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멋대로‘ 속셈 드러나… 공수처 ‘기소심의위원회‘ 없앴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신설법 관련 수정안에 최종 합의했다. 공수처의 기소권을 견제할 장치로 거론되던 ‘기소심의위원회’를 설치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수정안에 따르면, 대통령이 사실상 공수처장 등 인력 구성원을 임명하는 구조다. 여기에 기소심의위원회마저 두지 않기로 하면서 ‘공수처의 무소불위 권력’화에 대한 비판이 커졌다.
23일 정치권과 법조계 등에 따르면, 여야 ‘4+1 협의체’는 이날 공수처 법안 관련 수정안과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에 합의했다. 법조계에서는 공수처 법안 수정안이 화두로 떠올랐다. ‘4+1 협의체’가 ‘공수처에 기소심의위원회를 두지 않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4+1 협의체’는 이 같은 합의안을 국회 본회의에 상정하기로 했다. 이 협의체는 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당권파, 정의당, 민주평화당, 대안신당이 만들었다.
공수처 관련 법안으로는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안과 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안이 있다. 지난 4월 법안 발의 당시에도 공수처법에 대해 ‘무소불위 권력이 될 것’ ‘기소독점주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등 법조계 비판이 있었다.
기소심의위원회 설치 않기로
기소심의위원회는 공수처의 기소를 견제할 유일한 장치였다. 지난 4월29일 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안에는 ‘기소심의위원회 설치’ 관련 내용이 담겼다. 이 안 14조를 보면, 기소심의위원회는 공수처의 공소제기 여부를 심의 의결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공수처 검사가 공소제기를 결정할 수 있다. 다만 기소심의위원회의 결정은 구속력이 없고, 권고적 효력밖에 없다.
이번 수정안으로 인해 법조계에서는 공수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공수처의 기소권을 견제할 기소심의위원회가 설치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법조계는 그동안 공수처 구조, 수사·기소 대상 등을 두고 여러 문제를 제기했다. 그럼에도 ‘4+1 협의체’는 이 같은 문제 대부분에 대해 원안을 유지했다.
공수처가 또 다른 권력기관으로 변신
우선 거론되는 문제점은 공수처가 또 다른 권력기관으로 전락할 수 있는 구조라는 점이다. 공수처장추천위원회는 위원 7명 중 6명의 찬성으로 공수처장후보 2명을 추천한다. 대통령은 그 중 1명을 택하고,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한다. 공수처 검사를 대통령과 공수처장 중 누가 임명할지에 대해서는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사실상 대통령에게 공수처 수사인력 임명 권한이 있다는 지적이다.
또 수사 대상과 기소 대상의 불균형 문제도 있다. 공수처 수사 대상은 대통령, 국회의원, 대법원장·대법관, 헌법재판소장 및 헌법재판관, 국무총리와 국무총리비서실 정무직공무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정무직공무원, 판·검사, 경무관 이상 경찰공무원 등이다. 반면 기소 대상은 판·검사, 경찰 등으로 한정됐다. 이 같은 내용도 ‘4+1 협의체’에서 합의됐다.
“간접적 견제장치였는데… 무소불위 권력 의도”
검찰 출신인 형사전문 강민구 변호사는 “공수처의 기소심의위원회가 큰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이 위원회가 있다면 간접적으로나마 (공수처를) 견제할 수 있는데, 이마저 두지 않을 경우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과 공정성에 대한 최소한의 견제책마저 전혀 없게 된다”고 우려했다.
서울 서초동의 A변호사는 “사실 기소심의위원회를 두든, 두지 않든 그 심의위원회는 권고적 효력 밖에 없어서 공수처를 견제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라면서 “그럼에도 심의위원회조차 두지 않겠다는 것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학계에서도 비판적 목소리가 나왔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 교수는 “공수처의 본질적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대통령이 (공수처장) 임명권을 행사할 수 없어야 한다”며 “(그나마) 기소심의원회를 둔다면 어느 정도의 견제는 가능할 것 같은데, 그마저 없애면 무소불위 권력의 시녀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공수처 만들어선 안 되는 4가지 이유
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일명 ‘공수처’의 설치 논쟁은 23년 전 참여연대가 부패방지법을 입법청원하면서 시작됐다. 제16대 국회부터 지금까지 수없이 발의됐으나 매번 국회의 회기만료로 폐기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정이 좀 다르다. 버닝썬, 김학의 전 법무차관, 고 장자연 사건 등 경찰·검찰·권력층이 결부된 사건들로 인해 국민의 분노가 한껏 고조된 지금의 분위기상 이른바 패스트트랙(신속 처리 안건)을 타고 공수처 설치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1년 발간한 저서 ‘운명’에서 ‘민정수석을 두 번 하면서 끝내 못한 일, 그래서 아쉬움으로 남는 일, 그 첫 번째가 공수처 설치 불발’이라고 밝혔을 정도로 대통령을 비롯한 현 정권 인사들은 공수처 설치에 집착하고 있다. 고위공직자의 부정부패를 수사할 수 있는 기관을 별도로 설치하면 검찰과의 상호 경쟁의 원리에 따라 부패행위의 적발과 처벌 기능이 강화되고, 이러한 기구가 상설화되면 단기적 처방인 사후 단속에만 그치는 게 아니고 장기적으로 예방적 프로그램까지 병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는 듯하다.
하지만 공수처의 실체를 냉철하게 들여다보면 설립 취지인 부패 척결과 검찰권 통제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그 속에 심각한 문제점들이 숨겨져 있다.
첫째, 공수처장을 비롯한 공수처 조직을 어떻게 구성하든 정치적 중립성은 절대 보장될 수 없다. 공수처장이 임명권자의 의중에 따르거나, 자신이 임명된 정치적 배경을 고려해 수사 대상자를 선정할 가능성을 결코 배제할 수 없다.
둘째, 공직 비리는 상당 부분 민간 부문의 부패와 연계되는데, 이를 무 자르듯 잘라 공수처와 검찰이 나눠 수사하게 되면 수사의 역동성을 훼손시켜 부패 범죄인들이 빠져나갈 기회만 주게 된다.
셋째, 공수처는 그 설립 취지와 달리 사찰 기구로 변질될 우려가 크다. 고위공직자 비리 수사는 비리 행위에 대한 첩보 수집과 인지가 필수적이므로 수사 대상자에 대한 상시적인 미행, 감시 및 사찰 등 법치주의를 위반하는 불법행위가 자행될 가능성이 매우 크지만 이를 현실적으로 통제·감시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
넷째, 공수처를 통해 기소 권한을 나누는 건 국가의 구성원리 또는 근대 형사사법 체계와 맞지 않다. 기소권이 분점되면 소추기관과 재판기관이 맞대응해야 한다는 탄핵주의 원칙상 공수처에 대응하는 특별법원이 있어야 하는 문제점도 있다.
공수처만 설치하면 부패 문제가 개선될 것이란 착각은 버려야 한다. 이러한 착각을 심어주는 정치인들의 정치 선전도 중단돼야 한다. 공수처의 정치적 독립성을 확보하고 공수처의 막강한 권한을 통제할 방안이 있다면, 그 방안을 기존 검찰 조직에 대입해 검찰의 정치적 독립성을 확보하고 외부적 통제를 강화하면 된다. 공수처는 여러 사람이 기대하는 것처럼 순기능적 기구가 되기보다는 더욱 정치화된 옥상옥의 기구가 될 수밖에 없다.
한번 만들어지면 결코 쉽게 없어지지 않는 것이 조직의 생리다. 부패의 문제는 부패 발생의 근본 원인을 발본색원하고 구조적 부패 환경을 개선해야 하는 것이고, 검찰의 문제는 검찰 조직과 인사 시스템을 개편해 검찰의 정치적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공수처라는 새로운 조직을 설치하면 이러한 문제들이 한 방에 해결될 수 있다는 선전전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그 어느 때보다 국민의 현명하고 냉철한 판단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