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February 26, 2019

20돌 맞은 서울퀴어문화축제 5월말 개최…”평등을 향한 도전”

연합뉴스

서울퀴어퍼레이드는 6월 1일 서울광장서 열려

인사말하는 한채윤 기획단장(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 개최 기자회견에서 한채윤 서울퀴어퍼레이드 기획단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참석자는 한 단장 오른쪽으로 강명진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 안성민 문화연대 사무처장. 2019.2.26 scape@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성(性) 소수자의 최대 축제로 꼽히는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오는 5월 말부터 총 2주간 열린다.

올해로 20회를 맞는 서울퀴어문화축제의 슬로건은 ‘스무 번째 도약, 평등을 향한 도전!이다.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는 26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성 소수자의 보편적 권리 보장에 대한 메시지를 정부에 직접 전달하기 위한 슬로건을 채택했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가 혐오세력의 눈치를 보던 태도를 버리고 성 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의 보편적 권리 보장을 위한 제도적인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난 2000년 50여명 참여로 시작한 이 행사는 매해 규모가 커지면서 지난해는 주최 측 추산 12만여 명이 참석하는 행사로 성장했다.

강명진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은 “서울퀴어문화축제의 지난 19년간의 노력, 그리고 사회의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정의에 공감하는 수많은 시민과 시민사회단체의 노력에 힘입어 한국사회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면서도 “그와 함께 혐오세력의 움직임도 거세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2007년 차별금지법 제정 방해를 시작으로 2014년부터는 서울퀴어문화축제가 혐오세력의 폭력에 노출되기 시작했다”며 “혐오폭력을 방지하기 위한 정부와 정치권의 노력은 미온적이고 굼뜨기만 하다”고 지적했다.

인사말하는 한채윤 기획단장(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 개최 기자회견에서 한채윤 서울퀴어퍼레이드 기획단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참석자는 한 단장 오른쪽으로 강명진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 안성민 문화연대 사무처장, 신지예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양은오 한국퀴어영화제 집행위원장. 2019.2.26 scape@yna.co.kr

이어 “오늘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의 개최를 위한 서울광장 사용신청서를 제출했다”며 “성 소수자의 보편적 권리 보장을 위해 정부와 경찰은 방관적인 태도를 버리고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주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올해 서울퀴어문화축제의 주요 행사로는 서울퀴어퍼레이드와 한국퀴어영화제가 열린다. 

서울퀴어문화축제의 하이라이트인 서울퀴어퍼레이드는 6월 1일 서울광장에서 개최된다. 올해 한국퀴어영화제는 6월 5일부터 9일까지 진행된다.

올해는 20회를 기념해 ‘서울핑크닷’과 연속강연회도 마련됐다. 

서울핑크닷은 성 소수자와 지지자들이 모여 분홍색 불빛으로 커다랗게 빛나는 점을 만들어 사랑과 화합의 메시지를 전하는 행사라고 주최 측은 설명했다. 5월 31일 열린다.

연속강연회에서는 레즈비언이자 독일 호스피스의 대모로 불리는 김인선 씨 등이 강연한다. 

kihun@yna.co.kr

두산重서만 80여 명 원전 핵심인력 이탈…佛·UAE 경쟁사로 떠난다

원전산업 붕괴 현실화

한수원 작년에만 74명 사표
“탈원전에 더이상 희망 없다”
3대 공기업 자발적 퇴직자 급증

“지난달 아끼던 후배 한 명이 사표를 내겠다고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상황이 바뀔 가능성도 있으니 조금만 더 버텨보자’고 했더니 희망고문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원전 공기업의 한 관계자는 최근 회사 내부 분위기를 전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탈(脫)원전 정책 초기만 해도 ‘어떻게든 버티면 달라지겠지’ 하는 분위기였지만 이제는 희망을 버려야겠다는 직원이 많아졌다”고 덧붙였다.

바뀐 분위기는 수치로 드러나고 있다. 24일 정유섭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이 국내 3대 원전 공기업으로 꼽히는 한국전력기술, 한국수력원자력, 한전KPS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세 기업의 원전 부문 자발적 퇴직자는 2015~2016년 170명에서 2017~2018년 264명으로 늘었다. 55.3% 급증한 것이다.

관련기사

원자력발전소 운영을 담당하는 한수원에서만 작년 74명이 사표를 냈다. 보수·유지 업무를 하는 한전KPS에서는 49명, 설계 분야인 한전기술에서도 21명이 짐을 쌌다. 공공기관의 한 관계자는 “고용이 보장된 공기업에서 이렇게 단기간에 자발적 퇴직자가 늘어난 것은 정책 변화 등 특수 요인이 아니면 설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5월 출범 직후 안전성을 이유로 원자력발전 비중을 점차 줄여 궁극적으로 ‘0’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원전업계는 “원전을 급격히 줄이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산업이 붕괴되니 속도를 늦춰달라”고 호소했지만 정부는 ‘정책 수정 불가’를 고수하고 있다.

민간기업도 심각하긴 마찬가지다. 원전 핵심 기자재인 원자료, 터빈발전기 등을 제조하는 두산중공업은 2017~2018년 원전 인력 80여 명이 회사를 떠났다. 올해부터는 과장급 이상 직원을 상대로 유급휴직도 시행하고 있다. 두산중공업 관계자는 “1년간 2개월씩 의무적으로 쉬어야 하는데 이미 상당수 직원이 휴직서를 내서 업무에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했다. 중소기업 상황은 더 열악하다. 두산중공업의 90여 개 주요 협력업체는 탈원전 정책 이후 평균 40% 정도 직원을 구조조정한 것으로 조사됐다.

핵심 인력의 해외 유출도 잇따르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2017~2018년 10여 명의 두산중공업 원전 인력이 해외 원전업체로 이직했다. 프랑스 아레바, 미국 웨스팅하우스, 아랍에미리트(UAE) 원자력공사(ENEC) 등 대부분 한국의 경쟁사다. 한전기술, 한수원, 한전KPS에서도 2017~2018년 14명이 해외 원전기업에 둥지를 틀었다. 해외 기업은 공공기관이 의무적으로 재취업 현황을 파악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어서 실제 해외 이직자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그간 원전 인력 이탈과 이에 따른 산업 생태계 붕괴에 대해 “탈원전 속도가 느리고 원전 수출, 해체산업 육성 등 대안이 있어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설명해 왔다. 하지만 원전업계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라고 반박한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현 정부 들어 신규 원전 6기를 백지화했는데 이로 인해 원전 기자재·설계업체들은 올해 말이면 일감이 끊긴다”며 “원전 수출에 성공해도 일감은 4~5년 뒤에야 떨어져 공백을 메우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정 의원은 “올해는 원전 인력 이탈이 더 빨라져 산업 생태계 붕괴가 현실이 될 것”이라며 “백지화한 신규 원전 중 신한울 3·4호기만이라도 재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

ⓒ 한경닷컴 

거리에서 전도하다 수갑채워 끌려가는 노인

거리에서 전도하다 수갑채워 끌려가는 노인

1.(2019.2.24.) 런던 경찰의 “뭐하는 겁니까?”질문에 노인은 “나는 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진리를 말할 필요가 있다”고 답하자, 경찰들은 노인의 손을 뒤로 꺽어 수갑 채우고 데려갑니다. 노인은 경찰에게 성경책을 가져가지 말라고 애원합니다 http://bit.ly/2Nqb4VA

공공질서법을 적용했을 것 같은데 이것은 대중이 불쾌감을 느끼다면 적용하기 때문에 종종 거리전도자들이 체포됩니다. 경찰이 무신론자거나 무슬림이라면 불쾌감을 당연히 느끼겠죠. 한국에 공공질서법이 제정되면 전도자들로 경찰서가 넘칠 것 같군요

2.(2005.12.29.) 우리나라에도 집회에 대한 규제를 위한 목적으로 ‘공공질서법’이 고려된 적이 있죠 http://bit.ly/2EtVJAt 유럽의 ‘증오표현법’을 모방한 혐오표현규제법이 작년에 발의 되었으니 공공질서법도 등장할 수 있습니다. 정치인과 하나님 사이에 선택해야 하는 거죠

3. 1800년도 후반 대학생들의 학생자원운동(SVM)이 일어나서 1940년대까지 10만 명이 선교사로 자원해서 2만500명이 나갑니다. 그들중 일부가 조선에 와서 근대문명을 전수합니다. 영국이 SVM의 주도 국가였죠. 한국은 국가적으로 선교사들의 혜택을 크게 본 나라죠

영국의 로스 선교사는 최초의 한글 신약선경을 번역하고 한글 문법책을 만듭니다http://bit.ly/2VfEOan 한글 성경책을 읽게 하려는 교회의 한글 보급 노력이 장차 한글이 한국의 공식문자가 되게 한 원동력었죠. 한글날 행사에 기독교단체가 없다면 게으름 탓인 듯

4. 2015년 영국의 안드레아 윌리암스 변호사는 한국에 와서 평등법이 제정된 후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를 설명합니다. 들어보세요 http://bit.ly/2E90AWg

1997년 영국에 사회주의정당인 노동당이 집권하자 동성애 관련 정책들이 입법되기 시작하고, 같이 싸우던 목회자들은 사라지고, 자기가 제일 앞줄에 서게 되자 동성애단체들은 자기들의 승리를 예측하기 시작했다고 하더군요

2005년 평등법이 제정되자 방송사들은 기독교연합단체가 아니라 자기에게 의견을 묻는 인터뷰를 하더라며 참담해 했죠. 영국 교회는 몰랐기 때문에 당했는데, 한국의 목회자들은 알기에 변명할 수 없다며 믿음의 싸움을 권면합니다.

6. 황교안은 한국당 봉합을 위해서 나온 것 같은데 연설을 잘 못하네요. 트럼프가 이번에 국회 연설후 지지율이 52%로 급등했는데 일반 정치인들은 듣기 좋은 말만 늘어놓는데 반해서 트럼프는 정곡을 찔러 대죠

황교안이 레이건 대통령 정도의 연설을 할 수 있다면 한국당이 1당이 될 수 있을 겁니다. 미국 보수 대통령들은 관념적 어휘들을 늘어놓지 않고 실제적이죠 http://bit.ly/2EtYXE5

IS 몰락 후 합류 자국민 처리에 비상인 서방 국가

미래에 한국이 이런 혼란을 겪지 않기 위해 지금부터 지혜롭게 대처해야 합니다.
“네덜란드, IS서 급여받은 명단 확보”…’골수IS’ 감별증거?
네덜란드 검찰이 이슬람 테러조직 ‘이슬람국가(IS)’에서 급여를 받은 네덜란든 출신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의 명단을 확보했다고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23일 네덜란드 일간지 AD에 따르면 네덜란드 검찰은 이 명단을 미국 연방수사국(FBI)으로부터 전달받았다.
이 명단에는 지난 2016년과 2017년에 IS를 위해 일했던 모든 사람의 이름이 영어와 아랍어로 담겼다고 신문은 전했다.
명단에 오른 사람은 전투에 참여한 사람부터 지원 업무를 한 사람까지 망라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명단 중 네덜란드 출신 일부는 귀국해 현재 네덜란드 당국 시설에 구금됐다고 신문은 보도했다.
네덜란드 검찰은 이 명단을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활동하다 돌아온 네덜란드 출신 지하디스트에 대한 재판 때 증거자료로 사용할 방침이다.
명단에는 전투에 참여한 사람과 지원 업무를 담당한 사람의 급여에 차별을 둬 누가 전투에 참여했고, 지원 업무만 했는지를 입증하는 좋은 자료가 된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한편, IS가 시리아에 세우고 참칭했던 ‘칼리프 국가’가 사실상 붕괴하면서 IS에서 활동했던 유럽 출신 지하디스트와 가족 상당수가 유럽으로 귀환할 것이라는 관측이 일각에서 제기돼 각 국가가 긴장하고 있다.
출처 : https://www.yna.co.kr/view/AKR20190223051300098?input=1195m
자발적으로 IS 합류했던 서방인들을 이제 ‘어쩌나?’
미국 주도의 국제동맹군과 시리아 민주군 등에 패퇴를 거듭하며 패망 직전까지 몰린 수니파 무장조직 IS가 시리아 동부 지역에서 최후의 저항을 하고 있습니다.
IS는 민간인 천 명을 인질로 삼고 있는 가운데 과거 자발적으로 IS에 합류했던 서방인들의 소재와 거취 문제도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양영은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지난 9일부터 시리아에서는 수니파 무장 조직 이슬람국가 즉 IS를 완전히 소탕하기 위한 전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무스타파 발리/시리아 민주군 대변인 : “전투지에서 민간인들을 대피시켰습니다. 며칠 안에 전투는 끝날 것입니다.”]
CNN은 지난 반 년 동안 IS 잔당 천여 명이 2250억여 원에 달하는 막대한 현금을 들고 달아났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처럼 패색이 짙어지자 IS 포로들은 물론 한 때 IS에 합류했다 탈출해 난민촌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의 거취 문제가 떠오르고 있습니다.
실제, 한 때 IS의 유명한 선전 요원으로 활동했던 미국인 여성 호다 무타나는 6주 전 탈출해 현재 아들과 난민 캠프에 머물면서 귀국을 희망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한 언론은 최근 한 난민캠프에서 4년 전 16살의 나이로 자발적으로 IS에 합류했던 샤미마 베이검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샤미마 베이검/영국인/4년 전 IS 합류 : “임신 9개월인데 아이가 여기서 아플까 봐 두려워서 영국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요.”]
유럽 출신이 대부분인 이들의 복귀 가능 여부는 미지수입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서방 출신의 IS 포로 800명을 데려가라고 유럽 국가들에 요구한 상황, 유럽 각국은 그러나 귀환에 따른 추가 안보 위협을 우려해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KBS 뉴스 양영은입니다. 출처 :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141112&ref=A
“IS 합류로 英국적 박탈된 10대 소녀 갓난아들 먼저 입국 추진”
변호인 “시리아서 소녀 만나 상의할 것”…전문가 “국적 인정 가능”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합류했다가 영국 시민권을 박탈당한 샤미마 베굼(19)의 갓난아기를 먼저 영국으로 데려가는 방안이 추진된다.
21일(이하 현시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베굼 가족의 변호사인 타스니메 아쿤지는 조만간 시리아 북동부 난민 캠프에서 지내는 베굼을 만나 국적 박탈에 따른 이의 제기 착수 문제를 상의할 계획이다.
아울러 며칠 전 태어난 베굼의 아들을 영국으로 데려가는 것도 논의할 예정이라고 아쿤지 변호사는 전했다.
시민권 박탈에 대한 이의 제기 절차를 밟고 그 결과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그의 아들만이라도 우선 영국에 입국시키겠다는 것이다.
이 아기가 언제 태어났는지 가족들조차 잘 모르는 상황이지만 대략 영국 내무부가 베굼의 시민권을 박탈하기로 결정한 지난 19일로부터 하루 이틀 전이라고 가디언은 전했다.
아기 이름도 정확히 확인되지 않은 가운데 베굼이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자라(Jarrah)라고 이름 붙였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법률 전문가들은 베굼이 영국 시민권을 보유한 상태에서 출산했기 때문에 이 아기 역시 법적으로 영국 국적을 부여받을 수 있다고 본다.
사지드 자비드 영국 내무부 장관도 이 아기의 국적 문제와 관련해 지난 20일 하원 긴급 질의에서 부모가 영국 시민권을 잃더라도 자녀의 권리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답변한 바 있다.
다만, 아기를 영국으로 데려가려면 베굼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아쿤지 변호사는 밝혔다.
아쿤지는 “베굼의 뜻에 반하는 어떠한 것도 할 수 없다”면서 “그녀에게 어떤 선택지가 있는지 충분히 설명하고 허락을 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 상황에서 생후 4∼5일 된 아기를 영국으로 데려가기 위해 어떤 실무적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자비드 장관이 설명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방글라데시계 베굼은 15세 때인 2015년 2월 같은 학교 여학생 2명과 함께 거주지인 런던을 떠나 시리아로 건너간 뒤 IS에 합류했고 그곳에서 네덜란드 출신 IS 전사와 결혼했다.
영국 정부는 베굼이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영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면서도 IS 합류를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발언한 사실이 보도된 뒤 그의 영국 시민권을 박탈했다.
영국 정부는 베굼이 영국-방글라데시 이중국적이라는 점을 들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방글라데시마저 자국민이 아니라고 반박하면서 베굼은 사실은 무국적 상태가 될 위기에 놓였다. 국적을 박탈해 무국적자로 만드는 것은 국제법상 불법이다.
한편, 영국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 대표는 내무부가 베굼의 국적을 박탈한 것과 관련해 “매우 극단적인 조치”라고 비판하면서 정부 차원의 지원을 촉구했다.
그는 “베굼은 영국에서 태어났으며 영국에서 거주할 권리가 있다”면서 “그가 (IS 합류 등과 관련해) 대답해야 할 여러 의문이 있지만, 그와 별개로 필요한 지원은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lucho@yna.co.kr

“3.1운동에 있어 조선의 기독교 학교는 핵심적 기폭제였다”

[기독일보 노형구 기자] 3.1운동 100주년 기념 전국기독교학교대회가 영락교회에서 21일 오전 10시 반부터 개최됐다. 1부 학술대회, 2부 기독교학교대회로 나뉘어 진행된 이번 전국기독교학교대회는 3.1운동의 핵심적 역할을 했던 조선의 기독교 학교 등을 되짚어 보는 시간이었다.1부 학술대회는 먼저 이덕주 감신대 명예교수가 발제는 했다. 그는 “당시 천주교 박해로 조선은 전반적으로 기독교 복음을 향해 의구심 섞인 눈초리로 바라보았다”며 “하여, 서양 개신교 선교사들은 병원 설립과 학교 설립을 통해 간접 선교를 시도했다”고 전했다.     

가령, 그는 “알렌은 광혜원(후에 세브란스 병원), 언더우드는 경신학당, 스크랜턴은 시병원, 아펜젤러는 배재학당, 메리 스크랜턴은 이화학당을 설립함으로, 간접선교를 시작했다”며 “당시 조선은 선교를 금했지만, 교육과 의료 사역을 허락함으로 선교사들의 간접적 선교는 시작됐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죽어가는 환자들을 기꺼이 데려다가 무료 진료 하니까, 조선 사람들은 서양 선교사들을 향해 ‘저 사람들은 누구인가’를 생각했다”며 “선교사들은 기독교 기초 교리를 가르쳐, 마침내 개종자들이 나왔다”고 했다.더불어 그는 “당시 영어를 배워서 출세하려는 근세 서구 학문에 대한 갈망이 조선 청년들 중에서 많았다”고 했다. 하여, 그는 “조선 청년들은 기독교 학교에서 서구 근대 학문을 배우면서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였다”며 “이렇게 개종자들의 집회가 빈번해지면서 1887년, 북 장로회, 미 감리회는 각각 지금의 새문안교회와 정동제일교회를 설립했다”고 전했다. “의료와 교육 분야에서 ‘간접 선교’로 사역을 시작한 지 2년 만의 일”이라고 그는 힘주어 덧붙였다.

주목할 점으로, 이덕주 교수는 당시 서구 선교 교단들은 선교에 있어 중첩·경쟁을 지양(止揚)하기 위해, 시행했던 한반도 분할 정책을 설명했다. 그는 “1909년 북장로교, 남장로교, 캐나다장로회, 호주장로회, 미감리회, 남감리회 등이 선교를 경쟁적으로 하지 않기 위해, 대한민국을 각 지역을 분할해 할당받아 협력·선교를 지향했다”고 소개했다. 이른바 그는 “각각 주요 거점 도시 마다 미션(Mission) 스테이션을 설립했다”며 ”예로, 평양신학교의 설립이 대표적“이라고 전했다.
특히 그는 ”평양신학교 제 1회(1906) 졸업생으로 길선주, 한석진, 서경진 목사들은 서양 선교사들의 노력의 결과물“이라며, 곧바로 당시 졸업 사진을 보여줬다. 이어 그는 ”당시 길선주 목사 손에는 성경, 한석진 목사 손에는 태극기, 서경진 목사 손에는 우산이 들렸다“며 ”이게 상징하는 바는 바로 ‘애국, 기독교, 서구 근대 문물’“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그는 당시 평양신학교를 비롯해 대부분 기독교 학교들은 기독교 복음 정신인 ‘자유와 해방’을 적극 설파했음을 말했다. 일례로,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한석진 목사는 독립협회 관서 지부장을 지냈다”며 “개성 한영학교, 서울 경신학교 등 해외 선교부가 설립한 학교에는 항상 학생들이 나라사랑과 독립을 외쳤다”고 힘주어 말했다.이어 그는 “105인 사건(1911) 때, 기독교 학교들의 교사와 학생들이 주역이 돼 옥고를 치렀다”며 “하여, 조선총독부는 105인 사건에 기독교 사립학교 교사와 학생들이 대거 연류됐음을 파악해, ‘개정 사립학교규칙’을 제정해 탄압을 가했다”고 전했다.

이러한 개정 사립학교규칙이라는 조선 총독부의 탄압정책으로 항일정신이 기독교 학교 전반에 감돌게 된다. “이는 이후 3.1운동의 도화선이 됐다”고 그는 강조했다. 게다가 그는 “민족 대표 33인이 3.1운동 독립 선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연희전문학교 김원벽 학생, 보성전문학교 강기덕 학생들은 서울지역을 중심으로 기독교 학교 학생들을 규합해 3.1운동에 참여하도록 독려했다”고 밝혔다. 그에 의하면, 3.1운동 전인 2월 28일에 숭동교회에서는 중·고등학생들이 모여 독립 운동 선언서 1,500매를 배포해 거사를 알렸고, 밤 9시 다시 정동제일교회에 모여 3.1운동을 준비했다.

아울러 그는 “익산 학교 교감이었던 문용기 집사는 3.1운동 때, 만세를 부르다가 순사에게 태극기를 든 오른팔이 잘렸다”며 “다시, 왼손으로 태극기를 드니까 순사가 또 이를 잘랐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그는 “문용기 집사는 두 다리로 곧추서 독립 만세를 외치니, 일본 순사는 또 다리를 잘랐다”며 “그 피가 묻은 의복이 현재 유산으로 남겨져 있다”고 밝혔다.

더불어 그는 “평북 강계는 산골 도시였지만, 기독교 계통 영실중학교 학생이었던 탁창국은 4월 8일 11시 강계읍교회 종소리를 신호로, 만세 시위를 외쳤다”며 “붙잡힌 탁장국은 매일 30대 씩, 4흘 간 맞아 결국 숨을 거두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탁창국은 미동병원에 실려 갔는데, 당시 북장로회 선교사는 이를 미국에 알렸다”며 “이후 세브란스 병원 내과 전문의였던 스코필드 선교사는 이를 파악해 미국에 문서로 보냈다”고 설명했다. 그에 의하면, 이 문서 이름은 “꺼지지 않는 불꽃”이며, 그는 “당시 선교사들이 기독학생들이 옥중에 있으면서 ‘꺼지지 않았던 불꽃’같았다”고 밝혔다.

이어 임희국 장신대 교회사 교수가 발제를 전했다. 그는 “1919년 3.1 독립만세시위 핵심 추진 세력은 학생들”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당시 1919년 예수교 장로회 총회 회록을 보니, 기독교 학교의 피해상황을 상세히 서술됐다”며 피해 상황을 설명했다. 그에 의하면 평양의 3.1운동은 숭덕학교에서 시작됐다. 이어 그는 “숭실 전문학생들은 일본 경찰들의 추격을 받았다”며 “서양 선교사 모우리(E. M. Mowry)와 마포삼열(S. A. Moffett)은 학생들은 지하실에 숨겨줬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그는 당시 체포, 연행, 취조, 고문당했던 시위자의 증언을 선교사들이 기록한 내용을 전했다. 평양을 중심으로 말한 그는 “3월 3일 평양 거리에서 체포된 여성(21세)이 경찰서에 끌려가서 심문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에 의하면, 여성은 두 팔이 뒤로 잡아당겨져 결박당했고, 그 자세로 심하게 구타당했다. 그녀가 기절하면 그녀에게 찬물을 끼얹었고, ‘춥다’고 하면 일본 경찰은 담뱃불로 지졌고, 또 다른 경찰은 달궈진 쇳덩이로 그녀의 몸을 지졌다고 했다. 특히 그는 “수감자들 중에 기독교학교를 졸업했거나 재학 중인 사람들에게는 가혹하고 잔인한 형벌을 가했다”고 밝혔다.이어 그는 기독교학교가 3.1운동에 참여하고 주도한 원인을 분석했다. 그는 소안론(Swallen) 선교사의 증언을 토대로, “한 기독교학교 학생은 취조받으며, 독립운동은 우리가 받은 교육의 직접적인 결과이고, 선생님이 가르쳤던 수준에 이르려던 결과”였음을 밝혔다.

이에, 그는 “1897년 장로교회 전통으로 미국 장로교 북장로회 재한(在韓) 선교부 연례회의는 ‘교육정책’을 결의했다”며 “이는 학생들의 신앙 증진과 정신 함양에 힘써, 학생들로 하여금 직업인으로서 평신도 복음 전도자와 교회의 주류가 되도록 맞춰졌다”고 전했다. 일례로, 그는 “당시 1907년 전국 장로교회(785개)가 운영했던 소학교는 405개였다”며 “어림잡아 두 교회 당 소학교 하나를 설립했다”고 밝혔다.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그는 “당시 평양 숭실학교 설립자를 베어드 선교사로 흔히 알고 있지만, 실은 평안도 교회들이 십시일반으로 헌금을 모아 숭실 학교를 설립한 것”이라 전했다. 서양 선교사들의 교육 선교의 뜻을 당시 조선 교회들이 이어받고자 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당시 기독교 학교는 대의민주주의 학습의 장(場)이었음을 전했다. 가령 그는 “당시 연동교회 중학교(경신중학교 전신)를 운영했던 선교사 게일은 유몽천자를 집필했다”며 “여기에 미국 보스톤 티 파티를 소개하며, 미국 독립을 소개했다”고 밝혔다. 보스톤 차(Tea) 사건은 당시 18세기 말 영국 의회가 미국에서 수입되는 차에 대한 과세를 부과하려 했다. 이에 당시 보스톤 시민들은 대의제 정치 원리에 따라, 대표를 선출해 과세에 저항했다. 그리고 3년 뒤 미국은 대영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했으며, 이는 미국 독립운동의 시발점이 된 사건이다.

이에 그는 “집필자 게일 선교사는 이를 설명하면서, 인류 박애정신, 민주시민의식, 애국정신, 대의를 위한 희생정신을 소개했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이런 대의민주정치 교육으로 말미암아, 연동교회도 1904년에 장로 선출에 있어 대의민주주의 선거를 활용했다”며 “이래로 교회는 대의민주주의 훈련의 도장”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는 “국가주권을 빼앗긴 나라에서 그 땅의 국민인 장로교회 교인들은 자유와 평등에 바탕을 둔 대의민주제도의 헌법을 바탕으로 교단 헌법을 세웠다”며 “이는 일제 국가권력에 예속되지 않는 자치와 자율을 보장받는 근거였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그는 “교회에서 실천하고 훈련한 대의민주주의는 제국주의 일본 제체와 정면으로 충돌했다”며 “이는 1919년 장로교회와 기독교학교가 민족 독립을 위한 3.1운동에 참여한 근거와 배경”이라고 역설했다.

곧바로 박상진 장신대 기독교교육학과 교수가 발제를 전했다. 그는 “3.1운동이 가능했던 건 기독교 학교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이어 그는 “1885년을 기점으로 북장로교, 남감리회 등 해외 선교부는 조선에 기독교 학교를 설립했다”며 “중요한 건 당시 교회는 ‘1교회 1학교’운동을 벌이며, 토착 조선 기독교에 의해 기독교 학교를 세우려는 움직임이 활발했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당시 기독교학교는 건학 이념이 살아있었다”며 “철저히 기독교 건학이념에 의거해, 일제 총독부가 훼손하려는 기독교 교육과정을 방어하려 했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교육학자 손인수 박사의 말을 빌려, “기독교 민족주의였다”고 표명했다. 이처럼 그는 “당시 기독교 학교는 개인적 신앙에 머무르는 않고, 애국·애족의 교육을 했다”며 “이는 기독교 학교를 설립한 목적이자 건학이념”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기독교 건학이념에 기반 한 교육은 3.1운동의 기폭제였다”고 덧붙였다.

게다가 그는 “당시 기독교 학교의 신앙 교육으로 신앙적 회심들이 철저한 뒤따랐다”며 “복음을 접한 아이들은 회심하고 신앙으로 거듭나니까, 예수를 따르는 제자 양육에 초점을 맞춘 교육은 결실을 거뒀다”고 했다. 나아가 그는 “당시 중요한 교과목은 성경”이라고 강조했다.때문에 그는 “과감하게 3.1운동은 종교 운동”이라고 못 박으며, “정치적 독립운동으로만 이해하면 안 된다”고 역설했다. 더불어 그는 “3.1운동의 근본 동력은 기독교 정신에 따른다”며 “이는 성경을 제 1과목으로 했던 기독교 학교 교육에서 기인했다”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당시 기독교 학교의 모든 교과목이 기독교 신앙으로 촉촉이 젖어 있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그는 “신앙과 교육이 분리되지 않았다”며 “심지어 국어시간에는 성경을 지문으로 사용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예로, 그는 “일제는 일본말을 교육시키려 했지만, 이화학당을 비롯한 당시 기독교 학교들은 국어과목을 사수했다”며 “왜냐면 민족의 혼이 담겨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다른 일례로, 그는 “공주 영명학교는 음악과목에서 찬송가 ‘그리스도의 군병가’를 가르치며 서양 음악을 소개했다”며 “이로서 항일의식을 고취시킬 수 있었다”고 전했다.더불어 그는 “교육 시설은 열악했지만 당시 선생님이 곧 시설이었다”고 전했다. 가령, 그는 “한경직 목사의 진로를 놓고, 우용진 자작교회 전도사와 홍기두 진광 소학교 선생이 진지하게 논의했다”며 “이처럼 학생 교육을 놓고 교회와 학교가 함께 고민했었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한경직 목사는 오산학교를 다니면서, 조만식 선생을 회상하며 ‘그 분은 24시간 교육’이라 말했다”며 “24시간 교육은 ‘그분의 삶이 곧 교육’임을 말한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그는 “오산학교뿐만 아니라 기독교 학교 선생들의 삶은 곧 교육 이었다”며 “그들의 헌신된 삶이 학생들 마음에 꿈과 소망을 준 것”이라고 역설했다.

한편 그는 현 공권력이 기독 사립학교의 교육권에 간섭하려는 상황을 암시하듯, 당시 조선 기독교 학교의 저항정신을 말했다. 그는 “당시 기독교 학교는 1915년 일제 사립학교령에 대해 저항했다”며 “이는 3.1운동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이를 놓고, 그는 “당시 기독교 학교는 기독교 건학 이념을 주창했다”며 “이처럼 기독교 사립학교는 학생 선발권, 교육과정 편성권, 교사 임용권, 등록금 책정권, 법인 운영 자율권을 보장 받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교육과정 편성권은 ‘사립학교는 기독교 건학 이념에 따라 교육과정을 만들 수 있다’이며, 교사 임용권은 ‘사립학교는 채용에 있어 신앙을 가진 사람을 기준으로 세울 수 있다’이고, 마지막으로 법인 운영 자율권이란 ‘건학이념에 따라 학교를 외부 공권력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을 운영권’임”을 설명했다.

다만 그는 “헌법 재판소 판결문은 오늘 기독교 학교를 포함한 사립학교를 준공립학교라 했다”며 “이는 설립만 법인이지 국공립학교와 다를 바 없음을 뜻한다”고 지적했다. 이유로, 그는 “헌재는 국가 재정 지원 등 국가 통제 속에 기독교 학교가 있기 때문으로 봤다”고 덧붙였다.
하여, 그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해, 기독교 학교의 독립성과 동일을 회복하기 위해 기독교 사립학교의 자율성 회복이 시급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기독교 학교는 복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장(場)”이라며 “현재 기독교 사립학교는 복음도 무너지고, 사람도 변화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나아가 그는 “조선의 기독교 학교들은 공공성을 강조했다”며 “안 믿는 사람들도 기독교 학교에 보낼 정도로 신뢰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당시 조선 사람들은 기독교 학교를 두고, 애국정신이 투철한 학교라 생각했다”고 이유를 소개했다. 반면 그는 “현재 교육의 전반은 개인의 입시, 진로에만 매몰된 교육을 한다”며 “그러나 당시 조선 기독교 학교 교육은 공적 이익을 위해 개인 출세를 희생할 수 있는 교육관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이었다.

끝으로 그는 “당시 예수교 장로회 노회는 주일학교 보고, 주중학교 보고 있었다”며 “이는 교회가 적극적으로 학교를 지원했던 것”이라 밝혔다. 특히 그는 “당시 장로교 안에는 학무국장이 따로 있었으며, 그 중 원두우(언더우드, 경신학교) 목사가 이를 맡기도 했다”며 “그러나 현재 한국 교회는 기독교 학교를 사명으로 끌어안는 데 퇴보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그는 “한국 교회는 적극적으로 기독교 학교 지원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http://www.christiandaily.co.kr/news/keyword-82496.html

‘학교서 말씀 가르치자’ 성경수업 입법화 논란… 트럼프 “Great!” 응원

‘학교서 말씀 가르치자’ 성경수업 입법화 논란… 트럼프 “Great!” 응원-국민일보 미국은 1787년 헌법 제정 후 10가지 조항을 추가해 1791년 첫 번째 개헌을 했다. 이때 추가된 부분이 시민의 권리에 관련된 내용이라 권리장전(Bill of Rights)이라 부르는데, 이 수정헌법 제1조가 종교·언론·출판의 자유, 집회·청원의 권리에 관한 것이다. 종교의 자유에 관한 부분이 최우선이다. 의회가 국교를 설립해도 안 되며(Establishment Clause), 종교활동을 제한해서도 안 된다(Free Exercise Clause)는 두 구절의 공존이 바로 미국 정교분리 갈등의 시작이다.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을 구분하는 게 간단치 않다.

미국의 학교들도 마찬가지다. 학교에서 어떤 성경을 읽고 어떻게 기도 드릴지를 둘러싼 가톨릭과 개신교 간 갈등으로 1844년 필라델피아에서 개신교도들이 가톨릭 성당에 불을 지르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20세기 들어서는 생물 수업에 진화론을 포함하는 것을 놓고 진보와 보수 개신교가 나뉘었다. 그런데 1940년대를 지나며 대법원이 수정헌법 제1조의 두 구절을 연방정부에서 더 들어가 주 단위까지 적용하는 판결들을 내리며 논란이 불거졌다. 공립학교에서 기도가 위헌이라는 1962년 판결, 종교와 도덕 지도를 위한 성경 읽기가 위헌이라는 1963년 판결 등에 이어 고등학교 미식축구 경기에서 기도가 위헌이라는 2000년 판결에 이르러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다.

미 폭스방송 뉴스쇼 폭스앤프렌즈는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성경 문맹퇴치 수업 법안(Bible literacy class bill)’을 통과시키려는 노스다코타주 하원의원 에런 맥윌리엄스의 인터뷰를 방영했다. 이 법안은 공립학교에서 선택과목으로 성경을 가르칠 수 있게 하는 것을 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응원하는 트윗을 날려 공립학교에서의 성경 수업이 다시 한번 집중 조명되기도 했다.

애리조나·아칸소·조지아·켄터키·오클라호마·테네시·텍사스주 공립학교에선 학생들이 성경 수업을 선택할 수 있다. 지난해 앨라배마·아이오와·웨스트버지니아주에선 이 같은 법안이 의회에서 부결됐지만 올해 노스다코타·미주리·인디애나·웨스트버지니아·플로리다주 상·하원에 법안이 발의 중이다. 또 버지니아주 상원은 이달 초 법안을 통과시켰다(지도 참조).

이들 주는 대부분 남부 보수 복음주의 기독교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크게 의지하고 있는 지지층이기도 하다.

법안들은 미국 정치에서 가장 오래된 논란 가운데 하나인 교회와 국가의 분리에 관한 갈등을 다시 불러오는 듯하다. 맥윌리엄스 의원처럼 입법을 추진하는 측은 “기독교와 성경의 영향을 빼고 미국 역사를 논할 수 없다.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려하는 측은 “실제로 공립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게 되면 기독교 신앙이 학생들에게 전해질 수밖에 없다. 정교분리 원칙에 위배될 우려가 크다”고 맞섰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헥터 아발로스 아이오와주립대 교수를 포함한 아이오와 소재 대학의 성서학자 세 명은 아이오와주 하원 발의안에 반대하는 의견을 발표했다. 이들은 “법안 내용이 정교분리 원칙에 따라 중립적인 것 같지만 실제 성경 수업이 진행되면 그렇지 않을 수 있다”며 “성서학을 제대로 배우지 않은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성경에 대한 자신의 해석이나 신앙을 강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예수님은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해를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사람에게나 불의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주시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하여라”고 말씀하셨다. 추구하는 바가 ‘이 땅에 하나님 나라’라면 함께 가는 길도 마찬가지여야 하지 않을까. 종교의 자유가 정치에 휘둘리지 않게, 또한 신앙으로 서로 갈등하지 않도록 함께 어울려 지내는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박여라 영문에디터 yap@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063353&code=23111115&sid1=chr

베네수엘라 구호품 반입 두고 국경 지역에서 ‘충돌’…사망자, 부상자 속출

극심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베네수엘라를 향해 서구 사회의 구호물품이 답지하고 있으나, 외국의 지원을 거부하는 베네수엘라 정부의 물품 거부로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 등 외신은 23일자 베네수엘라와 브라질, 콜롬비아 국경 지역에서 구호 물품을 반입하려던 주민들이 국경수비대와 충돌해 최소 2명 이상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했다고 보도했다.

주민들과 야당 지지자들은 구호 물품을 실은 트럭이 국경 다리를 통과할 수 있도록 바리케이드를 치우려고 했고, 국경수비대는 이를 저지하기 위해 최루탄과 고무총탄을 발사했다. 이에 주민 2명이 숨지고, 최소 20명이 부상을 당했다. 하지만 구호 물품 반입을 위한 시도는 계속되고 있어 피해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앞서 마두로 대통령은 구호 물품 반입을 금지하기 위해 브라질과의 국경을 폐쇄한다고 선언했다. 마두로는 외국이 인도주의 지원을 이유로 군사개입이나 내정간섭에 나설 것이라며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몇 달 동안 식량과 의약품 바닥이 나고, 굶주림이 계속되면서 300만 명 이상의 국민들은 국경을 넘었다. 이에 23일을 구호 물품 반입일로 선언한 야권 지도자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은 이날부터 미국 등이 보낸 구호물자를 베네수엘라로 들여오고 있다. 한 외신은 구호품 반입은 마두로 정권의 장악력이 약화됐음을 알리는 신호라고 평가했다.

과이도 국회의장은 트위터를 통해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의 국경 다리를 지키던 국경수비대 3명이 야권에 합류했다고 밝혔다. 그는 “그들은 국민과 헌법의 편에 서기로 했다”며 “환영한다. 베네수엘라에 자유와 민주주의가 도래하는 것은 이미 막을 수 없는 일”이라고 적었다.

기도 | 하나님, 위기 속 베네수엘라를 긍휼히 여겨 주십시오. 눈으로 드러난 경제 위기에서도 정권의 안정을 우선시하는 현실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위기를 위기로 받아들이는 겸허함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이러한 상황의 해결을 위해 먼저 지난날의 역사를 돌아보게 하시고,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발견하고 돌이킬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낼 수 있도록 은혜를 주소서. 그리고 위기를 통해 역사의 주관자 하나님을 주목하여 주님의 은혜로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옵소서. [복음기도신문]