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이라는 이름하에 식어가는 한국 경제

8000억 손실 뻔한데환경단체 지적에 용광로 멈출 판

밸브 열때 오염물질주장지자체, 현대제철에 열흘 중단 명령

닷새면 쇳물 굳어 복구에 3개월, 포항·광양 포스코도 청문절차

환경단체의 고발로 촉발된 대기오염 문제에 대해 지방자치단체가 특정 철강업체에 직접 피해만 8000억원에 이르는 행정처분을 내려 논란이 되고 있다. 철강업계는 “문제가 제기된 공정은 안전에 대한 필수 공정이고 대체 기술도 없는 상황이라 이런 행정처분을 내린다면 국내 제철소의 12개 고로(高爐·철광석을 녹여 쇳물을 생산하는 노)가 모두 가동 중단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환경단체 등은 “철강업체들이 피해를 입은 시민들에게 공식적인 사과는 하지 않고 궤변과 변명만 늘어놓고 있다”고 반박했다.

◇”10일 조업 중단하면 매출 손실 8000억”

충남도는 지난달 30일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제2고로에 대해 ‘블리더(Bleeder·안전밸브) 개방에 따른 오염 물질 무단 배출 행위’ 건으로 조업 정지 10일 처분을 확정했다. 경북도와 전남도도 포스코 포항제철소와 광양제철소의 2고로에 대해 조업 정지 10일을 사전 통지하고 의견서 제출이나 청문 절차를 진행 중이다.

‘현대제철 2고로’ 조업정지 처분, 어떻게 이뤄졌나이미지 크게보기

고로는 1년 내내 내부 온도를 1500도 이상으로 유지해 쇳물을 생산하는 설비다. 고로가 5일 이상 가동되지 않으면 쇳물이 굳어져 복구 작업에만 3개월 이상이 걸린다. 연간 400만t의 쇳물을 생산하는 현대제철 2고로가 3개월 이상 멈춰 서면 보수 비용을 빼고 매출 손실만 8000억원 이상에 달한다.

◇”전국 제철소 고로가 멈춰 설 수도”

고로(용광로)는 화재, 폭발 사고 등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1~2개월 간격으로 보수 작업을 한다. 고온·고압의 열풍(熱風) 공급을 중단해 쇳물 생산을 일시적으로 중지하는 것을 휴풍(休風)이라고 한다. 이때 수증기 등을 고로 내부에 주입하는데 내부 압력이 급격하게 올라갈 경우 폭발 등 대형 사고가 발생할 수 있어 안전 밸브인 블리더를 열어놓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제철 대기오염 대책위원회’에 참가한 충남 당진 시민사회단체 14곳은 “현대제철이 비상 상황이 아닌데도 대기오염 물질을 저감 장치를 거치지 않고 ‘블리더’를 통해 불법 배출했다”고 주장했다.

현행 대기환경보전법에는 방지 시설을 거치지 않고 오염 물질을 배출할 수 있는 공기 조절 장치를 설치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다만 화재나 폭발 등의 사고를 예방할 필요가 있어 시도지사가 인정하는 경우에는 예외를 두도록 했다. 환경단체에선 “제철소들이 이러한 예외 규정을 악용해 대기오염을 방지할 의무를 피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울진의 울분.. “건설인력 떠나 원룸 텅텅, 음식점 270곳 줄폐업

‘짓밟히고 희생당한 울진군민 생존권을 보장하라’ ‘울진 주민 동의 없는 탈원전 정책은 원천무효’ ‘일방적 신한울 3·4호기 건설 중단 조속히 재개하라’….

지난달 29일 경북 울진군 북면 한국수력원자력의 신한울 원전 1·2호기 건설소 남문 앞 사거리. 문재인 정부가 탈(脫)원전 정책으로 백지화한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를 촉구하는 플래카드 20여 개가 도로 양옆에 빼곡히 걸려 있었다. 텅 빈 도로엔 건설 트럭만 간간이 오갈 뿐 인적은 거의 없었다. 북면 거리 곳곳엔 폐업으로 셔터가 내려진 가게들이 즐비했다. 마을에는 짓다 만 건물들이 회색빛 시멘트 콘크리트와 시뻘겋게 녹슨 철근 구조물을 그대로 드러낸 채 방치돼 있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울진군 지역 경제가 파탄 위기에 놓였다. 별다른 산업·제조 시설이 없는 울진군은 30여 년 동안 원전에 의존해 왔다. 현재 한울 1~6호기가 운영 중이고, 신한울 1·2호기 완공을 앞두고 있다. 신한울 3·4호기도 새로 들어설 예정이었다. 하지만 정부가 신규 원전 건설을 백지화하면서 건설 인력이 빠져나가고, 투자가 줄어들면서 급격한 공동화(空洞化)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4월 말 현재 울진군민은 4만9650명으로 인구 5만명 선이 무너졌다.

◇작년 138개 업소 폐업… 4월 말까지 47개 업소 문 닫아

“은행에선 (빚 못 갚으면) 자기들이 알아서 처분하겠다고 협박해요. 그럼 지금까지 들어간 돈 한 푼도 못 건지는데….”

북면에서 원룸 건물을 짓던 김민주(62)씨는 “한 달 이자만 해도 어마어마하다”며 한숨을 지었다. 그는 한창 원전 경기가 좋을 때 대출을 끼고 원룸을 지어, 한때 빈방이 없을 정도였지만 지금은 빚만 남았다고 하소연했다. 신한울 1·2호기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3·4호기 건설이 백지화되면서 원룸은 비어가고 새로 짓던 건물은 건설을 중단했다. 김씨는 “정부만 믿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울진군 죽변면에서 횟집을 운영 중인 김희(50)씨는 “2017년 5월부터 손님이 절반으로 줄었고, 작년엔 또 그 절반으로 줄었고, 올해는 더 줄 것 같다”고 했다. 김씨는 “울진은 원전 하나 보고 장사하는데, 신한울 1·2호기 공사가 끝나가는 시점에 3·4호기까지 갑자기 건설을 중단해버리면 지역 경제는 어떻게 견뎌내겠느냐”고 하소연했다. 북면에서 식당을 하는 추원도(53)씨도 “25년 넘게 이곳에서 장사를 하는데 이렇게 힘들기는 처음”이라며 “문 닫는 가게가 수두룩하다”고 했다.

울진군에 따르면 2017년 식당 등 식품 관련 업체 85곳이 문을 닫았고, 지난해엔 138곳이 폐업했다. 올 4월까지만 47곳이 문을 닫았다. 이희국(70) 울진군 북면발전협의회장은 “아무리 대선 공약이라지만 이 지역 주민들이 죽어나가는 건 거들떠보지도 않느냐”며 “대책도 없이 (탈원전을) 마구잡이로 밀어붙이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원전이 위험해서 백지화한다면 가동 중인 원전은 어쩌라고”

울진군 북면에선 신한울 1·2호기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신한울 1호기는 올 11월, 2호기는 내년 하순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바로 옆 지반 조사가 끝난 신한울 3·4호기 부지에는 메마른 땅에 잡초만 듬성듬성 자라고 있었다.

장유덕(48) 울진군범군민대책위원회 공동대표는 “정부가 안전 때문에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백지화한다면 이곳에서 가동 중인 원전 여섯 기와 현재 건설 중인 신한울 1·2호기도 모두 가동을 중단시켜야 논리적으로 말이 되는 것 아니냐”고 했다. 그는 “울진군민 5만명 중 75%가 넘는 3만7901명이 건설 재개에 이름을 올리고 서명했다”고 말했다.

전찬걸(60) 울진군수는 “울진군민들은 30여 년을 원전과 함께 살아오면서 원전이 안전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며 “지역 상권이 무너지고 주민의 삶이 위기에 내몰린 만큼 정부는 신한울 3·4호기를 계획대로 건설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