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 넘어 영토·외교로 전선 넓히는 美..최고 압박카드 꺼냈다
[美국방부, 대만 ‘국가‘로 분류]
中, 포드 등 잇단 보복조치에
美 “전면전 아니면 타협하라“
더 큰 보복 나서겠단 의미인듯
지정학적 균형정책 노선 바꿨지만
무역협상 타결 따라 변화 가능성
[서울경제] 6일(현지시간) 미국 국방부가 대만을 중국과 다른 ‘국가’로 인정한 보고서를 공개하고 동시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달 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날 것이라고 밝힌 것은 중국에 양자택일을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전면전을 벌이든지 아니면 양보하고 타협하라는 것이다. 최근 포드·보잉 등 미국 기업에 대한 중국의 잇따른 보복과 관련해 미국은 더 큰 보복에 나설 수 있다는 표시이기도 하다.
이미 미국은 지난 2016년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줄곧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의 관계 강화를 통해 중국에서의 ‘독립’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대만 문제를 다뤄왔다. 차이 총통이 올 3월 하와이를 방문해 미국 현역 장성과 첫 만남을 가지는 것을 허용했으며 최신형 무기 판매도 늘려왔다. 이들은 모두 중국에서 극렬하게 반발하는 것이다. 시 주석은 올해 초 “대만이 독립을 추구할 경우 무력 사용도 불사한다”는 초강경 발언을 한 적이 있다.
미국이 대만의 ‘독립’이나 ‘국가’ 인정에 대해 그동안 꺼려온 것은 평화를 통한 경제성장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균형이 현상유지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미국은 1979년 1월 중국과 수교하면서 그해 4월 ‘대만관계법’도 제정했다. 중국과의 수교는 ‘하나의 중국(一個中國·One-China)’에 대한 중국 측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이뤄졌다. 그렇지 않으면 수교가 불가하다는 당시 덩샤오핑의 요구 때문이었다. 미국으로서는 성장하는 중국을 포용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대신 미국은 중국의 위협 아래에 놓인 대만을 군사적·정치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국내법인 대만관계법을 제정했다. 중국이 반발했지만 미국은 국내 문제라는 식으로 넘어갔다. 즉 중국의 주장을 받아들이되 대만도 인정하는 ‘전략적 모호성’을 통해 중국의 통일 시도를 막고 거꾸로 대만의 독립도 저지한 것이다.
미국의 이런 현상유지 정책은 그러나 중국이 강대국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바뀌어 갔다. 미국식 현상유지는 중국도 받아들일 경우에만 가능한 것인데 중국이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상황이 되자 미국도 중국·대만 관계의 변화를 모색하게 된 것이다.
이는 트럼프 정부 들어 확연해졌다. 시진핑 시대의 중국이 경제뿐 아니라 정치·군사적 측면에서 미국의 ‘적국’이 되고 있다고 인식한 트럼프로서는 오히려 대만을 중국이라는 파도를 막는 미국의 방파제로 생각한 것이다. 최근 중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대만에 대한 지원을 무한정 확대하는 이유다.
이번에 공개된 ‘2019년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 도입부에서 패트릭 섀너핸 국방장관 대행은 “중국 공산당은 ‘억압적인 세계 질서 비전의 설계자’”라고 칭하면서 “공산당이 이끄는 중화인민공화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지역을 재편성하려 하며 군사 현대화와 영향력 행사, 약탈적 경제 등을 동원해 다른 나라에 강요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물론 미국 국방부 보고서에서 대만을 ‘국가’로 인정했다고 해서 당장 대만의 독립을 미국이 허용한다는 의미는 아닌 듯하다. 그동안에도 미국은 대만을 사실상의 국가로 인정하고 관련 정책을 추진해왔으나 이를 과시하지는 않았다. 1월 백악관에서 진행된 존 볼턴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의 기자 브리핑 때 뒤쪽에 있던 지도에 중국과 대만을 별개의 국가로 색칠하는 식으로 은연중 나타내왔을 뿐이다.
대만의 독립 문제가 중국과 미국의 쟁점 사항인데다 무역전쟁과 연계돼 불거지고 있다는 점에서 무역협상 타결에 따라 변화할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6일 프랑스에서 열린 노르망디 상륙작전 75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오찬 회동을 하기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중국과 관련해 언급한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3,000억달러 규모의 대중 관세를 새롭게 부과하는 시기에 대한 질문에 “아마도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직후 2주 안에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28∼29일 오사카 정상회의에서 시 주석과 만날 것”이라며 “어느 쪽이든 G20 이후에는 그런 결정을 할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자”고 말했다.
시 주석과의 이달 말 담판이 미중 무역전쟁의 운명뿐 아니라 대만 문제의 운명도 좌우할 수 있음을 이날 함께 환기시킨 셈이다.
/베이징=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
미중 무역갈등 점입가경..삼성·SK하이닉스 새우등 터지나
미중 무역전쟁이 점입가경으로 치달으면서 우리 기업들이 유탄을 맞는 양상이다.
8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지난 4~5일 삼성전자,SK하이닉스,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을 불러 미국 행정부의 대중 압박에 협조하면 “심각한 결과(dire consequences)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중국 내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려는 시도 역시 응징할 것이란 경고도 전했다고 NYT는 보도했다.
이 같은 보도가 사실이라면 무역전쟁과 미국의 화웨이 제재와 관련, 중국 정부 차원에서 우리 기업에 직접 압박을 가한 첫 시도라는 점에서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과 SK하이닉스는 이번 보도에 대한 사실 확인을 거부했지만 곤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무역전쟁이 확전 양상을 보이면서 미국과 중국 정부의 압박이 구체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외교부 당국자는 최근 방중한 한국 기자단에게 미국의 대중 압박에 동참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어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지난 5일 서울에서 열린 ‘클라우드 미래’ 콘퍼런스에서 “신뢰할 만한 5G(5세대 이동통신) 공급자 선택이 중요하다”며 반(反) 화웨이 정책에 대한 동조를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이 같은 압박에 화웨이 매출 비중이 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올해 사업 계획의 전면 수정에 착수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전체 매출의 3%, 12%를 화웨이로부터 벌어들인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무역분쟁으로 인한 불확실성 증대로 메모리 반도체 업황이 악영향을 받고 있다.
반도체 전문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는 최근 보고서에서 올해 하반기 D램 평균거래가격(ASP)이 최대 25%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3분기 D램 ASP는 전 분기 대비 10~15% 하락하고 4분기에는 최대 10%까지 떨어질 것으로 봤다.
메모리 반도체 수요와 가격이 올해 2분기에 바닥을 찍고 3분기부터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가 무역분쟁으로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 SK하이닉스뿐 아니라 마이크론 등 세계 반도체 업계 전체에, 더 크게는 세계 거시경제에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이번 사태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장기적으로는 화웨이 스마트폰을 대체할 세트 수요가 창출될 것이고, 그에 따른 부품 공급이 늘어나 균형을 되찾을 것이란 긍정론도 있다. 문제는 시장이 다시 회복될 때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게다가 정부는 미중 양국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별도의 지침을 마련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사드가 안보와 관계된 문제였다면 이번 사안은 성격이 달라 우리 정부가 선뜻 나서지 못할 것이고 미국과 중국도 우리에게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세계 1, 2위 시장을 어느 쪽도 포기할 수 없는 만큼 사태를 지켜보며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소연 기자 soyunp@mt.co.kr
미국의 압박·중국의 경고..韓기업은 전전긍긍
미 대사, 화웨이 5G 장비 사용에 노골적 압박
중국 정부, 삼성·SK하이닉스 등 불러 ‘응징‘ 경고
올 하반기 반도체 불황의 골 깊어질 듯
업계 관계자 “불똥 최소화할 궁리 뿐“
미·중 무역분쟁으로 끼인 신세에 놓인 국내 기업들이 속앓이만 하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다면, 입장이 없다는 게 입장”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LG유플러스의 5G망 화웨이 장비 사용을 우회적으로 언급하며 제재 동참을 노골적으로 압박하고 있고, 중국은 삼성과 SK하이닉스 관계자 등을 불러 경고했다.
LG유플러스는 5G망 구축에 화웨이 장비를 일부 사용하면서 화웨이 제재 불똥이 튀었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지난 5일 국내 기업인들이 모인 행사에서 “5G 통신 장비는 보안 측면에서 신뢰할 수 있는 공급자를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가능성은 희박하다지만, 대규모 장비 교체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안고 있어야 한다.
이에 대해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나서 “한미 군사안보 분야에 미치는 영향은 전혀 없다”며 진화에 나섰다. 이 관계자는 “이분법적 접근보다는 양국의 건설적 협력이 가능한 분야에서 공간을 확대해 나가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중국 정부는 국내 반도체 기업들을 불러 엄포를 놨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지난 4~5일 주요 테크 기업들을 불러 트럼프 행정부의 중국 거래금지 조치에 협조하면 “심각한 결과에 직면할 것”이라고 했다.
중국 국가개발개혁위원회가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글로벌 테크 기업들과의 면담에는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와 델, 영국의 반도체 설계업체인 ARM를 비롯해 삼성과 SK하이닉스가 포함됐다.
반도체 불황의 골이 더 깊어질 거란 관측도 나온다.
국내 기업들은 반도체 업황이 하반기에는 반등 곡선을 그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는 지난 6일 보고서에서 화웨이의 스마트폰과 서버 판매량 감소로 반도체 가격의 하락세가 예상보다 더 깊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D램 가격은 3분기에 15%, 4분기에 10% 더 내릴 것이라고 봤다.
화웨이 제재의 가장 큰 반사이익을 볼 것으로 꼽히는 삼성전자는 거꾸로 5대 주요 고객사 가운데 한곳인 화웨이가 타격을 입을까 걱정스러울 입장이기도 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중국 측과 무작정 절연을 선언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공개적인 행사를 열 수도 없는 상황”이라면서 “지켜보며 불똥을 최소화하는 것밖에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두 강대국 사이에서 경쟁과 공생의 관계에 놓인 기업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내부적 분석과 대응 시나리오만 쌓아가면서 전전긍긍이다.
양국 정상은 28~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서 만날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최근 러시아 방문 기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내 친구’라고 지칭하며 협상 타결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CBS노컷뉴스 최인수 기자] apple@c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