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February 27, 2019

전교조, 서울 내 131개 학교에 ‘親日 낙인’ 찍어…文정부와 발 맞추나

전교조 민문연 책 기반 조사 후 “서울 내 113곳 학교 親日 잔재 남았다”며 “전수조사해야” 주장

전북·광주시·울산·충북·인천 등에서도 親日 잔재 교가 현황 조사 등 진행 중

“전교조 친일파 매도, 일방적인 것으로 근거 없어…당혹”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친일을 청산하고 독립운동을 제대로 예우하는 것이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정의로운 나라로 나아가는 출발”이라고 주장한 가운데, 친북 성향이자 법외노조로 규정된 전교조가 이에 보조를 맞추는 듯 소위 ‘친일 교가(校歌)’를 가진 학교 113곳을 지목했다. 전교조는 몇몇 학교에 대해서는 “친일 행적을 한 인물의 동상이나 기념관이 있다”고도 했다. 전교조 서울지부는 26일 ‘학교 내 친일 잔재 청산을 위한 1차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서울 초·중·고를 대상으로 현황을 조사했다”고 했다. 이런 조사는 2009년 친북성향 단체로 알려진 민족문제연구소(민문연)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 세 권으로 이뤄졌다. 이 책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음악가 안익태·홍난파, 문인 김동인과 서정주 등 4,389명을 친일파로 분류하는데, 선정 기준이 일관되지 않고 좌편향됐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전교조가 문제삼은 학교들은 초등학교 18곳(공립 13개교, 사립 5개교)과 중고등학교 95곳(공립 27개교, 사립 68개교)이다. 전교조의 기관지라는 평가를 받는 ‘교육희망’이라는 사이트는 특히 서울 동작구의 성남중학교와 성남고등학교를 문제삼았다. 민문연이 친일파로 규정한 학교 설립자(김석원·원윤수)가 교가에 등장한다는 것이다. 전교조는 이외에도 영훈초, 충암초, 덕수초, 서울사대부초, 재동초를 비롯해 건대부고, 경기상고, 단대부고, 무학여고, 배명중·고, 배화여중·고, 서문여중·고, 보성중·고, 서울고, 정신여중·고, 영동고, 숭문중·고, 숙명여고, 창덕여고, 진선여중·고, 휘문중·고 등에서 친일 잔재가 남았다고 주장하며 “서울시교육청과 서울시가 위원회를 꾸려 친일 잔재 청산을 위한 전수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도 요구했다. 서울시교육청은 2016년에도 친일인명사전을 시내 모든 중고등학교가 구매토록 하면서, 학교별로 예산 30만원 씩을 내려보냈다가 이를 거부하는 학교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전북과 광주, 울산, 충북, 인천교육청 등에서도 민문연 책을 기준으로 도내 학교들 교가 현황을 조사하고, 각급 학교에 교가 교체 의사를 타진한 상황이다. 우파 단체인 나라지킴이 고교연합에서 성남고 대표를 맡는 이병모 조직국장은 27일 펜앤드마이크와의 통화에서 “김명선 성남고 이사장은 구한말부터 교육 진흥에 힘써온 김석원의 손자로 전교조 측 주장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 상태”라며 “동창회나 학부모 등에서도 기존 교가에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인식하고 있다. 전교조의 친일파 매도는 일방적인 것으로 근거가 없는 것이라, 당혹스럽게 보고 있다”고 밝혔다.

김종형 기자 kjh@pennmike.com 출처 : 펜앤드마이크(http://www.pennmike.com) http://www.pennmike.com/news/articleView.html?idxno=16437

국경 배치 베네수엘라 군경 속속 이탈…최소 270명 탈영 외 (2/27)

오늘의 열방(2/27)

국경 배치 베네수엘라 군경 속속 이탈…

최소 270명 탈영 해외 원조물자 반입을 막기 위해 국경에 배치된 베네수엘라군 병사와 하급 간부의 탈영이 잇따르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5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 며칠간 베네수엘라 군인과 경찰관 270명 이상이 생활고로 국경을 넘어 콜롬비아와 브라질로 탈출했다.

中 쓰촨성 지진으로 2명 사망…

”셰일가스 채굴 때문” 시위 중국 쓰촨(四川)성에서 잇따라 발생한 지진으로 2명이 사망하자 주민들이 셰일가스 채굴 때문에 발생한 인공지진이라며 거세게 항의했고, 결국 채굴이 중단됐다고 26일 중국 글로벌타임스와 홍콩 명보가 보도했다. 쓰촨성 룽셴(榮縣) 지역에서는 지난 24일 규모 4.7의 지진이 발생한 데 이어 전날에도 오전과 오후 각각 규모 4.3과 4.9의 지진이 발생했다.

‘사유재산 첫 인정’ 쿠바 헌법 개정안 87% 찬성률로 가결

쿠바에서 공산당 일당 체제를 유지하면서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처음으로 인정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헌법 개정안이 가결됐다고 국영 뉴스통신 프렌사 라티나 등 현지 언론과 외신이 보도했다.

소말리아서 무장괴한 총격에 근로자 8명 사망

소말리아에서 무장괴한들이 거리에서 작업하던 근로자들을 향해 총기를 난사해 8명이 숨졌다고 AFP 통신이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번 사건을 저지른 것으로 의심을 받는 현지 이슬람 무장단체 알샤바브는 소말리아 정부를 지지하는 단체나 개인에 대한 차량·자살폭탄이나 총기를 이용한 게릴라식 공격을 저지르고 있다.

印전투기, 파키스탄령 카슈미르에 폭탄투하…

1971년 이후 첫 공습 인도 전투기가 26일 파키스탄 영공을 침범해 파키스탄에 공습을 가했으며 인명피해는 없었다고 뉴시스가 26일 보도했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인도 전투기가 파키스탄 영공을 침범해 공습을 가하기는 1971년 양국 간 전쟁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美상원 낙태 생존아보호법 민주당 반대로 ‘부결’

미국 상원이 낙태 시술에 실패해 태어난 영아에 대해서도 의료 서비스를 보장하는 내용의 낙태생존영아 보호법을 부결시켰다고 24일(현지시간) 폭스뉴스가 보도했다. 민주당은 생존한 아이에게 보호를 제공하는 유아보호법이 있기 때문에 이 법안은 과잉 입법에 해당한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마지막 ISIS 진영서 하루 2500명 대피…잔당 120명 투항

” 수니파 테러조직 ‘이슬람국가'(ISIS)의 마지막 점령지에서 25일(다마스쿠스 현지시간) 하루 새 2500명이 추가로 빠져나왔다고 26일 dpa통신이 보도했다. 영국에 본부를 둔 시리아내전 감시단체 ‘시리아인권관측소’는 25일 바구즈를 빠져나온 인원 중 조직원 약 120명이 쿠르드·아랍연합 ‘시리아민주군(SDF)에 투항했다고 보고했다.

국내 식당경기 지난해 최악…‘음식점업 생산지수’ 2000년 이후 최대 하락

지난해 음식점 매출 수준이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10년 전보다 더 낮아졌다고 팬앤드마이크가 26일 보도했다. 26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음식점업 생산지수는 94.0(2015년=100, 불변지수 기준)으로 전년(97.2)보다 3.3% 하락했다.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2000년 이후 가장 큰 낙폭이다.

기독교 신앙의 바탕위에 서 본 유관순 및 3.1 만세 운동

유관순 가문은 신앙·저항정신의 뿌리였다

유관순 열사의 독립운동은 유씨 가문의 기독교 신앙과 삶 속에서 경험한 항일정신에서 출발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한반도 통일역사문화연구소 사무국장 최태육(사진) 목사는 유관순 일가의 삶을 해당 지역의 역사와 교회 및 선교 역사 등에 비춰 재조명한 ‘유관순 가(家)의 사람들’(신앙과지성사)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최 목사는 ‘진천감리교회 90년사’를 쓰기 위해 2006년부터 충북 진천과 충남 천안 일대를 답사하며 지역의 기독교 및 선교 역사를 연구했다. 이후 10여년간 50여 차례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천안 병천면 용두리 지령 마을과 유관순의 6촌 할아버지 유빈기와 유중무가 세운 지령리교회의 흔적을 발견했다.

최 목사는 26일 “지령리교회가 있던 당시 목천군에선 정미의병과 일본 토벌대의 전투, 일본의 ‘직산 금광’ 침략 등 일제의 수탈이 구체적으로 자행됐다”며 “특히 일제의 만행 앞에 무기력한 관청 관리들의 모습에 실망한 주민의 상당수가 기독교에 귀의했다”고 말했다. 그는 “1907년 10월 일본군이 이곳 예배당에 불을 질렀다는 보도가 있었다”면서 “지금은 사라진 지령리교회 서까래에서 불에 탄 흔적을 봤다는 지역 어른들의 증언에 비춰 보면 지령리교회의 저항정신을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1907년 8월 16일자 대한매일신보에 실린 ‘국채보상의연금 수입광고’에서도 유중무 등 ‘지령야소교당’ 교인 82명의 이름이 등장한다. 최 목사는 특히 1908년 1월 미국인 감리교 선교사 케이블이 주도한 부흥사경회에 주목했다. 당시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눈물로 회개하며 생활을 바꾸겠다고 결심하는 자기 갱신 운동이 일어났다. 최 목사는 “어린 유관순도 그 자리에 참석했을 것”이라며 “실제로 복음을 받아들인 유관순의 할아버지 유윤기는 종과 머슴을 풀어주며 봉건계급 철폐에 앞장섰다”고 말했다. 이렇게 현장에서 뼈저리게 느낀 일제에 대한 저항정신과 복음이 1919년 4월 유관순과 집안 사람들이 병천 아우내와 공주읍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한 원동력이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피해는 매우 컸다. 유관순의 어머니 이소제가 현장에서 숨졌고 아버지 유중권도 머리와 옆구리에 중상을 입고 집으로 옮겨졌다 이튿날 숨졌다. 숙부 유중무와 유관순, 유관순의 오빠 유우석은 투옥됐다. 유관순의 사촌 언니 유예도를 도피시킨 사촌 오빠 유경석과 올케 노마리아는 일제로부터 갖은 괴롭힘을 당했다. 그럼에도 유관순 가문은 끝까지 신앙과 독립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최 목사는 그해 6월 16일 집안의 기둥이던 어른 유윤기가 사망한 뒤 7월 9일 충청남도 장관 구와하라 아츠시가 조선총독부 내무부 장관 우사미 가스오에게 보낸 보고서를 찾아냈다. 최 목사는 “보고서를 보면 기독교 때문에 일가가 멸족됐으니 유윤기를 전통방식으로 장례 치르자는 집안 사람들에 맞서 유관순 집안의 사람들은 기독교식 장례를 고수했다”며 “이들은 민족의 독립과 기독교인의 각성을 통한 복음화가 꼭 이뤄진다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후에도 유중무와 그의 아들 유제경, 유관순의 오빠 유우석과 그의 아내 조화벽에 이르기까지 유관순 가문의 사람들은 신앙의 토대 위에서 일제에 저항하며 살았다. 최 목사는 “유관순 가문의 정신과 삶은 진정한 헌신과 희생이 무엇인지 이야기해준다”며 “이들이 보여준, 민족과 기독교 신앙을 위한 희생과 헌신이 지금 우리에게 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064299&code=23111111&sid1=chr

“민족·국가의식, 3·1운동 이후 한 차원 높아졌다”

3·1운동을 겪으면서 우리 국민에게 나와 가족, 주변을 넘어 민족과 국가 의식이 생깁니다. 민족과 국가의 존립이 생존권의 절대조건이란 걸 깨달은 것이지요.” 1919년 3·1운동 이듬해 태어나 올해 상수(上壽·100세)를 맞은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가 전한 3·1운동의 역사적 의미다.

한국근현대사의 산증인인 김 교수는 25일 서울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3·1운동과 통일 포럼’에서 “100년간 3·1운동만큼 중요한 역사적 사건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포럼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3·1운동의 시대정신을 재조명하고 한반도 통일 시대를 준비하고자 국민일보와 통일한국세움재단(이사장 신대용)이 공동으로 마련했다. 김 교수는 이날 ‘3·1정신의 현재적 의미와 우리의 과제’를 발표했다. ‘대한민국 철학계 1세대 교육자’인 그는 일본 조치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철학과에서 30여년간 후학을 양성해 왔다.

이날 김 교수는 원고 없이 주요 내용을 적은 쪽지만으로 강연을 소화했다. 시종일관 정정한 자세와 또렷한 목소리로 연설해 강연 직후 참석자 400여명의 큰 박수를 받았다. 그는 강연에서 “그간 우리 민족의 생활 단위가 나와 가족 직장 등 주변에 국한돼 있었으나 3·1운동 이후엔 민족과 국가로 한 차원 높아졌다”고 밝혔다. 세계 여러 민족의 역사를 보면 국가는 가족에서 사회공동체로, 사회공동체에서 국가공동체로 변모하는 일종의 계몽 과정을 거친다. 우리의 경우 3·1운동을 통해 국가공동체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3·1운동 이후 국민이 나라 발전에 있어 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고 의식구조가 변화하면서 지금에 이르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6·25전쟁, 4·19혁명, 문민정부 출범 등 직접 마주한 역사의 순간들을 열거하며 사회 변화상을 조명했다. 전쟁 후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국제무대에 등장했고 4·19혁명 등으로 민주주의 암흑기를 겪었다. 박정희정권 때에서야 절대빈곤에서 벗어난 데 이어 문민정부가 탄생했다. 김 교수는 “김영삼정부가 돼서야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사회가 아닌 법이 지배하는 법치국가가 됐고 오늘에 이르렀다”며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선진국가로 나아갈 수 있느냐를 고민해야 한다. 선진국가는 법이 아니라 질서가 지배하는 ‘질서사회’로 만들어진다”고 강조했다. 그가 말하는 ‘질서사회’는 윤리 도덕 종교 등의 선한 질서가 지배하는 사회를 말한다. 통일한국을 위한 조언도 했다.

그는 “통일 이후 사회통합을 위해서는 정권욕에 빠져 애국심을 상실하는 지도자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20세기의 잔재인 이념 대립도 끝내야 한다. 선진국들은 보수와 진보의 상생을 넘어 다원적 가치를 담아내는 열린 사회를 추구한다”며 “진보와 보수 둘 중 하나만 살아남는 폐쇄사회로 간다면 후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격동의 현대사를 겪은 100세 철학자의 마지막 바람은 조국이 문화강국이 되는 것이었다. 김 교수는 “한국 규모로는 100년이나 200년 후에도 정치나 군사 대국이 되기는 쉽지 않겠지만 문화 대국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만일 100년 더 살 수 있다면 우리 문화가 세계를 이끌어 가는 것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논찬을 맡은 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는 “지성의 선구자이자 깊은 영성을 지닌 김형석 교수님의 통찰에 공감한다”며 “우리 목회자들부터 목회 영역을 민족·국가적으로 확대해 한국교회가 남북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064028&code=23111111&sid1=chr

인도 파키스탄 카슈미르 국경 테러와 인도의 파키스탄 공격

인도·파키스탄 접경 지역서 테러…軍 40여 명 사망

14일 인도 카슈미르서 자살 폭탄 테러 이슬람 무장 단체 JeM “우리가 했다” 30년간 분쟁 끊이지 않는 곳 인도 카슈미르에서 자살 폭탄 테러가 발생해 군인 등 40여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테러 발생지는 인도와 파키스탄 접경지로 지난 30년 간 종교의 차이로 분쟁이 끊이지 않던 곳이다.

한 이슬람 무장단체는 이번 테러가 자신들이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14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15분쯤 인도 카슈미르에서 자살 폭탄테러가 발생해 44명의 사망자와 수십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현지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사망자 수는 늘고 있다. 이번 테러는 연방경찰 CRPF(Central Reserve Police Force) 소속 무장경찰의 버스행렬을 노린 것으로 파악된다. 사고 발생 당시 경찰부대 병력 2500명을 태운 78대의 버스 등 차량이 지나가는 중이었으며 300~350kg의 폭발물을 실은 차량이 이 행렬에 돌진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슬람 무장세력 ‘자이시 이모하메드(JeM)’는 현지언론을 통해 이번 테러가 자신들의 소행이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파키스탄의 지원을 받는 JeM은 카슈미르에서 활동하는 가장 강력한 무장단체 중 하나로 2001년 인도 의회를 공격해 비난받기도 했다. 카슈미르는 파키스탄 접경 지역으로 지난 30년간 독립 또는 파키스탄으로의 편입을 원하는 반란이 끊이지 않았다. BBC에 따르면 1989년 이후 최소 10건의 자살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이 지역에서는 2016년 약 20명의 사망자를 낸 테러 사건이 발생했고 또 2002년에도 인도 치안 병력(Security forces)을 목표로 한 폭탄 테러가 발생, 31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한편 인도 외무 장관은 이날 사고 발생 약 한 시간 후 성명을 통해 “우리는 파키스탄에 테러리스트를 지원하는 행위를 그만둘 것을 요구한다”고 촉구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트위터를 통해 “이번 공격을 강력히 비난한다”며 “우리 치안 경찰의 희생이 헛되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http://m.mt.co.kr/renew/view.html?no=2019021508085476995

다시 불붙은 ‘화약고’ 카슈미르…총격전에 인도군 사망 반군과 교전 벌이던 인도군 4명 사망·1명 부상

인도 정부, 파키스탄 반군 대대적 소탕 나서 인도와 파키스탄의 영토 분쟁 지역인 인도령 카슈미르(잠무 카슈미르) 풀와마 지역에서 인도군과 반군의 총격전이 발생해 인도군 4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AFP통신이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지역에서 자살폭탄 공격으로 무장단체 조직원 41명이 한꺼번에 사망한 지 4일만에 벌어진 일이다. 통신은 익명의 고위 경찰관리를 인용해 “교전 도중 4명이 사망하고 한 명이 부상했다”면서 “우리 군이 경고성 발포를 하니 반군이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 관리는 수색 작전이 강화되고 있지만 이때 총격전을 벌였던 반군 세력이 도주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인도 정부는 지난 14일 이 지역에서 발생한 자살폭탄 공격의 배후로 파키스탄을 지목하고, 파키스탄계 반군 소탕 작전에 나섰다. 당시 폭발물을 실은 차량이 카슈미르 고속도로에서 인도중앙예비경찰부대(CRPF)원 약 2500명을 싣고 달리던 78대의 차량을 향해 돌진했다. 파키스탄에 본부를 둔 이슬람 무장세력인 ‘자이시 이모하메드’는 이번 테러의 배후를 자처했다. 이에 인도에서는 파키스탄에 군사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분노의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시민들도 거리에 나와 파키스탄에 대한 보복을 주장하고 나섰다. 노동조합은 상점과 소기업들의 전국적인 파업을 촉구하고 있다. 카슈미르에서도 힌두교도 비중이 높은 잠무시에서는 통행금지령이 4일간 계속됐으며, 시위대는 카슈미르인 무슬림의 재산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뉴델리에서는 카슈미르인 남성이 반(反)인도 구호를 외쳤다는 이유로 여러 무리의 사람들에게 폭행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카슈미르는 파키스탄의 독립 이후 인도와 파키스탄의 영토로 분할돼 있다. 하지만 지난 30년간 카슈미르 독립이나 파키스탄으로 편입되길 원하는 반란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특히 잠무 카슈미르는 힌두교 국가인 인도에서 유일하게 이슬람 인구가 많은 지역이다. 인도는 1989년 카슈미르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이를 진압한 뒤 지역에 병력을 50만명이나 배치했다. 그렇게 이 곳은 세계에서 가장 무장된 지역 중 하나가 됐다. 이 지역의 갈등 상황은 지난 2016년부터 심화돼 폭력 사태로 사망한 이들의 숫자는 거의 6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뉴스1) http://news.donga.com/Inter/3/02/20190218/94175023/1

인도 “파키스탄과 인더스강 공유 않겠다”…

테러 갈등 최고조 최근 인도령 카슈미르에서 발생한 자살폭탄 테러로 인도와 파키스탄 간 갈등이 최고조로 치닫는 가운데 인도가 물을 공격 무기로 삼았다. 22일 인도 일간 힌두스탄타임스와 미국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니틴 가드카리 인도 교통부 장관은 전날 트위터를 통해 파키스탄과 인더스강 유역의 수자원을 더는 공유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지금까지는 인도 영토를 거쳐 파키스탄으로 흘러 들어가는 인더스강 상류 물줄기를 그대로 뒀으나 앞으로는 이를 막아 인도 쪽으로 돌리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파키스탄 일부 농업지대는 당장 심각한 물 부족에 시달릴 수밖에 없게 된다. 가드카리 장관은 1960년 ‘인더스강 조약’에 따라 인도는 인더스강 상류의 수자원을 사용할 수 있었지만, 그간 활용하지 않았는데 이제 그 권리를 행사하겠다고 설명했다. 인도는 이전에도 종종 이 같은 주장을 펼쳤으나 이번처럼 강도 높게 확실한 어조로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현지 언론과 외신은 인도의 이번 발표가 카슈미르 자살폭탄 테러와 관련한 ‘보복’이라고 분석했다.

http://m.mk.co.kr/news/headline/2019/109628#mkmain

印 공군, 48년 만에 파키스탄 공습.. 양국 대립 격화 ‘카슈미르 폭탄 테러’ 印경찰 40명 사망 보복인 듯/

인도 “분계선 넘어 테러캠프 공격/전투기 폭탄 1t 투하.. 완전 파괴”/ 모디, 긴급안보회의 軍상황 점검/파키스탄 “희생자·피해발생 안해”/인도에 정전협정 위반 강력 반발/양국 전면전 확대 가능성은 낮아

인도 공군이 26일 군사분계선(LoC)을 넘어 파키스탄 지역을 공습했다. 인도-파키스탄 간 영유권 분쟁지역인 인도령 카슈미르(잠무카슈미르주)에서 최근 발생한 자살폭탄 테러로 인도 경찰 약 40명이 사망한 사건 이후 양국 갈등이 고조되는 분위기다. 인도의 파키스탄 공습은 1971년 양국이 전쟁을 벌인 이후 48년 만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프라카시 자바데카르 인도 인적자원개발장관은 이날 “군이 국가안보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했다. 그것은 극도로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며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앞서 군당국에 전권을 부여했고, 오늘 온 나라가 군과 함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도 공군 관계자도 ANI통신에 “26일 오전 3시30분쯤 미라주 전투기 편대 12대가 분계선 너머 테러리스트 캠프를 공습했다”며 “1t이 넘는 폭탄을 투하했으며, 이 공격으로 테러리스트 캠프는 완전히 파괴됐다”고 말했다. 모디 총리는 공습 직후 긴급 안보회의를 주재하면서 LoC 주변 군 상황 등을 점검했다. 반면 파키스탄 측은 “인도가 정전협정을 위반해 LoC를 침범했다”며 강력 반발했다. 아시프 가푸르 파키스탄군 대변인은 “인도 공군이 파키스탄이 통제하는 카슈미르 무자파라바드 상공을 침범했다”며 “파키스탄 공군이 요격을 위해 즉각 출동했으며, 인도 전투기들이 되돌아갔다”고 전했다. 그는 “인도 공군이 카슈미르 외곽 발라코트에 폭탄을 투하했다”고 덧붙였다. 샤 메흐무드 쿠레시 파키스탄 외무장관은 “인도는 더 분별력이 있어야 한다”며 “파키스탄은 완벽하게 방어태세를 갖춘 상태라 인도의 공격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파키스탄은 이날 공습지역 사진을 공개하며 “희생자나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나, CNN 뉴스18은 캠프 내 무장병력 200명가량이 숨졌다고 보도했다.

이날 공습은 지난 14일 카슈미르에서 발생한 테러로 양측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이뤄졌다. 당시 잠무카슈미르 풀와마 지역에서 인도 중앙예비경찰부대 소속 2500여명을 태운 차량 행렬을 노린 자살폭탄 테러가 일어나 약 40명이 사망했는데,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카슈미르 반군 ‘자이시에무함마드’가 공격의 배후를 자처했다. 그러나 인도는 파키스탄이 실제 배후라고 주장하며 관세 인상 등 보복조치를 취해 왔다. 그러나 이번 공격이 전면전으로 번질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전망된다. 두 나라 모두 핵보유국인 데다 카슈미르 지역에는 양국 군인 수십만명이 대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습 이후 크게 출렁이던 인도 환율·증권 시장도 차츰 안정을 되찾는 모양새다. 인도 공군이 파키스탄 영토에서 정확히 무엇을 타격했는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는 점에서 인도 측의 ‘계산된 행동’이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파키스탄에 대한 인도 국민의 분노를 누그러뜨리면서도 파키스탄의 군사적 반격 위험성은 최소화하는 범위의 공습이었다는 얘기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19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당시부터 카슈미르 영유권을 놓고 분쟁을 벌여 왔다. 종교·계급 갈등으로 세 차례 큰 전쟁을 치른 뒤 1972년 인도령과 파키스탄령으로 분할됐다. 잠무카슈미르는 힌두교 국가인 인도에서 유일하게 이슬람 인구가 압도적으로 많아 ‘카슈미르 독립’이나 ‘파키스탄 편입’을 주장하는 무장단체의 활동이 이어져 왔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 https://news.v.daum.net/v/20190226210218382?rcmd=rn&f=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