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January 28, 2020

中 정부 ‘우한 폐렴’ 언론 통제 심각”…전체주의 독재국가의 실상

기자 감금하고 기사 삭제정부 우한 폐렴언론 통제 심각

중국 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이른바 ‘우한 폐렴’ 확진자 수가 600명에 육박하며 급속도로 확산된 가운데 중국 정부가 우한 폐렴 관련 소식을 전한 언론인을 감금하는 등 정보를 통제하고 있어 피해를 키우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22일(현지시간) “중국은 이번 우한 폐렴에 대해 지난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태보다 빨리 대응했지만 여전히 침묵하고 있고, 정부 입장과 다른 목소리를 처벌하고 있다”고 밝혔다.

NYT에 따르면 홍콩 기자단이 우한 폐렴 환자들이 입원한 우한병원을 취재할 때 중국 경찰은 기자단을 몇시간 동안 구금하며 방송화면 삭제와 휴대전화, 카메라 제출을 요구했다. 중국 인터넷업체 텐센트가 소유한 뉴스 사이트에서는 우한 폐렴 관련 기사가 10시간 만에 삭제되기도 했다.

NYT는 “사스 사태 이후 중국의 공중보건체계가 크게 개선됐지만 동시에 중국 언론과 인터넷, 시민사회에 대한 정부의 영향력도 커졌다”며 “사스 사태 당시에는 정부에 책임을 물었던 언론과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사라져 침묵하거나 방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정보 통제는 언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중국 정부는 우한 폐렴이 확산된 이후 일반 시민들이 개인 소셜미디어에 올린 내용도 검열하고 있다. NYT에 따르면 중국 산둥성 공안당국은 중국 웨이보에 ‘지역에 우한 폐렴 의심 환자가 있다’는 루머를 퍼트렸다는 이유로 주민 4명을 구금했다.

지난해 12월 8일 우한 폐렴이 처음 보고된 이후 중국 정부는 질병이 통제 가능하고, 환자들의 상태는 대부분 경미하다고 주장했다. 홍콩과 태국, 베트남, 일본 등에서 감염 사례가 발견된 이후에도 우한을 제외한 중국 지방정부들은 감염 사례를 보고하지 않았다.

결국 홍콩 언론들이 우한 외 중국 지방도시에서도 우한 폐렴 감염 사례가 나왔다고 보도를 한 후에야 지방정부들이 관련 내용을 알리기 시작했다.

중국 온라인에서는 정부의 정보 통제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중국 언론인 우즈위안은 지난 21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사스 사태가 정부의 통치 방식이 변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아니었다”라며 “남은 것은 오만한 권력과 오염된 정보, 연약하고 고립되고 분노한 다수의 개인뿐”이라고 썼다.

중국 언론인인 유핑은 블로그에 “정부는 정부기관만 전염병에 관해 얘기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은 모두 입을 다물고 있 어야 한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며 “이는 정보 독점”이라고 비판했다.

NYT는 중국 정부의 정보 통제가 결국 우한 폐렴 확산을 조기에 막을 수 있는 방역 능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언론이나 온라인을 통해 정보를 알려 우한 방문을 막았다면 감염 경로를 좁힐 수 있었다는 것이다. 베이징에서 확인된 우한 폐렴 환자 5명은 모두 우한을 방문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1/23/2020012301736.html

, 폐렴사태 투명공개 한다더니기자 감금·기사 삭제 등 통제

우한병원간 홍콩기자단, 몇시간 동안 구금당해

방송화면 삭제, 휴대전화 및 카메라 제출 요구

텐센트 뉴스 사이트에서 관련기사 삭제

[서울=뉴시스] 이재우 기자 = 중국 후베이성(湖北省) 우한(武漢)시를 중심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에 따른 이른바 ‘우한폐렴’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중국 정부가 정보를 통제하고 있다는 외신의 비판이 나왔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22일(현지시간) ‘중국이 치명적인 바이러스 유행에 침묵해 비판받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중국이 지난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태 보다 빨리 대응했지만 여전히 침묵하고 있고, 정부 입장과 다른 목소리를 처벌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NYT는 사스 사태 이후 중국 경제가 급격히 성장하면서 공중보건체계가 크게 개선됐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덩달아 정부의 인터넷과 언론, 시민사회에 대한 지배력도 강화됐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2003년 사스 사태 당시 정부에 책임을 물었던 언론과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침묵하거나 방관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정부는 우한폐렴이 확산된 이후 이른바 ‘루머(헛소문)’를 퍼트린 사람들을 구금하고 정보를 억제하고 있다. 일례로 중국 산둥성 공안당국은 중국 SNS인 웨이보에 ‘지역에 우한폐렴 의심환자가 있다’는 루머를 퍼트렸다는 이유로 주민 4명을 구금했다면서 사람들이 감히 말을 꺼낼 수 없는 환경이라고 했다.

NYT는 사스 사태 당시 홍콩 봉황TV 기자가 중국 정부의 대처를 취재하기 위해 정권 실세인 왕치산 당시 베이징시장을 일주일간 미행했다면서 하지만 이와 같은 취재의 자유는 현재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도 지적했다.

지난주 홍콩 기자단이 우한폐렴 환자 대부분이 입원하고 있는 우한병원에 갔을때 경찰은 기자단을 몇시간 동안 구금하며 방송화면 삭제와 휴대전화, 카메라 제출을 요구했다고 꼬집었다. 중국 인터넷업체 텐센트가 소유한 뉴스사이트에 우한폐렴 관련 기사가 10시간만에 삭제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중국 공산당 최고위원회가 중국 SNS인 위챗에 우한폐렴 관련 보고를 지연하거나 은폐하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게시물을 올렸지만 추후 삭제됐다고도 했다.

중국 정부가 우한에 폐렴이 확산될 당시 체면 유지에 급급했다고도 NYT는 꼬집었다. 이는 사스 사태와 유사한 모습이라는 것이다.

우한폐렴은 지난해 12월8일 처음으로 보고됐는데 우한시 당국은 질병이 통제되고 치료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SNS에 우한폐렴 관련 글을 올린 8명을 루머를 퍼트린 혐의로 조사했다. 우한시 당국은 우한폐렴이 확산되는 와중에도 세계기록 갱신을 위해 4만가구 이상이 참여하는 연회 행사를 지원했다.

중앙정부도 우한시 당국을 지원했다. 국가위생건강위원회 전문가그룹의 일원으로 우한에 파견됐던 왕광파(王廣發) 베이징대 주임교수는 지난 10일 중국중앙TV와 인터뷰에서 우한폐렴은 통제되고 있고 환자들은 대부분 경미한 상태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왕 교수는 11일 뒤 우한폐렴 감염이 의심돼 격리치료를 받고 있다.

홍콩과 태국, 베트남, 일본 등에서 감염 사례가 발견됐을 때도 우한을 제외한 중국 지방정부들은 감염 사례를 보고하지 않았다. NYT는 홍콩 언론들이 우한 외 중국 지방도시에서도 우한폐렴 감염 사례가 나왔다고 보도를 한 이후에야 다른 지방정부 관리들이 나섰다고 지적했다.

NYT는 중국 검열기관들이 인터넷을 통제하고 있지만 중국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정부의 우한폐렴 사태 대처에 실망과 경고의 목소리가 나온다고 전했다.

중국 언론인 우즈위안은 지난 21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사스 사태가 정부로 하여금 통치 방식을 재고하도록 압박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순진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사스 사태 당시 NYT와 인터뷰에 나서 중국이 이를 계기로 진정한 의미의 국제화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우즈위안은 SNS에 “이 체제(중국 정부)는 청렴하고 신뢰할 수 있는 기관, 자신의 얘기를 말할 수 있는 사회를 파괴했다는 점에서는 성공적”이라면서 “(중국에) 남은 것은 오만한 권력과 오염된 정보, 연약하고 고립되고 분노한 다수의 개인뿐이다”고 비난했다.

중국 언론인인 유핑은 자신의 개인 블로그에 “정부는 ‘정부기관만 전염병에 대해 얘기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한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며 “그것은 정보 공개가 아니다. 정보 독점이다”고 지적했다.

NYT는 중국 정부의 결정이 중국인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줬다고도 비판했다. 정보 통제로 우한폐렴을 막기 위한 실마리를 잃어버릴 수 있다고도 우려했다.

만일 온라인과 언론에서 우한폐렴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다면 중국인들은 우한을 방문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베이징에서 확인된 우한폐렴 환자 5명은 모두 사업과 학업, 여가 등을 위해 1월 우한을 방문했다.

아듀, 중국몽(中國夢)

아듀, 중국몽(中國夢)

100년 쯤 엎드려 있어야 할 중국이 너무 빨리 일어섰다. 그들이 좀 먹고 살 만하게 되니 도광양회(韜光養晦)를 버리고 화평굴기(和平屈起), 돌돌핍인(咄咄逼人), 대국굴기(大國堀起) 외치며 기고만장하여 패권에 도전하고 나섰다. 그 모습을 본 한국의 친중론자들이 한미동맹 깨고 중국과 동맹을 맺기 위해 미친 짓을 일삼고 있다. 중국의 화려한 경제성장은 빚으로 쌓아올린 바벨탑의 환각일 뿐, 그 환각에서 깨어나는 순간 중국은 무서운 현실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한미동맹 깨고 나가서 중국공산당에 빨대를 꽂았던 한국의 친중파 인사들, 중국공산당을 위해 일했던 한국 간첩들의 운명도 아주 가까운 미래에 과격하게 정리될 것이다. 그들의 폭망 시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찾아올 것이다.

#1. 우한 폐렴 증후군이 말해주는 핵심 본질

중국 후베이성(湖北省)의 우한(武漢)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2019-nCoV)로 인한 폐렴 공포가 전 세계를 엄습하고 있다. 괴질이나 다름없는 신종 폐렴이 급속 확산되자 중국 당국은 우한 시를 철통 봉쇄했다. 불행하게도 봉쇄 직전 우한에 거주했던 500만 명이 도시 탈출에 성공했다.

우한을 빠져나간 사람들은 대부분 중국 내 다른 도시로 이동했고, 해외로 떠난 사람은 태국으로 2만 558명, 싱가포르로 1만 680명, 도쿄로 9,080명, 한국으로 6,430명이 탈출했다. 빠른 시간 내에 강력한 예방 백신이 탄생되지 않을 경우 ‘우한 폐렴’은 전 세계로 확산되어 미증유의 공포를 양산하게 될 것이다.

2002년 사스 사태 때도 그랬지만, 이번 우한 폐렴도 중국 당국의 보도통제로 인해 초기 방역에 실패하여 화를 키웠다. 만약 중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였다면 ‘우한 폐렴’이 이 지경까지 악화되었을까?

아직도 중국은 언론·출판·사상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공산 전체주의 국가라는 사실, 유튜브조차 시청할 자유가 없고, 인터넷은 중국공산당에 의해 완전 통제 당하고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많을까? 특히 한국의 청와대와 여의도 근처에 그런 바보 미치광이들이 널려 있다는 것이 정통한 관측통의 견해다.

#2. 시진핑과 그의 아버지 시중쉰 이야기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習近平)의 아버지는 중국 공산당 국가원로인 시중쉰(習仲勳)이다. 시중쉰이 누구인가?

1928년 중국공산당에 입당한 그는 중국공산당의 우수 당원이며, 위대한 공산주의 전사, 걸출한 무산계급 혁명가, 중국공산당 및 인민해방군의 탁월한 정치공작 지도자, 섬서·감숙 지역 혁명근거지의 개창자이며 영도자라는 평을 듣는다.

그는 덩샤오핑과 동등한 위치에서 일했던 제1야전군 계통의 원로, 중국공산당 중앙위원,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위원장, 중화인민공화국 8대 원로 가운데 한 명으로 예우 받았다. 그가 이처럼 극진한 예우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 공산화에 반대하는 부농, 지주층, 자본가, 상공인, 지식인, 언론인 등을 무차별로 때려죽이고, 불태워죽이고, 껍질 벗겨 죽이고, 산 채로 매장해 죽이고, 포를 떠서 죽이는 데 앞장섰기 때문이다. 공산당에 반대하는 인간을 얼마나 잔인하게, 많이 죽으냐에 따라 예우하는 수준, 서열이 올라가는 것이 중국공산당 아닌가.

시중쉰은 2002년 5월 사망한 후 베이징의 중국공산당 간부들 묘에 묻혔는데, 시진핑이 2005년 5월, “고향 땅에 묻히고 싶다”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시안(西安) 근교, 샨시성(陕西省) 후핑현(富平縣) 북쪽의 타오이촌(陶艺村)에 이장했다.

아버지 묘 이장 후 시진핑은 국가주석에 올랐고, 부패척결을 앞세워 정적들을 차례로 숙청한 다음 종신 주석이 됐다. 미신 좋아하는 중국인과 한국인들 사이에 “시진핑이 아버지 유골을 명당에 묻은 덕에 아들이 권력의 정점에 올랐다”고 풍수지리의 오묘함을 격찬했다.

시진핑은 국가주석 취임 후 고도로 강화된 언론 통제, 공안통치, 사상통제로 시진핑 1인 독재체제를 굳혔고, 중국은 완벽한 공산 전체주의 사회로 돌아갔다. 그는 말이 주석일 뿐 사실상의 황제다. 이제 중국에서는 연구원들 연구 주제조차 당이 정해주는 대로 하지 않으면 그날 부로 실종되는 공포통치의 세상으로 돌변했다.

기억해야 할 점이 있다. 중국 역사에서 절대권력자의 말로는 반드시 비참하게 끝났다는 사실을…. 황제가 죽을 때까지 1인 독재 체제로 군림하며 인터넷, 언론, 정보를 통제하고, 안면인식 기술을 통해 조지 오웰이 예고한 전체주의 국가를 현실 사화에서 구현하고 있다. 이런 공산집단이 세계 패권에 도전하겠다고 항공모함 만들고, 남중국해 항행의 자유를 억압하고, 중국 인민과 전 세계인들을 사스 공포, 폐렴 공포, 페스트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중국 인민들이 들고 일어나야 한다. 권력 세습을 통해 공산 전체주의 지옥에서 헤매고 있는 중국 인민들이 깨어나야 한다. 중국 인민들이여. 당신들은 공산당에게 사육 당하는 개돼지가 아니다. 홍콩 시민들처럼 지금 당장 들고 일어나 공산 전체주의 체제와 싸워 ‘개인의 자유’를 쟁취하라!

#3. ‘건국과 호국의 기적을 건국 신화로!

대한민국 건국은 기적이었다. 그 기적을 현실로 만든 사람이 이승만이다. 그가 아무리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을 섭렵한 국제정치학 박사이고, 미국 내에 지인이 많았어도 38선 이남 지역에 대한민국이 건립된 것은 디아스포라로 전 세계를 떠돌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을 건국한 것과 비견되는 기적이었다.

조선민족 해방의 과정, 대한민국 건국 과정을 복기해보면, 이것은 하늘의 섭리라고밖에 설명이 안 되는 부분들이 너무 많다. 태평양전쟁을 치렀던 미국 입장에서 보면 조선은 그들이 원했던, 아니면 강제적인 요구에 의해서였건 간에 일본 군국주의 전쟁 수행의 협조자였다.

전쟁 수행 협조자 입장에서 한국은 예외를 인정받아 1943년 12월 카이로 회담에서 연합국 수뇌들은 “한국 인민의 노예 상태에 유의하여 적당한 시기(in due course)에 한국이 자유롭고 독립되게 할 것을 결의”한다고 발표한다.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의 독립을 약속한 내용이 삽입된 것도 이승만의 노력 덕분이었음이 최근에 와서야 밝혀졌다.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이 나라 국민들에게 ‘개인의 자유’를 선물한 사람이 이승만이다. 중국은 ‘개인의 자유’를 말살하고 공산 전체주의 통제사회의 모범을 보이고 있다. 그런 중국과 손을 잡고 동맹을 체결하려는 세력이 문재인 정권이다.

한반도 문제를 미소공동위원회에서 지지고 볶을 것이 아니라 유엔으로 가져가야 한다는 아이디어의 창안자도 이승만이요, 6·25 남침전쟁이 벌어졌을 때 1949년 6월 말 남한에서 철수하여 발을 뺐던 미군과 유엔군의 파병 과정도 기적의 연속이었다. 또 주한 미국대사,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을 마치 부하 거느리듯 했던 이승만의 진면목이 역사적 사실로 낱낱이 밝혀질 때 이승만의 위대함은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세계정세의 흐름을 꿰뚫어 본 이승만은 한미상호방위조약과 한미합의의사록에 의해 한미동맹 체제를 이 땅에 확고하게 박아놓았다. 방위조약 체결도 이승만이 애걸복걸한 것이 아니다. 미국이 “제발 휴전에 반대하지 말아달라”고 통사정, 애원을 하여 성사시킨 것이다. 그렇게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이 확고하게 다져놓은 한미동맹을 깨고 대한민국을 중국의 세력권으로 끌어넣기 위해 전 국민을 기만하고 있는 괴물 집단이 문재인 정권이다.

그들의 목적은 간단하다. 이승만이 국민 개개인에게 선물한 ‘개인의 자유’를 회수하여 중국공산당에게 반납 귀속시키려는 것이다. 이승만이 주도한 대한민국 건국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루터의 종교개혁, 칸트의 영구평화론, 미국의 독립선언서에 그 뿌리를 대고 있다. 그 소중한 ‘개인의 자유’를 빼앗아 공산 전체주의의 틀에 가두려는 세력이 지금 한국 사회의 권력을 장악했다.

이런 괴물 집단의 숨통을 끊고 진정한 건국 신화를 정리하고 세워야 할 역사적 의무와 책임이 우리 세대에게 주어졌다.

#4. 싱가포르는 왜 외환위기 때 대한민국을 도왔을까?

1997년 11월부터 대한민국을 강타한 외환위기는 “6·25 이래 가장 심각한 위기”라는 평을 들을 정도였다. 국민들이 장롱 속의 금을 꺼내 외환위기를 타개했다고?

그건 위대한 국민 자각운동의 일환이었지만 역사를 그렇게 해석하는 것은 하나의 픽션일 뿐이다. 진정한 위기 상황에서의 구원투수는 싱가포르였다. 싱가포르투자청(GIC·Government of Singapore Investment Corporation)은 한국이 외환위기를 겪고 있을 때 뭉텅이 달러를 가져다 서울 요지의 부동산을 집중 매입했다. 서울파이낸스센터, 강남파이낸스센터를 비롯하여 상당한 부동산을 소유하는 대가로 한국에 막대한 달러를 투입했다.

싱가포르는 1998년 한국의 외환위기 때 서울 요지의 부동산을 매입하여 막대한 달러를 한국에 공급해 주었다. 싱가포르 같이 작은 도시국가가 그 정도 달러를 동원할 능력이 있었을까? 한국을 위기에서 구해준 그 돈의 근원은 어디일까? 사진은 강남 파이낸스 빌딩.

지금 이 순간까지 싱가포르투자청이 한국에 풀었던 달러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집계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엄청나다. 이 회사는 국내에 사무실도 없고, 워낙 비밀리에 움직이면서 장기 안정적인 곳에 지분 형식으로 투자를 한다. 때문에 어디에 어느 만큼의 달러를 어떤 규모로 투자해 놓고 있는지 그 전모를 파악하기조차 힘들다.

싱가포르는 도시 국가다. 아무리 그 나라가 리콴유(李光耀)를 비롯한 지도부가 훌륭한 리더십을 보유하고 있다 해도 그 엄청난 달러를 일시에 동원하여 해외 투자를 할 능력은 없다.

그렇다면 그 많은 달러는 어디서 나와 한국에 투자한 것일까? 그런 달러를 움직이는 세력은 싱가포르가 아닌, 다른 곳에 있는 것 아닐까? 대체 이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준 달러의 근원은 어디일까? 이런 사실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질 때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좀 더 명확하게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정리한다. 한국이 위기에 처할 때 도와주는 나라는 중국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다. 이는 지금까지의 현대사가 우리에게 보여준 명백한 사실이다. 특히 정치인 여러분, 착각하지 마시기 바란다.

#5. 중국몽(中國夢)을 퍼뜨린 숙주는?

문재인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의 구성분자들은 이 나라 의식화의 은사 ‘리영희 선생’의 세례를 받은 사상적 제자들이다. ‘리영희 선생’은 이미 1970~1980년대에 『8억인과의 대화』,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등을 통해 중국몽을 우리 사회에 깊숙하게, 은밀하게 전파해 온 일등공신이다.

그의 사상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마오쩌둥(毛澤東)의 신민주주의론에 입각한 한국 사회 공산화였다. 즉, 한국을 마오쩌둥의 나라로 만든다는 원대한 구상이었다. 그것이 1980년대 『해방전후사의 인식』으로 사상적 흐름이 이어졌고, 그 결과 문재인·노무현을 비롯한 숱한 중국몽 환자들이 양산되었다.

중국은 한미일 해양 삼각동맹으로 단단하게 엮여 있는 한국을 이탈시켜 중국의 품으로 끌어안기 위해 오래 전부터 은밀한 공작을 시행해 왔다. 중국의 개혁 개방과 더불어 한국에서는 “중국 경제와 연동되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면서 대(對)중국 투자를 범국가적으로 부추겼다. 그 부추김 덕분에 한국의 주력 기업은 물론, 동네에서 구멍가게 하는 사람들까지 돈 싸들고 중국에 투자했다.

동맹의 학문적 정의는 “한 편이 되어 전쟁을 하는 관계”를 말한다. 한국이 미국과 동맹관계를 맺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 지도자들의 입에서 동북아 균형자론이니, “안보는 미국과, 경제는 중국과”라는 슬로건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올 정도가 되었다. 일본과는 반일 종족주의를 무기로 아예 원수지간으로 만들어 회복 불능의 상태에 빠졌다.

한국의 물심양면의 투자와 기술이전 덕분에 중국은 경제 성장을 이루었고, 한국은 중국에 너무 깊이 올인 한 후폭풍을 소름끼치도록 심각하게 겪고 있다. 이제 중국공산당의 말 한 마디에 한국 대통령이 탄핵을 당해 정권이 바뀌고, 특정인이 대통령에 오르는 등 국가 운명이 춤을 추는 세상이 되었다. 임오군란 후 위안스카이(袁世凱)가 파견되어 총독 행세를 할 때처럼 한국은 정치·경제·사회·문화, 심지어 언론도 중국 관련해서는 스스로 보도를 자제할 정도로 완벽한 중국 예속 국가가 되었다.

중국공산당의 공작에 너무나 손쉽게 넘어간 이 나라 지도층의 안보관 결여, 그리고 뿌리 깊은 모화 사대주의와 소중화 사상이 결합되어 빚어낸 찬란한 결과물이 중국몽(中國夢) 현상이었다.

#6. “내각제 개헌외치는 황교안의 정체는?

문재인과 청와대, 더불어민주당은 들쥐떼처럼 중국공산당 편에 줄을 선지 오래다. 최근 들어 중국공산당에 투항하는 복병들이 심심치 않게 나타나고 있다. 인간은 원래가 기회주의적 동물이다. 판세를 보아하니 중국공산당이 대세이니 그 쪽에 줄을 서려는 몸부림일까?

총선을 불과 3개월 앞둔 엄중한 시기에 황교안이란 사람이 ‘보수대통합’을 부르짖으며 유승민과 손을 잡았다. 누가 그런 사람과 통합을 하라고 등을 떠민 것도 아니다. 그 결과 박근혜 탄핵에 앞장섰던 유승민 세력은 너무도 손쉽게 보수대통합의 주인공으로 돌연변이를 일으켰다. 게다가 박근혜 탄핵시키고 반기문 앞세워 내각제 개헌 추진하려던 불순한 이명박 세력들이 대거 보수대통합의 책사로 나서면서 그들이 작전참모 겸 군기반장 노릇을 하고 있다.

이 와중에 정말로 느닷없이 황교안이 “제왕적 대통령제 견제” 운운하며 내각제 개헌의 봉화를 올렸다. 이 양반이 헛발질의 달인인 것은 어느 정도 짐작했지만, 왜 이 결정적인 시기에 이따위 무식한 일을 벌이는 것일까? 혼란의 와중에 전광훈 목사는 김문수를 앞세워 신당 창당을 선언함으로써 보수우파 분열은 점입가경의 핵분열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 글의 독자 여러분께서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판타스틱하게 진행되고 있는 보수우파 분열이 자연발생적인 결과라고 보시는가? 아니면 대한민국을 분해시켜 특정 국가의 영향권으로 끌어들이려는 ‘어둠의 세력’들의 공작이라고 보시는가? 후자를 지지하시는 입장이라면, 냉정하게 이성을 되찾고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대체 황교안과 유승민, 전광훈 이 사람들의 혼네(속마음)는 무엇이며, 진정한 정체는 무엇일까?

#7. 보수우파 핵분열의 뒤안길

황교안의 배신으로 보수대통합은 근본적인 의미를 상실하고 박근혜 탄핵 세력들의 꽃동산으로 돌변했다. 자유한국당은 해체 수순에 접어들었으며, 보수우파는 뿔뿔이 흩어져 각자도생, 자살, 자멸의 길로 향하고 있다. 이번 총선을 통해 문재인 정권을 박살내고 김정은과 시진핑의 손아귀에서 독립을 추구하려던 대한민국 수호 세력들은 또 다시 망연자실한 상황이 되어 하늘만 바라보고 있다.

현행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으로 볼 때 박근혜는 현재 내란 혹은 외환죄가 아니라, 형사상의 이유로 재판을 받고 있다. 법리적으로 해석하면 탄핵은 불법 무효인 것이다.

박근혜 탄핵이 무효가 되면, 법리적으로 따지면 헌재의 대통령 파면도 무효, 국회의 탄핵소추도 무효가 된다. 그리 되면 박근혜가 다시 대통령에 복귀하여 남은 임기를 수행해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 법치를 회복하는 길이자 이 나라가 다시 소생하는 길이다.

그렇게 되면 탄핵에 앞장선 세력은 반역 집단이 된다. 그들은 반역 세력으로 몰려 피바다를 이룰 것이 분명하다. 이런 비극을 원천봉쇄하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박근혜의 복귀라는 최악의 상황을 막아야 한다. 지금 자유한국당의 행보는 ‘보수대통합’이란 명분을 앞세워 명백히 그런 쪽으로 가고 있다. 정치적 저능아이자 무뇌아인 황교안은 그런 국가 반역세력들의 숙주 역할을 성실히 수행 중이다.

#8. 도광양회(韜光養晦)와 대국굴기(大國堀起)의 사이

미국의 중국 포위 전략이 진행된 지 오래다. 중국공산당은 그 포위망을 뚫기 위해 북한에 핵무장, 미사일 기술 넘겨주기 등 별 짓을 다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한반도 남쪽’을 중국화 하기 위해 오래 전부터 집요한 공작을 펼쳐온 결과 이제 남쪽에 심어놓은 중국 간첩들에 의해 스스로 한미동맹, 한일동맹을 파기하고 한반도 남쪽을 중국에 접수시키려는 일보직전까지 와 있다.

세계 질서라는 차원에서 볼 때 19세기 말~20세기 초 고종은 한반도에 러시아를 끌어들임으로써 영국과 러시아의 ‘그레이트 게임’의 질서를 무너뜨린 인물이다. 그 결과 민비 시해, 대한제국 멸망으로 일본 식민지가 되었다.

21세기 미-중 관계는 ‘그레이트 게임’이라고 이름 붙이는 것조차 민망하다. 군사력·정치력·문화력·경제력·기술력 등 모든 면에서 중국공산당은 미국의 게임 상대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덩샤오핑(鄧小平)은 냉철한 현실주의자였다. 그래서 그가 내세운 중국공산당 구호가 도광양회(韜光養晦)였다.

“칼날의 빛을 칼집에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 자신의 재능을 숨기고 인내하며 때를 기다려라. 스스로를 낮춰 상대방의 경계심을 약화시키면서 때를 기다리면 기회는 반드시 온다.”

이 말 속에는 미국과 맞서려면 중국은 적어도 100년 정도는 더 착실하게 준비를 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어떤 나라고 간에 힘이 좀 생겨나면 온몸이 근질거리는 법이다. 일본이 그랬다. 러일전쟁과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세계 패권국 영국와의 동맹을 통해 단숨에 열강 반열에 오른 일본 군부는 간이 단단히 부었다. 태평양의 패권을 놓고 미국과 경쟁을 시작한 일본이 해군력을 대대적으로 건설하자 열강들은 1921년 워싱턴 회담(Washington Conference), 1930년 런던 군축회의(London Naval Conference)를 열어 일본의 해군력 건설에 제동을 걸었다.

일본 군부는 “우리라고 세계 패권국이 못 될 이유는 무엇인가” 하고 반발했다. 그들은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켜 괴뢰국가 만주국을 세웠고, 국제연맹에서 탈퇴했다. 그리고 패권에 도전하는 나치 히틀러, 파시스트 무솔리니와 손잡고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가 폭망했다. 1945년 8월 15일은 한국인들이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날이자, 일본 국민들이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손아귀에서 해방된 날이기도 하다.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얼굴에 기름기가 좀 도니 슬슬 힘을 해외로 투사하기로 작심한다. 그 결과 덩샤오핑 시대의 도광양회 슬로건이 슬그머니 사라지고 2003년부터 ‘평화스러운 가운데 우뚝 일어선다’는 화평굴기(和平屈起)가 등장했다. 한 발 더 나가 ‘필요한 곳에서 적극적으로 행동한다’라는 유소작위(有所作爲)를 내세웠다.

급기야 ‘기세등등하게 힘으로 몰아쳐 거침없이 상대를 압박한다’는 돌돌핍인(咄咄逼人)에 이어 시진핑은 스스로 ‘황제’ 운운하면서 ‘큰 나라로 우뚝선다’는 대국굴기(大國堀起)라는 말까지 앞세웠다. 미국과 맞장 뜨는 것을 불사하겠다고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그런 도전을 무시하고 피하면 패권국의 자격이 없는 것이다. 미국은 반드시 중국공산당의 도전에 격하게 응전할 것이다.

#9. 아듀, 중국몽

중국이 좀 먹고 살만하게 된 것은 스스로의 힘에 의해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대약진운동이나 문화대혁명처럼 10억 인구 굶겨죽이고 때려죽이지 말라고, 최소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유지시켜 달라고, 진정한 인권신장은 배고픔에서의 탈출이라고…. 미국 자본이 달러 대주고, 공장 지어주고 주문 몰아준 결과 10억 인민이 기아에서 탈출했고, 지금 이 정도나마 경제가 성장했다. 해외 자본들은 중국의 개혁 개방에 필요한 막대한 차관을 중국에 빌려주었다. 그 돈으로 공장 짓고, 전력 생산하고, 도로 닦고 철도를 놓았다.

그런 사실을 까맣게 잊고 시진핑은 1930년대 일본 군부가 걸었다가 폭망했던 그 길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다.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개혁 개방 시점부터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왔던 어마어마한 해외 차관의 만기가 끝났다는 사실 말이다.

미국은 조용히 중국의 숨통을 끊을 것이다. 말없이 달러를 회수하면 된다. 만기가 되어 돌아오는 차관을 연장해주지 않으면 중국에서 달러가 귀신 홀린 것처럼 빠져나갈 것이다. 중국의 외환보유고가 3조 1,000억 달러나 쌓아놓고 있는데 무슨 걱정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외환보유고? 그것은 그저 단말기의 깜박거림으로 인한 수치상의 보유고이자, 손에 잡히지 않는 신기루일 뿐이다. 한 번 시동이 걸리면 썰물이 되어 일시에 탈출하는 현상을 우리는 1997~98년 외환위기 때 실감하지 않았는가?

중국의 화려한 경제성장은 빚으로 쌓아올린 바벨탑의 환각일 뿐, 그 환각에서 깨어나는 순간 중국은 무서운 현실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한미동맹 깨고 나가서 중국공산당에 빨대를 꽂았던 한국의 친중파 인사들, 중국공산당을 위해 일했던 한국 간첩들의 운명도 아주 가까운 미래에 과격하게 정리될 것이다. 그들의 폭망 시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찾아올 것이다.

김용삼 대기자 dragon0033@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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