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낙태 합법화는 1930년대 오스트리아-독일 공산주의자였던 빌헤름 라이히의 성혁명 공약중 하나였습니다
청소년들을 공산당에 동참시키기 위해서 청소년의 섹스할 권리 인정과 임신하면 낙태할 자유를 보장한다고 선전했고 효과를 봤죠
자기의 아기를 낙태시키므로 본을 보였습니다. 부인은 이혼
2.1960년대 미국의 반문화운동과 프랑스의 68혁명을 계기로 성해방은 젊은 좌파들을 통해서 재인식됩니다
태아를 죽이는 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해지자 페미니스트 변호사들은 강간당한 여성이라며 거짓 사건을 만들어 소송을 제기했고
1973년 미연방대법원은 6개월 이내 태아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세포라는 과학계 의견을 받아들여 태아 살해를 합법화했습니다
3. 미국 목회자들은 죄없는 아기를 살육해도 된다는 판결에 놀라서 번복하기 위해서는 연방대법관 지명권자인 대통령을 잘 뽑아야 한가는 의식을 갖고 대통령 선거에 개입하게 됩니다
민주당의 카터를 대통령을 만들었더니 배신해서 공화당의 레이건을다시 대통령으로 만든 겁니다
레이건 득표중 20%가 민주당원 표였고 민주당 텃밭이던 플로리다 등 남부 주들이 공화당 표밭으로 바뀌게 됩니다. 성경적 가치에 의한 투표를 한 거죠
단체의 사무총장이 교육부 장관이 되어 교육을 관리하죠. 미국 목회자들은 사회가 돌아가는 맥을 알고 있는 거죠
서울 경기 광주 전북 목회자들은 학생인권조례를 방치하고 주일학교 감소한다고 걱정만 하죠
5. 페미니스트가 만든 가족계획협회는 태아를 죽여서 돈을 버는 업체입니다
민주당에 거액을 기부하여 세금지원과 민주당의 지지를 받습니다
이 단체는 학생들에게 섹스할 권리가 있다며 구체적 방법을 교육합니다
통계적으로 피임은 8~15%가 실패하기 때문에 육아를 기피할 학생들의 활발한 성생활이 매출(태아 살해) 유지에 도움이 되죠
6. 과학이 발달하여 태아도 낙태시 고통을 느끼는 것과 6주면 심장이 뛴다는 것도 발견되어
심장이 뛰면 낙태를 금지하는 법들이 제정될 정도로 규제법이 증가하고 인식도 변하여 낙태업소 숫자는 1973년보다 적어졌습니다
7. 미국 민주당은 그에 대한 반발로 악마적 낙태 합법화 법안을 밀어붙이고 있죠
헌재 판사들이 좌파라는 정체성이 있다면 악마적 낙태 합법화의 첫 단추를 여는 게 피할 수 없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