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돈 퍼주는 정부…”이대론 그리스처럼 파탄” …국가채무는 결국 우리의 채무

나랏돈 퍼주는 정부이대론 그리스처럼 파탄

구멍뚫린 재정 (1) 헛돈 쓰는 재정

아동수당·청년수당·공공알바…

나라 곳간 헐어 선심 정책 폭주

재정지출 증가율 두 배로 치솟아

[ 오상헌/서민준 기자 ] 1980년까지만 해도 그리스는 남유럽 최강국 중 하나였다. 탄탄한 재정(국가부채비율 22.5%)과 건실한 제조업 기반(남코자동차, 핏소스전자 등)을 앞세워 스페인 포르투갈보다 5년 앞선 1981년에 유럽연합(EU)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했을 정도였다.

이랬던 그리스를 ‘유럽의 천덕꾸러기’로 끌어내린 건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이었다. 1981년 집권한 사회당의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총리는 최저임금 대폭 인상, 전 계층 무상 의료·무상 교육, 연금 수령액 인상 등 선심성 정책을 잇달아 내놨다. 노사 분규 등의 여파로 민간기업들이 파산 위기에 몰리거나 공장을 해외로 옮기자 공무원을 늘리고 민간기업을 국영화하는 식으로 일자리를 유지했다.

‘공짜’에 취한 그리스 국민은 파판드레우에게 최장수 총리(11년) 타이틀을 안겨줬고, 그는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나라 곳간을 더 활짝 열었다. 포퓰리즘 대가는 재정 붕괴였다. 2010년 국가부채비율이 146%까지 치솟았고,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는 신세로 전락했다.

문재인 정부의 재정 확대 정책이 1980년대 그리스와 닮은꼴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아동수당, 청년수당, 단기 일자리 예산, 무상 의료 확대 등 ‘퍼주기 정책’ 여파로 2018년과 2019년 재정지출 증가율(연평균 8.6%)이 2011~2017년 평균(4.6%)보다 두 배 가까이 높아져서다. 무상 급식·교육·교복 등 ‘무상 시리즈’로 인해 교육복지 예산은 3년 새 두 배(2016년 3조8288억원→2019년 7조3360억원)가량으로 늘었다. “건강할 때 재정을 지키지 못하면 그리스처럼 될 수도 있다”(박형수 전 조세재정연구원장)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일단 선심성 정책을 펼치고, 그 빚은 후대에 넘기는 포퓰리즘 유혹을 막기 위해 나랏빚을 국내총생산(GDP)의 45% 이내로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재정준칙부터 제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튼튼한 재정을 유지해야만 경제위기 때 제대로 대응할 수 있고 고령화에 따른 복지 수요도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옥동석 인천대 무역학과 교수는 “강력한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허투루 쓰이는 예산을 아껴 필요한 곳에 투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출산 133兆·일자리 114兆 쓰고 ‘효과 無’…”퍼주기 재정정책 한계”

133조원, 114조원. 박근혜 정부 첫해인 2013년부터 문재인 정부 3년 차인 올해까지 저출산과 일자리 대책에 쏟아부은 나랏돈이다. 하지만 100조원이 넘는 투자가 무색하게 한국의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자녀 수)은 2013년 1.19명에서 지난해 0.98명으로 뒷걸음쳤다. 고용률은 2013년 59.8%에서 작년 60.7%로 ‘찔끔’ 오르는 데 그쳤다. 국제 기준인 15~64세 기준으로는 66.5%로 미국(70.9%), 일본(77.0%) 등보다 한참 낮다.

한 해 470조원에 이르는 정부 재정이 헛돌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주요 재정사업이 허술하게 설계돼 누수가 많은 데다 ‘표심’을 노린 현금 살포식 지출이 급증하고 있어 경제 성장엔 기여를 못하고 빚 부담만 늘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례로 정부 보조금 부정수급 신고 건수는 2013년 145건에서 2017년 960건으로 여섯 배 넘게 급증했다. 재정 누수가 심해지고 있다는 증거다.

장려금만 잔뜩 늘리는 일자리 예산

정부는 지난해 최저임금을 1060원(16.4%) 올렸다. 인건비 부담이 너무 커져 대규모 해고가 불가피하다는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 당황한 정부는 세금으로 영세업체 인건비를 지원키로 했다. 기업의 임금 부담을 확 높여놓고선 근로자를 해고하지 말라며 나랏돈을 쏟아붓는 기형적인 제도가 만들어졌다. 작년 신설된 일자리 안정자금 얘기다. 이 사업에 배정된 예산은 작년과 올해 합쳐 5조2800억원이다. 이렇게 돈을 퍼붓고도 실업 사태를 막지 못했다. 최저임금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도소매·숙박음식업종 취업자는 올해 들어 3만4000명 줄었다.

중소기업이 청년 한 명만 추가 채용하면 1년에 900만원씩 3년간 지원하는 ‘청년추가고용장려금’ 사업도 비효율적인 일자리 예산으로 꼽힌다. 파격적인 재정 지원에도 올 1분기 300인 미만 기업의 상용직 신규 채용 증가폭은 1만6000명으로 작년 1분기(4만6000명)보다 크게 줄었다. 이런 성격의 고용장려금 예산은 올해 5조9204억원에 이른다. 전년보다 56.3%나 늘었다. 반면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는 직업훈련 예산은 4.5% 감소했다.

무상교육 열풍에 교육복지 예산 7조원

저출산정책도 정말 필요한 곳엔 투자하지 않고, ‘생색내기’식 현금지원에만 의존한다는 지적이 많다. 만 6세 아동에게 월 10만원씩 지급하는 아동수당 사업에 작년과 올해 2년간 총 2조8500억원이 투입된다. 윤희숙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10만원을 준다고 출산 생각이 없던 사람이 아이를 낳을지 불분명한데 선진국이 했다는 이유만으로 별 고민 없이 만든 사업”이라고 꼬집었다.

정작 아이 키우는 부모들이 해결이 시급하다고 꼽는 보육 환경 개선에는 소홀하다. 국공립어린이집 확충 예산은 지난해와 올해 합쳐 2600억원에 그친다. 아동수당의 10%도 안된다.

교육 예산에서도 학부모 표심을 노린 돈 풀기가 심해지고 있다. 지방교육재정알리미에 따르면 올해 ‘교육복지’ 지원 예산은 7조3360억원으로 2016년(3조8288억원)보다 91.9%나 늘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무상교육, 무상급식, 무상교복 등 이른바 ‘3대 무상교육’에 앞다퉈 세금을 투입한 영향이다.

“사람 경쟁력 올리는 재정 개혁 시급”

문제는 선심을 쓸 정도로 우리의 재정여건이 여유롭지 않다는 점이다. 경제성장률은 2017년 3.1%에서 지난해 2.7%로 떨어졌고 올해는 2%대 초·중반이 유력하다. 국가채무는 2015년 592조원에서 올해 741조원으로 빠르게 늘고 있는데 성장률이 떨어지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급격히 악화된다.

세금 수입도 불안하다. 작년 세수는 전년보다 8.1% 증가했지만 올해는 3월까지 0.2% 감소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가 재정 건전성을 위협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15~64세 생산가능인구는 내년부터 연평균 30만 명 이상 줄어든다.

김광두 서강대 석좌교수(경제학)는 “사람의 경쟁력을 올리는 교육 개혁, 직업훈련 개혁 등은 소홀히 하고 퍼주기식 재정 투입만 계속하다가는 우리 경제가 금융위기 때보다 더한 구조적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상헌/서민준 기자 ohyeah@hankyung.com

국민이 원하는 건 다 주라던 그리스 총리30년후 국가부도 불러

아버지 총리의 11년 복지 퍼주기

건실하던 국가재정 급속 파탄

父가 뿌린 ‘국가부도 씨앗’ 현실로

[ 이태훈/성수영 기자 ] “국민이 원하는 것은 다 줘라.”

1981년 그리스 총리가 된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가 취임 직후 각료들에게 내린 이 지시는 30년 뒤 조국을 국가부도 위기로 몰아넣은 시초가 됐다. 그는 최저임금 인상, 공무원 증원, 전 계층 무상 의료, 연금 지급액 인상 등 인기영합주의(포퓰리즘) 정책으로 11년간 장기 집권했다. 그리스 정부가 늘어난 복지 혜택을 감당할 수 없어 2010년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연합(EU)에서 구제금융을 받았을 때 총리는 공교롭게도 안드레아스의 아들인 게오르게 파판드레우였다. 전문가들은 “최근 정부 정책은 1980년대 그리스 모습과 닮았다”며 “아버지(안드레아스)의 선심성 정책에 대한 ‘청구서’가 아들(게오르게)에게 돌아갔다는 사실은 국내 정치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입을 모은다.

‘황금률’ 버리고 보편 복지로

그리스는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유럽에서 재정이 건실한 나라로 꼽혔다. 국가부채비율이 20%대로 영국 네덜란드 노르웨이 등의 절반 수준이었다. 1974년 집권한 중도 우파 성향의 신민주주의당은 국가재건을 위한 공공투자부문을 제외하고는 재정적자가 나지 않아야 한다는 ‘황금률(golden rule)’을 적용했다.

하지만 1981년 총선에서 중도 좌파 성향의 사회당이 승리하고 파판드레우 총리가 취임하며 황금률은 폐기됐다. 그는 “국민이 원하는 건 다 줘야 한다”는 구호 아래 재정을 통한 소득재분배 정책을 폈다.

대표적인 게 공무원 증원이었다. 취임 1년 만인 1982년 정부의 공공부문 임금 지급액은 전년 대비 33.4% 증가했다. 선별적 복지는 보편적 복지로 전환했다. 소득과 상관없이 전 계층에 무상 의료와 무상 교육을 시행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사회복지 지출 규모는 1980년 9.9%에서 5년 뒤 15.4%로 뛰었다. 건실했던 국가채무비율이 급격히 치솟은 것도 이 시기다. 1980년 22.5%였던 GDP 대비 부채비율은 1983년 33.6%, 1984년 40.1%를 기록했다. 그로부터 불과 9년 만인 1993년에는 100.3%로 치솟았다.

무너진 제조업

재정이 미래 성장동력 확충보다 복지 쪽으로 과도하게 흘러들어가며 그리스 제조업은 빠르게 쇠퇴했다. 그리스는 2차 세계대전 후 마셜플랜(미국의 유럽 16개국 원조 제공) 수혜국으로 1970년대까지 조선, 석유화학, 석유정제, 자동차산업 등이 발달했다.

하지만 파판드레우 총리가 최저임금을 올리고 해고를 어렵게 하는 정책을 펴며 기업들은 경쟁력을 잃었다. 파판드레우 총리는 취임 1년 만인 1982년 최저임금을 전년 대비 45.9% 인상했다. 1973년 그리스 최초의 자동차 공장을 설립했던 남코는 1982년 노조가 35%의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장기 파업에 들어가자 공장을 폐쇄했다. 남코는 프랑스 시트로엥과 합작해 생산기지를 중국 등으로 옮겼다.

신민당도 정권을 되찾기 위해 포퓰리즘 경쟁에 뛰어들었다. 신민당은 사회당이 해왔던 방식대로 공무원 수를 늘리는 공약을 발표하고 직능별 노조와 손잡았다. 지지의 대가로 직능별 연금공단을 허용했고 적자는 모두 세금으로 메웠다. 양당의 경쟁으로 그리스에는 한때 150개가 넘는 연금공단이 생겼다.

신민당은 2004년 재집권에 성공했으나 국가재정은 허약해진 뒤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를 버티지 못했다. 국채 발행으로 재정사업 비용을 충당했지만 금융시장이 급속히 얼어붙자 ‘재정 불량 국가’의 채권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구제금융 직전에도 “확장 재정”

재정이 거덜난 상황에서도 국민은 복지 축소에 반대했다. 2009년 신민당이 긴축정책을 펴자 국민의 극렬한 반대로 조기 총선이 열렸다. 사회당이 압승했고 총리에 오른 건 파판드레우 총리의 아들 게오르게였다. 게오르게는 확장 재정을 통한 내수 부양을 경제정책으로 제시하며 “구제금융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리스는 결국 2010년 5월 IMF와 EU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게오르게는 취임 2년 만인 2011년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리스는 2015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총 2600억유로를 지원받았는데 이는 세계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구제금융이었다.

안재욱 경희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한국의 재정확대 정책은 1980년대 그리스와 흡사하다”며 “친노동 정책 때문에 주력 산업 경쟁력이 하락하고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선거 승리를 위해 재정을 무분별하게 늘리면 부담은 후손이 진다는 게 그리스 사태의 교훈”이라고 했다.

이태훈/성수영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