다들 휘둘려 이제는 민간이 민간을 통제하는 양상까지 보인다. 대통령이 개신교 목사들과 간담회를 했을 때 목사 한 분이 종교의 자유를 너무 쉽게 ‘공권력’으로 제한할 수 있고 예배 중단을 명령할 수 있다는 뜻으로 들려서 크게 놀랐다고 했는데 이 목사님은 너무 늦게 놀란 것이다. 이 정부는 헌법에서도 ‘자유’를 빼고 싶어 하는 자유 알레르기 환자다. 자유 같은 건 안중에도 없고 그래서 침해라는 생각도 전혀 안 드는 분들인 것이다.

생활 속의 파시즘

꼭 무솔리니처럼 검은 셔츠 입고 깡패처럼 로마로 진군해야 파시즘이 아니다. 히틀러처럼 사냥개 으르렁대듯 짖어대야 파시즘이 아니다. 이번에 처음 알았다. 파도처럼 잔잔하게 밀려오는 파시즘도 있다는 걸. 다른 점? 앞의 것이 몽둥이로 뒤통수 갈기듯 한 방으로 승부하지만 뒤의 것은 가랑비에 젖듯 사람을 천천히 마비시키고 옭아맨다. 역사적 연원으로 따져 파시즘을 볼셰비키에 대한 반동으로만 이해하기 쉬운데 정확히 말하자면 파시즘은 개인의 자유와 평등 그리고 이성이라는 자유주의 신념에 대한 부정이다. 물론 이중에 가장 앞서는 것은 자유다. 대한민국은 지금 자유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나라인가. 아시다시피 헌법 제 2장은 권리와 의무의 장이다. 39조나 되는 조항 중 현재 훼손되지 않는 조항이 몇 개나 되는가. 종교의 자유는 안녕한가. 집회의 자유, 언론의 자유는? 자유는 엉망이고 통제는 일상이다. 국민의 일상을 멋대로 통제하는 나라가 정상인가. 민간영역에서 활동하는 자유로운 개인 의사들에게 대통령이 명령하고 통제하는 나라가 정상인가. 그리고 통제의 방식은 왜 이리 고압적인가. 권고도 아니고 무려 ‘명령’이다. 여기가 군대니. 왜 멋대로 명령이니.

부역자들 혹은 양아치들

파시즘은 여러 단계를 거쳐 완성된다. 여기에 최종적으로 꼭 들어가야 하는 요소가 있다. 바로 체제 내 야당의 협조다. 이 야당이 국민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않고 야만에 호응하는 헛소리를 늘어놓을 때 비로소 파시즘은 완성된다. 8.15 광화문 집회와 관련된 미래통합당 원내대표의 발언 몇 개만 추려보자. “공동선에 반하는 무모한 일을 용서할 수 없으며 대가를 치러야 한다.”, “우리 당 소속이 아닌 사람들의 과잉 행동으로 손해 보는 게 있다. 앞으로 더욱 확실하고 명확하게 선을 그을 것이다.” 8.15 집회가 어떤 집회였는가. 3권 분립 망가뜨리는 정권에 항의하기 위해 나온 집회였다. 국민의 자유를 누르고 밟아서 나온 집회였다. 부동산 세금으로 피를 말리고 멀쩡한 사람을 범죄자 취급해 사람들이 뛰쳐나온 집회였다. 당신네들이 안 해서, 책무를 회피해서 나온 집회라는 얘기다. 전광훈 목사가 잘못한 것은 마스크 부실 착용 하나 뿐이었다. 여기다 대고 선을 그으시겠다고? 이 집회를 공동선에 반하는 무모한 일로 몰아 정권에 면죄부를 주시겠다고? 댁들이 하도 놀고먹어 할 일을 대신 했더니 이젠 이런 소리까지 태연하게 하신다. 그리고 선은 국민들이 당신네들한테 벌써 그었다. 이걸 댁들만 모른다. 이해는 한다. 그 어떤 일도, 절대로 결사적으로 하지 않아야 지지율이 올라가는 가련한 운명인 것을. 싸워서 지지율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안 싸워서 지지율을 올리는 비굴한 존재라는 것을. 다 감안하고 봐줄 테니까 입은 좀 그만 놀리시면 좋겠다. 파시즘의 최종적 부역자라는 타이틀을 안기도 버거울 텐데 입방정 떤 죄과까지 떠안으려면 체력이 되시겠나. 가뜩이나 헬스장도 문을 닫은 판에.

자유가 사라지는 풍경

우남은 건국 기념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민주정체政體의 요소는 개인의 근본적 자유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이 말을 이영훈 선생은 이렇게 멋지게 바꿨다. “건국의 의미는 자유인의 공화국 성립” 이렇게 자유는 70년 전 우리가 그것을 모르는 사이에 찾아와 짧은 시간 우리와 함께 하다가 다시 멀어지는 중이다. 자유는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기에는 자유를 누리고 살아온 사람들의 반발과 저항이 너무 극심하다. 그래서 조금씩 사라진다. 오늘은 이걸 양보하고 내일은 저걸 양보하는 동안 우리는 깨닫게 될 것이다. 이제 손 안에 남은 자유가 얼마 없구나. 자유는 유보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사라진다. 자유는 제한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사라진다. 그 공작을 하는 것은 저들과 저들의 파트너 하수인이고 그걸 결사적으로 막는 것은 바로 우리의 할 일이다. 합리적인 저항이 필요한 시기다.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대한민국 문화예술인 공동대표)

출처 : 펜앤드마이크(http://www.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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