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운영 공식 웹사이트, 최소 10곳 국내 접속 가능…일부러 방치하나

북한 운영 공식 웹사이트, 최소 10곳 국내 접속 가능이적표현물수두룩

‘이적물’ 소지, 7년 이하 징역인데…”위대한 수령 김일성” 그림책 통째로 내려받을 수 있어

북한이 운영하는 공식 웹사이트는 국가보안법·정보통신망법에 따라 국내에서 대부분 차단돼 접속할 수 없다. 차단된 북한 웹사이트에 접속하려면 가상사설망(VPN)을 통해 우회접속해야 한다. 그러나 20일 오전 본지가 확인한 결과 최소 10곳의 북한 공식 웹사이트에 VPN을 이용하지 않고 국내에서 자유롭게 접속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일부 북한 웹사이트에서는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로 분류되는 서적 등 각종 문서를 아무런 제약 없이 무더기로 내려받을 수 있었다. 이들 문서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 등 북한 지도자와 북한 체제를 찬양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날 본지 취재 결과에 따르면, 오스트리아 빈대학의 북한전문가 루디거 프랑크 교수가 지난해 5월 북한대사관으로부터 받아 공개한 북한의 공식 웹사이트 37곳 가운데 총 8곳이 국내에서 VPN 없이 PC와 스마트폰을 이용해 자유롭게 접속할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조선관광’ ‘만물상’ 외에 ‘남산’ ‘김책공업대학’ 등 추가로 8곳 뚫려 있었다

20일 낮 12시 현재 프랑크 교수가 공개한 북한 웹사이트 가운데 조선관광(www.tourismdprk.gov.kp) 만물상(www.manmulsang.com.kp) 남산(www.gpsh.edu.kp) 조선료리(www.cooks.org.kp) 김책공업종합대학(www.kut.edu.kp) 미래(www.mirae.aca.kp) 고려항공 (www.airkoryo.com.kp) 국가해사감독국(www.ma.gov.kp) 등을 국내에서 접속할 수 있었다.

프랑크 교수가 공개한 리스트에는 빠졌지만 북한의 김일성방송대학이 운영하는 ‘사이버대학’인 ‘우리민족강당’과, 북한의 조선금강산국제여행사가 운영하는 ‘금강산’ 웹사이트도 VPN 없이 국내에서 접속 가능한 상태다.

‘조선관광’은 북한 조선관광총국이 직접 운영하는 관광정보 사이트다. 북한의 주요 관광지, 주제별 관광정보, 축제 및 행사, 입국방법, 국내 교통 등을 상세히 소개한다. 만물상은 2015년 2월26일 설립된 북한의 연풍상업정보기술사가 운영하는 북한판 인터넷 쇼핑몰이다.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고무 등)에 따르면, 북한을 찬양하는 등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해칠 위험이 있는 ‘이적표현물’을 소지하거나 유포·유통할 경우 7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해진다.

정보통신망법 제44조 7 제1항은 국가보안법에서 금지하는 행위를 수행하는 내용의 정보를 유통하면 안 된다고 규정했다. 또 같은 법 제44조 7 제3항은 해당 정보가 국가보안법 위반 정보라고 판단될 경우 중앙행정기관장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통위)에 차단을 신청하도록 했다. 이후 방통위가 통신사업자에게 차단을 요청하면 통신사가 해당 웹사이트 접속을 차단한다. 이 때문에 북한이 운영하는 웹사이트는 관련법상 원칙적으로 접속 차단 대상이다.

北 국립도서관격 인민학습대학당, 김일성 일가 찬양 문서와 서적 수두룩

그러나 본지 취재 결과 국내에서 접속 가능한 북한 웹사이트를 통해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로 분류될 수 있는 각종 서적과 문서를 아무런 제약 없이 파일로 내려받을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표적으로 북한의 국립도서관인 인민학습대학당 웹사이트인 ‘남산’에서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과 사회주의사상을 찬양·고무하는 다량의 자료를 디지털 파일 형태로 내려받을 수 있었다. 북한의 인민대학습당은 단일규모로는 세계 최대 도서관으로 꼽히는 곳으로 알려졌다.

특히 ‘남산’ 웹사이트에서는 북한의 금성청년출판사가 2019년 발간한 서적인 <림강현 외차구전투> 전문을 PDF 파일 형태로 내려받을 수 있었다. <림강현 외차구전투>는 일제강점기 김일성과 함께 항일투쟁을 벌여 ‘혁명1세대’로 통하는 황순희와 박성철의 회상기를 그림책으로 출간한 것이다. 이 책은 국립중앙도서관이 특수자료실에 소장하며, 일반인은 열람할 수 없도록 ‘신청제한’도서로 분류했다.

책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전략적 계획에 의하여 우리 부대는 1938년 봄부터 집안·통화 등지에서 활동하다가 1938년 10월에는 림강에 있는 부대들과 련합하여 대부대로써 발악적으로 날뛰는 적의 후방을 교란하며 더욱 큰 타격을 주기 위하여 다시 림강밀영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명령대로 도처에서 수많은 적들을 격파분쇄하고 다시 그이께서 계시는 주력부대를 찾아가게 되였으니 그 기쁨은 무엇에도 비길 수 없었다”는 등 김일성을 찬양하는 내용이 주로 담겼다.

김일성 등과 동북항일연군에서 활동한 황순희는 ‘여자 빨치산 혈통’의 대표적 인물로, 지난 17일 100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6·25전쟁 당시 서울에 처음 입성한 류경수 전 인민군 105탱크사단장의 아내다. 인민군 사단장으로 6·25전쟁에 참전한 박성철은 노동당 부수상, 외무상 등 북한에서 요직을 두루 거쳤다. 2008년 10월 사망했다.

또 ‘남산’ 웹사이트에 올라온 자료 가운데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이라는 체제 홍보물에는 “혁명과 건설의 주인은 인민대중이며 혁명과 건설을 추동하는 힘도 인민대중에게 있다는 사상”이라며 주체사상의 본질과 구성체계를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안보 구멍났는데…정부 부처는 서로 책임 떠넘기기

북한 공식 웹사이트가 무더기로 뚫리면서 ‘이적표현물’들이 국내로 쏟아져 들어올 위기상황에서 유관 정부 부처는 서로 책임을 떠넘겼다. 통일부 관계자는 본지와 통화에서 “북한 웹사이트 문제는 국가보안법을 취급하는 국가정보원·경찰청과 차단 여부를 심의하는 방송통신위원회 소관”이라고 말했다. 방통위 관계자는 “관련 입장이 따로 없다”고 밝혔다.

노동신문유료화 해 불법 돈벌이정부는 까맣게 몰랐다

일본 업체 통해 ‘노동신문’ 구글 서비스… “국내법 회피해 북한 선전하려는 꼼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강상현)는 주요 정부 부처와 함께 불법적 콘텐츠를 유통하거나 불순한 내용을 담은 인터넷 사이트를 ‘유해매체’로 지정하고 국내에서의 접속을 막는다. 여기에는 ‘이적성’을 띠는 북한 선전매체도 포함된다. 그런데 구글(Google)에서는 북한의 노동신문을 유료로 보는 곳이 검색되는 것은 물론 바로 접속이 가능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안전문가는 “이런 사이트에 유료회원으로 가입할 경우 북한 외화벌이에 도움을 주는 것은 물론 개인신상정보와 금융정보까지 악용당할 수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10일 구글 사이트에서 노동신문을 검색했다. 기존 노동신문(www.rodong.rep.kp)은 접속이 차단된 상태다. 하지만 다른 주소(www.dprkmedia.net)로는 바로 접속돼 기사와 논평 목록을 볼 수 있었다. 이 노동신문은 10일 오전까지 기사 본문도 공개했지만, 오후부터는 이를 비공개로 전환하고 로그인 화면만 보여준다.

이 사이트의 정체는 ‘코리아미디어’가 노동신문을 유료로 보여주는 곳이다. 코리아미디어는 노동신문의 대외 판권을 소유한 일본 기업이다. 지난해 12월 “일본의 코리아미디어가 노동신문 콘텐츠 유료화를 추진한다”는 소식으로 국내에 알려졌다. 그동안 조용했던 이 업체가 10일 새로 사이트를 열고 유료회원을 모집할 준비를 시작한 것이다.

통일부 “모른다”… 방심위 “요청 와야 해제”

정부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 7항 8호에 따라 이적성을 띠는 북한 선전매체의 접속을 차단했다. 조총련계 ‘조선신보’부터 위장 선전매체 ‘아리랑’ ‘우리민족끼리’도 모두 차단 대상이다. 조선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이에 해당하는 것도 당연하다.

통일부는 지난 6월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의 접속을 자유롭게 해달라는 일부의 건의를 받고 의견수렴에 나선 적이 있다. 북한 선전매체에 대한 접속을 차단하거나 해제하는 곳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다. 하지만 먼저 관계 부처의 공식 요청이 있어야 한다. 통일부는 이 규정에 따라 지난 6월부터 북한매체 접속 허용에 관한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밝혔다.

통일부관계자는 “당시 일각의 건의에 따라 의견 수렴을 위한 TF를 만들었지만, 찬반 양론이 워낙 팽팽하게 맞서 그 후로는 진전이 없는 상태”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북한매체 접속 허용 논의가 중단된 뒤 (경찰청이나 방송심의위 등에서도) 북한 매체 접속에 대한 의견을 통일부로 보내온 것이 없다”고 덧붙였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도 이 사이트가 생긴 것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방심위 홍보실 관계자는 “북한 매체에 대한 접속 차단이 해제됐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며 해당 부서를 통해 답변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연락된 방심위 통신심의국 김정한 차장은 “지적한 노동신문은 10일부터 서비스를 시작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기존 노동신문은 메인 도메인을 모두 차단한 상태인데 새로운 도메인으로 서비스하는 것 같다”며 차단 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 차장은 “북한 매체 등의 접속을 차단하려면 정부 중앙부처의 검토와 요청이 있어야만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동열 “노동신문 가입하면 불법”

노동신문 사이트에 로그인 화면만 뜬다고 해서, 일본 기업이 운영한다고 해서 차단 대상에서 제외되지는 않는다는 것이 공안전문가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의 지적이다. 유 원장은 일본 조총련이 운영하는 조신신보도 국내 접속이 불가능하다며 “일본 기업의 사이트라도 이적성이 있으면 차단 대상”이라고 지적했다.

유 원장은 “일본 기업이 운영한다고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북한 노동신문을 유료로 보는 곳”이라며 “이곳에 회원가입해 내는 돈은 북한으로 흘러가는 것이고, 불법을 저지르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유 원장은 “이 사이트는 국내법을 회피해 북한체제를 선전해 보려고 시도하는 꼼수”라며 “만에 하나 호기심으로 노동신문 사이트에 유료회원으로 가입했다가는 개인 신상정보는 물론 금융정보까지 악용될 수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구글은 세계적 검색엔진이자 유튜브를 보유한 글로벌 기업이다. 유튜브는 최근 국내에서 문재인 정부와 북한·중국에 비판적인 유튜버들의 콘텐츠에 무차별적으로 광고 탑재를 차단하는 ‘노란 딱지’를 붙인다는 정황이 포착돼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그런데 구글에서 이적성을 가진 북한 선전매체들이 그대로 검색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