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을 넘어 문명의 충돌로 나아가는 미중 패권경쟁

도둑질발언 펜스 부통령의 대중 연설이 의미하는 것

허드슨인스티튜트는 미래학자이자 군사전략 분석가인 허만 칸이 1961년 뉴욕에서 설립한 싱크탱크다. 정치적으로 보수를 지향하는 허드슨인스티튜트는 현재는 워싱턴에 본부를 두고 있다. 미 공군을 위한 정책 개발을 하고 있는 RAND연구소도 지원하고 있다.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은 지난 10월 4일(현지시각) 허드슨인스티튜트에 나가 ‘미 행정부의 중국 정책’이라는 제목의 연설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가운데, 부통령이 중국에 대한 미 행정부의 기본 시각을 정리해서 발표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펜스 부통령은 이 연설에서 중국에 대해 “도둑질(theft)”이라는 표현을 구사해가며 강력한 내용의 연설을 했다. 펜스 부통령은 연설 앞부분에서 미국과 중국의 전함이 지난 9월 30일 남중국해에서 거의 충돌할 뻔했던 사건을 상세하게 언급했다.

“베이징 당국은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힘을 사용하고 있다. 중국 함정들은 정기적으로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 주위를 순찰하고 있다. 센카쿠열도는 일본이 실질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섬들이다. 2015년 백악관 로즈가든에 섰던 중국 지도자는 중국이 남중국해를 군사화할 의도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베이징은 더욱 발전한 대함(對艦)미사일과 대공(對空)미사일을 장착한 군함들을 남중국해의 인공섬에 건설한 중국 군사기지들에 이미 배치했다.… 중국의 공격적인 태도는 이번주에 잘 나타났다.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 작전을 수행 중이던 미국의 구축함 디케이터(Decatur)함 45야드 거리로 중국 해군의 구축함이 다가왔다. 우리의 디케이터함은 충돌을 피하기 위해 긴급 기동을 해야 했다. 미 해군 함정은 중국 해군의 그런 공격행위에도 국제법이 허용하는 항행을 계속했다. 우리는 우리의 국익을 지킬 것이며 결코 위축되지 않을 것이다.”

미 해군이 제공한, 디케이터함과 중국의 구축함 란저우(蘭州)함의 대치 사진을 보면 길이 150여m의 최신 미사일 구축함 두 척이 초근접하는 장면과, 디케이터함이 충돌을 막기 위해 회피 기동하는 장면이 잘 나타나 있다. 미 해군은 란저우함이 선미로 디케이터함의 뱃머리 쪽을 가로막아 충돌 일보직전이었으며, 두 군함의 거리는 41m에 불과해서 충돌을 피하기 위해 디케이터함이 오른쪽으로 선수를 돌렸다고 주장했다. 펜스 부통령은 두 구축함 사이의 거리를 ‘45야드’라고 표현했는데 골프가 생활화되어 있는 미국인들에게 45야드라는 거리는 그린 주변에서 웨지 클럽으로 짧은 어프로치를 하는 거리로 인식되고 있다.

디케이터함은 당시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스프래틀리제도(중국명 난사군도·南沙群島)의 게이븐(중국명 난쉰자오·南薰礁), 존슨(중국명 츠과자오·赤瓜礁) 암초 12해리(약 22㎞) 이내 해역에서 ‘항행의 자유 작전’을 수행 중이었다. 미국은 2015년 10월 구축한 라센함의 스프래틀리제도 진입을 시작으로 1개월에서 7개월 단위로 총 12차례 항행의 자유 작전을 수행했다. 디케이터함은 2016년 10월 21일에도 스프래틀리제도의 게이븐·존슨 암초에서 지그재그 기동을 수행한 바 있다.

펜스 부통령은 이번 연설에서 지난해 4월 6일과 11월 8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설명했다. 4월 6일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미국을 방문해 트럼프 소유의 마라라고 골프장에서 서로 친근감을 과시한 때이고, 11월 8일은 트럼프가 베이징을 방문해서 황제 대접을 받던 날이다.

“지난 2년간 우리 대통령은 중화인민공화국 주석과 개인적인 친분을 쌓았고,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서로 긴밀히 협조해왔다. 그러나 내가 오늘 여러분에게 이런 연설을 하게 된 것은 미국 국민들이 왜 베이징 당국이 정치, 경제, 군사적, 그리고 선전 수단을 모두 동원해서 미국 내 자신들의 영향력과 이익을 확대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전보다 훨씬 적극적인 방식으로 우리 미국의 국내 정책과 정치에 간섭하려고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우리 행정부로서는 중국의 그런 행동에 결단력 있는 반응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판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원칙과 정책을 지키기 위해 행동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펜스는 중국의 현대사와 자신의 개인적인 배경을 들어가며 연설 배경을 설명하기도 했다.

“2차 대전이 시작됐을 때 우리 미국과 중국은 (독일·이탈리아·일본의) 제국주의에 대항해서 싸우는 같은 편에 서 있었다. 전쟁 후반부까지도 우리 미국은 중국이 유엔의 일원이 될 뿐만 아니라 전후 세계를 만들어가는 중요한 국가임을 확신했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이 1949년 권력을 잡은 뒤 그들은 독재체제를 확산시키려는 노력을 시작했고, 불과 5년 뒤에 (펜스의 착각, 실제로는 1년 뒤 1950년) 우리 미국과 중국은 한반도의 산과 계곡에서 서로 싸웠다. 나의 아버지는 자유를 지키기 위한 최전선에서 전투를 목격했다. 잔인한 한국전쟁은 미국과 중국의 상호관계를 멀어지게 만들었고, 그런 관계는 1972년에야 끝났다. 우리는 외교관계를 다시 수립했고, 경제를 서로 개방했고, 미국의 대학들은 중국의 새로운 세대와 엔지니어, 기업인, 학자, 관리들을 교육하기 시작했다. 소련이 붕괴되자 우리에게는 보다 자유로운 중국이 필요했다. 21세기로 들어오면서 미국은 낙관적인 생각에 따라 중국이 우리 경제에 접근하는 것을 허용했고, 중국을 WTO(세계무역기구)로 안내했다.”

이어 펜스의 연설은 이런 내용으로 이어졌다.

“우리의 이전 정부들은 중국 내에서 어떤 형태로든 자유가 확산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희망은 경제적으로는 이루어지는 듯했으나 정치적으로는 그렇지 못했다. 사유재산, 종교의 자유, 그리고 온 가족이 누리는 인권 자유가 잘 자리 잡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그런 희망은 제대로 채워지지 않은 채 사라졌다. 자유의 꿈은 중국 국민들과는 아직도 거리가 멀다. 베이징 당국은 여전히 ‘개혁과 개방’을 할 것이라고 립서비스를 하고 있지만, 덩샤오핑(鄧小平)이 제시한 개혁개방 정책은 요즘에는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25년 만에 중국 재건축하겠다

“지난 17년간 중국의 GDP는 9배로 커져서 세계 2위의 경제 규모를 갖게 됐다. 이런 성공의 대부분은 중국에 대한 미국인들의 투자로 이루어진 것이다. 중국공산당은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 관세와 환율 조작, 강제적인 기술이전, 지적재산권에 대한 절도행위, 그리고 산업 보조금 지급 등의 정책들을 마치 캔디를 뿌리듯이 사용하고 있다. 중국공산당의 이런 정책들은 베이징에 산업기지를 만들었고, 주로 미국의 경쟁력을 약화시켰다. 중국의 그런 행동들은 미국에 무역적자를 안겨주었다. 지난해 미국의 중국에 대한 무역적자는 3750억달러에 달했다. 그 규모는 우리 미국의 전 세계에 대한 무역적자의 절반에 가까운 것이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주에 ‘25년 만에 중국을 재건축(rebuild)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지금 중국공산당은 ‘메이드 인 차이나 2025(中國製造 2025)’라는 계획을 세우고, 전 세계 선진기술의 90%를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는 로봇산업, 생명공학, 인공지능이 모두 포함돼 있다. 중국은 21세기의 경제 수준 확보를 위해 관리와 기업인들을 총동원하고,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서 미국의 지적재산을 획득하려고 하고 있다. 베이징 당국은 많은 미국 기업인에게 중국 내에서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권리를 대가로 미국 기업의 비밀을 넘겨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들은 미국 기업을 사들이는 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악의 상황은 중국 정보기관들이 미국의 최첨단 군사 청사진들을 대규모로 도둑질(theft)해왔다는 사실이다.… 중국은 아시아 곳곳에서 미국의 군사적 이점들을 잠식하려고 시도하고 있고, 그런 시도들은 육지에서, 바다에서, 그리고 우주에서 진행되고 있다. 중국이 원하는 것은 미국을 태평양 서쪽 지역에서 밀어내는 것이고, 미국이 이 지역의 동맹국들을 돕지 못하도록 차단하려고 하고 있다.”

중국의 도둑질공개 비판

펜스 부통령이 말한 ‘태평양 서쪽 지역’과 관련해 7년 전 오바마 행정부 당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이 지역의 우리의 전통적인 친구들, 일본과 한국, 필리핀, 태국, 오스트레일리아 등과 힘을 합해 자유로운 시장경제가 잘 발전하는 지대를 만들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클린턴 당시 국무장관은 2011년 10월 하와이 이스트웨스트센터에서 한 ‘21세기는 미국의 태평양 세기’라는 연설을 통해 그렇게 선언했다.

그로부터 7년이 흐른 시점에서 이뤄진 펜스 부통령의 이번 연설 내용으로 보면 오바마 행정부의 서태평양 중국 저지 정책은 제대로 성공을 거두지 못한 채 트럼프 행정부로 넘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국정 전반의 부족한 곳을 메우는 것이 주임무인 펜스 부통령이 직접 나서 중국에 대한 정책을 종합적으로 재점검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을 내리고 이번 연설을 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로서는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이처럼 심상치 않은 대결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점을 잘 관찰해야 한다. 북한 핵 문제 해결과 대외정책 수립에 이러한 미·중 관계부터 심각하게 참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 진행 중인 미·중 관계 흐름과는 동떨어진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구축 방안은 실효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많다. 혹시라도 우리 정부가 미국보다는 중국 쪽에 기울어지고 있다는 판단을 미국이 하게 될 경우 우리는 혹독한 부담을 떠안지 않을 수 없게 될 전망이다. 펜스 부통령의 연설뿐만 아니라 미국의 이스터블리시먼트(기성체제)에서 진행되는 중국에 대한 정책 변화의 흐름을 놓치지 말고 잘 지켜보아야 할 때다

트럼프 표적은 中國 아닌 공산당

미국이 중국과 본격적인 대결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제는 무역전쟁에서 ‘국가 이념을 건 싸움’으로 돌입하고 있다. 그것이 분명하게 된 것은 미국방부가 지난 6월1일 발표한 ‘인도태평양전략보고’였다. 2019년판으로 나왔는데 이런 보고가 공식적으로 나온 것은 처음이다. 핵심내용을 보면 그래도 수긍이 간다. ‘중국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가 미국의 안전보장에서 가장 중요과제였기 때문이다.

미국은 중국을 어떻게 보고있는가? 보고에서 ‘자유vs억압’이라는 ‘세계질서를 둘러싼 비전의 지정학적인 싸움’이야말로 안전보장상의 주요한 불안으로 자리잡았다. 말할 것도 없이 ‘억압세력’은 중국이고 ‘자유의 수호신’이 미국이라는 인식이다.

미국이 이러한 대립구도로서 특정국을 자리매김한 것은 미소냉전 이래 처음이다. 1947년 당시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은 “소련은 공포와 압정으로 성립되어있다. 미국은 외압에 의한 정복에 저항하는 자유의 국민들을 지원할 것”이라고 연설하여 소련에 냉전개시를 선언했다. 유명한 ‘트루먼 독트린’이다.

이번 보고는 그런 말투로 중국과의 싸움을 정의했다. 말하자면 ‘트럼프 독트린’이라고 해도 좋다. 이것만 보더라도 미국이 중국과의 싸움을 ‘자유라는 나라의 이념을 건 새로운 냉전’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트루만 독트린과 트럼프 독트린

이러한 인식은 사실 2017년 12월 백악관이 발표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서문을 쓴 국가안전보장전략에도 조심스럽게 등장했다. 거기서 미국이 직면하고 있는 과제는 ‘인간의 존엄과 자유에 가치를 두는 세력과、개인을 억압하여 획일주의를 강제하는 세력과의 근본적인 대립’이라고 적혀 있는 것이다.

트럼프정권은 당초부터 중국과의 대결을 ‘자유를 억압하는 세력과의 불가피한 싸움’으로 보고 주도면밀하게 준비해 왔다. 무역전쟁은 어디까지나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한 입구에 지나지 않다. 싸움의 핵심은 ‘자유인가? 아니면 독재자에 의한 억압인가?’였던 것이다.

미 국방부의 지난 6월 1일 인도태평양전략보고에서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은 중국을 지칭하는 데도 ‘중국공산당이 지배하는 중국’이라고 주석을 붙였다는 점이다. 그것은 다음의 기술에도 나타나 있다.

“국민이 자유시장과 정의, 법의 지배를 갈망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중국공산당이 지배하는 중국은 자국의 이익을 탐하면서 국제시스템을 손상시키며 룰에 근거한 질서의 가치와 원칙의 다수를 침해하고 있다”

◇한국, 일본, 호주, 대만, 인도 등 反中연대 제안

인도태평양전략보고는 중국 내부의 ‘선량한 국민’과 ‘악당인 공산당’을 확실하게 구별하고 있다. 트럼프정권이 싸우고 있는 대상은 중국이라는 나라가 아니라 공산당인 것이다.

그런 중국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 인도태평양전략보고는 한국과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필리핀, 태국 같은 동맹국 외에 싱가포르, 대만, 뉴질랜드, 몽골, 인도 등 20개국 이름을 거론하며 미국과의 연휴강화를 소리높이 외쳤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중국봉쇄’다.

이것이 미국의 진심이다. 때문에 한국은 단순히 ‘미중 무역전쟁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수준의 손익계산서를 따져서는 곤란하다. 국가전략을 근본부터 새로 짜야 하는 것이다. sopulgo@jayoo.co.kr

출처 : 더 자유일보(http://www.jayoo.co.kr)

미국과 다른 가치로 도전하는 중국미국은 억누를 수밖에

“(미국의) 중국과 라이벌 관계는 미국이 이전에 겪지 않았던 진정 다른 문명, 다른 이데올로기와 싸움이다. 중국 체제는 서구의 철학과 역사에서 탄생한 게 아니다. 미국이 백인(Caucasian)이 아닌 대단한 경쟁자를 가지는 것은 처음이다.”

카이론 스키너 미국 국무부 정책기획국장이 4월 29일 워싱턴에서 열린 ‘미래안보포럼’에서 한 발언이다. 미국 주요 당국자가 중국과 관계를 새뮤얼 헌팅턴 교수의 책 제목이기도 한 ‘문명의 충돌’의 개념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스키너 국장은 레이건 시대의 냉전 종식을 다룬 저서 ‘레이건, 그 자신의 손으로(Reagan, in His Own Hand)’로 유명하다. 워싱턴이그재미너 등 미 언론에 따르면, 스키너 국장이 이끄는 정책기획국은 ‘레터(Letter) X’라는 이름으로 중국과 충돌 관련 문서를 작성하고 있다. 냉전 시기 소련 봉쇄 전략의 토대가 된 미국 외교관 조지 캐넌의 ‘X 아티클(Article)’을 본뜬 것이다.

스키너 국장의 발언을 겨냥한 듯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5월 15일 제1회 ‘아시아 문명대화 대회’ 개막 연설에서 “자국 인종과 문명이 남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고 다른 문명으로 개조하려거나 심지어 대체하려는 생각은 어리석다”며 “평등과 존중의 원칙으로 오만과 편견을 버리고 서로 다른 문명과 교류와 대화로 상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시 주석은 이어 “각종 문명은 원래 충돌이 없었다”면서 “문명 교류는 대등하고 평등해야 하며 강제적이거나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중국을 세계화에 편입시킨 건 민주화 바랐기 때문이었다

18세기 후반 산업혁명 이후로 서구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해 왔다. 일본의 탈아론(脫亞論)을 시작으로 세계 대부분 나라는 서구식 근대화를 지향해 왔다. 제2차 세계대전 전후로 사회주의 국가들이 한때 여럿 생겨나기도 했으나 1991년 소련의 붕괴로 대부분 서구 중심의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편입됐다.

많은 나라가 서구를 지향해 온 것이 그들이 가진 경제력과 군사력 때문만은 아니다. 자유·민주·평등·박애·인권·개방·관용·포용 등 서구가 추구했던 가치가 인류 보편적 가치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특히 ‘관용과 개방을 통한 포용’은 로마, 몽골, 네덜란드, 영국, 미국 등 초강대국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조건이기도 하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끝나면서 서구의 보편적 가치가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듯했다. 미국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는 ‘역사의 종언’이라는 책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승리를 선언하기도 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 민주 국가들은 중국 역시 시장경제와 세계화의 틀로 편입되면 서구 보편적 가치를 따를 것으로 봤다. 기든 라흐만 파이낸셜타임스(FT) 칼럼니스트는 6월 3일 자 칼럼에서 “서방 세력이 중국을 세계화와 무역으로 포용한 것은 경제적인 결정만은 아니었다”며 “중국이 세계화를 통해 서구의 정치적 가치(자유·민주주의·인권 등)를 받아들일 것이라는 정치적 판단도 있었다”고 밝혔다.

그동안 역사적 사례에서는 경제가 발전하면 정치적 요구가 분출해 민주화했거나, 민주화하지 못한 나라는 경제적으로 쇠퇴했다. 그런데 중국은 정반대로 오히려 독재를 강화하면서 경제적으로도 성장했다. 인터넷 등에 차단벽을 설치해 검열하고 인공지능(AI)이나 안면인식 기술 등 새로운 도구를 통해 자국민을 감시하려 한다. 중국은 인류 보편적 가치를 따르지 않고 있다.

◇대중민주주의와 시장주의에 실망한 중국

하지만 중국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에 가장 중요한 것은 체제 안정, 공산당 리더십 유지다. 중국은 정치 체제를 바꿀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경제적으로는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점진적으로 시장경제 모델을 따르려고 노력했다. 고정환율제를 관리변동환율제로 바꾸고 시장 개방도 점진적으로 추진했다. 국영기업의 민영화도 진행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상황이 바뀌었다. 미국식 시장주의 체제에서 금융회사들의 탐욕이 금융위기를 촉발했고 그 과정에서 대중민주주의와 시장주의 체제의 문제 해결 능력에 대한 회의가 일어났다. 유럽 재정위기에서도 마찬가지다. 포퓰리즘이 성행하고 여론이 분열돼, 정치적 합의에 이르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 결과적으로 바람직한 정책이 추진되지 못하는 모습이 나타난 것이다. 중국으로서는 서구식 대중민주주의와 시장주의가 체제를 안정적으로 끌고 갈 수 있느냐에 의문이 생긴 것이다. 오히려 중국의 공산당 일당 독재와 정부 주도 경제가 자유와 민주를 억압하더라도 체제 안정과 경제 발전에 도움 된다고 보는 것이다.

중국 국내적으로는 ‘민진국퇴(民進國退·민간기업이 앞서고 국영기업은 물러난다)’ 기조가 시진핑 시대 들어 ‘국진민퇴(國進民退)’로 바뀌었다. 중국은 2000년대 들어서 시장경제 방향으로 국영기업의 민영화를 추진했는데 그 과정에서 고위 당·정·군 관료들이 부정부패로 사익을 추구했다. 그래서 시진핑이 국가주석에 오르자마자 반부패 개혁을 추진하면서 엄단할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국영기업의 중요성이 부각돼 국진민퇴 현상이 나타났다.

이런 영향으로 2013년 시진핑의 ‘9호 문건’에 서구 제도 중 중국에 맞지 않는 것은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게 포함됐다고 한다.

특히 지난해 9월 칼럼니스트 우샤오핑은 인터넷에 올린 글에서 민영 부문은 국유기업을 돕는 역사적 임무를 완수했으며 이제 사라지기 시작할 때가 왔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이후 시 주석이 민영기업을 시찰하고 민영기업의 역할이 언급되면서 논란이 잦아들기는 했지만 민영기업들은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지금 중국에서는 공산당이 국영기업을 통해 경제를 장악하고 있고 민간기업이라고 해도 공산당의 입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안방보험 창업자 우샤오후이가 2017년 6월 체포돼 지난해 18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이상한 일도 일어났다. 지난해 7월 하이항그룹의 공동창업자 겸 회장인 왕젠이 프랑스 휴양지에서 실족사했고, 앞서 2017년 1월엔 밍텐그룹 샤오젠화 회장이 홍콩 호텔에서 갑자기 실종되기도 했다.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는 지난해 10월부터 ‘새로운 상장사 관리 준칙’을 시행하고 있다. 새 준칙에는 ‘상장사가 공산당 당장(黨章·당헌)에 따라 회사에 당위원회(당조직)를 설립해야 하며 당위원회 구성과 활동에 필요한 조건을 반드시 제공해야 한다’는 조항이 들어갔다. 주요 의사 결정 때 이들의 의견을 들어야 하는 것이다. 또 중국 국영기업과 합작 투자한 서방 기업은 회사 내부 공산당 세포(핵심당원)들에게 의사 결정에 대한 명시적인 역할을 부여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미·중 패권 경쟁은 규범과 질서의 문제

중국과 같은 일당 독재, 감시 통제 체제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매우 후진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중남미나 아프리카 등 후진국 독재자라면 어떻게 생각할까. 독재 체제를 유지하면서 국가 주도의 경제 성장을 달성해낸 중국 모델은 매력적일 수 있다. 중국이 이란과 친하게 지내고 베네수엘라를 지원하며 아프리카 여러 독재 국가에 인프라 건설, 자원 개발 등을 추진하는 이유다.

스키너 국장의 발언에 나타난 ‘문명의 충돌’ 개념을 긍정적으로 해석해 보자면 백인종·황인종 문명 또는 기독교·이슬람·유교 문명의 문제가 아니라 서구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느냐, 거부하느냐에 대한 문제다. 미국과 중국의 충돌은 세계 패권을 두고 경쟁하는 것이지만 그 근간에는 어떤 규범과 질서를 따를 것이냐의 문제가 깔려 있는 것이다.

시진핑 주석은 “자국 인종과 문명이 남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고 다른 문명으로 개조하려거나 심지어 대체하려는 생각은 어리석다”고 말했지만, 인류 역사의 발전은 그런 식으로 이뤄져 왔다.

시 주석과 같은 문화 상대주의자는 ‘각자 자기들이 살아가는 방식대로 산다’는 식으로 자기 문명이나 문화의 특수성을 옹호한다. 그러나 아프리카 또는 태평양 지역의 식인 풍습을 받아들일 수 있나. 중동이나 아프리카에서 자행되고 있는 소녀들에게 극도의 고통을 주는 할례를 용인할 수 있나. 자유연애 또는 여성의 자기표현이 친족의 명예를 실추했다는 이유로 자행되는 명예살인을 인정할 수 있나. 이 같은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인류 역사는 인간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서구 보편적 가치가 그 방향을 추구해왔고 대부분 나라가 이에 동의하고 있다. 중국 특색 사회주의는 우리나라 유신시대 때 박정희 대통령의 ‘한국식 민주주의’와 겹친다.

중국의 영향력이 자국 내에만 미친다면 미국 등 다른 나라가 이처럼 난리 칠 이유가 없다. 할례나 명예살인이 자행되고 있는 현실처럼 말이다. 그러나 중국이 다른 나라에 영향력을 미치려 하고 (보기에 따라 매우 불공정한 방식으로) 세계 패권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 미·중 충돌의 근원이다.

◇plus point

EU도 변수…중국과 협력할 건 하지만 ‘결국 미국 편’

미국의 전통적인 동맹국인 유럽연합(EU)의 입장은 미·중 무역전쟁과 패권 경쟁에서 큰 변수다. EU가 어느 편에 서느냐에 따라 미국 또는 중국의 주장이 국제 사회에서 받아들여지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중국은 계속 유럽에 러브콜을 보내며 미국과 유럽 간 균열을 일으키려 한다. 하지만 EU는 중국과 협력할 건 하지만 중국의 강제 기술 이전, 자국 기업에 대한 보조금 등 불공정 경쟁을 문제 삼고 있는 미국과 같은 입장이다.

유럽집행위원회(EC)가 3월 11일 내놓은 전략보고서에 이런 내용이 명확히 나와 있다. 보고서는 중국을 ‘경제적 경쟁자(economic competitor)’이자 정치적으로 대안 모델을 추구하는 ‘체제적 라이벌(systemic rival)’로 규정했다. 또 “중국과 관련된 무역, 기술, 지정학적 우려에 대해 EU가 향후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같은 대중국 강경 노선을 주도하는 나라는 EU에 대한 발언권이 가장 강한 독일과 프랑스로 알려졌다. 독일과 프랑스는 유럽의 안보를 위협하는 러시아가 중국과 갈수록 친밀해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경계하고 있다.

또한 EU의 이 같은 태도 변화는 중국 시장 개방 노력의 실패, 중국 정부의 자국 기업 보조금 지원,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행태, 기술 및 통신 부문을 장악하려는 시도 등 중국의 패권 추구와도 관련된다.

영국과 프랑스 등 EU 국가들은 남중국해 등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과 공동으로 중국에 군사적 대응을 강화하기도 한다. 영국과 프랑스가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를 위해 군함 파견과 해군 훈련 증강에 나섰고, 덴마크와 네덜란드도 이 같은 기류에 동참할 자세를 보이고 있다.

한편, 4월 9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제21차 중국·EU 정상회의에서는 “중국과 EU는 전면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의 활력을 재확인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공동 노력하기로 했다”면서 “양측은 다자주의를 지지한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또 “개방적이고 차별 없는 양자 무역 관계를 조성할 것”이라며 강제 기술 이전, 자국 기업 보조금 등 외국인 기업에 대한 차별 폐지와 지식재산권 보호 등 국제표준 준수를 약속했다.

미국의 독주를 견제하는 다자주의를 지지한다고 했지만, EU 역시 중국의 불공정 경쟁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중국도 일단 말로는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